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마지막 항해

D-29
네, 제 생각은 구원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려는 오만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신비, 대자연의 텍스트를 겸손하게 포용하고 그 위에 실존을 의탁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생존이라 할 수 있겠네요. 데리다적 기호학과 해체주의 (Deconstruction) "서구 로고스(Logos)의 파산과 ‘읽을 수 없는 텍스트’의 구원" 에이해브가 대변하는 서구 문명은 ‘모든 것을 계산하고, 분류하고, 정복하려는 이성(Logos)’의 세계입니다. 에이해브는 바다의 항로를 차트로 수치화하고, 고래를 향해 철제 작살을 던지며, 자신의 의지로 자연을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멜빌은 그 서구적 주체성의 기획이 대자연 앞에서 어떻게 처참하게 침몰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파산의 현장에서 이스마엘을 살려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서구인들이 ‘야만’이라 부르며 멸시했던 퀴퀘그의 ‘관’이었습니다. 기표의 전복 (The Shifting Signifier) 본래 ‘관’은 인간을 매장하여 영원히 격리하는 죽음의 기호였습니다. 그러나 퀴퀘그는 그것을 물건을 담는 ‘상자’로 썼고, 피쿼드호 선원들은 그것을 ‘구명부표’로 개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스마엘을 살려내는 생명의 기호가 됩니다. 멜빌은 고정된 의미(관=죽음)를 해체함으로써, 우주의 의미는 인간이 규정할 수 없으며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상형문자의 부력 관 표면에 새겨진 것은 퀴퀘그의 고향 타투로, '하늘과 땅의 온갖 신비와 우주의 수수께끼가 풀려 있는 일종의 지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마엘조차 이 문자를 ‘읽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에이해브는 우주의 비밀을 강제로 읽어내고 정복하려다 죽었지만, 이스마엘은 우주의 신비(읽을 수 없는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몸을 맡겼기에(부력) 살아남았습니다. 모임지기님, 정말 감사드려요. 이런 좋은 내용의 모임을 갖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열심히 읽었습니다!
레비나스적 타자 윤리학과 실존주의 Existentialism "존재론적 고독의 초월과 ‘공동 실존(Mitsein)’의 부력"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 Sein zum Tode ’입니다. 에이해브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며 우주를 향해 파멸적인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 타인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 버리는 극단적인 ‘존재론적 고독’에 갇혀 죽었습니다. 반면 이스마엘은 침몰하는 바다에서 철저한 고독과 마주하지만, 그를 떠받쳐 올린 것은 다름 아닌 ‘가장 사랑했던 타자, The Other 의 흔적’이었습니다. 죽음의 포용이 주는 생명 퀴퀘그의 관은 퀴퀘그라는 구체적인 인간의 '죽음 자체'를 형상화한 물질입니다. 이스마엘이 그 관을 붙잡았다는 것은, 타자의 죽음과 취약성을 자신의 삶 내부로 온전히 수용했음을 의미합니다. 에이해브는 타자를 지워버렸기에 가라앉았고, 이스마엘은 자기 몸에 문신을 새겨줄 정도로 깊이 교감했던 야만인 친구의 유산을 붙잡았기에 솟구쳤습니다. 레비나스적 얼굴의 재현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마주하고 그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퀴퀘그는 이스마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존재입니다. 그가 남긴 관은 이스마엘에게 단순한 나무상자가 아니라, "너는 살아서 이 비극을 증언하라"는 타자의 무언의 명령이자 축복입니다. 위의 이론을 토대로 제 생각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했던 타자와의 ‘연대 기표’입니다. 이스마엘을 구원한 부력의 본질은 나무의 물리적 부력이 아니라, 퀴퀘그라는 타자가 이스마엘에게 남긴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의 영적 부력이라고요.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모두 감사드려요.
죽음의 관을 짜라. 그리고 그 관 위에 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신비를 문신처럼 새겨 넣어라. 그 상실과 비밀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을 때, 죽음의 상징이었던 그 관은 역설적이게도 너를 집어삼키려는 심연 위로 너를 가장 힘차게 밀어 올리는 생명의 뗏목이 될 것이다.
모비 딕 - 하 대단원의 하모니 The Grand Harmony,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이제 이 두 시선을 하나의 멜로디로 합쳐봅니다. 멜빌이 『모비 딕』의 마지막 생존 도구로 ‘퀴퀘그의 관’을 선택한 가장 깊은 의미는, ‘상실의 수용을 통한 실존의 부활’에 있습니다. 에이해브가 그토록 파멸시키려 했던 모비 딕의 ‘흰 이마’는 인간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냉혹하고 무관심한 우주의 물리적 실체였습니다. 그 거대한 침묵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태도를 멜빌은 서설님이 올리신 문장을 통해 보여줍니다. 결국 이스마엘이 관을 붙잡고 살아남아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에이해브처럼 증오로 우주를 파괴하려는 자는 우주의 무관심 속에 흔적도 없이 지워지지만, 타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상실을 연대의 도구로 삼아 부조리한 삶의 바다를 묵묵히 떠도는 '고독한 항해자' , '고아' 들만이 인류의 위대한 서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진실입니다. 이 달콤 쌉사름한 형이상학적 화음이야말로 멜빌이 5천 년 동안 굽이치는 저 침묵의 바다 위에 던져놓은, 우리가 쥘 수 있는 조그만 안내서가 아닐까 합니다. 😅 그동안 치열하게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모비 딕을 함께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다른 바다에서 만나 뵙길 소망해 봅니다.
참여가 늦었지만 유익한 시간을 보냈어요. 흔치 않은, 쑥스럽지 않은 진정성의 시간을 선물해 주신 모임지기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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