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D-29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필적하는 다른 인류 종이기에 모든 면에서 흥미로우며, 우리 종과 비교할 수 있는 진화적 실험 사례이다. 하지만 아마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왜 더 발전하지 못했는가일 것이다. 그들이 존속했던 20만 년 동안 그들의 기술이나 문화는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 도구 제작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소한 개선도 전혀 없었고, 예술도 없었고, 신체 장신구도 전혀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전혀 없었다. 그사이에 호모 사피엔스는 발전을 거듭했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무렵에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인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최초의 집단이 다뉴브 강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서 유럽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은 약 4만 년 전이었다. 그로부터 1만 년 뒤, 후기 구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혁신들이 시작되었다. 우아한 동굴 예술, 인간의 몸에 사자의 머리를 단 상을 비롯한 조각상, 뼈피리, 원하는 곳에 불을 피워서 사냥감을 몰아 잡는 행위, 독특한 복장을 한 샤먼이 그것이다.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p.272~27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호모 사피엔스를 이 수준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늘어난 장기 기억, 특히 꺼내어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복잡한 문화의 문턱까지 밀고 간 추진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집단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의도를 읽고 협력하는 한편, 경쟁하는 집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지닌 집단은 그것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보다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경쟁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경쟁은 한 개인을 남보다 유리하게 만드는 형질의 자연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내의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 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졀합됨으로써 승자를 낳았다.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27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예술은 그 기원을 찾기 위해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랜 기간 인류와 함께 해왔다. 초기의 예술은 동굴 벽에 색깔 있는 흙으로 들소 등 사냥감의 형태를 그린 데에서 시작하였고, 이후 예술의 대상은 점점 넓어졌다. 인물을 그리는 초상화, 사물을 그리는 정물화에 이어 자연을 그리는 풍경화가 생겨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역동적인 바다의 모습은 화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과학자들이 호기심으로 바닷속 세상을 탐험했듯이 화가들 역시 바다의 모습을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95, 송현수 지음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Eugène Louis Boudin은 1850년대부터 대서양 연안 도시에 머무르며 일생 동안 바다의 일상을 캔버스에 남겼다. 같은 바다라도 날씨와 햇빛,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풍경을 상세히 묘사했다. 또한 평생 879점의 그림을 남긴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에 해바라기와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도 그 대상이었는데, <생트 마리 드라메르의 바다 풍경>에서 그는 특유의 붓 터치로 파란색과 흰색의 대비를 이용해 반짝이는 물결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한편 일본 에도시대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후지산을 배경으로 거센 파도가 내뿜는 거품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p.95~96,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파도는 바닷물이 바람이라는 강한 충격으로 인해 미세한 물방울과 공기 방울로 부서지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때 새하얀 물거품이 우리 눈에 관찰되는 것은 바닷물의 유기물이 일종의 계면 활성제surfactant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바닷물의 표면장력이 민물에 비해 거품이 잘 터지지 않도록 하여 물거품을 오래 관찰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호쿠사이의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실제로 파도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환경유체역학 그룹의 마크 매칼리스터Mrak McAllister 박사는 예측이 어렵고 비정상적으로 큰 파도인 변종파freak wave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파도를 사진 촬영하여 호쿠사이 작품 속 파도와 비교한 결과, 그 둘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모습임을 확인했다. 이처럼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한 곳에 과학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예술 분야가 대표적이다. 보통 예술은 감성을 대표하는 영역, 과학은 이성을 대표하는 영역이며 이 둘을 교집합이 거의 없는 이질적인 분야라 여긴다.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p.96~97, 송현수 지음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과학과 예술은 깊은 관계에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의 어원부터가 그렇다. 예술을 뜻하는 단어 'art'는 라팅어 'ars'에서, 'ars'는 희랍어 'techne'에서 유래했는데, 'techne'는 과학 기술을 뜻하는 'technic'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만큼이나 예술과 과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관찰력과 창의력이다. 예술과 과학은 모두 주변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를 필요로 한다. 유체역학과 미술도 마찬가지다. 화가들의 관찰력은 유체가 흐르고 터지고 휘몰아치는 모습을 작품에 담아내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창의력은 물감 등 유체로 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예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화가들의 작품을 과학자들이 유체역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을 중심으로 예술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체역학 원리에 대해 살펴보자.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 - 영화부터 스포츠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세계 pp.97~98, 송현수 지음
p.96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와 이를 재현한 매칼리스터 박사의 실험 사진 유명한 호쿠사이의 그림 속 파도의 모습과 매칼리스터 박사의 실험에서 구현된 파도믜 모양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우와, 신기하네요! 호쿠사이가 이런걸 다 감안해서 그렸던 걸까요?
