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로의 의견들을 나누다 보니 작가와 에이해브를 혼동하는 지경인 것 같네요.ㅋㅋㅋㅋ
이 둘을 섞어버리면 에이해브의 생각이 멜빌의 사상이 되어버리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왕좌왕 저도 많이 했어요.
'멜빌 = 에이해브'가 아니죠.
멜빌이 에이해브의 광기를 워낙 장엄하게 서사하다 보니, 작가가 에이해브의 파괴적 영웅주의를 찬양하고 동조한게 아니란 것을 잊지 않으며 기본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에이해브는 부조리한 우주, 모비 딕을 견디지 못해 파괴와 복수라는 폭력을 행하려는 실천적 인물입니다.
멜빌은 그 파괴적인 인간의 오만이 어떻게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가 냉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창조주입니다.
즉, 에이해브는 우주를 파괴하려 했지만, 멜빌은 이 소설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고 묘사하려 했습니다. 둘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란 것만 상기하면 그리 어려울 것 없을 것 같아요.
에이해브의 이해 안 되는 폭주가 결국 타자의 고통에 눈감은 우리 인류의 초상, 본능이었다는 자각은 변함이 없죠.
에이해브의 추악함과 장엄함, 그리고 인류의 두 얼굴을 한 자리에서 다 보았죠. 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순과 파멸 끝에 결국 독자들에게 어떤 최종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건지 끝까지 읽고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서설
renee
멜빌이 에이해브를 사악한 악당으로 그린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삼류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문학계와 철학계에서 에이해브를 다룰 때 가장 고심하는 선이 바로 여기입니다.
멜빌의 시선으로 본 그는 웅장하고, 신을 믿지 않는, 신 같은 사람이라 해요.
소설 속에서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를 "웅장하고, 신을 믿지 않는, 신 같은 사람(A grand, ungodly, god-like man)"이라고 표현합니다. 멜빌이 에이해브에게 투사한 것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나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루시퍼, 사탄' 같은 거인형 인간입니다.
멜빌은 인간을 무력하게 짓밟는 자연, 혹은 운명에 맞서 나를 파멸시킬지언정 내 영혼은 굴복시키지 못한다고 외치는 인간의 숭고한 장엄함을 에이해브에게 부여해요.
멜빌이 하손, Nathaniel Hawthorne 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사악한 책을 써 내려갔지만, 내 영혼은 새끼 양처럼 순결함을 느낀다"고 고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도덕을 초월한 인간 자의식의 우주적 폭발이었고, 멜빌은 그 큰 에너지에 매료되어 있었대요.
영혼의너그러움
저는 멜빌이 에이해브를 맹목적으로 찬양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멜빌은 1등 항해사 '스타벅스'의 입을 빌려 에이해브의 광기가 가진 현실적 죄를 정확하게 고발하죠.
스타벅스는 에이해브에게 "저는 고래 기름을 짜러 왔지, 선장님의 사적인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라고 했죠. 에이해브는 계약과 선원들의 생존권을 사적 영웅주의를 위해 희생시킨 셈이쟎아요.
신에게 반항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쥐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쿼드호라는 '공동체'를 독단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문학 비평가들은 이를 '지독한 자아도취(Egoism)'가 낳은 사회적 범죄라고 부르더군요. 여기서 왜 '범죄적'이라고까지 비판을 받는지가 나와요.

kontentree
멜빌이 만든 모순의 실체 가 좀 보이네요.
멜빌의 진짜 의도는 에이해브를 착한 영웅이나 나쁜 범죄자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게 아니란게요.
인간이 신과 운명에 맞설 때 보여주는 우주적 장엄함과, 그 큰 자의식이 눈이 멀어 주변을 파멸시킬 때의 현실적 참혹함을 한 몸에 지닌 괴물 같은 존재란 거죠.
그것이 멜빌이 창조한 에이해브의 진짜 정체라 생각해요. 그는 도덕적으로는 유죄, 범죄일지 모르나, 존재론적으로는 신에게 감히 거스려 보는 영웅. 이 두 가치가 한 인간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에이해브가 그토록 이해하기 어렵고, 동시에 매력적인 것입니다.
이제 에이해브가 단순한 악당도, 순수한 영웅도 아닌 괴물 같은 모순 그 자체임이 명확해지나요.
renee
서설님이 정확히 짚어내신 한 축이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면, 그 반대편에서 충돌하는 다른 한 축은 타자를 짓밟고 파멸시키는 추악한 독선, 지독한 에고이즘입니다.
에이해브를 이루는 두 가치의 충돌
우주적 숭고함 (Promethean Sublimity)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명과 부조리, 모비 딕에 끝내 무릎 꿇지 않고, 온몸이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인간 자의식의 극치입니다.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초월하여, 신이 짜놓은 운명의 각본을 거부하고 내 종말은 내가 결정한다고 선언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장엄함입니다. 멜빌은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의지의 도달점을 보여주죠.
현실적 참혹함 (Dreadful Egoism / 추악한 독선)
자신의 사적 복수와 영웅주의라는 숭고함을 달성하기 위해, 눈앞의 무고한 생명들, 피쿼드호 선원들, 바다의 고래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철저히 도구로 짜내어 파멸로 끌고 들어가는 잔인함.
타자의 고통에 완벽하게 눈을 감아버린 자아도취, Egoism 이자 폭력입니다. 고대 전쟁터에서 코끼리에게 포도즙을 먹여 광기로 내몰았 던 독재자들처럼, 자신의 위대한 항해를 위해 타인의 생존권을 강탈하는 윤리적 추악함의 극치이죠.

