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언급한 안티오쿠스 왕의 시리아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세운 헬레니즘 국가인데 인도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는 대가로 인도산 코끼리 500마리를 조공으로 받았대요. 멜빌은 방대한 독서가답게 이 고대 시리아 제국의 전투 기록을 알고 있었고, 피쿼드호의 삼나무 보트 조각들을 보고 미친 것 같은 모비 딕을 역사 속 시리아의 붉은 과즙에 미쳐버린 전투 코끼리를 떠올린 거죠.
현대 역사학자들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NLI)의 전쟁사 연구에 따르면, 고대 전쟁에서 코끼리를 흥분시키기 위해 대추야자 술이나 맥주, 와인 등을 먹여 만취 상태로 만드는 것은 매우 흔한 전술이었다고는 하네요. 외경도 외경이지만 이 고대 전쟁사의 실화를 정확히 알고 그 이중적 대비를 위해 같은 스케일의 동물을 찾아 낼 수 있을 정도의 독서가이자 고전덕후 였군요....찐 멜빌
아 근데 모비딕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나요. 동물학대부분이요. 코끼리는 또 뭡니까. 멜빌은 물론 그 비판의식으로 학대를 고발하는 동물애호가가 맞아요. 여튼 고대의 아니 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물학대는 가슴이 많이 아프네요. 우리가 기존에 이야기 나눈 에이해브의 '양면성'에 더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바로 동물학대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구요.
타자에 대한 완벽한 무감각이죠. 동물학대의 본질입니다. 이건 결국 인간 중심적인 잔인한 이기심이고 정복 본능으로 이어지는 에이해브의 광기와 닮아 있어요. 에이해브가 그토록 들이받으려 했던 냉혹하고 거대한 악마는 고래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눈을 감아버린 에이해브 자신이자 인간의 이기심,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동물 학대를 인지조차 못하는 인류의 두얼굴, 에이해브가 우리 자신입니다. 에이해브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폭주가 결국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납니다. 자신이 신과 운명의 벽에 부딪히는 비극적 주인공인 척했지만, 실상은 다른 생명의 고통에 완벽하게 눈을 감은 채 파괴를 일삼던 에이해브의 두 얼굴이 바로 오늘날의 인류이자 나 자신이었네요. 멜빌은 에이해브의 광기를 통해, 타자의 고통을 인지조차 못 하면서 이기적인 폭주를 거듭하는 인간의 무서운 본능을 고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해 안 되는 폭주가 우리, 맞습니다. 대체 왜 저러지 싶은 뉴스를 보지만 정작 우리 역시 눈앞의 편리함, 플라스틱 소비, 공장식 축산, 환경 파괴 등을 위해 지구 반대편 생명들의 고통에는 완벽하게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어요. 에이해브가 고래 기름을 짜내어 밤을 밝히며 피쿼드호를 사지로 몰고 갔듯, 다른 생명들을 도구화하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운명이나 인간의 권리로 아는 일종의 확증 편향이라는 것도 맞네요.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향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냉혹한 악마라며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냉혹하고 자제를 모르는 괴물은 고래가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라는 것. 고래는 그저 바다의 순리대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은 자신의 지배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고대 전쟁터의 코끼리부터 바다의 고래, 심지어 동료 선원들까지 광포한 술 즉 가스라이팅을 통해 도구로 만들죠. 에이해브의 폭주가 이해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 중심적 정복의 본능을 그것이 본능이기에 인지조차 못해서가 아닐지.
지나치기 쉬운 이 짧은 비유 하나에도 또 하나 깊은 뜻을 숨겨두지 않았나 싶은게 있어요. 신화적인 '아름다움'에서 '맹목적 광기'로 태세를 전환하는 자연의 이중성을 보여주었죠. 거기에 더해 더 재밌는 건 코끼리들이 진짜 피가 아니라 포도즙을 보고 '착각'해서 미쳤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흰 고래를 절대 악으로 착각해 광기에 빠진 에이해브, 그리고 부서진 보트 파편을 보고 흥분한 모비딕 모두, 각자의 '착각' 속에서 운명이라 말하고 싶은 파멸로 질주하고 있다는 복선은 아닐까요?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눈먼 자극과 가짜 신호 같은 건가요.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를 시뮬라크르.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현상이라고 불렀어요. 고대 시리아의 코끼리들은 진짜 전쟁의 명분이나 적을 알고 분노한 게 아닙니다. 그저 눈앞에 뿌려진 붉은 포도즙이라는 시각적 자극을보고 눈이 뒤집힌 것이죠. 에이해브도 똑같습니다. 모비 딕은 그저 바다에 사는 거대한 동물의 본능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에이해브는 고래에게 신적인 악의가 있다는 착각, 투사를 해버렸습니다. 미치는 것은 대단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아요. 사소하고 눈먼 착각이 방화쇠를 당긴거.
