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

D-29
역사란 어떤 사건에서 감정적 색채가 지워지는 과정이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미미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카이종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감탄과 깨달음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세상을 감추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어떤 아름다움과 빛을 잃은 것 같았다. 카이종은 약간 후회되었다. 어떤 것은 기계적이고 유물론적으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보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긴 인류 역사에 거듭 회자되는 사상이 하나 있다. 우주의 숨은 질서에 대한 헌신, 그리고 세상의 자연적 평형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다. 신은 그의 자녀들에게 공평하고 하늘의 원칙은 남아도는 것을 빼앗아 부족한 곳을 채운다. 운명은 스스로 정한 바가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불공평한 부분을 발견하면 가능한 한 모든 증거를 찾아내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다. 하늘이 그들에게 지위, 부, 미모, 재능, 건강을 주었다면 분명 다른 무언가를 대가로서 취했을 것 같았다. 그런 증거들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윤회'라는 이론을 발명하여 완벽한 등가를 이루는 시간 단위를 무한대로 늘렸다. 카이종은 과거에 이런 운명의 보존법칙을 비웃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론이 필요한 건,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제한된 삶에 위안을 주어서일 것이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우리는 쓰레기 덕분에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집안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수록 환경은 더욱 나빠지죠. 꼭 제 목에 밧줄을 매고 잡아당기는 것 같아요. 더 세게 당길수록 숨은 막히는데 손을 놓자니 아래는 끝없는 낭떠러지인 거죠. 물이 너무 깊어요.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34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실리콘섬' 같은 곳의 딜레마이자 아이러니를 짧고 강력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이 너무 깊다'는 말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웃 벽돌 책 방에서 지금 읽는 <쇳돌>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와요. 하나는 현재 진행중이고 또 하나는 근미래 SF인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근처에 제련소가 있어요. 거기 산이 썩어 있는 거예요. 제련소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주변 산들은 다 나무가 시커멓고. '정자, 난자 어떡할 거냐' 이런 현수막 걸려 있고. 여기 사는 애들은 제련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어요. 주민들이 사진 찍지 말라 그래요. [기피하고 싫어하지만] 이것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먹고사는 거고, 그런데 그게 자신들을 해치는 거고, 다른 자원이 없는 사람들은 이걸[기피 시설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절벽에 있으니까. 외부에서 보고 뭐라고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죠. 그럼, 먹고살 거 어떻게 해줄 건데? 얼마나 절박하면 핵폐기장까지 [유치하려고] 도끼 들고 나가고 그랬겠어요."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4부 4장 김신애, 1984년생 “광부의 딸, 나를 찾아 돌아왔다”, 이라영 지음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광산노동자의 가족이자,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노조위원장의 자녀인 저자가 자신의 가족(그리고 광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삶에서 출발해 기록한 광산, 폐광, 그리고 폐광 이후의 이야기다.
<쇳돌> 모임 봤습니다. 저도 그 책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에 수반되는 대가입니다. 모두가 말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38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산성 욕조에서 끓는 왕수王水에서 발생한 흰 안개와, 강가와 들판에서 끝없이 타오르는 PVC, 절연체, 회로기판의 검은 연기가 합쳐진 푸르스름한 회색빛 안개에 모든 것이 휩싸여 있었다. 대조되는 두 색깔이 바람에 의해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도록 고루 섞여 모든 생물의 모공 속으로 공평하게 스며들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39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스콧 브랜들은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탈리아어 구절을 떠올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문에 새겨진 경고의 마지막 행이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49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린 주임과 천카이종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들이 표준중국어를 사용했더라면 번역기를 통해 직접 린 주임과 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들은 여덟 개의 성조와 복잡한 변음 규칙을 가진 고대 방언을 사용했다. 스콧은 천카이종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천카이종이 가진 언어적 유산은 스콧이 보스턴 대학교 역사학과 졸업생인 그를 채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27,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광둥성 산터우 지역의 방언에 대해서는 7쪽 '언어와 인명에 관한 옮긴이 노트_켄 리우'와 456쪽 '옮긴이의 말'을 미리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살짝 귀띔을 드리면, 이 지역의 복잡한 방언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두둥! 현지 사투리가 아닌 정확한 표준어로 말하는 뤄즈신 등장!