호쿠사이가 75세(1834년)에 발간한 화집 <후지산 백경(富嶽百景, Fugaku Hyakkei)> 후기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고 해요. 이 화집에는 후지산을 주제로 100여 점의 정교한 판화 그림들이 실려 있어요.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사물의 형태를 베끼는 버릇이 있었다... 일흔세 살이 되어서야 동물, 곤충, 물고기의 구조와 초목이 자라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그러므로 여든 살이 되면 더 발전할 것이고, 아흔 살이 되면 그 속뜻을 꿰뚫어 볼 것이며, 백 살이 되면 신묘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호쿠사이는 89세까지 살았는데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텐데.. '라고 한탄했다고 하네요. 자신에게 5년만 더 주어져도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와, 저는 호쿠사이의 이 말이 너무 좋네요. 젊을때야 실패하면 또 도전하면 돼. 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것 같은 생각에 도전의 가능성을 서로 주고받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발전'하고 '속뜻을 꿰뚫어 보고' '신묘한 경지'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다시 일어날 힘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을테니 인생을 좀 더 가치있고 힘차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저도 아이들에게는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는 말을 많이 했어도 제 또래와 그 이상의 연령대의 지인들에게는 거의 하지 않았던(못했던) 것 같아요. 무의식중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옥스퍼드 대학교 공학과 토마스 매칼리스터 박사와 애든버러 대학교 연구팀이 '괴물 파도'가 발생하는 물리적 매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실험 수조에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사진입니다. 실험에서 두 개 이상의 파도를 서로 다른 각도로 마주 보며 부딪히게 만들었어요. (d)와 (e) 단계에서 두 파도가 부딪힐 때 한 점으로 극단적으로 쏠리면서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파도가 깨지기 직전 수직으로 가파르게 서는 각도와 물보라가 튀는 형태가 호쿠사이의 그림과 일치한다는 것이죠. Researchers Recreate Rogue Wave in Lab, Shedding Light on How They Form in Open Ocean https://gcaptain.com/researchers-recreate-rogue-wave-in-lab-shedding-light-on-how-they-form-in-ocea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된 초판본 판화 입니다. 링크를 통해 들어가서 보시면 이미지를 확대하면서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요. 중앙에 보이는 작은 산이 후지산이에요. 파도가 후지산을 집어삼킬 듯한 형태를 하고 있는 구성이 재미있습니다. 또 앞에 있는 작은 파도가 후지산의 형태와 비슷한 점도 의도한 것 같고요. Under the Wave off Kanagawa, also known as The Great Wave, from the series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Katsushika Hokusai Japanese ca. 1830–3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5434
호쿠사이의 파도에 관해 재밌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문화권에 따른 시선의 방향의 차이가 작품의 해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글을 읽는 습관대로 시선이 이동해, 서구권(왼쪽>오른쪽)은 거대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는 장면으로 인식하지만 일본(오른쪽>왼쪽)은 배들이 파도와 맞서며 나아가는 장면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저도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럴수가!!하며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동양과 서양의 관점에 따른 차이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에 대해 많은 영향을 주죠. 그런 부분이 항상 흥미가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호쿠사이의 말대로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더 완벽(!)한 그림이 나왔을수도 있겠어요. 어릴때 위인전기를 읽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영웅이 사망하는 장면에서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호쿠사이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까운 인물이기도 했네요. 저런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으니 반드시 더 큰 결과물을 내놓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안아까운 위인이 없겠지만요)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들이 너무 훌륭한데..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을 보면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훌륭한 결과물들을 많이 만들어내게 된 거니까요.
일본 도쿄 스미다구墨田区에 있는 호쿠사이 미술관 홈페이지 입니다. 호쿠사이는 1760년 당시 일본의 중심지였던 에도의 혼조 와라게스이本所割下水 라는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그래서 미술관도 이곳에 지어진 것이고요. 그가 그린 우키요에는 에도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소비되던 대중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한 점은 호쿠사이가 스미다구와 그 주변 지역 안에서만 평생 93번이나 이사를 다녔다고 하네요. ㅎㅎ 이사를 다닌 이유는 집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하기 싫어서 새집으로 간 것이라고.. https://hokusai-museum.jp/modules/Exhibition/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현생 인류와 비슷하며 현생 인류와 교배가 가능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어떤 이유로 도태가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굴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화석 두개골만 모아 놓은 전시 디스플레이 바로 뒤쪽에는 네안데르탈인들에 관한 특별한 전시가 또 있다. 바로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화석들이다. 6만 5천~4만 5천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은 이라크 북동부의 동굴이 많은 산지에 많이 살았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이 네안데르탈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이라크 문화유산청은 샤니다르 동굴 유적들을 공동으로 발굴했다. 발굴팀은 1953년부터 1960년 사이에 샤니다르 한 동굴의 13.7센티미터 깊이에서 일곱 개체의 각각 다른 성인 화석과 두 개체 어린아이 화석들을 발굴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석기와 도살된 동물 뼈들의 재가 쌓인 화덕자리도 나왔다. 특이한 것은 그곳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뼈에는 다치고 병든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부상한 뒤 오랫동안 치료한 흔적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들 사회가 병들고 부상한 사람들을 돌보는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 - 세계 최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이야기 pp.205~206, 권기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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