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장, 괴물의 가면을 벗은 인간 에이해브의 눈물
바다는 마치 하늘과 연주를 하듯 감미롭고 웅장한 풍경을 자아내고, 이 기적 같은 날씨 속에서 에이해브 선장은 평생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다운 눈물을 떨구죠. 그리고 부선장 스타벅에게 자신의 고독을 고백해요.
그는 고향에 두고 온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왜 이 차가운 바다에서 평범한 행복을 버린 채 낫처럼 녹슬어가야 하는지 회한에 잠깁니다.
하지만 스타벅이 "지금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하는 그 순간, 에이해브는 다시 눈을 번쩍 뜨며 거대한 운명의 벽을 체감합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실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지레가 나를 돌리고 있다는 깨달음. 에이해브는 결국 구원의 밧줄을 뻗는 스타벅의 눈을 외면하고, 다시 바다 너머 어두운 악마적 분신, 페달라의 눈을 응시합니다.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린 셈이에요.
지독한줄만 알았던 에이해브가 던지는 서글픈 인간적 고뇌와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konten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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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kontentree님의 대화: 132장, 괴물의 가면을 벗은 인간 에이해브의 눈물
바다는 마치 하늘과 연주를 하듯 감미롭고 웅장한 풍경을 자아내고, 이 기적 같은 날씨 속에서 에이해브 선장은 평생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다운 눈물을 떨구죠. 그리고 부선장 스타벅에게 자신의 고독을 고백해요.
그는 고향에 두고 온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왜 이 차가운 바다에서 평범한 행복을 버린 채 낫처럼 녹슬어가야 하는지 회한에 잠깁니다.
하지만 스타벅이 "지금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하는 그 순간, 에이해브는 다시 눈을 번쩍 뜨며 거대한 운명의 벽을 체감합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실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지레가 나를 돌리고 있다는 깨달음. 에이해브는 결국 구원의 밧줄을 뻗는 스타벅의 눈을 외면하고, 다시 바다 너머 어두운 악마적 분신, 페달라의 눈을 응시합니다.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린 셈이에요.
지독한줄만 알았던 에이해브가 던지는 서글픈 인간적 고뇌와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에이해브는 자기가 모비딕을 쫓는 게 아니라, 우주가 창조되기 전부터 짜인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거잖아요. 하늘의 심부름꾼, 나무 지레 라고 여기선 표현했구요.
자신이 신에게 도전하는 거대하고 주체적인 영웅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운명의 부하'라고 스스로 말하는 부분이 기억나요.
우리 삶도 내 의지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무력감도 들고요.
잔해
여섯모서리님의 대화: 에이해브는 자기가 모비딕을 쫓는 게 아니라, 우주가 창조되기 전부터 짜인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거잖아요. 하늘의 심부름꾼, 나무 지레 라고 여기선 표현했구요.
자신 이 신에게 도전하는 거대하고 주체적인 영웅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운명의 부하'라고 스스로 말하는 부분이 기억나요.
우리 삶도 내 의지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무력감도 들고요.
좋은 말씀 들으니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어요. 에이해브가 정말 운명의 꼭두각시일까요? 아니면 운명이라는 핑계 뒤로 도망치는 것은 아닌지..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기기만, Bad faith 이 떠올랐습니다. 에이해브는 지금 스타벅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고, 고향의 아내와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 자유의지가 분명히 자신에게 있다는 걸 직감한 거죠.
하지만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복수의 항해가 전부 틀린 선택이 되어버리잖아요. 그 무시무시한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으니, 오히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10억 년 전부터 정해진 운명이야. 그러니 난 멈출 수 없어"라며 자신의 선택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비겁하고도 슬픈 인간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설
잔해님의 대화: 좋은 말씀 들으니 생각을 이리저리 해보게 되네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어요. 에이해브가 정말 운명의 꼭두각시일까요? 아니면 운명이라는 핑계 뒤로 도망치는 것은 아닌지..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기기만, Bad faith 이 떠올랐습니다. 에이해브는 지금 스타벅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고, 고향의 아내와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 자유의지가 분명히 자신에게 있다는 걸 직감한 거죠.
