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쌍안경으로 흥남부두에 피난가기 위해 추위에 떨며 서있는 군중을 살펴 보다가 십자가 나무에 흰 깃발을 만들어 X.P자(이불 홋청을 뜯어 나무 십자가에 달아 만든 깃발)를 써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궁금하여 알아보니 임길순 일행이 천주교 신자임을 알리려는 것이었고, 특히 공포에 휩싸여 어른들과 가족의 손에 이끌려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본 라루 선장은 ‘우리 배에 있는 모든 짐을 버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태워라!’ 라고 명한 뒤 23일 출발하여 (오후) 28시간을 항해한 끝에 부산항에 도착하게 되었으나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으로 거제도에 닻을 내리게 된다.
*훗날 이 일은 한번에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사례가 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1만4,005명)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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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이 있네요.
한 번도 사람을 태운 적이 없는 화물선에 “최대한 많은 피난민들을 싣고 떠나겠습니다.”라고 라루 선장이 말했습니다.
[다큐온] 6.25한국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대규모 해상철수작전 ‘흥남철수작전’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1부” (KBS 210619)
https://youtu.be/9-Oiksr8EzQ?si=SLMxgM_8nPjtWlQt
[다큐온]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정원 200배 넘게 태울 수 있었던 비밀! 사라진 라루선장은 어디로 갔을까?/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2부 (KBS 210626)
https://youtu.be/Ps5OtO9GDmM?si=a9pvFIK0NGA1o4xq

향팔
흥남 철수, 하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로 시작하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생각나고, 어렸을 때 읽은 김형민의 글 <내 평생의 찰떡>도 같이 떠올라요. 실제로 그날 그곳에 있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향팔
“ 흥남부두는 지옥이었어. 세상이 또 한 번 뒤집히려고 하지 않겠니. 한 번 뒤집혔을 때 살판났던 사람들은 그대로 죽을 판이 된 거지.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울고불고 악을 쓰고 헌병들은 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심지어는 총도 쐈다. 배는 한정되어 있고 타려는 사람은 정원의 열 배는 되었을 테니까. 아니 백 배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반공 유격대의 '수괴'였잖냐. 그래서 직계 가족들은 태울 수 있도록 조치를 받았나 봐. 그런데 지금도 황망한 것이 글쎄, 할아버지가 우리를 태우지 않고설랑 "여기 있으면 반드시 죽을" 교회 동료들을 태우겠다는 거야. 장손인 큰형, 그러니까 네 큰아버지만 같이 가는 걸로 하고 말이다. 여자하고 애들이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고 다시 유엔군이 북진하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심산이었지. 이건 육지에 서 있어도 바다에 빠지는 느낌이라. 내가 살면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네 고모 둘하고 둘째 큰아버지하고 나하고 할머니하고 다섯 명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어.
그렇게 넋을 잃고 다섯 명이 울고 있는데 우리 집에 머물던 장교 하나가 우릴 알아봤어. 왜 울고 있느냐고 묻기에 사정을 설명했더니 험악한 욕지거리를 내뱉는 거야. "아무리 목사라지만 동료 구하자고 지 새끼 내버리는 인간이 어디 있어!" 그 장교가 우리를 데리고 가서는 헌병 장교한테 목사 가족이고 여기 있다간 꼼짝없이 죽을 목숨이니 배를 태워 주시오 부탁을 했고 용케 자리가 났어. 배에 오르는데 성경 학교 때 배운 노아의 방주라. 부둣가에 새까맣게 몰려들어 울부짖는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지금도 기억난다. 울기도 지쳐서 꺽꺽거리던 여자들, 아이들, 두 손 들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던 아저씨들……. ”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1950년 12월 14일 | 흥남 철수, 김형민 지음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1년 365일의 날짜를 이정표 삼아, 우리의 마음에 '오늘'처럼 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동시대를 위로하고 인간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보여 준 이들, 관습과 편견을 뒤집은 전설 같은 일들, 언젠가 또 세상을 시끄럽게 할 사건들. 그렇게 웃고 울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선택하고… 그러다 시대를 바꾸기도 했던 365일 '오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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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할아버지가 배에서 내려 버린 거야. 가족 두고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큰아버지만 혼자 배에 남기고 덜렁 하선해서는 온 부둣가를 헤매다가 한창 시가전 벌어지고 있는 흥남 시내까지 들어갔다 돌아오신 거야. 그때 낯익은 홍원 사람 하나가 "목사님 식구들은 딴 배에 탔슴다" 하더라는 거야. 할아버지는 우리가 탄 배에 탔고 큰아버지는 열여섯 나이에 완전히 따로 떨어져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지.