착각이라는 불씨가 떨어지면, 잠들어 있던 지배욕과 정복 본능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생각해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를 '권력의지, Will to Power 라고 했습니다. 타자를 내 뜻대로 통제하고, 자연을 굴복시키려는 원초적인 에너지요. 권력의지가 생물학적 '본능'이라서 자신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눈을 멀게 만들고, 코끼리에게 술을 먹이던 고대인도, 선원들을 사지로 몰던 에이해브도, 지구를 착취하는 우리도 생존이자 당연한 본능이라 믿기에 죄책감 없이 밀고 나가죠.
실상은 자기가 착각해서 시작한 폭주인데, 이를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핑계 뒤로 숨겨 정당화하나요. 같은 결론인데요
그래서 비극 이죠.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인류의 초상. 우리이기에 그 모습에 슬픈 거구나... 어쩔 수 없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도달점?
멜빌이 안티오쿠스 왕의 전투 코끼리 비유를 쓴 것은 인간은 착각에 빠져 자멸하는 존재라는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에이해브는 피쿼드호라는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전체주의적 독재자입니다. 고대 왕들이 코끼리에게 술과 포도즙을 먹여 미치게 만들었듯, 에이해브는 선원들에게 스페인 금화와 독주를 마시게 하며 의도적으로 선원들을 광기 속으로 가스라이팅했어요. 멜빌은 인간을 착각에 속는 무지한 존재로 그리려 한 게 아니라,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가짜 신호, 포도즙을 만들어서라도 타인의 생명을 철저하게 도구로 짜내어 쓰는 인간의 권력의지를 고발한 것입니다. 에이해브는 코끼리가 아니라, 코끼리를 미치게 만든 안티오쿠스 왕입니다.
에이해브는 왜 울었는지 생각해 봤어요. 132장 교향곡(The Symphony)에서 에이해브는 스타벅스 앞에서 딱 한 방울의 눈물을 바다에 떨구죠. 문학 비평가들은 이 눈물을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절망'으로 보지 않아요. 과거의 평화롭던 인간성, 선에 대한 마지막 이별의 의식이라 해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향의 아내와 아이, 그리고 지난 40년간 바다에서 흘린 땀을 돌아봅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짓, 선원들을 사지로 몰고 고래를 죽이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죠. 그는 어쩔 수 없이 쳇바퀴에 갇힌 가련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이 눈물은 나는 내가 괴물이 되는 길을 내 자유의지로 선택하겠다며, 남아있던 인간성을 스스로 버리며흘린 눈물이라 해요. 그래서 그의 눈물은 슬픈 게 아니라 무섭다 생각해요.
에이해브가 바로 우리였다라며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이기심에 슬퍼했다고 생각한게 나의 착각이었어요. 멜빌의 의도는 그 연민을 거부합니다. 현대 문학 비평에서 에이해브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정복주의가 낳은 괴물로 해석되요. 멜빌이 살던 19세기 미국은 고래 기름, 포경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자연을 해치며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였다 해요. 에이해브의 폭주는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생존 본능이 아닙니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정복하고 파괴하겠다는 서구 문명 특유의 오만(Hubris)과 맹목적 확장주의의 종말을 예언했다고 봐요. 이야기해가며 생각이 정리되네요. 어질어질합니다
멜빌은 에이해브를 통해 "인간은 참 가련하지?"라고 위로하는게 아니에요. 오히려 봐라, 인간의 정복욕과 오만이 브레이크를 잃으면 얼마나 끔찍하게 주변을 파멸시키는가라며 우리에게 경고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서로의 의견들을 나누다 보니 작가와 에이해브를 혼동하는 지경인 것 같네요.ㅋㅋㅋㅋ 이 둘을 섞어버리면 에이해브의 생각이 멜빌의 사상이 되어버리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왕좌왕 저도 많이 했어요. '멜빌 = 에이해브'가 아니죠. 멜빌이 에이해브의 광기를 워낙 장엄하게 서사하다 보니, 작가가 에이해브의 파괴적 영웅주의를 찬양하고 동조한게 아니란 것을 잊지 않으며 기본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에이해브는 부조리한 우주, 모비 딕을 견디지 못해 파괴와 복수라는 폭력을 행하려는 실천적 인물입니다. 멜빌은 그 파괴적인 인간의 오만이 어떻게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가 냉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창조주입니다. 즉, 에이해브는 우주를 파괴하려 했지만, 멜빌은 이 소설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고 묘사하려 했습니다. 둘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란 것만 상기하면 그리 어려울 것 없을 것 같아요. 