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매혹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는 문장
경이로움 ➡️ 공포
모비딕은 처음에 '터키 양탄자'나 '한낮의 초원' 같은 눈부신 평화로움으로 등장하지만, 순식간에 보트를 부수며 '대리석 무덤'과 '잔인한 고양이'로 돌변합니다. 자연이 가진 매혹적이면서도 냉혹한 이중성을 가장 문학적으로 보여주죠.
매혹적이기에 더 잔인한 파멸의 덫 같습니다.
그 아가리( 죄송합니다. 본문을 살릴 수 밖에 없네요^^) 속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에이해브는 자신을 걱정하는 선원들을 밀쳐내며 이렇게 말해요.
" 에이해브는 지구에 사는 몇백만 명 속에 홀로 서 있다. 그의 주변에는 신도 인간도 없어! 추워, 춥구나. 몸이 덜덜 떨린다."
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kontentree

서설
그 금화는 내 거야. 애초부터 내 것이 될 운명이었어. 나뿐이야. 너희들은 아무도 저 흰 고래를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없었을 거야
『모비 딕 - 하』 133. 추격 - 첫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서설
'자기기만' 토론을 확증하죠
에이해브가 고래를 최초로 목격하고 박수치며 금화를 챙기는 장면입니다. 앞서 우리가 토론한 운명이라는 핑계 뒤로 도망치는 심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기가 기어코 먼저 찾아내 투사하려 했으면서, 그것을 애초에 내 운명이었다고 외치는 집착과 확증 편향을 보여주네요.
renee
자기 암시와 추동력, 비슷한 말인것은 같아요.
에이해브는 지금 미쳐버릴 것 같은 고독과 두려움 속에 있습니다. 바로 앞, 132장 교향곡에서 스타벅스의 눈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떠올리고 내가 왜 이 잿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나 하며 흔들렸던 노인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복수극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이건 내가 선택한 미친 짓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운명이다라는 자기 암시가 필요했을거고 도망치기 위한 핑계라기보다 무너져가는 의지를 세워 사투로 나아가게 만드는 추동력이요.
영혼의너그러움
선원들을 무시하는 오만보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뿐이라는 독단적 책임감. 에이해브는 자신이 "지구에 사는 몇백만 명 속에 홀로 서 있다"고 느낍니다. 10억 년 전부터 짜인 각본, 운명 속에서, 다른 선원들은 그저 휩쓸려 온 조연일 뿐이고 모비 딕과 맞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 하나뿐이라는 자의식의 표현인데 요즘은 자의식이 비대하다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긴 하네요.

서설
아 저는 작게 본 것이구요. 사실 허먼 멜빌이 그린 '비극적 영웅'의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크게 보면요.
'여섯모서리'님이 남기신 것처럼, 에이해브는 자신이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비극적 인간입니다.
그가 정말 비겁하게 운명 뒤로 숨는 인간이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파멸의 장엄함을 느끼지 못했을 거에요. 오히려 "이것이 파멸로 가는 길, 운명임을 알면서도, 내 손으로 그 금화를 쟁취해 기어코 끝을 보겠다고 선언하는 인간의 처절한 반항으로 해석할 때 에이해브라는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kontentree
운명 편향에 빠진 집착으로 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파멸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운명으로 들어가는 순간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죠.
여섯모서리
근데 왜 굳이 이 운명으로 꼭 걸어 들어가야만 하나요? 잃어버린것의 가치도 알면서...

kontentree
에이해브가 그 비극적 운명으로 기어코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답답함과 의문이야말로 모비 딕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독자들을 잠 못 들게 만든 핵심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하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잔해
무릎 꿇고 살 바에는 서서 죽겠다는 오만과 존엄이요.
에이해브에게 모비 딕은 단순히 다리를 잘라간게 아니라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냉혹한 자연의 거대함, 혹은 인간을 장난감처럼 휘두르는 불합리한 신의 운명 그 자체입니다.
만약 여기서 에이해브가 스타벅스의 말을 듣 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남은 평생을 신이 정해준 한계에 순응하고 무릎 꿇은 패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운명에 순응하며 비겁하게 연명하는 삶이 고래에게 죽는 것보다 훨씬 더한 지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와 존엄을 증명하려 한 것이 아닌지.. 이렇게 크게 봐야만 설득이 되죠. 이런 분도 있으셔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ㅋㅋㅋㅋ

kontentree
에이해브는 40년 동안 바다에서 외롭게 지휘관으로 살며 자의식을 키워왔어요. 그런 그에게 모비 딕이라는 존재는 그의 인생 전체를 집어삼킨 거대한 벽이 되었어요.
고래를 잡느냐, 내가 죽느냐는 극단적인 이분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요. 고향의 아내와 아이, 선원들의 목숨조차도 이 사투 앞에서는 빛을 잃을 만큼 에이해브의 정신은 모비 딕과 동기화되어 있어요. 그 벽을 부수지 못하면 어차피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에, 그는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비딕에게 영혼이 먹혀버린 거죠. 우리 현실에서도 영혼이 먹힌 사람들 뉴스에서 종종 보실겁니다.

서설
에이해브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고향을 잃었고, 소중한 가치들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비극적 자각을 하면서 나아가요.
어차피 정해진 파멸이라면, 도망치다 잡혀 죽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 싸우다 부서지겠다는 반항을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허먼 멜빌이 말하는 비극적 영웅의 본질이라 생각 해요.
영혼의너그러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미련하고 비대해진 자의식으로 망하는 걸로 보여도 문학적인 눈으로 보면 신과 운명이라는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전사한 인간이기에 이 노인에게 비애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kontentree
마카베오서를 보면 안티오쿠스 왕의 코끼리들이 포도와 오디의 붉은 즙을 피로 오인해서 미쳐 날뛰었다더니,
모비 딕도 부서진 보트를 보고 미친 것 같았다.
『모비 딕 - 하』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kontentree
구약성경 외경인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일화.
고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왕이 전쟁을 일으킬 때, 전투 코끼리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붉은 포도즙과 오디즙을 보여주어 피를 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광기 속으로 몰아넣었다죠.
모비딕이 부서진 삼나무 보트의 파편들을 보고 흥분해 날뛰는 모습을 비유한 것. 고래가 전쟁터의 코끼리처럼 파괴적인 광포함을 가졌음을 역사적 일화를로 말해요.
renee
멜빌은 단 몇 줄 사이에 그리스 신화와 성경, 히브리 외경을 넘나들며, 모비딕이라는 존재가 가진 신성과 파괴성이라는 이중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했어요.
그럼에도 왜 굳이 외경을 썼을까요?
란 생각이 살짝 드네요. 그 당시엔 더 외경을 배척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에도요.

kontentree
말씀하신 대로 앞서 배치한 '제우스 신화'와 대비, 하얀 황소와 전쟁 코끼리의 극적 배치를 위해 외경까지 끌어온 것 같아요.

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