오.. 뤄즈신 깨어난 곳까지 가셨군요!! ^^ 이 부분에서 전체 플롯이 확인되죠.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분야는 수천억 달러 규모 의 유망 산업이죠. 세계 제조업의 명맥이 달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실리콘섬은 선발자 우위를 한 덕분에 선진국보다 전환 난이도가 훨씬 낮고 선진국처럼 법적, 정치적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필요한 것은 바로 효율성을 높이고 오염을 줄일 기술과 현대화된 관리 시스템입니다. 현재 동남아와 서아프리카는 핫플레이스입니다. 거대 자금과 기업들이 몰려들어 한몫 잡으려고 난리죠.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이 최고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신 분들께는 반드시 보답하죠." 스콧은 '보답'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을 주었다. 뇌물을 요구하던 필리핀 공무원들의 얼굴이 머리에 잠시 스쳤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32,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너무 어려워요." 린 주임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공해 주신 입찰 관련 문서와 제안서를 모두 꼼꼼히 살펴보았습 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제게 발언권이 없지만,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이 녹색 재활용 사업 분야에서 선두에 있다는 점과 제안하신 환경 리모델링 계획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섬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작업장이 제거될 테고 수입된 폐기물의 분류, 해체, 가공이 당신 측에서 이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겠지요." 스콧은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이해했다. 뤄, 린, 천 삼대 가문은 실리콘섬 전체의 전자 폐기물 회수와 처리 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다. 연간 수백만 톤의 처리 규모, 수십억 규모의 경제 적 생산량. 이렇게 큰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수익 재분배가 피비린내 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35,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초반부를 읽어나가면서 섬세한 인공 의수, 칩이 내장된 칩독, 증강렌즈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된 분야 vs 오염물질에 무작위로 노출되며 수작업으로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처리장 간의 간극이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에 따라, 상업성이 있는 기술인지에 따라 상용화 되는 속도가 다른것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것 같아 씁쓸하네요.
네, IT 쪽 일을 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기술적인 표현이 많고 세밀하죠. 그리고 그런 기술이 빈부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고 이용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47쪽에 등장하는 로봇 팔이 ‘전원이 차단된 후에도 최대 30분까지 서브모터를 통해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고 묘사되어 있는데 ‘서브모터? 서보(servo)모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서브모터는 없고요, 서보모터를 잘 못 쓴 것 같습니다. 서보가 발음할 때 서브랑 비슷하고 뭔가 주모터를 지원하는 서브모터가 아닐까 오해하실수도 있어서요. 서보모터란 모터의 돌아가는 회전각까지 정밀 제어가 가능한 모터입니다. 사람 팔의 움직임을 흉내내려면 전력을 공급했을 때 웽 하고 그저 회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바퀴 돌고 예를 들어 120도만 더 도는 정도의 제어가 가능해야 합니다. 수술용 로봇이 미세한 수술을 하려면 움직임이 극도로 세밀하게 조종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고도로 정밀한 서보모터가 장착되어야 합니다. 자동차에만 해도 창문 올리는데 쓰이거나 좌석 세팅하는데 쓰이는 서보모터를 포함해서 몇 십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로봇 팔이 자유도 6의 제품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움직임을 표현할 때 흔히 x축, y축, z축을 써서 나타내잖아요, 세 개의 축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자유도가 3이라 하고, 각 축을 기준으로 회전할 수 있으므로 또 자유도가 세 개 더해져서 총 자유도는 6이 되는 겁니다. 준군사용 모델답게 꽤 고급 로봇 팔인거죠. 군사급이나 고정밀 수술용 로봇 팔은 자유도가 하나 더 추가되어 7입니다. 사람의 팔꿈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유도를 하나 더 주죠. 그리고 로봇 팔의 최대 악력이 520뉴턴이라고 하면서 스콧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잖아요, 고교 물리 시간에 배운 것이지만 뉴턴이라는 단위는 일상 생활에서는 잘 안쓰기 때문에 520뉴턴이 어느 정도의 힘인지 감이 직관적으로 안오실거에요. 대략 10뉴턴을 무게 1킬로그램으로 보면 되니까 체중 52킬로그램의 여자가 그 남자의 머리위에 앉아 있다고 보면 될 정도의 힘입니다. 그 정도 무게로는 남자의 두개골이 부서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콧은 생각한 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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