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D-29
북쪽의 빙하가 녹으면서 여러 차례 홍수 재해가 발생했다. 고고학자들은 흑해에서 해수면 아래 91미터 깊이의 진흙 속에 묻혀 있던 집의 잔해를 발견했다. 이것은 흑해가 약 7,500년 전에 급격하게 물에 잠겼다는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다. 그 무렵 지중해의 수위는 내륙 빙상이 녹으면서 서서히 상승했고 오늘날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해협을 가로지르는 좁은 육교가 마침내 붕괴되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좁은 해협을 거대한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당시 해안은 물에 잠기고 마을을 매몰되는 등 성경에 나오는 규모의 재앙이 흑해를 강타했다. 극적인 방식으로 흑해는 호수에서 바다로 변했다. 아마도 그것은 경전에 기록되기 전 대대로 모닥불 주위에 모여 이야기했던 홍수였을까? 북유럽 신화에서도 홍수는 인간을 괴롭힌다. 미드가르드 뱀이 라그나로크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바다 위로 솟아오르면서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모든 땅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이 신화는 남쪽에서 구전되었거나 아니면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대홍수에 대한 막연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구는 답을 알고 있었다 - 팔레오세부터 인류세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기후의 역사 p.209, 레이다르 뮐러 지음, 황덕령 옮김
마지막 빙하기에는 빙하가 후퇴하면서 엄청난 양의 자갈, 모래, 점토가 노르웨이 해안 바깥으로 밀려와 대륙붕에 쌓였다. 약 8,200년 전 어느날, 스코틀랜드 크기의 해저지층이 붕괴되어 심해로 가라앉았다. 그 후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 해안을 따라 석기시대 사람들은 바다가 물러나고 물고기가 해안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재앙이 닥쳤다. 거대한 쓰나미가 해변으로 밀려왔고 피오르에서는 해일의 높이가 25미터에 달했다. 연구원들은 노르웨이 서해안 전역의 습지와 호수에서 파도의 흔적을 발굴했다. 올레순 외곽에서는 습지를 시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쓰나미에 휩쓸린 거대한 통나무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순뫼레 지역에서는 작은 청어 떼가 파도에 휩쓸려 내륙의 호수에서 발견되었다. 이 대규모 붕괴를 ‘스토레가 해저 산사태’라고 부른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홍수의 기원은 더 오래된 것일까?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스칸디나비아에도 아가시즈 호수와 유사한 지역적 변형이 있었다. 1만 300년 전, 거대하고 넓은 네드레 글롬 호수가 붕괴되어 외스테르달렌 계곡으로 물이 범람했다. 이 격렬한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흔적은 렌달렌에 있는 수 킬로미터 길이의 유툴호게트 협곡이다. 옛사람들은 트롤이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거대한 협곡이지만 트롤이 아니라 물이었다.
지구는 답을 알고 있었다 - 팔레오세부터 인류세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기후의 역사 pp.209~210, 레이다르 뮐러 지음, 황덕령 옮김
@ifrain 님과 @향팔 님 덕분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발생한 지각 변동이 어떻게 해서 각 지역에 전승되어 오던 홍수 신화로 연계되었는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홍수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이라크(길가메쉬 서사 지역)와 그리스 신화 홍수와 함께 빙하기가 끝나면서 발생한 흑해의 홍수를 모티브로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네요.
A) 기원전 14,000년 ~7,000년 전 사이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로 진입할 때 얼음이 대규모로 녹으면서 지중해의 물이 흑해로 쏟아져 들어오고 빙하 호수가 터지면서 전 세계의 해안선이 바뀌었지요. B) 메소포타미아 대홍수가 일어난 시기는 기원전 2900년 경입니다. 간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수천 년이 지나 해수면이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 시기였죠. 대륙의 빙하는 간빙기에 들어서면서 튀르키예 타우루스 산맥의 겨울 눈이 봄만 되면 녹아내려 폭우를 생성했고요. 간빙기의 따뜻한 기후 속에서 산에 쌓여 있는 눈이 매년 평야를 덮치는 국지적인 기상 현상이라고 일으킨 것이죠. 지금 우리가 접하는 홍수도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느껴지는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넘어오던 시기에 해안선이 상승할 정도로 물이 들어차는 것은 그 위력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시기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천지가 뒤바뀌는 현상을 그대로 목격할 수밖에 없었겠죠. 영토를 잃은 고대인들이 유럽과 아시아로 피난을 가면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파했을 거예요. 그 이야기가 세대를 거쳐 전해져내려왔을 테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A)와 B) 두 시기는 수천 년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길게 보면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대인들의 충격적인 경험이 인류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죠.
