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비극은 '선과 선의 부딪힘', 혹은 '절대적인 두 가치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헤겔이 함께했다면 들려줄 말 같아요.
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renee
여섯모서리
에이해브는 지구에 사는 몇백만 명 속에 홀로 서 있다. 그의 주변에는 신도 인간도 없어! 추워, 춥구나. 몸이 덜덜 떨린다.
『모비 딕 - 하』 133. 추격 - 첫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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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첫 대결에서 보트가 부서지고 겨우 살아 돌아온 에이해브가 스타벅과 스터브를 향해 외치는 독백이에요. 132장에서 인간의 눈을 보며 흔들렸던 그가, 첫 전투를 치른 후 결국 인간도 신도 없는 절대적인 영혼의 동토(凍土)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네요. "추워, 춥구나"라는 대사에서 광기 뒤에 숨은 노인의 외로움과 비장함이 느껴져요.
여섯모서리
미친 악마가 너를 노리고 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뿜어라. 물방앗간 주인이 수문을 닫아 물줄기를 끊듯이, 에이해브가 네 피를 흐르지 않게 막아 줄 터이니!
『모비 딕 - 하』 134. 추격 - 둘쨋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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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 살아 있는 뼈라고 해서 잃어버린 이 죽은 뼈보다 조금이라도 내 본질에 더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흰 고래도, 인간이나 악마도, 늙은 에이해브 본연의 범접할 수 없는 본질은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
어 떤 측심줄이 저 깊은 바닥에 닿고, 어떤 돛대가 저 높은 창공을 스칠 수 있겠나. ”
『모비 딕 - 하』 134. 추격 - 둘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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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모서리
육체를 초월한 절대적 자아 - 살아 있는 뼈 vs 죽은 뼈
에이해브는 내 살점과 살아 있는 뼈가 내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고래 뼈로 만든 의족, 죽은 뼈가 부서졌든, 진짜 다리가 잘렸든, 그것들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거죠. 육체의 훼손 따위는 늙은 에이해브라는 주체의 본질을 조금도 훼손할 수 없다는 정신, 초인(超人) 이에요.
고래, 인간, 악마를 향한 선전포고
그를 가로막는 자연, 모비 딕, 그를 말리는 선원들, 인간, 그리고 그를 지옥으로 충동질하는 운명, 악마마저도 내 자아의 핵심은 결코 굴복시키지 못한다는 것. 그 어떤 외부의 힘도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고집입니다.
인간 내면의 무한한 심연 - 측심줄과 돛대
바다의 깊이를 재는 줄(측심줄)도, 하늘의 높이에 닿으려는 돛대도 내 영혼의 깊이와 높이에는 비할 수 없다는 비유에요.
멜빌은 에이해브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자아의 크기가 저 광막한 우주나 대자연보다 훨씬 더 깊고 거대하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해요.
잔해
그는 결코 운명에 순응하는 나약한 꼭두각시가 아니에요. 오히려 운명이 짜놓은 파멸 속으로 제 발로 걸어가면서도, 내 영혼만큼은 세우겠다는 오만한 자유의지를 불태우는, 이 모순이 에이해브를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닌 비극적 거인으로 만드는 것이 이렇게 확인되는 군요.
잔해
“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이 원칙은 불변이라네. 이 바다가 굽이치기 10억 년 전에 이미 자네와 내가 예행연습을 마친 거라고. 나는 운명의 부하, 운명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
『모비 딕 - 하』 134. 추격 - 둘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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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너그러움
이 멜빌의 우주론을 가지고 보면 잘 보이네요.
에이해브의 "나는 운명의 부하"라는 문장을 다시 보면, 에이해브가 왜 파멸했는지 결론이 나옵니다.
에이해브는 숨은 것이 아니라, '눈이 먼 것'입니다.
에이해브는 거대한 고래와 냉혹한 자연이라는 날실, 운명의 거대함에 압도된 나머지, 자기가 쥐고 있는 씨실, 자유의지 를 스스로 내던져버린 인물입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많은 선택의 기회, 자유의지 가 있었 음에도,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10억 년 전에 다 정해졌어"라며 스스로 베틀의 북을 멈춰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파멸로 걸어 들어가는 그 광기 어린 선택마저도 운명의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죠.
