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학적인 기본지식이 있다면 소수자를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허무맹랑한 구분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어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 존중할 수 있다. ”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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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 - 프롤로그 -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일상은 꽤 많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궁금증이 답 없이 궁금증 자체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미 이렇게 '답 없는 궁금증'에 익숙해져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생물학자로서 나는 이런 '답 없는 궁금증'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답이 있으면 답을 말하고, 정확한 답이 없으면 '최선의 설명'에 다가갈 수 있는 단서나 힌트를 제공하려고 했다. (중략) 이 책은 과학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과학만큼 큰 비중으로 문학을 다룬다.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가 가득한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의 생물학 여행에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p.10-11
이런 고민을 담아 3부 인간의 특별함을 다룬 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두 권의 책을 통해 생물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권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현대문학 소설이고, 또 다른 한 권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라는 인문서적이다.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생물학에 기초한 인간의 특별함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나는 인간의 특별함을 우월함이 아닌 인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는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이 책을 쓰며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p.15 ”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p.10-11/15,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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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 - 나는 누굴 닮았을까 -
생물학적으로 이 소설을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소설 속에서는 여러 번 '카라마조프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마치 카라마조프의 피가 흐르는 사람, 즉 아버지 표도르를 포함하여 네 아들의 피에 어떤 공통된 속성이 흐르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표현이다. 여기서 문학적 수사인 '피'는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을 의미하고, 분자생물학적으로는 'DNA'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카라마조프라는 유전자가 DNA 상에 존재할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카라마조프 가문에 흐르는 공통된 습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차차 살펴보려고 한다. p.24
정자와 난자가 생성되는 과정인 생식세포 분열은 체세포 분열과는 목적이 전혀 다르다. 체세포 분열의 목적은 중식이다. 세포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생식세포 분열의 목적은 증식이 아닌 유전정보 전달이다. 다시 말해, 유전정보가 담긴 DNA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매개체가 바로 생식세포인 셈이다. 그 목적을 달서하지 못하면 생식세포는 폐기된다. p.28-29
이제 우리는 모든 인간의 첫 시작인 수정란이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엄마의 난자가 훨씬 더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부피는 물론 핵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엄마의 것이기 때문에 자녀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닮게 되는 것일까? (중략)
'카라마조프적'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카라마조프가에 흐르는 그 무엇, 소위 '유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카라마조프가에서 대를 이으며 전해지는 DNA일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의 맥락에서 이 DNA 는 곧 아버지 표도르의 정자 안에 들어있던 DNA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그 DNA 만이 아버지로부터 네 아들들에게 공통적으로 전달 된 유일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장차 네 아들이 될 수정란의 탄생에는 표도르의 DNA만 존재했던 게 아니라 그의 세 아내의 DNA와 세포질 전부, 즉 핵만 제공한 정자와는 달리 난자의 경우는 세포 전체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우린 '카라마조프적'이라는 표현을 표도르의 DNA만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고집할 수 있을까? 표도르의 DNA와 일대일로 완벽하게 짝을 이룰 난자의 DNA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말일까? 표도르의 DNA는 다른 DNA보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기라고 했단 말일까? p.33
공교롭게도 네 아들의 어머니는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다. 네 아들이 같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가정의 형과 동생 관계로 이해하면 쉬울 텐데, 그리고 네 아들의 어머니가 차라리 모두 다르다면 또 한편으론 이해하기가 한결 간편할 텐데 말이다. p.35-36 ”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p.24/28-29/33/35-36,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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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조금 늦게 읽기 시작해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지식이나 관심이 덜한 저로서는 아무래도 카라마조프를 비롯해 도스토옙스키나 다른 문학들과 관련한 여러 상념을 떠올리며 읽게 되네요 ㅎㅎ
아빠는 한 명인데 엄마가 세 명, 그리고 아들이 네 명이라는 조합이 상당히 애매하고도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함께 본 뮤 지컬에서도 아빠와 엄마가 같은 유일한 페어, 이반과 알료샤가 아빠에게 학대받던 엄마를 기억하며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있었는데요, 두 형제가 처음엔 같았지만 이후에 알료샤는 신을 따르고 이반은 자신의 생각을 따르며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었죠
한편 떠오르는 또 다른 사례가 있어요 바로 조선시대 임금들입니다 중전, 희빈, 숙원을 비롯한 수많은 처첩 비빈과 상궁, 무수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아내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수십 명의 자녀들을 지녔던 그 가족의 유전적 조합과 특징은 어땠을까 싶어요 카라마조프적으로는 존속살인 1건만 발생했지만, 형제의 난 같은 경우 아버지나 형제, 배다른 어머니와 친척들을 수없이 죽인 역사가 겹쳐지네요
borumis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이반과 알료샤는 어머니가 같았지만 어머니와 함께 한 나이대가 다르죠. 태아일 때는 몇 주 차이도 큰 차이가 나타나고 어릴 적에는 한두살 차이라고 해도 큰 차이가 보이듯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기가 차이를 보이면서 그 영향도 다르게 나타날 것 같아요. 게다가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고 순수한 반면 아버지는 사악함의 대표.. 둘이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될 지 마치 문학적 상상 속에서 발달심리학적 실험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히어로
