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죽음의 관에서 피어난 부활, 그리고 구원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서 이렇게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모두가 죽고 이스마엘만 살아남아 욥기로 증언을 시작합니다. 그를 살린 것은 야만인 친구 퀴퀘그가 새겨놓은 우주의 비밀이 적힌 '관, Coffin'이었습니다. 죽음의 상징인 관이 유일한 생명의 뗏목, 구명부표 이 되는 역설. 에이해브처럼 증오한 자들은 모두 죽고, 타인의 죽음과 영혼을 포용하고 기억하는 자, 이스마엘 만이 살아남는다는 멜빌의 최종 구원론입니다. 마지막에 그를 건져 올린 배는 자식을 잃고 헤매던 레이철호입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 같은 배가 고아, 이스마엘 를 구하는 이 마지막 문장은, 상실이 서로를 구원하는 연대의 미학이죠. 이렇게 드디어 비극의 막이 내립니다.. 정말 수고하셨고 뿌듯합니다. 축하드릴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에이해브의 마지막은 비참한 자멸이네요. 선원들을 선동해 수장시켜 놓고, 자신은 유언 한 마디 못 남긴 채 밧줄에 목이 감겨 끌려 들어갔지요. 스터브와 플래스크의 '버찌를 먹고 싶다'는 소박한 허무주의가 오히려 에이해브의 그 가짜 장엄함보다 훨씬 솔직하고 인간적입니다.
멜빌이 구축한 '비극적 숭고'를 오독할 수도 있겠어요. 에이해브의 죽음이 침묵 속으로 사라진 것은 우주가 그를 조롱한 게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지옥 한복판에서도 작살을 던지겠다 는 그의 의지는,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 전체를 향해 인간의 정신은 꺾이지 않는다 고 외친 승리로 보면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이해되지 않나요. 바다가 5천 년 동안 흘러도 에이해브는 그 바다에서 수장되지는 않을 겁니다.
두 분의 대화가 모비 딕의 양극단을 짚어주네요. 멜빌은 에이해브를 통해 인간 의지의 끝자락에 있는 최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바다라는 광대한 수의를 통해 인간의 그 모든 지난한 노력들이 덧없다고 이야기해요. 결국 이 소설의 진짜 승리자는 에이해브의 복수도, 스타벅스의 복종도 아닌 죽음의 관을 붙잡고 살아남아 이 모든 비극을 우리에게 증언해 준 고아 이스마엘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다 이스마엘을 구한 레이철호의 마지막 항해처럼, 우리도 어려운 삶에서 서로의 상실을 구원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멜빌이 도달한 지점이 아닌가 해요.
네, 저도 감사드려요. 마지막에 참여 시켜 주셔서요.^^ 바로 그 완벽한 허무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멜빌은 위대한 기호학적 반전을 시도합니다. 야만인 퀴퀘그가 새겨놓은 우주의 비밀이 담긴 관! 타자를 정복하려던 자들은 모두 바다에 지워졌지만, 타자의 죽음을 품고 연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자, 이스마엘을 살린 퀴퀘그의 관의 부력이 대단하네요.
모비딕의 대단원을 관통하는 3대 핵심 프레임이 있어요. 자연의 철저한 무관심 Cosmic Indifference 인간은 고래에게 '복수, 악의, 증오'를 투사하지만, 고래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갈 뿐입니다. 우주는 인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관심할 뿐이며, 바로 그 무관심이 인간을 미치게 만듭니다. 전체주의적 흡수 Totalitarian Absorption 에이해브는 선원들을 독립된 인간이 아닌 자신의 '손과 발'로 전락시킵니다. 광포한 권력이 어떻게 대중을 좀비처럼 흡수하여 파멸로 이끄는지 보여주는 정치철학적 대목이죠. 관(Coffin)에서 살아난 부활 죽음의 상징인 '관'이 유일한 생명의 도구, '구명부표' 가 되어 이스마엘을 살립니다. 멜빌이 도달한 궁극의 아이러니이자 구원론입니다.
마지막에 이스마엘을 건져 올린 배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매던 레이철호 라는 점도 종교적 위로를 줘요. 자식을 잃은 상실의 바다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이스마엘 를 건져 올리는 대목이요. 냉혹한 무관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만나 품어주는 연민뿐임을 멜빌이 유언으로 남긴 것 같아요. 모임지기님 , 모두함께 열심히 공부했어요. 모비딕은 잊지 못할 작품입니다.
훌륭한 분석들입니다. 에이해브가 남긴 죽음의 항로와, 퀴퀘그의 관이 만들어낸 생명. 이 두 가지 힘의 대치야말로 이 불안정한 삶의 바다를 항해하며 끊임없이 읽고 사유해야 할 이유일 거예요. 이것으로 마치나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모든 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모임지기님은 정말 수고 많으시네요. 멜빌은 왜 이 거대한 비극의 마지막 생존 도구로 다른 것이 아닌 '야만인 퀴퀘그가 새겨놓은 우주의 비밀이 적힌 관'을 선택했을까요? 생각하시는 이 '관 구명부표'의 가장 깊은 의미는 무엇인가요?