잔해
그럼, 멜빌이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진짜 비극의 실체가 이것이네요.
인간이 우주의 냉혹함, 운명에 깊이 중독되면, 자신이 가진 위대한 힘, 자유의지를 스스로 부정하고 자기 파멸의 각본을 직접 써 내려가는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renee
멜빌의 최종 결론이 사실은 47장 '날실과 씨실(The Mat-Weaver)'에 있다 생각합니다.
멜빌은 에이해브처럼 "모든 것은 운명이다"라며 한쪽으로 극단화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멜빌의 진짜 세계관은 소설 중반부인 제47장 「날실과 씨실」에서 이스마엘이 배 위에서 매트를 짜는 작업을 하며 던지는 은유에 집약되어 있어요.
멜빌은 인간의 삶과 우주가 다음 세 가지 실로 엮어 짜이는 직물이라 합니다
1. 날실 (The Warp) = 운명 (Necessity)
베틀에 똑바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실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정해진 조건, 거대한 자연의 법칙, 바꿀 수 없는 한계 - 에이해브가 다리를 잃은 것 등 를 뜻합니다. 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2. 씨실 (The Woof / Shuttle) = 자유의지 (Free Will)
인간이 손에 쥔 북(Shuttle)을 가지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짜 넣는 실입니다. 고정된 운명의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의지'의 영역입니다.
3. 타격 (The Hammer / Chance) = 우연 (Chance)
짜인 실들을 쾅쾅 다져서 고정하는 외부의 힘입니다. 법도, 규칙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우주의 '우연'입니다.
멜빌은 "운명(날실)이 큰 틀을 제시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씨실)가 그 사이를 조종하며 움직이지만, 마지막 한 침을 완성하는 것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 타격 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맞물려 굴러가는 것이 우주의 진실이다."

kontentree
에이해브가 자신을 '10억 년 전 짜인 운명의 부하'라고 규정할 때, 작가는 오히려 그 뒤에서 에이해브의 맹목, Blindness 을 폭로하고 있던 거네요.
멜빌이 보기에 우주는 운명과 자유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짜 나가는 복잡한 직물인데 하지만 에이해브는 복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의지라는 실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운명이라는 감옥 속에 가두었죠.
이 구절은 운명을 찬양하는 문장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환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면서도 그것이 운명이라 믿는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고발하는 문장이었군요.
여섯모서리
멜빌의 친가와 외가는 엄격한 뉴잉글랜드 청교도 가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을 지배한 것은 '칼뱅주의 예정설(Calvinist Predestination)'입니다. 즉, 인간의 구원과 파멸은 태초에 신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에이해브는 소설 내내 신과 운명을 향해 반항하는 '자유의지의 화신'처럼 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클라이맥스 직전, 그는 자각합니다. "내가 신에게 반항하여 파멸하는 이 지옥 같은 항해조차도, 결국 신이 짜놓은 가혹한 톱니바퀴(운명)의 한 장면에 불과한 것 아닌가?"
여기서 오는 실존적 파토스(Pathos·비애)가 거대합니다. 자기가 우주의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결국 거대한 연극의 철저한 '부하(Lieutenant·대리인)'에 불과했다는 실존적 무력감의 고백입니다.
이 구절은 에이해브의 정신분석학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해석할 때 추악하게 읽힙니다.
에이해브는 지금 직감하고 있습니다. 이 항해를 계속하면 피쿼드호의 젊은 선원 수십 명이 고통 속에 수장당할 것이라는 현실을 말입니다. 그의 에고(Ego)는 감당하기 어려운 죄책감과 윤리적 압박을 받습니다.
이때 에이해브가 선택한 교묘한 도망처가 바로 '운명'입니다. "내가 고집을 부려 너희를 죽이는 게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운명이라는 최고 사령관이 나에게 지시를 내렸고, 나는 단지 명령을 따르는 부하일 뿐이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고발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과 정확히 겹칩니다.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이 "나는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듯, 에이해브는 자신의 광포한 사적 복수극을 우주적 운명의 명령으로 신비화하여 대량 학살의 책임을 면제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잔해
이 전체 문장이야말로 방금 전 우리가 해부한 '종교적 결정론'과 '실존적 파토스'의 명확한 증거입니다.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야"
— 본질주의(Essentialism)의 감옥
에이해브는 자신의 존재를 바꿀 수 없는 단단한 바위처럼 규정합니다.