너는 미국을 욕하길 좋아하지만 그때 흥남부두에 있던 피난민들 거지반을 구한 건 미군이었다. 국군 헌병들이 배에 오르려는 피난민 머리를 두들겨서 물에 떨어뜨릴 때 말린 것도 미군이었고 포탄이 부두 근처까지 떨어지는데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끝까지 남았던 배도 미군 수송선이었어. 내가 탄 배도 미군 배였는데 미군 장교가 쏼라쏼라 악을 쓰니까 배에 있던 사람 중에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좋아서 펄쩍 뛰더라. "배가 뒤집히더라도 일단 실어!" 뭐 그런 얘기였다는군.
노예선에 탄 흑인 노예같이 빽빽이 들어차서 똥오줌도 선실에 누면서 배멀미에 토해 가면서 당도한 게 거제도였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얘기하면 오늘 밤 샐 거고 딱 하나만 얘기해 줄게. 거기 포로 수용소가 있었잖니. 내 생각에 당시 남이고 북이고 한반도 통틀어서 의식주 분야에서 평균 이상을 누렸던 게 그 포로들인 것 같아. 미국이 포로 밥 굶길 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잖아. 그리고 한 번씩 포로복도 지급해서 헌 옷들은 죄 갖다 불태워 버리곤 했어. 그때 내가 옷이 없어서, 정말로 입을 옷이 다 떨어져서 포로수용소에서 헌 옷 실은 차가 나오는 걸 하루 종일 기다린 적이 있어.
차가 나오니까 애들도 따라 뛰기 시작했지. 저거 못 얻으면 고추 내놓고 다녀야 한다 생각하니까 미친 듯이 달리게 되더군. 넘어져도 아픈 줄도 모르고 발딱 일어나서 차를 따라갔지. "기브 미 기브 미!" 외치면서 말이야. 난 초콜릿 달라는 말은 해 본 적 없다. 근데 그때는 "기브 미 즈봉(일본말로 바지), 기브미 샤쓰!"를 번갈아 외치면서 트럭 뒤의 먼지를 따라붙었어. 그래서 POW* 크게 찍힌 옷 한 벌을 얻어 입을 수 있었지.
*prisoner of war의 약자. 전쟁 포로. ”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1950년 12월 14일 | 흥남 철수, 김형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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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익환 목사 부친이 문재린 목사라는 양반인데 네 할아버지하고는 절친한 사이셨다. 익환 밑에 동환은 네 둘째 큰아버지하고 잘 아는 사이고. 그 동환 밑에 또 무슨 환이 있었는데 피난지에서 같이 교회를 다녔지. 근데 그 집안에 문성근 같은 배우도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 끼도 참 충만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배곯고 헐벗었던 어느 날 교회에서 소풍을 갔어. 그때 그 문 씨 친구가 깍지를 딱 끼고 열렬하게 기도를 시작하는데 "저에게 복을 주시려면 멋들어진 한복 하나 주시옵고, 저에게 벌을 주시려거든 양복 한 벌을 주시옵고. ……" 사람들이 뒤집어져서 웃는데 찬송가 506장을 능청스럽게 부르는 거라. 원래 가사가 이거거든. "내 평생에 소원 내 평생에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이걸 이렇게 바꿔 부르더라고.
"내 평생에 찰떡 내 평생에 찰떡 찰떡에 기름을 발라서 한 조각 먹길 원하네."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사무치게 같이 불렀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얼마나 찰떡 기름이 혓바닥 위에서 아른거리는지. 굶어서 배가 고픈 건지 웃어서 배가 아픈 건지 모르겠더라. 나중에는 애들이 울먹이기까지 했지. 내 평생에 찰떡 내 평생에 찰떡 찰떡에 기름을 발라서 한 조각 먹기를 원하네……. 너희들은 몰라. 정말로 모른다. ”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1950년 12월 14일 | 흥남 철수, 김형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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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기적이라 불리는...