하지만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복수의 항해가 전부 틀린 선택이 되어버리잖아요. 그 무시무시한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으니, 오히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10억 년 전부터 정해진 운명이야. 그러니 난 멈출 수 없어"라며 자신의 선택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비겁하고도 슬픈 인간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와 두 분 말씀 들으니 132장의 텍스트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잔해 님의 '자기기만'이라는 해석을 들으니, 에이해브가 스타벅에게 말한 '초록빛 벌판에서 녹슬어가는 낫'의 비유가 다르게 다가오네요.
에이해브가 정말 영혼 없는 꼭두각시거나 완벽하게 미친 괴물이었다면, 굳이 육지의 평화로운 삶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었겠죠. 그는 자신이 무엇을 버리고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인간인 거예요.
따뜻한 인간성, 가족, 평화를 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차가운 악마적 복수심을 선택해야만 하는 그 모순. 멜빌은 제목을 왜 하필 교향곡(Symphony)이라고 했을까요? 어울릴 수 없는 '인간 에이해브'와 '괴물 에이해브'의 두 마음이 한 몸에서 부딪치며 내는 비극적인 불협화음, 그 자체가 교향곡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섯모서리
kontentree님의 대화: @서설 님 '불협화음의 교향곡'이라는 표현 소름 돋네요... @잔해 님 말씀대로 에이해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운명을 핑 계 댄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럼 에이해브가 던진 질문,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라는 말은 결국 "나는 내 삶의 진짜 주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집착의 노예로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되네요. 소설 속 선장의 독백이 아니라, 우리에게 비추는 거울로 느껴져요
오 세 분의 대화를 들으니 더 깊이 이해가 되요. 에이해브의 눈물을 '자기기만'과 '불협화음의 교향곡'이란 해석 짱입니다! 에이해브가 '운명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집착을 운명이라 믿는 선택자'인지요.
영혼의너그러움
@잔해 님 의견 흥미롭습니다. ‘자기기만’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에이해브가 비겁하게 도망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가장 절정으로 느끼고 분노하는 영웅으로 보여요.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르는데요.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 짓을 반복해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 말이죠.
에이해브는 지금 자신이 모비딕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 싸움의 끝이 파멸, 바위가 떨어짐, 이라는 것을 132장의 눈물을 통해 완벽하게 깨달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부조리한 운명에 순응하여 육지로 돌아가는 대신, "그래, 내 결말이 파멸일지라도 나는 내 발로 끝까지 걸어가 저 거대한 고래와 부딪히겠다"며 정해진 운명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가장 뜨거운 '반항적 인간'의 선언으로 생각해 보고 싶어집니다.
renee
@영혼의너그러움 님 말씀을 들으니 에이해브가 장엄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의 영웅주의 뒤에 가려진 ‘폭력성과 고립’에 주목하게 됩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내 자아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132장에서 스타벅은 에이해브에게 고향의 아내와 자식이라는 가장 순수한 '타인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췄어요. 에이해브도 순간 그 눈빛에 흔들리며 눈물을 흘렸죠.
하지만 에이해브는 결국 그 살아있는 얼굴을 외면하고, 자기 영혼의 어두운 닮은 꼴 '페달라, 배화교도'의 눈을 응시합니다. 진짜 비극은 신이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거대한 복수심과 에고Ego를 지키기 위해 눈앞에 있는 타인의 고통과 사랑을 저버린 에이해브의 자기중심성에 있는 것 아닐까. 배에 탄 선원들을 사적인 복수극에 동반 자살로 이끄는 꼴이니까요.

kontentree
와 뜨거운 사유가 펼쳐졌네요. 다섯 분의 대화를 보며 제 마음이 가만있질 않네요.
에이해브의 눈물을 운명과 자기기만, 부조리한 반항, 그리고 타인의 얼굴이라는 철학적 화두로 풀어내 주셔서요.
에이해브는 어쩌면 이 모든 모순을 온몸으로 안은 채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불꽃 튀는 철학적 대비 속에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가장 와닿은 에이해브의 모습은 어느 쪽이었는지 두고 두고 생각해 보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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