철학적으로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며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이해브는 정반대로 "내 본질(에이해브라는 파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 실존은 그저 그것을 따를 뿐"이라는 끔찍한 본질주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돌이킬 수 없고, 멈출 수 없으며, 나를 바꾸는 것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라 해요.
"10억 년 전에 이미 예행연습을 마친 거라고"
— 우주적 연극(Theatrum Mundi)
이 문장은 앞서 말씀드린 '청교도적 예정설'의 정점입니다. 멜빌은 에이해브의 입을 통해 이 세계를 하나의 코스믹 시어터, Cosmic Theate 로 바꿉니다.
무대(바다)가 만들어지기도 전인 10억 년 전에, 이미 조달자(신)는 대본을 다 써놓았고, 자네(스타벅스)는 말리는 역할, 나(에이해브)는 대가리를 들이받고 죽는 역할로 배역을 끝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유의지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은 10억 년 전에 짜인 대본대로 예행연습, Rehearsal 을 반복하고 있는 꼭두각시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여섯모서리
앞선 결론(위대함과 추악함의 공존)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에이해브가 스타벅스의 인간적인 선의를 차단하 는 방식 이에요.
스타벅스가 "선장님,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를 봅시다"라고 인간적인 감정에 호소하자, 에이해브는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이 '운명론'을 꺼내 든 것입니다. "스타벅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에이해브는 영원히 에이해브고, 우린 10억 년 전 대본대로 움직이는 배우일 뿐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돌아가자고 하지 마. 그건 대본에 없어."
결국 이 문장은 자신의 파멸을 '우주의 절대적 법칙'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스타벅스의 따뜻한 휴머니즘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에이해브의 잔인성에요.

kontentree
멜빌은 에이해브를 단순한 ‘비겁자’로 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에이해브의 말대로 ‘우주는 10억 년 전에 다 짜인 각본’이라는 맹목적 결정론에 동조하지도 않았어요.
멜빌이 에이해브의 입을 빌려 던진 이 고백의 진짜 결론이자, 멜빌 본인의 확고한 우주론을 문학 플롯을 통해 위에서 말씀드렸죠.

kontentree
“ 가끔은 우리의 뇌가 차분한 나머지, 내용물이 얼어 버린 유리잔처럼 낡은 두개골이 쩍 갈라져 뇌를 흔들어 댄다고 생각했지.
그런데도 머리카락은 자란단 말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자라는 걸 보면 열기가 머리카락을 자라게 만드는 모양이야.
이건 그린란드 얼음 틈새나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자라는 흔한 풀 같은 거잖아.
”
『모비 딕 - 하』 134.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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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tentree
얼어붙은 뇌 - 이성의 마비 - 와 그럼에도 화산재 사이에서 자라나는 풀 같은 머리카락 - 멈추지 않는 증오의 생명력 - 의 대비.
이성이 마비되어 뇌가 얼어붙고 깨질지언정,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집착과 증오의 생명력, 머리카락만큼은 화산 용암 틈새를 뚫고 나오는 잡초처럼 맹목적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묘사입니다.
바람이 감옥과 병동의 고통을 외면한 채 순결한 척 불어오는 것에 분노하며,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동굴에 숨겠다고 말하는 에이해브를 보세요. 그는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무감각한 대자연, 신의 태도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네요. 악마처럼 보였던 에이해브가 오히려 바람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결정적 지점인가요.

서설
생각은 냉철하고 침착한 행동이며, 그래야 해. 그런데 우리의 못난 가슴이 두근거리고, 못난 두뇌는 지나치게 고동치거든.
가끔은 우리의 뇌가 너무 차분한 것 같아. 얼어붙은 것처럼
『모비 딕 - 하』 134.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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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이성(Thinking)에서 충동(Feeling)으로의 전회
에이해브는 근대 철학의 기초인 데카르트적 이성,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을 과감히 버립니다. 그에게 사유(思惟)는 인간의 두개골을 쩍 갈라지게 만드는 '냉철하고 얼어붙은 감옥'일 뿐입니다.
그는 오직 '느낌, 순수한 디오니소스적 충동'만을 선택하며, 이를 통해 신이 짜놓은 도덕적 질서를 초월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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