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의 피

D-29
결코 하나의 밀알이라고 할 수도 없는 표도르라는 인간의 죽음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 및 소년 일류샤의 죽음과 극적으로 대비됨으로써, 하나의 밀알이 맺게 되는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통로 역할도 담당했다고 해석 가능할 것이다. 표도르의 죽음은 이반으로 의인화된 무신론과 차가운 이성 및 논리를 그의 몸에서 분리시키는 동력이 되어줌으로써, 하나의 밀알과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사상은 죽어서도 오로지 파멸만을 낳을 뿐, 그 어느 생명의 열매도 부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9, 김영웅 지음
객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없다면, 문학작품은 독자와의 공명점을 잃게 된다. 개별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무언가를 통찰해내는 일이 바로 문학이 하는,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이다. 일상에서 우리들이 주관과 독단의 권위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도 자기 객관화라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객관화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어린아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자아의 발견도, 성찰도, 성장도, 성숙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객관화'인 셈이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30, 김영웅 지음
슐레밀의 최종 선택은 '스스로 소외당함'이었다. 이는 저자에 따르면 '비장소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람다움이란 사람대접을 받을 때 비로소 주어지게 된다. 즉 타자의 존재가 필수다. 홀로 존재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소외시키고 소외당하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 역시 사람이 아니라 인간일 뿐일 것이다. 이를 다시 풀면, 우리 모두는 타자의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이때의 환대는 타자에게 자리/장소를 주는 행위로 설명이 가능하다.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저자는 환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40-241, 김영웅 지음
'닮음과 다름'이라는 주제는 '닮은 도형 골라내기'처럼 언어 능력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주제다. 하지만 모든 생물학 원리의 총합이며 궁극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생명체는 서로 닮거나 다를 뿐 다양한 생물학 원리들이 저마다 다른 콘텍스트에서 주어진 목적에 따라 완벽하게 작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완전하다. 이 책을 읽은 뒤에 일상에서 닮음과 다름을 논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젠 더 이상 우열의 관점이 아닌 각 개체의 완전성에 대한 겸허한 인정과 존중의 관점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덧붙여,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이감도 조금 더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42-243, 김영웅 지음
닮음과 다름은 진화의 순간 기울기 값이며 다양성의 단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의 생물학적 정체성일 수도 있다. 누가 누굴 닮고 닮지 않고는 장구한 세월 숱한 진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생물학의 신비가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낸 최종 출력값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속도는 인간의 수명으로는 실시간으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진화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있는 자연 현상이지만,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허한 특징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궁극적인 방향성을 가지는데, 그것이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43, 김영웅 지음
이렇게 에필로그까지 읽어오신 독자들이 계신 것만으로도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45-246, 김영웅 지음
ㅎㅎㅎ 실은 막 마지막 슐레밀에 대한 부분에서 완전 공감하며 끄덕이고 있다가 이 글을 보고 파핫 웃었습니다. 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처음에는 카라마조프를 통해 유전학을 설명할지 그리고 카라마조프 내용을 아직 안 읽어본 사람들에게 밝혀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실은 문학작품을 인용하거나 소개하는 많은 작품들이 그런 위험을 갖고 있긴 하죠) 그리고 제목만 보고 인간의 우월함?하면서 약간 불신을 갖기 시작했지만.. 막판에 가서 그런 우려들이 뒤집히곤 했어요. 끝까지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는 카라마조프를 3독해보기로 생각했답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한글로?) 그리고 간만에 '그림자를 판 사나이'도 재독해보고 싶구요. 저는 '클라라와 태양'과 '사람, 장소, 환대'를 아직 안 읽어봤지만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실은 저도 약간 주변 사람들한테 다소 '너 T야?' 'T라 미숙해' 또는 로봇같다는 소리를 듣고 제 자신도 가끔 자폐 스펙트럼이 아닐까 걱정되서.. 클라라와 태양이 궁금해지네요.. 저도 좀더 스스로에게 인간다움의 생기를 불어넣고 싶네요.
보르미스님 덕분에 훨씬 깊고 풍성한 모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꼭 재독에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클라라와 태양을 무지 좋아해요. 사실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전작도 다 읽었답니다^^ 그의 문체가 너무 좋아요.
