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아가리, 저 아가리! 절절한 가슴으로 올린 모든 기도의 결과가 이것이란 말인가?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정든 아내 메리와 아들의 모습이 "창백한 후광으로 희미해지는" 것은, 시스템의 광기에 동조한 인간이 도덕적 나침반을 상실해가는 해체 과정이라고 밖에.. 그 스타벅스가 고래의 아가리( 입이죠.ㅋㅋㅋ본문에 충실하다 보니, 죄송합니다) 앞에서 "평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건만 기도의 결과가 이것인가." 이 때, 멜빌은 기독교적 신정론, Theodicy의 파산을 말해요. 신실하게 법과 질서를 지킨 자가 왜 이 부조리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욥기가 던졌던 해답 없는 질문이 20세기의 실존적 허무주의보다 한 세기 앞서 바다 위에서 재현됩니다.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 욥기
모비 딕 - 하 에필로그,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맞아요. 사실 모비딕 자체가 '욥기'의 오마주이죠. 멜빌이 그냥 욥기를 가져다 쓴 게 아닙니다. 소설 곳곳에 힌트를 심어두긴 했어요. 고래 '모비 딕'의 정체도 욥기 41장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 악어 혹은 거대 해양 괴수)'이 등장하고 멜빌은 소설 속에서 모비 딕을 이 리바이어던과 동일시했쟎아요.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 또는 신의 권능을 뜻하죠. 이슈마엘의 생존도 그렇구요. 소설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슈마엘이 살아남아 이 비극을 전할 때, 멜빌은 욥기 1장 15절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도 에필로그에서 보시다시피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는 기독교적 믿음, 신정론이 깨진 것이며, 과거 욥기가 던졌던 신은 왜 의인에게 고통을 주는가?라는 질문을 현대적인 허무주의로 풀어낸 것이란 영혼의 너그러움님 말씀 잘 들었어요.
영혼의 배가 항해를 시작하네. 어떤 자는 썰물에, 어떤 자는 얕은 물에서, 어떤 자는 만조에 죽지. 나는 늙었어. 가장 높은 물마루로 일어선 파도 같은 심정일세. 자, 악수를 하세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에이해브는 자신의 실존이 '가장 높은 물마루로 일어선 파도' 같다고 말해요. 파도는 가장 높이 솟구친 바로 그 다음 순간에 흔적도 없이 부서져 내립니다. 에이해브는 종말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그 파멸의 정점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임을 받아들이네요.
그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스타벅의 눈물은 두 사람의 시선을 붙여 놓는 아교였다.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파멸 속에서 빛나는 마지막 인간성. 멜빌이 이 항해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인간적인 온기'인가요.
제 몸을 꿰뚫고, 침착하며, 기대에 차게 만드는, 전율의 정점에 못 박히는 것은 뭔가? 미래는 텅 빈 윤곽과 골격만으로 앞에서 헤엄치고, 과거는 어찌된 일인지 전부 희미해지는구나.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시간성의 상실과 도덕적 마비 스타벅스의 내면 고백이에요. 에이해브의 의지에 몰입된 스타벅스는 과거, 정든 아내 메리와 아들도, 미래, 귀향의 희망도 모두 잃어버립니다. 뇌가 얼어붙고 시간의 축이 무너지면서 오직 '파멸할 현재'라는 전율의 정점에 못 박힌거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 동조해 버린 지식인이 맞이하는 정신적 마비 상태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해요.
어제 새로 찔려 몸속에서 녹슬어 가는 작살들 때문에 괴로운 모비 딕은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에게 사로잡힌 것 같았다.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신화적 존재로서의 고래 멜빌은 모비 딕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 Fallen Angel '로 묘사합니다. 인간들이 꽂아 넣은 작살들이 몸속에서 녹슬어 가며 괴로워하는 고래의 모습은, 인간의 악의와 증오를 온몸으로 짊어진 우주적 존재의 장엄함. 고래는 악당이 아니라, 인간의 추악한 도전을 받아내고 있는 신화적 그림이라 생각해요.
그럴 수 없을 땐 죽는 건 에이해브만으로 충분하다... 보트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리는 자가 있다면, 그자에게 작살을 던지겠다. 너희들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내 팔이며 내 다리다.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그는 선원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위협하며 생명과 영혼을 지워버리고, 오직 자신의 복수를 수행할 도구로 여기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전체주의적 지배의 문학적 은유입니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고래야, 나도 웃어 주마! 그래 봐야 곰팡내 진동하고 소금에 잔뜩 절여진 죽음이겠지만. 오, 플래스크, 죽기 전에 빨간 버찌를 한 알만 먹고 죽었으면!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세 가지 인간 군상이 맞이하는 죽음의 태도 멜빌은 에이해브, 스터브, 플래스크의 죽음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며 인간이 허무 앞에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나열합니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영웅의 냉소적 미학입니다. 스터브와 플래스크는 에이해브처럼 거창하게 신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죽음이 고작 소금에 절여진 곰팡내 나는 허무 임을 알기에, 고래를 향해 같이 비웃어주고 '버찌 한 알'이라는 사소한 물질적 욕망을 품으며 죽어요. 거대한 비극을 희극으로 맞는 인간의 유머이죠.
배가 완전히 파괴되는 순간 멜빌은 하급 선원들과 에이해브의 최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죠. 이들의 죽음의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에이해브는 "태양에 등을 돌린다"고 선언하며 우주의 도덕 질서와 신의 세계로부터 떠닙니다. "인생 최고의 슬픔 속에 인생 최고의 위대함이 있다"는 유언은, 우주가 자신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자기 안의 불꽃 같은 의지만은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는 영웅적 자긍심의 완성이에요. 프로메테우스적 자아입니다.
반면 스터브와 플래스크의 최후는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냉소적입니다.
나는 태양에 등을 돌린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인생 최고의 슬픔 속에 위대함이 있다. 모두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어느 것도 내 것일 수 없으니, 창을 받아라!
모비 딕 - 하 135. 추격 - 셋째 날.,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천천히 읽어요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웰다잉 오디세이 2분기의 여정
[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추리로 양념 친 러브스토리 연작집
조선과 한국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
[김영사/책증정] 다니엘 튜더 소설 《마지막 왕국》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
우리 아버지는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4. <아버지의 시간>[도서 증정] 《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마케터와 함께 자유롭게 읽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 좋은 날의 책방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함께 읽기
한 출판사에서 나온 이토록 다양한 책들의 향연, 오늘 당신이 고를 이야기는?
[김영사/책증정]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함께 읽기[김영사 / 책 증정]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편집자 & 번역가와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무작정 퇴사하기 전에,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함께 읽기[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김영사/책증정]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세상은 아름다운 난제로 가득하다》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실 분들, 구합니다.
[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그믐연뮤번개] 2. [독서x관극x번역가 토크] 인간 내면을 파헤치는 『지킬앤하이드』[그믐연뮤번개] 1. [책 읽고 연극 보실 분] 오래도록 기억될 삶의 궤적, 『뼈의 기록』
우리의 노동 일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5. <쇳돌>[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그믐밤]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다시 읽기 @국자와주걱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한국 희곡 낭독이 이렇게 재밌다니!
<플.플.땡> 4.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플.플.땡> 3 당신이 잃어버린 것 2부<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8.신의 화살,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7.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