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

D-29
도마뱀이 하나씩 둘씩 살던 시절에 나는 태어났네. 이데밀리의 아이로. 하늘이 처음으로 울며 힘들게 떨어뜨린 눈물방울이 내 몸에 반점을 만들었다네. 하늘에서 태어난 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이 땅을 걸어 다녔고 조문객들은 그들이 가는 길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나를 보았네. 하지만 최근에는 기묘한 종소리가 처량한 노래를 불러 대고 있다네. 당신의 얌과 코코얌을 내려놓고 학교로 오시오. 이제 나는 서둘러 달아나야 한다네. 아이들이 장난으로 또는 진지하게 소리치네. 조심해! 기독교도가 온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신의 화살 386-387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마지막에 기독교도가 온다. 하하하하 부분 소름끼치네요.
동감입니다. 더 앞에서 울루 신이 에제울루 귀에다 대고 헤헤헤헤 하면서 웃는 장면도 무서웠어요. (진짜 신의 소리인 건지 에제울루가 만들어낸 환청인지 모르겠지만요.)
가슴속에서 불길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더니 오비카의 입으로 메마른 씁쓸함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는 멀찍이서 또는 그의 입속에 있는 입에서 그 맛을 보았다. 마치 한 사람 위에서 또 한 사람이 달리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별개의 두 사람인 것만 같았다.
신의 화살 393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무아로와 그곳의 지도자들만이 최후의 결과를 보았다. 그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했다. 그들의 신은 고집스럽고 야망에 찬 사제에 대항하는 부족민들과 한편이 되었다. 그러니까 개인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부족민들보다 훌륭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부족민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절대로 얻어 낼 수 없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확인시켜 주었다. 만일 상황이 이렇다면 울루 신은 아주 위험한 시기를 선택해 이런 진리를 확인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울루 신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자기 손으로 망친 우화에 나오는 도마뱀과도 같이 사제를 파멸시키면서 자신에게도 재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의 사제를 징벌하거나 적들 앞에서 그를 포기하기 위해 이와 같은 순간을 선택했다면 그는 버릇없이 굴라고 사람들을 선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무아로는 그런 행동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의 화살 399-400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여기서 작가 아체베는 전통 종교의 가치와 지혜를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고 객관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관조하듯 묘사한다. 작가의 중립적인 태도는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주장 '사이'에 있다.
신의 화살 p.402~40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피식민지 공간에서 "북으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지 간에 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양자택일을 한다거나 두 가지 선택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대사제 에제울루의 비극은 어떤 선택도 완전할 수 없는 식민지 상황이 그의 성격과 결합한 결과다. 식민지 주체인 영국을 위해 친영파가 될 수도, 철저한 부족주의자가 될 수도 없었던 에제울루는 개인적인 결함과 역사적인 상황이라는 두 개의 덫에 동시에 걸린 필연적인 결과를 맞이한다.
신의 화살 p.40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제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다 한들 역사적 굴레를 벗기 힘들고, 역사적 상황이 아무리 순조롭더라도 개인적인 욕망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신의 화살 p.40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당시 내 양가적인 입장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고뇌에 시달렸던 적은 없다. 근거 없는 불안에 떨었던 적도 없다. 내게 기억나는 것은 그 교차로에서 다른 한 팔로 우상에게 떡을 바치던 사람들이 행했던 제식과 삶의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당시 두 가지 것에 매혹되어 있었다. 하나는 호기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짧은 거리감이었다. 그들의 삶과 내 삶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감, 나의 특별한 탄생 배경으로 인해 조성된 거리감. 그 거리감이 분리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캔버스를 보다 정확하고 충분하게 보기 위해 한 발 물러서 있는 한 명민한 관객의 거리감, 다시 말해 흩어져 있는 것의 종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거리감 같은 것이었다.
신의 화살 p.40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아체베는《작가와 사회》라는 글 말미에서 "내겐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양자의 동시 추구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때론 내 삶을 어렵게 하고 깔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라고 선언했다.