오! 전 아직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만 읽었지만 저도 정말 그 문체가 좋더라구요. 영화들도 좋았구요. 좋은 책들 소개 감사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황혼 3부작이라고 부르는 소설이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그리고 ‘남아 있는 나날’인데요. 제가 전작을 읽게 된 동기랍니다^^ 그의 문체를 좋아하신다니 분명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요.
앗 그게 3부작이었군요!! 전 하나만 읽었네요. 나머지도 추천 감사합니다^^
내용이 연결되는 건 아니예요. 공통적으로 황혼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라 사람들이 나중에 3부작이라 명명한 것 같아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5일간의 여정을 오늘 마치게 되네요. 연뮤 클럽, 브라더스 카라마조프 덕분에,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졸작을 함께 읽어주시고 활기차게 나눠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다른 책으로 그믐 모임을 열 생각이에요. 사실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훨씬 좋지만, 그믐 덕분에 온라인으로도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너무 수고하셨고, 또 다른 모임에서 뵙도록 해요~ 우선은 제가 쓴 자전적 소설인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으로 모임을 열까 해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meet/3691
꺄, 읽을 책이 정말 많아서 행복합니다!!ㅋㅋㅋ <닮은 듯 다른 우리> 저에게는 과학의 문턱을 처음으로 넘게 해준 고마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독서모임 열어주신 김영웅작가님 감사드립니다. ^^
저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가 많고(빈번하고) 적음(드묾)이 존재할 뿐이다.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p, 김영웅 지음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죠 '클라라와 태양'을 떠올리니 문득 지난 4월 '그믐연뮤번개'에서 함께 관람한 천선란 작가의 SF 원작 연극, '뼈의 기록'도 떠오르네요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은 수북강녕에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입니다 실험실 청춘들의 이야기, 라 하면 곽재식 작가님의 픽션이 먼저 떠오르는 (역시나) 뼈문과인데요, 사뭇 다른 내용일 것 같지만 표지만큼은 곽재식 작가님보다도 더 감성적인 이 책을 꺼내 한번 쓸어 봅니다 ♡
네버 렛 미 고전원에 위치한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 캐시(캐리 멀리건)와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토미(앤드류 가필드)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채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된 이곳의 학생들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갖고 인위적으로 생산된 ‘클론’. 사려 깊고 총명한 캐시는 감정 표현에 서툰 토미를 돌봐주고, 토미 역시 그런 캐시를 아끼지만, 적극적인 루스가 토미에게 고백을 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클라라와 태양외로움을 예방하기 위해 설계된 로봇 소녀가 상심한 인간 가족을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남아있는 나날1958년, 스티븐스(Stevens: 안소니 홉킨스 분)는 영국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며 그는 1930년대 국제회의 장소로 유명했던 달링턴 홀, 그리고 주인 달링턴 경(Lord Darlington: 제임스 폭스 분)을 위해 일해왔던 지난 날을 회고해본다. 당시 유럽은 나찌의 태동과 함께 전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었다. 스티븐스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독일과의 화합을 추진하던 달링턴은 친 나찌주의자로 몰려 종전 후 폐인이 되고 만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맹목적인 충직스러움과 직업 의식 때문에 사생활의 많은 부분이 희생되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했고, 매력적인 켄튼(Miss Kenton: 엠마 톰슨 분)의 사랑을 일부러 무시했고 몇년 동안 켄튼과 스티븐스의 관계는 경직되어왔다.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애모의 정을 감춘 채 스티븐스는 오로지 임무에만 충실해온 것이다. 결국 그의 태도에 실망한 그녀는 그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야 만다. 지금 스티븐스는 결혼에 실패한 켄튼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녀를 설득시켜 지난날 감정을 바로잡아 잃어버린 젊은 날의 사랑을 되찾기위해. 그러나 이러한 희망마저 무산되고 그는 새주인에 의해 다시 옛모습을 되찾게 된 달링턴성으로 혼자서 외로이 돌아온다. 지난날의 온갖 영욕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남은 달링턴성은 어쩌면 자신과 조국 영국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 실험실에서 자라난 청춘들의 이야기꽃다운 이십 대를 끊임없는 과제와 실험에 바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진정한 과학자로 성장해 간 생물학도들의 대학, 대학원 생활을 담은 팩션 에세이다. 현재도 과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허구적 상상력을 더해,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춘들의 여정을 유쾌하면서도 진솔한 필치로 그려 냈다.
저의 대학 대학원생 시절을 볼 수 있답니다^^ 나름 오토픽션이예요~ 소장하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은근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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