에이해브의 이해 안 되는 폭주가 결국 타자의 고통에 눈감은 우리 인류의 초상, 본능이었다는 자각은 변함이 없죠. 에이해브의 추악함과 장엄함, 그리고 인류의 두 얼굴을 한 자리에서 다 보았죠. 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순과 파멸 끝에 결국 독자들에게 어떤 최종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건지 끝까지 읽고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멜빌이 에이해브를 사악한 악당으로 그린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삼류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문학계와 철학계에서 에이해브를 다룰 때 가장 고심하는 선이 바로 여기입니다. 멜빌의 시선으로 본 그는 웅장하고, 신을 믿지 않는, 신 같은 사람이라 해요. 소설 속에서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를 "웅장하고, 신을 믿지 않는, 신 같은 사람(A grand, ungodly, god-like man)"이라고 표현합니다. 멜빌이 에이해브에게 투사한 것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나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루시퍼, 사탄' 같은 거인형 인간입니다. 멜빌은 인간을 무력하게 짓밟는 자연, 혹은 운명에 맞서 나를 파멸시킬지언정 내 영혼은 굴복시키지 못한다고 외치는 인간의 숭고한 장엄함을 에이해브에게 부여해요. 멜빌이 하손, Nathaniel Hawthorne 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사악한 책을 써 내려갔지만, 내 영혼은 새끼 양처럼 순결함을 느낀다"고 고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도덕을 초월한 인간 자의식의 우주적 폭발이었고, 멜빌은 그 큰 에너지에 매료되어 있었대요.
저는 멜빌이 에이해브를 맹목적으로 찬양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멜빌은 1등 항해사 '스타벅스'의 입을 빌려 에이해브의 광기가 가진 현실적 죄를 정확하게 고발하죠. 스타벅스는 에이해브에게 "저는 고래 기름을 짜러 왔지, 선장님의 사적인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라고 했죠. 에이해브는 계약과 선원들의 생존권을 사적 영웅주의를 위해 희생시킨 셈이쟎아요. 신에게 반항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쥐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쿼드호라는 '공동체'를 독단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은 이를 '지독한 자아도취(Egoism)'가 낳은 사회적 범죄라고 부르더군요. 여기서 왜 '범죄적'이라고까지 비판을 받는지가 나와요.
멜빌이 만든 모순의 실체가 좀 보이네요. 멜빌의 진짜 의도는 에이해브를 착한 영웅이나 나쁜 범죄자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게 아니란게요. 인간이 신과 운명에 맞설 때 보여주는 우주적 장엄함과, 그 큰 자의식이 눈이 멀어 주변을 파멸시킬 때의 현실적 참혹함을 한 몸에 지닌 괴물 같은 존재란 거죠. 그것이 멜빌이 창조한 에이해브의 진짜 정체라 생각해요. 그는 도덕적으로는 유죄, 범죄일지 모르나, 존재론적으로는 신에게 감히 거스려 보는 영웅. 이 두 가치가 한 인간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에이해브가 그토록 이해하기 어렵고, 동시에 매력적인 것입니다. 이제 에이해브가 단순한 악당도, 순수한 영웅도 아닌 괴물 같은 모순 그 자체임이 명확해지나요.
서설님이 정확히 짚어내신 한 축이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면, 그 반대편에서 충돌하는 다른 한 축은 타자를 짓밟고 파멸시키는 추악한 독선, 지독한 에고이즘입니다. 에이해브를 이루는 두 가치의 충돌 우주적 숭고함 (Promethean Sublimity)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명과 부조리, 모비 딕에 끝내 무릎 꿇지 않고, 온몸이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인간 자의식의 극치입니다.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초월하여, 신이 짜놓은 운명의 각본을 거부하고 내 종말은 내가 결정한다고 선언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장엄함입니다. 멜빌은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의지의 도달점을 보여주죠. 현실적 참혹함 (Dreadful Egoism / 추악한 독선) 자신의 사적 복수와 영웅주의라는 숭고함을 달성하기 위해, 눈앞의 무고한 생명들, 피쿼드호 선원들, 바다의 고래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철저히 도구로 짜내어 파멸로 끌고 들어가는 잔인함. 타자의 고통에 완벽하게 눈을 감아버린 자아도취, Egoism 이자 폭력입니다. 고대 전쟁터에서 코끼리에게 포도즙을 먹여 광기로 내몰았던 독재자들처럼, 자신의 위대한 항해를 위해 타인의 생존권을 강탈하는 윤리적 추악함의 극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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