보스포루스 해협이 붕괴되고 지중해의 바닷물이 흑해로 쏟아져 들어갔던 상황을 보여주는 짧막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캘리포니아대학교 지질학과 제작)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지금은 흑해가 된 민물 호수 주변에 살던 신석기 시대 농부들이 피난을 가야했던 것이죠. The Post-glacial Flooding of the Black Sea https://animations.geol.ucsb.edu/3_downloads/M2IceAge/fBlackSeaFlood/BlackSeaFloodStory.mp4 출처 https://animations.geol.ucsb.edu/2_infopgs/IP2IceAge/fBlackSeaFlood.html
저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질학과에서는 이미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군요! 보스포루스 해협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니 그곳에서 먹었던 고등어 샌드위치가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기묘한 조합의 샌드위치였는데 그곳에서는 매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터키의 옛 노래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먼 북소리'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와 스릴, 유럽에서의 하루하루는 깜짝 놀랄 광경과 아연한 경험을 하루키에게 선사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국에 이르기까지의 역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타마리아인의 삶과 사회의 패턴은 그들끼리 공유하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다. 지구인의 정신 세계는 그들처럼 외골수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이야기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 도식 중 하나다. 진화심리학의 선구자인 인류학자 존 투비John Tooby와 심리학자 레다 코스미데스Leda Cosmides는 그 이유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후천적인 개인의 경험에서 얻은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생명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타임스스퀘어에 모인 군중들과 경쟁을 하건, 신생대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집단 사냥을 계획하건 간에, 경험은 우리에게 이야기보따리 같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만일 우리가 입자를 볼 수 있는 초인적인 시력을 갖고 있다면, 입자의 궤적이나 양자역학적 파동함수를 통해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에게는 경험의 팔레트가 이야기로 채색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를 입자가 아닌 이야기로 채색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 사실이건 허구이건, 상징적이건 직설이건 간에, 스토리텔링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일관성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자연의 패턴을 찾고, 이미 알려진 패턴을 조합하여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내고, 이야기를 통해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은 가상의 세계를 보여 주고, 우리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반응을 상상하고 행동을 개선한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 해도 우리의 과학적 이야기에 담긴 진실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므로, 지구인에 대해 장황하게 소개할 필요가 없다. 피카드 선장과 타마리아인의 사례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면 외계인은 지구인이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pp.257~259,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지난 수천 년 동안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는 자기 종족의 우월함과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그들만의 이야기에 담아서 전수해 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神話로서, 대부분이 신성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신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지역의 문화(종족의 기원, 의식儀式의 가치,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 등)를 수호하는 초자연적 존재에 관한 이야기'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비극과 환희, 역사와 환상, 모험과 자기 성찰이 반영된 신화는 오랜 세월 동안 넓은 지역에 퍼지면서 개인과 사회의 기본 틀을 세우고 가치를 보존하는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자들은 신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해왔다. 20세기 초에 스코틀랜드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 경Sir James Frazer은 신화를 '고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로 정의했고, 스위스의 정신분석가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원형原型, archetype(모든 사람의 무의식에 내재된 심리적 행동 유형)의 개념에 기초하여 신화를 '경험의 공통적 특성에 대한 서술'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켐벨Joseph Campbell은 모든 신화들이 '단일 신화monomyth'라는 하나의 원형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다. 주인공이 썩 내키지 않는 임무를 부여받고 장도에 올라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 임무를 완수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의 단일 신화는 듣는 사람에게 현실감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최근에 하버드대학교의 언어학자 마이클 위첼Michael Witzel은 신화의 원형을 파악하려면 개개의 신화를 파고드는 대신 전체적인 전통에 스며든 다양한 신화를 시작에서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묶음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어학과 집단유전학, 그리고 고고학에 기초하여 '이런 이야기들에 내재된 공통된 특성은 10만 년 이상 전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신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pp.260~261,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그는 언어학과 집단유전학, 그리고 고고학에 기초하여 '이런 이야기들에 내재된 공통된 특성은 10만 년 이상 전에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신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10만 년 이상 전이면 신생대 제4기 홍적세(플라이스토세)에 해당합니다. 구석시 시대이고요. 이 시기를 전후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국경을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고 네안데르탈인이 혹독하게 추운 유럽에 살고 있었을 시기입니다. 유전체학Genomics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가진 언어의 공통 기원을 추적하였을 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생물학적.신경학적 능력이 최소 13만 5,000년 전에 완성되었을 거라고 보고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전에 이미 뇌구조, 후두, 성대 등 발성 구조가 말하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고 합니다. 유전체학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69269&cid=61233&categoryId=61233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지역을 볼 수 있는 지도 이미지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이 주 근거지였어요. 뿐만 아니라 레반트 지역(지금의 이스라엘, 시리아 등 중동), 우즈베키스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같은 중앙아시아의 깊숙한 곳까지 진출했네요.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ange_of_NeanderthalsAColoured.png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필적하는 다른 인류 종이기에 모든 면에서 흥미로우며, 우리 종과 비교할 수 있는 진화적 실험 사례이다. 