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D-29
보통의 경우라면 앨버레즈는 그 문제를 그대로 던져두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전폭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그의 아버지 루이스였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명한 핵물리학자였다. 그는 암석에 집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 문제는 그에게도 흥미로웠다. 우주에서 날아온 먼지에 그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매년 지구에는 대략 3만 톤의 "우주 소구체小球體", 즉 우주 먼지가 날아와서 쌓인다. 한곳에 모아놓으면 상당한 양이 되겠지만, 지구 전체에 흩뿌리면 아주 적은 양이다. 그런 먼지 속에는 지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원소가 들어 있다. 이리듐도 그런 원소 중 하나로, 우주에는 지구에서보다 1,000배 이상 더 흔하게 존재한다(그 이유는 지구가 만들어지던 초기에 대부분의 이리듐이 지구의 중심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0 p.233,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앨버레즈는 프랭크 아사로라는 캘리포니아 주의 로런스 버클리 실험실 동료가 중성자 방사화放射化 분석법이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진흙의 화학적 조성을 아주 정밀하게 결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은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시료에 쪼인 후에 방출되는 감마선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매우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앨버레즈는 아사로가 도자기 조각을 분석하던 방법으로 아들의 진흙 속에 들어 있는 이국적인 원소의 양을 측정한 후에 연평균 퇴적 속도와 비교하면, 그 진흙층이 형성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7년 10월 어느 오후에 루이스 앨버레즈와 월터 앨버레즈는 아사로를 찾아가서 실험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 사실 그 결과는 너무나도 의외여서 세 사람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앨버레즈의 샘플에 들어 있던 이리듐의 양은 예상보다 훨씬 많아서 보통 값의 300배가 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아사로와 그의 동료 헬렌 미셸은 한 번에 30시간이 넘게 걸리는 실험을 반복했지만(아사로는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제나 결과는 같았다. 덴마크, 스페인, 프랑스, 뉴질랜드, 남극 대륙 등에서 가져온 다른 샘플을 분석해본 결과, 이리듐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었고, 거의 모든 곳에서 상당히 많은 양이 검출되었다. 심지어 보통 값의 500배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급격한 상승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엄청나고, 갑작스럽고, 어쩌면 재앙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음을 뜻했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앨버레즈는 지구에 운석이나 혜성이 충돌했다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 그렇지만, 실제로 그들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그랬지만, 특히 화석학계의 학자들에게는 엄청나게 이단적인 주장이었다. ... 루이스 앨버레즈는 농담처럼 말했다. "우린 면허도 없이 지질학을 연구하다가 들통이 나버린 셈이었죠." ... 그러나 충돌 이론에는 훨씬 더 심각하고 근본적으로 끔찍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라이엘 이후의 자연사에서는 천문학적인 현상이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1980년대에 이르면 격변설은 오래 전에 잊혀 더 이상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지질학자에게 재앙에 가까운 충돌 이론은 유진 슈메이커의 표현처럼 "그들의 과학적 종교"에 어긋났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0 pp.235~236,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까마득한 과거에 이런저런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배우는 것 그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 일들이 있었다는 걸 대체 어떻게 헤서 알아낸 건지 그 과정과 노력을 엿보는 재미도 참 쏠쏠합니다.
인간의 스케일에서는 너무나 먼 공간과 시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존재가 애처롭고 귀하게 느껴져요. 별의 먼지로부터 만들어져서 생각을 할 줄 알게 되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게 된 존재가 자신보다 거대한 우주를 비밀을 밝혀내려고 분투하는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어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시대에 따라 인식이나 기술적인 한계로 풀지 못하는 문제도 새로운 방향에서 생각하고 돌파구를 찾아내고야 마는 존재들이요. 때로는 죽음을 무릅쓰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죠.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굽어보며 안타까우면서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바라볼 것 같아요.
그렇게 똑똑하고 탐구적인 인간이 그 지식을 가지고도 스스로 죽을 길을 파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죠. 당장 나만 아니면 돼 정신의 신봉자라는 점도 그렇고요.
인간이라고 하나의 단어로 명명했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무수한 인간 군상이 있기 때문이죠. ^^
다양한 생각을 가졌다기엔 이미 너무 대다수의(또는 지식이나 힘을 가진 대부분의) 인간이 이미 종말의 길로 가기로 (무의식중에(?)) 약정이 된 것 같아요. 그 끝이 당장 자기가 당할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대부분의 인류에 대해서 말한 게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자기 길을 가는 극소수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죠. 신념이라는 것도 어느 방향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테고요. 그 인간도 변할 수 있겠죠.
"그런 먼지 속에는 지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원소가 들어 있다. 이리듐도 그런 원소 중 하나로, 우주에는 지구에서보다 1,000배 이상 더 흔하게 존재한다(그 이유는 지구가 만들어지던 초기에 대부분의 이리듐이 지구의 중심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도 지구 중심으로 이리듐이 들어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밥심 이리듐이 철보다 더 무거우니.. 철에게 카리스마 있게 "날 따라와~!" 라고 했을 것 같네요. ㅎㅎ 겁에 질린 철이 따라나섰지만 반항심이 강한 다른 철 친구들은 "웃기시네 ~"라며 지표면에 남아서 콧방귀를 뀌었던 겁니다.
