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해브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고향을 잃었고, 소중한 가치들을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비극적 자각을 하면서 나아가요.
어차피 정해진 파멸이라면, 도망치다 잡혀 죽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맞서 싸우다 부서지겠다는 반항을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허먼 멜빌이 말하는 비극적 영웅의 본질이라 생각해요.
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서설
영혼의너그러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미련하고 비대해진 자의식으로 망하는 걸로 보여도 문학적인 눈으로 보면 신과 운명이라는 벽에 머리를 들이받고 전사한 인간이기에 이 노인에게 비애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kontentree
마카베오서를 보면 안티오쿠스 왕의 코끼리들이 포도와 오디의 붉은 즙을 피로 오인해서 미쳐 날뛰었다더니,
모비 딕도 부서진 보트를 보고 미친 것 같았다.
『모비 딕 - 하』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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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구약성경 외경인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일화.
고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왕이 전쟁을 일으킬 때, 전투 코끼리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붉은 포도즙과 오디즙을 보여주어 피를 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광기 속으로 몰아넣었다죠.
모비딕이 부서진 삼나무 보트의 파편들을 보고 흥분해 날뛰는 모습을 비유한 것. 고래가 전쟁터의 코끼리처럼 파괴적인 광포함을 가졌음을 역사적 일화를로 말해요.
renee
멜빌은 단 몇 줄 사이에 그리스 신화와 성경, 히브리 외경을 넘나들며, 모비딕이라는 존재가 가진 신성과 파괴성이라는 이중성을 예술적으로 표현했어요.
그럼에도 왜 굳이 외경을 썼을까요?
란 생각이 살짝 드네요. 그 당시엔 더 외경을 배척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에도요.

kontentree
말씀하신 대로 앞서 배치한 '제우스 신화'와 대비, 하얀 황소와 전쟁 코끼리의 극적 배치를 위해 외경까지 끌어온 것 같아요.

서설
정경, 구약성경에는 전투 코끼리가 나오지 않아요. 구약성경 본문에는 고대 제국의 군대와 무기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인도나 시리아 제국이 사용했던 전투 코끼리는 기원전 2세기 유대인들의 독립 전쟁을 다룬 외경 마카베오서에만 집중적으로 나온다고 해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상 동물을 묘사하기 위해 이 구절이 필요했던게 아닐까 싶어요.
여섯모서리
헉 그럼 실제 역사적 사실이에요? 인도와 시리아에서요!

서설
소설 속 비유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 기록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에요. 고대 전쟁에서 전투 코끼리(War Elephant)는 탱크와 같은 전략 무기였대요.
영혼의너그러움
언급한 안티오쿠스 왕의 시리아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세운 헬레니즘 국가인데 인도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는 대가로 인도산 코끼리 500마리를 조공으로 받았대요.
멜빌은 방대한 독서가답게 이 고대 시리아 제국의 전투 기록을 알고 있었고, 피쿼드호의 삼나무 보트 조각들을 보고 미친 것 같은 모비 딕을 역사 속 시리아의 붉은 과즙에 미쳐버린 전투 코끼리를 떠올린 거죠.
renee
현대 역사학자들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NLI)의 전쟁사 연구에 따르면, 고대 전쟁에서 코끼리를 흥분시키기 위해 대추야자 술이나 맥주, 와인 등을 먹여 만취 상 태로 만드는 것은 매우 흔한 전술이었다고는 하네요.
외경도 외경이지만 이 고대 전쟁사의 실화를 정확히 알고 그 이중적 대비를 위해 같은 스케일의 동물을 찾아 낼 수 있을 정도의 독서가이자 고전덕후 였군요....찐 멜빌

서설
아 근데 모비딕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나요. 동물학대부분이요. 코끼리는 또 뭡니까. 멜빌은 물론 그 비판의식으로 학대를 고발하는 동물애호가가 맞아요. 여튼 고대의 아니 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물학대는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우리가 기존에 이야기 나눈 에이해브의 '양면성'에 더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바로 동물학대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구요.