언제나 표현형은 유전과 환경의 조합으로 해석해야 안전하다고 배웠어요. 이반과 알료샤는 같은 부모를 가지지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졌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예요. 왜냐하면 같은 부모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첫째와 둘째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 않나요? 사람은 유전과 환경을 초월하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borumis
ㅎㅎㅎ 맞아요. 저도 남동생과 전혀 다른 성격이라.. 대학교 때 uniparental disomy, variable expressivity, incomplete penetrance 등 여러가지 유전학적 기전을 배우고나서 유전이 다가 아니라는 것의 이론을 배우긴 했지만 그 전에도 엄마가 농담으로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한 말을 의심해보기도 했어요.ㅋ
히어로
ㅋㅋㅋ 그 다리 가설 정말 유명한 썰이죠. 아마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기원이 그 다리일 것 같아요. 어디 있는 다리인지 참... ㅋㅋㅋ
히어로
네 생물학 책인데 생물학을 가능한 배제하고 이 모임을 진행하려니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네요^^ 상념 좋습니다. 그런 걸 마음껏 나누려고 이 모임방을 연 것이기도 하니까요. ㅋㅋ 맞아요. 말씀하신 조선시대 임금들과 그들의 아내들, 첩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카라마조프 가는 양반인 것 같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히어로
6월 22일 오늘은 제2부 '우리는 어떻게 다를까?' 중 제2장 '혈액형'을 함께 읽고 나눕니다. 문학적으로는 둘째 아들 이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아시다시피 어제까지 살펴봤던 표도르의 둘째 아내 소피아의 아들입니다. 알료샤 역시 소피아의 아들이지요. 즉 표도르의 DNA와 소피아의 DNA가 절반씩 합쳐져서 탄생한 두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다른 두 아들이죠. DNA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둘 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환경을 고려해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생물학적으로는 혈액형을 살펴봅니다. 대립유전자라는 개념도 익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혈액형에 대해선 조금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B형 같은 경우, BB 아 니면 BO 모두 가능하다는 건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립 유전자의 개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요. 이어서 멘델의 유전법칙까지 설명이 이어지는데 궁금하신 분들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소리없이
“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며 반복되는 염기서열을 가진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포는 한 번씩 분열할 때마다 먼저 DNA를 복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든 염색체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는 필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DNA 복제를 담당하는 효소가 가진 방향성으로 인해 텔로미어 부분를 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 그래서 우리 몸은 텔로머레이즈라는 특별한 효소를 동원하여 텔로미어 부분을 복제해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텔로머레이즈는 배아 단계의 세포들이나 줄기세포에서나 다량 발현하며 역할을 다한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체세포에서 텔로머레이즈는 발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포는 세포 분열 시 염색체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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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 예수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라는 키워드로 각각 해석할 수 있는 사탄의 세 가지 유혹에 대하여 [구약 성서]의 [신명기]로 대처한다. 그러나 대심문관은 그때 예수의 선택과 대응이 부적절했고 심지어 지혜롭지 못했다고 일갈하게 되는데, 그 주된 일갈의 저변에는 예수의 인간에 대한 기대가 과장되었고 인간이란 존재에 비해 너무나도 고결해서 허무맹랑하기까지 했던 존중과 사랑을 준 나머지 그들에게 주었던 자유의지는 그들이 감당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이며, 감당할 만한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어짜피 극소수에 불과할 테고, 그렇다면 결국 예수는 인간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리가 흐른다. ”
『닮은 듯 다른 우리 - 유전자, 센트럴 도그마, 인간다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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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좀 다른 얘기이나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지만 예수의 고난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 감히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가 문득 떠올라 적어 봅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마지막 만찬 후에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간 예수는 그 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에게 배신 당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끌려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모독죄로 단죄하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한다. 팔레스타인의 로마 제독, 빌라도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들으며 그의 앞에 끌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깨달은 빌라도는 이 문제를 헤롯왕에게 의논한다. 헤롯왕은 빌라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돌려보낸다. 이에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그리스도와 죄수 바라바 중 누구를 석방할지 결정하도록 하자, 군중들은 바라바에게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형을 주장한다. 로마 병사들로부터 처참하게 채찍질을 당한 그리스도는 빌라도 앞에 다시 끌려오게 된다. 빌라도는 만신창이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군중에게 보이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묻지만 피에 굶주린 군중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딜레마에 빠진 빌라도는 군중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거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메고 가도록 명령을 받는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그 곳에서 마지막 유혹에 직면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머니인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녀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마디를 하고 죽는다. “다 이루었도다.”“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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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이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이 영화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당시의 다른 죄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채찍으로 내려치고 살점이 떨어지는데도 비웃으며 고문하는 일이 숱하게 자행되었을 것이고, 이같은 잔혹한 폭력에 인간적인 고통을 크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쿠오바디스'나 '벤허' 같은 영화를 보면 맹수의 먹이로 던져지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기도하는 순교자들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거룩하고 숭고한 믿음을 갖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살점이 떨어지는 채찍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