kontentree
에이해브의 그 장엄한 오만과 폭주가 휩쓸고 간 자리에, 멜빌이 오직 이스마엘 한 사람만을 관을 태워 살려둔 이유를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에이해브처럼 우주의 냉혹한 진실을 힘으로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오만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멜빌은 에이해브의 죽음을 통해 그것을 보여준 뒤, 이스마엘이라는 생존자를 통해 진짜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비밀과 부조리를 억지로 부수려 하지 않고, 그 신비, 퀴퀘그의 부표에 몸을 맡긴 채 살아남아 기록하는 자가 되는 것.
에이해브라는 거인을 넘어서 어떻게 삶이란 바다에서 자멸 하지 않고 이스마엘처럼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 데 있었던 게 아닐까요.
영혼의너그러움
에이해브의 폭주와 오만을 완벽히 해체한 셈이죠. 우리가 ㅋㅋㅋㅋ 다음, 반드시 던져야 할 철학적 질문은 "그래서, 에이해브가 그렇게 장엄하게 자멸한 뒤 바다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renee
에이해브라는 거인을 통해 오만과 파멸을 보여준 뒤, 소설의 맨 마지막 장에서 피쿼드호의 모든 인간을 바다 밑으로 침몰시키죠.
그리고 단 한 사람, 이스마엘만을 살려둡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에이해브의 대척점에 선 인간의 또 다른 실존 방식으로 분석해요.
에이해브는 우주의 무의미함, 흰 고래을 견디지 못해 그것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자멸했어요.
반면 이스마엘은 우주의 거대한 비밀과 냉혹함을 인정하고, 그 무의미한 바다 위를 그저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며 받아들였죠.
멜빌의 진짜 의도는 에이해브의 그 장엄한 폭주를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주를 지배하려 드는 에이해브의 방식은 반드시 파멸하지만, 우주의 거대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살아남는 이스마엘의 방식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고 하는거죠.
잔해
전 이스마엘도 바다에 남았고 부표도 남았죠. 그래서 그 퀴퀘그의 관, Coffin이 상징하는게 있다고 봐요
무엇을 타고 살아남았는지 철학적으로 주목해야 한다는 거죠.
그는 다름 아닌 야만인 친구 퀴퀘그가 죽음을 대비해 짜두었던 '관(Coffin)'을 타고 살아남았습니다.
죽음의 도구가 생명의 도구로 되었다. 정말 놀랍죠.
본래 죽은 시체를 담는 '관'이었던 것이, 배가 침몰하자 이스마엘의 목숨을 구하는 '구명부표'가 되고,
또 그 관 표면에는 퀴퀘그가 온몸에 새겼던 '우주의 비밀을 담은 상형문자'가 그대로 조각되어 있었어요. 정작 퀴퀘그 자신도, 에이해브도 그 문자의 뜻을 풀지 못했구요.
renee
아, 기가 막히네요. 멜빌의 천재성!
에이해브는 우주의 비밀, 상형문자를 억지로 해독하고 지배하려다가 그 비밀의 무게에 눌려 죽었지만,
이스마엘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비밀, 관을 온전히 껴안고 의지한거네요!
그래서 살았고!!! 구조되었죠.

kontentree
영웅과 폭군이라는 에이해브의 두 얼굴을 넘어
살아남은 자 이스마엘과
우주의 신비.
모두 의견 나눠주셔서 깊이있는 통찰에 이르렀어요.
이미 완독들 해주셨지만 그래도 표현들을 좀 더 살펴보죠.
여섯모서리
나약한 자가 일생에 나누어 겪는다는 가벼운 고통을 위대한 자는 한 번의 깊은 고통으로 응축시키고 짧은 시간에 비우지만, 신의 뜻이라면 순간순간의 강렬함을 축적하여 평생을 고뇌한다.
『모비 딕 - 하』 133. 추격 - 첫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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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작가인 멜빌이 에이해브라는 파멸해 가는 노인을 왜 위대한 존재로 규정하는지 설명해줘요. 평범한 인간들은 평생 나누어 겪을 고통을 한 몸에 응축해 안고 신에게 대항하는 에이해브의 비극적 위대함을 보여줘요.