하지만 아마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왜 더 발전하지 못했는가일 것이다. 그들이 존속했던 20만 년 동안 그들의 기술이나 문화는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 도구 제작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소한 개선도 전혀 없었고, 예술도 없었고, 신체 장신구도 전혀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전혀 없었다. 그사이에 호모 사피엔스는 발전을 거듭했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무렵에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인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최초의 집단이 다뉴브 강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서 유럽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은 약 4만 년 전이었다. 그로부터 1만 년 뒤, 후기 구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혁신들이 시작되었다. 우아한 동굴 예술, 인간의 몸에 사자의 머리를 단 상을 비롯한 조각상, 뼈피리, 원하는 곳에 불을 피워서 사냥감을 몰아 잡는 행위, 독특한 복장을 한 샤먼이 그것이다.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p.272~27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호모 사피엔스를 이 수준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늘어난 장기 기억, 특히 꺼내어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복잡한 문화의 문턱까지 밀고 간 추진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집단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의도를 읽고 협력하는 한편, 경쟁하는 집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지닌 집단은 그것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보다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경쟁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경쟁은 한 개인을 남보다 유리하게 만드는 형질의 자연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내의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 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졀합됨으로써 승자를 낳았다.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27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예술은 그 기원을 찾기 위해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랜 기간 인류와 함께 해왔다. 초기의 예술은 동굴 벽에 색깔 있는 흙으로 들소 등 사냥감의 형태를 그린 데에서 시작하였고, 이후 예술의 대상은 점점 넓어졌다. 인물을 그리는 초상화, 사물을 그리는 정물화에 이어 자연을 그리는 풍경화가 생겨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역동적인 바다의 모습은 화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과학자들이 호기심으로 바닷속 세상을 탐험했듯이 화가들 역시 바다의 모습을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95, 송현수 지음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Eugène Louis Boudin은 1850년대부터 대서양 연안 도시에 머무르며 일생 동안 바다의 일상을 캔버스에 남겼다. 같은 바다라도 날씨와 햇빛,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상세히 묘사했다. 또한 평생 879점의 그림을 남긴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에 해바라기와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도 그 대상이었는데, <생트 마리 드라메르의 바다 풍경>에서 그는 특유의 붓 터치로 파란색과 흰색의 대비를 이용해 반짝이는 물결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한편 일본 에도시대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후지산을 배경으로 거센 파도가 내뿜는 거품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p.95~96,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파도는 바닷물이 바람이라는 강한 충격으로 인해 미세한 물방울과 공기 방울로 부서지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때 새하얀 물거품이 우리 눈에 관찰되는 것은 바닷물의 유기물이 일종의 계면 활성제surfactant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닷물의 표면장력이 민물에 비해 거품이 잘 터지지 않도록 하여 물거품을 오래 관찰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호쿠사이의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실제로 파도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환경유체역학 그룹의 마크 매칼리스터Mrak McAllister 박사는 예측이 어렵고 비정상적으로 큰 파도인 변종파freak wave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파도를 사진 촬영하여 호쿠사이 작품 속 파도와 비교한 결과, 그 둘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모습임을 확인했다. 이처럼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한 곳에 과학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예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보통 예술은 감성을 대표하는 영역, 과학은 이성을 대표하는 영역이며 이 둘을 교집합이 거의 없는 이질적인 분야라 여긴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p.96~97, 송현수 지음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과학과 예술은 깊은 관계에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의 어원부터가 그렇다. 예술을 뜻하는 단어 'art'는 라팅어 'ars'에서, 'ars'는 희랍어 'techne'에서 유래했는데, 'techne'는 과학 기술을 뜻하는 'technic'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만큼이나 예술과 과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관찰력과 창의력이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주변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를 필요로 한다. 유체역학과 미술도 마찬가지다. 화가들의 관찰력은 유체가 흐르고 터지고 휘몰아치는 모습을 작품에 담아내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창의력은 물감 등 유체로 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예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을 과학자들이 유체역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예술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체역학 원리에 대해 살펴보자.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p.97~98, 송현수 지음
p.96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와 이를 재현한 매칼리스터 박사의 실험 사진 유명한 호쿠사이의 그림 속 파도의 모습과 매칼리스터 박사의 실험에서 구현된 파도믜 모양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우와, 신기하네요! 호쿠사이가 이런걸 다 감안해서 그렸던 걸까요?
호쿠사이가 75세(1834년)에 발간한 화집 <후지산 백경(富嶽百景, Fugaku Hyakkei)> 후기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해요. 이 화집에는 후지산을 주제로 100여 점의 정교한 판화 그림들이 실려 있어요.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사물의 형태를 베끼는 버릇이 있었다... 일흔세 살이 되어서야 동물, 곤충, 물고기의 구조와 초목이 자라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그러므로 여든 살이 되면 더 발전할 것이고, 아흔 살이 되면 그 속뜻을 꿰뚫어 볼 것이며, 백 살이 되면 신묘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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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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