네, 제 생각은 구원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려는 오만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신비, 대자연의 텍스트를 겸손하게 포용하고 그 위에 실존을 의탁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생존이라 할 수 있겠네요. 데리다적 기호학과 해체주의 (Deconstruction) "서구 로고스(Logos)의 파산과 ‘읽을 수 없는 텍스트’의 구원" 에이해브가 대변하는 서구 문명은 ‘모든 것을 계산하고, 분류하고, 정복하려는 이성(Logos)’의 세계입니다. 에이해브는 바다의 항로를 차트로 수치화하고, 고래를 향해 철제 작살을 던지며, 자신의 의지로 자연을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멜빌은 그 서구적 주체성의 기획이 대자연 앞에서 어떻게 처참하게 침몰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파산의 현장에서 이스마엘을 살려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서구인들이 ‘야만’이라 부르며 멸시했던 퀴퀘그의 ‘관’이었습니다. 기표의 전복 (The Shifting Signifier) 본래 ‘관’은 인간을 매장하여 영원히 격리하는 죽음의 기호였습니다. 그러나 퀴퀘그는 그것을 물건을 담는 ‘상자’로 썼고, 피쿼드호 선원들은 그것을 ‘구명부표’로 개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스마엘을 살려내는 생명의 기호가 됩니다. 멜빌은 고정된 의미(관=죽음)를 해체함으로써, 우주의 의미는 인간이 규정할 수 없으며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상형문자의 부력 관 표면에 새겨진 것은 퀴퀘그의 고향 타투로, '하늘과 땅의 온갖 신비와 우주의 수수께끼가 풀려 있는 일종의 지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마엘조차 이 문자를 ‘읽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에이해브는 우주의 비밀을 강제로 읽어내고 정복하려다 죽었지만, 이스마엘은 우주의 신비(읽을 수 없는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몸을 맡겼기에(부력) 살아남았습니다. 모임지기님, 정말 감사드려요. 이런 좋은 내용의 모임을 갖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열심히 읽었습니다!
레비나스적 타자 윤리학과 실존주의 Existentialism "존재론적 고독의 초월과 ‘공동 실존(Mitsein)’의 부력"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 Sein zum Tode ’입니다. 에이해브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며 우주를 향해 파멸적인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 타인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 버리는 극단적인 ‘존재론적 고독’에 갇혀 죽었습니다. 반면 이스마엘은 침몰하는 바다에서 철저한 고독과 마주하지만, 그를 떠받쳐 올린 것은 다름 아닌 ‘가장 사랑했던 타자, The Other 의 흔적’이었습니다. 죽음의 포용이 주는 생명 퀴퀘그의 관은 퀴퀘그라는 구체적인 인간의 '죽음 자체'를 형상화한 물질입니다. 이스마엘이 그 관을 붙잡았다는 것은, 타자의 죽음과 취약성을 자신의 삶 내부로 온전히 수용했음을 의미합니다. 에이해브는 타자를 지워버렸기에 가라앉았고, 이스마엘은 자기 몸에 문신을 새겨줄 정도로 깊이 교감했던 야만인 친구의 유산을 붙잡았기에 솟구쳤습니다. 레비나스적 얼굴의 재현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퀴퀘그는 이스마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존재입니다. 그가 남긴 관은 이스마엘에게 단순한 나무상자가 아니라, "너는 살아서 이 비극을 증언하라"는 타자의 무언의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위의 이론을 토대로 제 생각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타자와의 ‘연대 기표’입니다. 이스마엘을 구원한 부력의 본질은 나무의 물리적 부력이 아니라, 퀴퀘그라는 타자가 이스마엘에게 남긴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영적 부력이라고요.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모두 감사드려요.
죽음의 관을 짜라. 그리고 그 관 위에 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신비를 문신처럼 새겨 넣어라. 그 상실과 비밀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을 때, 죽음의 상징이었던 그 관은 역설적이게도 너를 집어삼키려는 심연 위로 너를 가장 힘차게 밀어 올리는 생명의 뗏목이 될 것이다.
모비 딕 - 하 대단원의 하모니 The Grand Harmony,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이제 이 두 시선을 하나의 멜로디로 합쳐봅니다. 멜빌이 『모비 딕』의 마지막 생존 도구로 ‘퀴퀘그의 관’을 선택한 가장 깊은 의미는, ‘상실의 수용을 통한 실존의 부활’에 있습니다. 에이해브가 그토록 파멸시키려 했던 모비 딕의 ‘흰 이마’는 인간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냉혹하고 무관심한 우주의 물리적 실체였습니다. 그 거대한 침묵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태도를 멜빌은 서설님이 올리신 문장을 통해 보여줍니다. 결국 이스마엘이 관을 붙잡고 살아남아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에이해브처럼 증오로 우주를 파괴하려는 자는 우주의 무관심 속에 흔적도 없이 지워지지만, 타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상실을 연대의 도구로 삼아 부조리한 삶의 바다를 묵묵히 떠도는 '고독한 항해자' , '고아' 들만이 인류의 위대한 서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진실입니다. 이 달콤 쌉사름한 형이상학적 화음이야말로 멜빌이 5천 년 동안 굽이치는 저 침묵의 바다 위에 던져놓은, 우리가 쥘 수 있는 조그만 안내서가 아닐까 합니다. 😅 그동안 치열하게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모비 딕을 함께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다른 바다에서 만나 뵙길 소망해 봅니다.
참여가 늦었지만 유익한 시간을 보냈어요. 흔치 않은, 쑥스럽지 않은 진정성의 시간을 선물해 주신 모임지기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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