kontentree
타자에 대한 완벽한 무감각이죠. 동물학대의 본질입니다.
이건 결국 인간 중심적인 잔인한 이기심이고 정복 본능으로 이어지는 에이해브의 광기와 닮아 있어요.
에이해브가 그토록 들이받으려 했던 냉혹하고 거대한 악마는 고래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눈을 감아버린 에이해브 자신이자 인간의 이기심,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물 학대를 인지조차 못하는 인류의 두얼굴, 에이해브가 우리 자신입니다.
에이해브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폭주가 결국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납니다. 자신이 신과 운명의 벽에 부딪히는 비극적 주인공인 척했지만, 실상은 다른 생명의 고통에 완벽하게 눈을 감은 채 파괴를 일삼던 에이해브의 두 얼굴이 바로 오늘날의 인류이자 나 자신이었네요. 멜빌은 에이해브의 광기를 통해, 타자의 고통을 인지조차 못 하면서 이기적인 폭주를 거듭하는 인간의 무서운 본능을 고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잔해
그 이해 안 되는 폭주가 우리, 맞습니다.
대체 왜 저러지 싶은 뉴스를 보지만 정작 우리 역시 눈앞의 편리함, 플라스틱 소비, 공장식 축산, 환경 파괴 등을 위해 지구 반대편 생명들의 고통에는 완벽하게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어요.
에이해브가 고래 기름을 짜내어 밤을 밝히며 피쿼드호를 사지로 몰고 갔듯, 다른 생명들을 도구화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운명이나 인간의 권리로 아는 일종의 확증 편향이라는 것도 맞네요.
여섯모서리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향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냉혹한 악마라며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냉혹하고 자제를 모르는 괴물은 고래가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라는 것.
고래는 그저 바다의 순리대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은 자신의 지배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고대 전쟁터의 코끼리부터 바다의 고래, 심지어 동료 선원들까지 광포한 술 즉 가스라이팅을 통해 도구로 만들죠. 에이해브의 폭주가 이해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 중심적 정복의 본능을 그것이 본능이기에 인지조차 못해서가 아닐지.

kontentree
지나치기 쉬운 이 짧은 비유 하나에도 또 하나 깊은 뜻을 숨겨두지 않았나 싶은게 있어요.
신화적인 '아름다움'에서 '맹목적 광기'로 태세를 전환하는 자연의 이중성을 보여주었죠. 거기에 더해
더 재밌는 건 코끼리들이 진짜 피가 아니라 포도즙을 보고 '착각'해서 미쳤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흰 고래를 절대 악으로 착각해 광기에 빠진 에이해브, 그리고 부서진 보트 파편을 보고 흥분한 모비딕 모두, 각자의 '착각' 속에서 운명이라 말하고 싶은 파멸로 질주하고 있다는 복선은 아닐까요?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서설
눈먼 자극과 가짜 신호 같은 건가요.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를 시뮬라크르.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현상이라고 불렀어요.
고대 시리아의 코끼리들은 진짜 전쟁의 명분이나 적을 알고 분노한 게 아닙니다. 그저 눈앞에 뿌려진 붉은 포도즙이라는 시각적 자극을보고 눈이 뒤집힌 것이죠.
에이해브도 똑같습니다. 모비 딕은 그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동물의 본능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에이해브는 고래에게 신적인 악의가 있다는 착각, 투사를 해버렸습니다.
미치는 것은 대단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아요. 사소하고 눈먼 착각이 방화쇠를 당긴거.

kontentree
착각이라는 불씨가 떨어지면, 잠들어 있던 지배욕과 정복 본능이 돌아가기 시작한 다 생각해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를 '권력의지, Will to Power 라고 했습니다. 타자를 내 뜻대로 통제하고, 자연을 굴복시키려는 원초적인 에너지요.
권력의지가 생물학적 '본능'이라서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눈을 멀게 만들고, 코끼리에게 술을 먹이던 고대인도, 선원들을 사지로 몰던 에이해브도, 지구를 착취하는 우리도 생존이자 당연한 본능이라 믿기에 죄책감 없이 밀고 나가죠.
여섯모서리
실상은 자기가 착각해서 시작한 폭주인데, 이를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핑계 뒤로 숨겨 정당화하나요. 같은 결론인데요
잔해
그래서 비극 이죠.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초상.
우리이기에 그 모습에 슬픈 거구나... 어쩔 수 없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도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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