흥남에서 출항한 빅토리호는 28시간만에 부산항에 도착하니 12월 24일 저녁이었다. 부산은 이미 피난해온 사람으로 넘쳐날 지경이어서 빅토리호는 선수를 경남 거제로 돌렸다. 이튿날, 12월 25일 장승포 항구에 도착(80km 이내의 수로)했는데 내린 피난민은 14,000여명이 넘는데도 거제 주민의 동족애는 눈물겨웠다. 우리 피난민 소식을 미리 들었던 그분들은 주먹밥을 준비해 나눠주며 환영해 맞았다.
※저자인 본인이 거제를 알고나서의 소견 :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이자 임길순씨와 같은 함주군 출신으로 같이 피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 또한 제2의 고향이나 다를바 없는 곳이다.(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한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는 뱃속에 문재인 대통령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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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에서 내린 천주교 신자 200여명을 옥포성당에서(공소) 임길순(암브로시오)는 각자 끼니와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딱한 말씀을 200명 앞에서 하였지만 다행히도 한 신자가 도움을 주어 모두 같 이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반찬으로 먹게 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된장에 버무려진 콩잎 반찬으로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이때 신자분의 일년치 농사 양식을 다 먹게 되었다고 한다.
잘 먹었습니다. 콩잎 반찬이 맛있어요!
차린게 없는데 잘 드셨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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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순 가족이 거제 장승포에 내려서 찾아간 곳은, 우선 교우를 만나는 것이 이 난관을 해결하는 첩경이라 생각되어 옥포성당 공소를 찾아가서 다행히 거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김태수 씨를 만났다.
임길순
"하느님! 제 왼쪽의 김태수 형제님의 안내로 여기에 모여 기도 드리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중략(추모경)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김태수 형제님을 만났습니 다. 김형제님께 지혜를 주시어 저의 가족을 돌보아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 모든 것과 부족한 생각까지 헤아려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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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과 콩잎 반찬에 감동했어요. 먹어야 에너지를 얻고 또 살아갈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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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서 진해로
신세를 지고 있는 김태수씨의 사진관은 사람들이 북적이곤 했다. 거제에도 수용소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일감이 전보다 꽤 늘었기 때문이었다. 김태수씨는 임길순 가족들에게 흔쾌히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빌려주었다. 가족을 이끌고 온 임길순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마음속 깊이 김태수 님의 선처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거제 -> 진해는 약 40km 정도
전쟁통에 피난을 온 임길순의 가족은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김태수씨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 있었지만 계속 신세를 질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거제를 떠나 진해로 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김태수씨는 우리 가족의 결정에 따라주었다.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도울테니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현재 고故 김태수 님의 아들은 창원에서 미래산부인과 원장으로 계시며 성심당과의 연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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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에서의 냉면장사
이북 고향땅 함주를 떠나 거제를 거쳐 진해에서 가족이 살아온 것도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향에는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쪽 생활은 모든게 처음이자 가지고 있던 건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함흥냉면 집을 열기로 맘먹고 가게를 할 자리를 찾아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살기가 버거운 시절이었고 임길순은 하루 장사를 마치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남은 음식을 나누어주곤 했었다. 냉면은 주재료가 감자인지라 감자 농사가 풍부하지 못한 경남지역은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큰 어려움이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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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북 함주를 떠나와 거제에서 다시 진해로 이주하여 정착한지도 어언 6년이 지났다.
꿈속에서도 고향이 그리웠다. 그러나 이남 피난 생활도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여러 지인이 생기고 살만하다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직 고향 만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향에 갈 수도 없으니 남한 땅에서 새출발을 하여 제2의 고향을 만들어야 했다. 진해에서 했던 냉면집도 그럭저럭 장사는 되었지만 감자가 귀하여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하여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차에 통일호 열차를 타고 수도인 서울에 가서 정착해 살아보기로 맘먹고 가족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나게 된 것이다.