ㅎㅎ 저도 처음엔 더 무거운 이리듐을 철이 따라간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철이 물량 작전을 해서 이리듐을 끌고 간 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원시지구에서 전체 질량으로 보면 철이 이리듐 보다 훨씬 컸을테니까요. 이리듐이 화학반응을 하면서 철과 친한 것은 아니고 초기 지구 고온 상태에서 액체 상태일 때 철과 잘 얽혔다고 합니다. 거대 물량의 철에 휩쓸려 어차피 무거운 원소였던 이리듐도 함께 핵화된 것이 아닐까 하고 어줍잖은 문학적 상상력(?)을 한 번 부려봤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ㅋㅎ 그나저나 @ifrain 님은 모임을 위해 정말 다양한 참고문헌들을 준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동감입니다. @ifrain 님 어디서 이런 다양한 참고 문헌들을 펼쳐 보이시는지! 볼 때마다 감탄하고 있습니다. 단 제가 과학 지식이 일천하여 따라가기가 벅찹니다. 그냥 구경만 할 다름이죠. ㅠ
함께 따뜻한 대화를 나눠주셔서 많이 힘이 됩니다. ^^ 감사해요.
철 친화도 성운 먼지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원소 중 하나는 철이었는데, 미행성체에 포함된 먼지가 녹을 때 철도 거기서 해방되었다. 미행성체의 중력장은 아주 약하지만, 해방되어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철을 미행성체 중심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길 만한 힘은 있었다. 밀도가 큰 금속 철은 펄펄 끓는 마그마 사이로 천천히 가라앉아 결국 미행성체 중심에 아주 많은 양이 모이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이 <친철원소>라고 부르는 화학 원소들이 있다. 영어로는 <시데로필siderophile>이라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어로 <철>을 뜻하는 <시데로스σίδηρος>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φιλία>를 합친 단어에서 유래했다. 친철원소는 철에 대한 화학적 친화도가 아주 높다. 지질학적 계-지구의 것이건 천상의 것이건 - 에서 친철원소는 철이 한 광물에서 다른 광물로 옮겨 갈 때 함께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철이 가는 곳이라면 친철원소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간다. 14종의 친철원소에는 니켈, 백금, 이리듐, 텅스텐, 금이 포함된다. 미행성체가 녹으면서 성운 먼지에서 해방된 원소들은 철을 따라 미행성체 중심으로 내려가 철과 함께 거대한 금속 마그마 덩어리를 이루었다. 이것을 핵이라 부른다. 만약 분화된 지 얼마 안 된 미행성체에서 용융 상태의 금속 핵을 볼 수 있다면 태양처럼 뜨겁고 밝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속이 가라앉으면서 뒤에 남기고 온 마그마 - 밀도가 금속보다 조금 더 작은 - 가 그 주위를 두껍게 둘러싼 층을 이루고 있어 이 핵을 실제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철과 친철원소를 거의 다 빼앗긴 바깥층의 화학적 조성은 그 아래에 있는 금속 마그마 구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해 갔다.
운석 - 돌이 간직한 우주의 비밀 pp.107~108, 팀 그레고리 지음, 이충호 옮김
@밥심 님 말씀이 맞았네요. 철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훨씬 무게가 더 나갔나봐요.
아.. 첫눈에 ‘친철원소‘를 ’친절미소’로 읽고 말았네요. 제 삶의 소박한 즐거움인 읽기를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 놈의 노안을 어쩔겨?!
노안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자꾸 '친절원소'로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철에게 친절한 원소..의 약자일지도 모르죠. ^^
@ifrain 저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다행입니까? 동지가 있어서... 😂
저도 사실 책을 좀 보다 보면 눈물이 자꾸 나옵니다. 내용이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죠.. ^^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이 부신다고 느껴지거나 눈을 많이 사용했다 싶으면 눈을 감고 있을 때가 있어요. 부작용은 깜박 잠이 들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ㅎㅎ
부작용은요. 오히려 잘하시는 겁니다. 잠깐의 잠은 건강에 도움이 됐다고 하더군요. 자주 먼 곳을 바라봐 주고요. 저도 자꾸 찡그리게 되서 큰 일입니다. 질문중에 다시 젊어진다면 그렇게 하겠냐고 물으면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던데, 저는 굳이 바라지는 않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사양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 걸어 다니는 거 보기만 해도 부러울 때가 많거든요. 다시 젊어지면 공부고, 일이고, 연애고 정말 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ㅎㅎ
예전에는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왜 쓰고 다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저도 필수로 쓰고 다닙니다. ㅎㅎ 젊은 친구들 보면 다 예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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