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

D-29
군중 속에서 두려움에 가득 찬 한 사람의 얼굴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평화롭고 사려 깊은 군중의 표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목구비는 갸름하고 젊어 보였는데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으로 성별을 구분하기란 불가능했다. 그 사람은 기도하는 분위기에 묻어가려 했지만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는 겁에 질린 눈빛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흐릿한 배경 속 파문의 중심이 되듯이, 그의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실리콘섬 토박이는 분명 아니었다. 그 혹은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토박이처럼 꾸몄더라도 얼굴 특징이나 세밀한 차림새에서 티가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카이종은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꼈다. 낯익은 듯한, 이 이상한 느낌을 어찌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마치 그 얼굴의 지형적 특징이 뇌의 우측 방추형 뇌이랑에서 패턴 인식 모듈을 활성화하여 심장박동수를 높이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66-67,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카이종이 미미를 (실제로는)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미미에 대한 표현이 다른 부분과 비슷한 점이 조금 보이네요. 카이종이 축제 거리에서 미미를 발견하는 장면이 상당히 영화적이라고 할까요, 시각적으로 잘 그려지네요.
4장에 나오는 리원이 원 형 인가봐요.
네, 리 원이 '원 형'입니다. ^^ 쓰레기 인간 소년 소녀들의 정신적 지주!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억압당했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것은 역사를 통틀어 흔한 일이었다. 어떤 집단이든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더 높은 계급으로 규정하고 신, 국가 혹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법과 규칙을 만들어 다른 계급의 삶을 지배하고 그들의 육체와 영혼을 소유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천카이종이 미미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세상을 움직이는 건 (변화시키는 건) 결국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건 그 안에 표현된 사랑이 얼마나 공감되게 그려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 그 사랑에 공감이 돼야, 만나고 이별하고 고난을 겪는 모든 과정에 이입될 수 있고, 또 반대로 그 모든 과정들에 공감이 돼야 그 사랑에 같이 마음아파 할 수 있게 되는... 천카이종과 미미가 하나씩 스토리를 쌓아가는 과정은 '단박에 통'하는 쪽은 아니고 서로 조금 거리를 두면서 탐색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
"누가 세계화의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교수에게 호명된 청년이 한참 더듬거리다가 반쯤 먹은 햄버거를 집어 들고는 말했다. "맥도널드?"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58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학생 때 읽었던 책이 생각나네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최신 개정 8판세계적인 사회학자로,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포장된 대량화와 동일성의 위험성을 '맥도날드화'로 정의하며 전 세계에 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식품 분야에까지 문제의식을 던졌던 작품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의 최신 개정판이다.
와... 이런 책이 있군요! 작가가 이 책을 알았을까요?! 교과서 급의 책일까요? 개정 8판이라니~ @. @ 대학 교재들이 주기적으로 개정되더라고요.
네 맞아요. 사회학 교양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이 읽어보라고 하셨던 책입니다. 교재로 많이 쓴다고 하더군요.
오. 저 이 책 학부때 읽었어요. 추억소환
(62쪽) 마르디 그라Mardi Gras를 몰라서 찾아봤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5%B4%EB%94%94_%EA%B7%B8%EB%9D%BC
감사합니다! 미국 최대 축제라니 얼마나 큰 규모일지 궁금하네요. 기원이 로마까지 올라가는 축제를 17세기에 프랑스계 미국인이 들여온 거군요. 올려주신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팬테이크 데이'라고도 한다고 하고, 링크가 걸려 있어서 가보니 피터 브뤼헐의 유명한 사순절 그림이 소개돼있네요! 상세 그림에 정말 팬케이크가 있네요. 프레첼도 있고요! 축제나 종교 쪽은 잘 모르는데, 이렇게 그림을 보니 내용은 잘 몰라도 재미있네요.
어쩌면 결국 언젠가 가상현실로 대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겐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형태 없는 그리움과 기억을 물체 혹은 의식화된 퍼포먼스로 형상화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감각해진 감정을 다시 일깨우고, 한때 뼈가 시리도록 아팠던 상실의 고통을 끝없는 기억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의식이, 플랫폼이, 통로가 필요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65-66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역사란 어떤 사건에서 감정적 색채가 지워지는 과정이다. 카이종은 마침내 자신이 왜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 도시를 옮겨 다녔던 경험 때문에 남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가족, 학교, 조직 혹은 대인관계 등 모든 관계에서 습관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역사가에게 필수인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는 일은 그에게 너무 쉬웠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카이종은 '우리의 일원'이라는 말의 의미와 무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66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날이 어둑해졌다. 천씨 가문 종묘 앞 광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반쯤 분해된 제단은 석양 아래 뼈다귀처럼 서 있었고 딱딱한 플라스틱 껍데기인 다스예가 바닥에 널브러져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단은 이미 치워진 상태였지만 제사용 양초와 향 몇 개는 여전했고 짓밟힌 과일과 채소와 지전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용 깃발은 보라색 바람에 펄럭였고 외로운 영혼들과 귀신들은 이미 배불리 먹고는 떠났다. 상인들은 돈을 세며 남은 음식들은 칩독들에게 주었다. 개들은 온 정신을 먹는 데 집중하면서 빠르고 기계적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내년에도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74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2장 중원절 귀신 축제의 묘사가 인상적이네요. 축제가 끝난 후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다스예 동상(이라고 했지만 실은 플라스틱 껍데기였군요.)과 바닥에 짓밟힌 제물들, 돈을 세는 상인들과 남은 음식을 먹는 칩독들의 풍경이 실리콘섬의 굴레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네, 묘사가 자세하고 섬세하죠. 마지막에 남은 음식을 기계 개들에게 준다는 장면으로 섬의 현실과 구조가 가진 '씁쓸함'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원은 제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미미, 넌 진짜 내 친동생이랑 똑같아. 머리가 진짜 좋다니까" "미미는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우리 중에 제일 우아해요! 왕관도 진짜 잘 어울릴걸요?" 시끌벅적하던 소녀들이 돌연 모종의 공감대라도 형성한 듯 순간적으로 미미의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미미의 머리가 헬멧보다 조금 커서 헬멧의 곡선과 머리 사이에 약간 뜬 공간이 있었다. 원 형이 장난이 선을 넘기 전에 저지할 틈도 없이 여자 한 명이 헬멧을 힘껏 아래로 눌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미미는 뒤통수뼈 바로 아래 피부를 차갑고 날카 로운 무언가가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미미는 비명을 지르며, 왕관'을 벗어 바닥으로 내던졌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78,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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