(*1956년 당시 서울인구는 대략 150만 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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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멈춘 통일호 기차
진해에서 가까스로 열차를 탄 임길순과 그 가족은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찜통 같은 열차에 몸을 맡기고 서울 상경이라는 마음에 가슴이 뛰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차는 대전역에서 갑자기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요즘처럼 고장이 나면 기술자들이 달려와 재빨리 수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열차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한숨을 지으며 객실을 나와 대전역을 빠져나왔다. 임길순도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했다. 가족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라도 대전에 잠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북에서 피난을 온지 6년째였다. 1956년 대전에서 통일호 열차가 멈춘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성심당의 역사’도 그 시작의 서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길순은 대전에서 살아보기로 맘먹고 나서 바로 대전역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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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두 포대를 받다.
대전역에 도착 후 서울행 기차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된 임길순 가족은 대전에서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피난 온 거제에서 처럼 대전역에서 제일 가까운 성당을 알아보니 대흥동에 있는 대흥동 성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달음에 달려가 성당에 도착해 신부님을 찾아뵌 것이다.
이때 만나게 된 신부는 오기선 주임신부였다. 임길순은 이북 흥남에서 거제, 진해를 거쳐 대전에 오기까지 빠짐없이 살아온 일들을 고해성사하듯 말씀 올리니 이를 안쓰럽게 여기고 대견하게 생각한 오기선 신부는 가지고 있던 구호 물자 밀가루 두 포대를 임길순 가족에게 건네 주었던 것이다. 임길순 부부는 이것을 먹지 않고 찐빵을 만들어 장사를 하기로 맘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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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2포대의 발효
찐빵 장사를 할때 밀가루 2포대 가지고 임길순씨 내외가 시작하였다. 배운 발효법대로 밀가루를 반죽했지만 추운 날씨에 더운데가 없었다. 식구들이 자는 방 한 칸에서 김치독에 넣은 반죽을 밤새도록 군인 담요를 덮어 놓으면 아침에는 부풀어 올랐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백열등을 항아리 속에 놓아 보니 매우 안성마춤이었다.
“어무이 금방 부풀어 올라 왔어요!”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이 만들어 팔 수 있겠다.”
*피난살이때 종이 BOX는 책상, 밥상, 옷상자, 신발자, 판자집 지붕, 벽, 낡아지면 연료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림 - 피난살이 단칸방/ 연탄가루를 물로 반죽하여 건조해 담아놓고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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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거는 찐빵이고 기름에 튀긴 건 도나스가 되고
팥을 삶아 놓고 먼저 불려 놓으면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대전역은 배고픈 사람들이 넘쳐났다. 거기서 진짜 찐빵 소리만 들어도 ‘저게 뭐냐?’ 하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장사가 안될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나는 찐빵을 즉석에서 찌고 팔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돈으로 기름을 사고 깡통을 사서 기름에 찐빵을 튀기면 ‘도너스’가 되고 찐 거는 찐빵이 되었다.
*피난 시절 그릇, 접시 대신 종이A4용지 크기 잡지. 포장 안쪽/ 젓가락 대신 A4 1/8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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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배’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빅토리호의 사진도 책에 실려 있더라고요. “영하 20도의 눈보라 속에서 승선하는 데만 16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빅토리호 일등선원 로버트 러니의 증언.”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형민 샘의 아버지는 흥남 철수 당시 열한 살이었다고 하네요. 김형민 샘의 할아버지는 함경남도 홍원 교회 목사셨고요. 글 전체를 읽으면 더 재미있지만 너무 길어지는 듯해 후반부만 올렸습니다. 마지막에 “내 평생의 찰떡”을 부르는 장면에선 살짝 울컥하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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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찾아봤어요.
시대별로 변화하는 현인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 현인(1953)
https://youtu.be/LgN16w1YtHU?si=Pj2PSlXIeXNvWwxJ
1971,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https://youtu.be/PkZ_F4Y1Lbg?si=z_N-1JgCMKe-6E5P
KBS 쇼특급 1988.10.23 방송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https://youtu.be/vBkAnIKc07M?si=JJDrCcpHHBC8k9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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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 : 강사랑
작곡 : 박시춘
1절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목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2절 -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3절 -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의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웃어나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향팔
저는 한영애 버전도 좋아합니다.
https://youtu.be/YmOCI29Ruio?si=lA1eup5Ga71F3a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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