신의 화살 p.40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오늘 책 반납일이어서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동안 해설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버스도 기다릴 겸 잠깐 안에 앉아서 해설을 읽었는데요. 작가의 이 문장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렇다 할 수사나 장식이 들어간 문장도 아니고, 단순한 생각의 표현임에도 고기를 꿰뚫는 꼬치마냥 제 생각을 꿰어버리는 문장이었어요. 아프리카와 서구라는,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되풀이 되는 주제의식만이 아니라도 이 말은 우리 인생에도 참고할만한 조언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서로 다른 반대편에 있다고 하여 그게 서로 대립하거나 적대해야 하는 건 아니며, 내 편 아니면 네 편의 진영과 이분법으로 단절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체베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삶 속에서 기독교-서구의 문물과 아프리카 고유의 전통과 토착신앙을 자연스러운 삶과 추억으로 받아들였고, 그게 자양분이 되어 이런 소설들을 쓸 수 있었겠죠.
저도 이번 작품 해설을 참 좋게 읽었습니다. 인용하신 작가의 말도 그렇고 마음에 와 닿는 설명이 많았어요. 작품 이해에도 도움을 받았네요. 은화님 덕분에 예전부터 읽어야지 생각만 했던 치누아 아체베의 책을, 그것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뿐만 아니라 3부작 전체를 읽게 되어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그리고 전문 해설자보다도 더 깊은 감상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아체베 작가의 작품으로 <사바나의 개미 언덕>이 하나 더 있더라고요. 다만 이 작품은 아프리카 3부작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더 이상 평안은 없다 - 신의 화살)에는 들어가지 않는데요. 배경 시간대는 가장 현대에 가까운 1960~70년대로 서아프리카의 국가에서 쿠데타와 정권교체라는 격변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마 기존 3개 작품은 아프리카의 전통의 교체 과정을 묘사한 데 비해 여기서는 현대사의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3부작에 들어가지 않나 봐요. 나중에 개인적으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사바나의 개미 언덕
오, 가장 현대에 가까운 배경이라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킵해뒀다 나중에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깔끔하고 정돈된 인생이 어디 있을까요? 아체베가 인생은 잘 봤네요. 전 '식민지배를 당하는 국가가 식민지배를 하는 국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 아체베의 말에서 어느 철학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겉으로는 주인이 하인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주인이 하인 없는 삶을 살지 못해 하인에게 주객이 전도된다는....누구의 사상인지 어느 책에서 봤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컥 저도 @은화 님이나 @향팔 님처럼 멋지게 '누구의 책 뭐시기에서 말했듯이'라고 조리있게 댓글 달고 싶네요. 으헝
앗 꽃의요정님.. 제가 거기 왜 이름이 드가나요 ㅎㅎ 은화님은 맞지만 저는 아닙니다요~
부끄럽네요.. ㅎㅎ 그냥 생각하는 대로 적을 뿐입니다.. 식민지배로 인해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책 대목 읽을 때 뜬금없지만 영국에 대한 풍자유머가 생각났는데요. 영국 음식이 맛없어서 세계 각지의 맛있는 식재료와 요리를 들여오기 위해 다른 나라에 침략했다고..
결국 신의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는가? 이보족의 속담처럼 한 사람 또는 한 사건은 신의 의지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사제의 아들이 죽고 사제 자신은 부족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이 신의 뜻이던가? 모든 것의 붕괴와 파멸을 본 수많은 마을 주민들은 전통적인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전통적인 햇얌 축제 문제로 야기된 마을의 위기가 외부 종교에는 오히려 포교의 기회가 된 것이다.
신의 화살 p.410,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나는 아프리카 문학을 다루는 유럽의 비평가가 자신들의 제한된 아프리카 경험을 인정하고 보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음을 강권했다. 또한 역사가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전수한 우월성과 거만함을 벗어 버릴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중략) 그러므로 나는 아프리카 문학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보편적"이라는 말의 사용을 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의 화살 p.40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음에 읽을 책은 <스파르타쿠스 전쟁>입니다. 그동안 아체베 작가의 문학을 쭉 읽었기에 다시 교양 서적을 읽으려고 하는데요. 검투사 노예로서 살고 제국에 저항했던 그의 삶을 쫓아보고, 로마의 검투 노예 생활이 어땠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스파르타쿠스 전쟁 -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고대 전쟁사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 배리 스트라우스의 역사서.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로마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73년에서 71년까지 2년에 걸쳐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로마와 이탈리아 본토를 뒤흔든 노예 반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이끈 반란을 현장감 있고 꼼꼼하며 상세하게 재구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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