서설
도덕적 '선(Good)'이 아닌, 존재의 '질량(Magnitude)'으로서의 위대함.
문학 비평에서 에이해브를 '위대한 존재'라고 부를 때, 이는 도덕적으로 훌륭하거나 올바르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학과 그리스 비극에서 말하는 위대함은 '존재와 에너지의 총량'을 의미합니다.
평범한 인간들은 고통이 찾아오면 일생에 걸쳐 조금씩 나누어 겪으며 희석시킵니다.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타협하고, 잊어버리고, 무뎌지는 방식을 택하죠. 덕분에 생존하지만, 존재는 평범하고 작아집니다.
반면 에이해브는 고래에게 다리를 잘린 고통, 신에게 버림받은 모욕을 타협하거나 희석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그 거대한 고통을 내면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핵분열하듯 압축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를 '고뇌의 질량화'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은 그가 착해서 위대한 게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이미 멘탈이 부서져 죽었을 거대한 고통의 압력을 단 하나의 자아(Ego)로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Grand)'고 규정하는 것이에요.
영혼의너그러움
신(우주)과 대등해지기 위한 '자격 조건'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선도 악도 없는 냉혹한 우주(모비 딕)나 절대자(신)에게 맞서려면 그에 걸맞은 명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인간이라는 미미한 피조물이 어떻게 신에게 대항할수 있겠습니까?
멜빌은 그 에너지가 바로 '순간순간의 강렬함을 축적하여 평생을 채운 고뇌'라고 말합니다.
에이해브는 자신이 겪은 개인적 불행을 인류 전체가 직면한 부조리한 운명의 고통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즉, "내가 이 압축된 고통을 느끼고 있는 한, 나는 신에게 고통받는 단순한 피험자가 아니라 신과 일대일로 맞짱을 뜨는 대등한 적수다"라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이 에이해브의 폭주에 '장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철학적 기둥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renee
앞선 결론이죠. 독선과 참혹함말이에요. 그것과 연결고리가 있어요.
진짜 비평적 지점은 바로 이 구절이 에이해브가 왜 괴물 같은 독재자가 되었는가까지 동시에 설명해줘요.
에이해브는 자신의 고통을 위대한 자의 응축된 고뇌라고 생각하는 순간, 스타벅스나 다른 선원들이 가진 평범한 고통, 가족에 대한 그리움, 생존에 대한 공포를 나약한 자들이나 겪는 가벼운 고통으로 격하하고 경멸하게 됩니다.
너희들의 자잘한 고통은 내 거대한 고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영웅적 자아도취가 시작돠는 것이죠.
그를 신에게 맞서는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을 하찮게 여기고 사지로 몰고 가는 잔인한 폭군으로 만드는 양면을 관통하지요.

kontentree
에이해브를 면죄부 주는 문장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고통을 타협 없이 극단으로 압축했을 때 도달하는 숭고한 높이, 위대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위대함에 도취된 인간이 얼마나 무섭게 타인을 소외시키는가, 비극이죠.. 를 선언하는 복선이네요.
여섯모서리
한번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어요. 그 위대함은 에이해브 자신만의 평가가 아닌 객관성을 갖는 것인지요. 이 답이 불멸의 고전으로 가르는 갈림길 같아서요.

kontentree
에이해브가 방구석에서 혼자 난 위대해라고 외친 게 아니라,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찰자인 이스마엘이 그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뇌의 무거운 질량과 카리스마를 목격하고 숭배한 것입니다. 텍스트 자체가 그의 위대함을 공인하고 있어요.
잔해
에이해브의 위대함 혹은 광기죠 이것은 피쿼드호 선원 전체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자신과 동기화시킬 만큼 실제적 힘을 가졌어요.
이성적인 1등 항해사 스타벅스마저도 에이해브의 눈빛과 말 한마디에 압도당해 자기도 모르게 복종하구요.
에이해브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도달할 수 있는 의지력(Willpower)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신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다른 인간들은 지레 겁먹고 타협할 때, 홀로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대등하게 맞서는 그 영적인 Scale로 주변을 압도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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