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

D-29
“스콧 브랜들 씨, 드디어 만났군요. 이날을 오랫동안 고대했습니다." "나를 아는가?" "상상하시는 것 이상이죠." "흠, 자세히 말해 보게." "당신의 정체를 말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지는 맙시다. 엑손 모빌, 림부난 히자우, 세계은행, 테라그린 리사이클링,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무시무시한 거물, 이름은 계속 바뀌어도 성은 다 같지 않습니까? 바로 그리디Greedy죠." 남자는 자못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152,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152쪽 각주에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팔이 길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는 설명이 있네요. 림부난 히자우(Rimbunan Hijau)를 몰라 찾아보았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다국적 벌목기업이네요. 벌목만이 아니라 팜유 생산, 미디어, 호텔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합니다. 이 소설에서 엑손 모빌, 세계은행 등과 나란히 놓인 걸 보니 문제가 있나보다 했는데, 역시 그러네요. 인권 침해, 선주민 인권 파괴, 정치적인 부패와 환경 파괴 등으로 환경 단체와 인도주의 단체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불법적인 벌목도 많이 하고 있나 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imbunan_Hijau
이처럼 이 소설에서는 실존하는 회사나 기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은근히 부정적 이미지를 풍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도 문제 없는지 모르겠어요, 해당 기업에서 명예 훼손으로 소송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게요. 우리나라 드라마나 소설, 영화에서는 자주 못 보는데, 헐리우드 영화나 외국 소설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영화 <바이스>가 바로 떠오르네요. 실존인물이며 회사며 그냥 다 썼죠. 영화 나온 후 뒷얘기는 없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
근데 맨 앞에 '실제 인물이나 단체와 연관이 있어 보이면 그것은 '우연''이라고 써 놨잖아요. 그래서 전 밑밥 깐다고 생각했어요. ^^;;
프롤로그 앞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사건은 모두 허구이다. 실제와 닮은 점이 있다면 이는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다'하고 정확히 적혀 있네요. 전 못 봤는데 @꽃의요정 님 눈 좋으십니다. ㅎㅎ 그런데 왠지 이 문장을 본 해당 기업은 뭔가 조롱을 당하는 것 같아 더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
일부러 기분 나쁘라고 쓰신 거 아닐까요? ^^ '너네 기업들 좀 반성이 필요해!' 막 이런 심정으로요.
ㅎㅎ 맞아요. 꽃의요정님 말씀대로 기업의 악행에 대해 보란듯이 살짝 약올리는 것도 같고 밑밥을 까는 것도 같고… 이런 문구를 책이나 영화 시작 부분에 미리 올려놓으면 나중에 혹시 고소 같은 법적 보복을 당했을 때 면책이 된다고 들었어요.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 ^^
스콧 브랜들은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탈리아어 구절을 떠올렸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문에 새겨진 경고의 마지막 행이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49p,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관조 정자는 당나라 시대에 사법 행정을 담당하던 기관인 형부에서 현재의 차관급인 시랑을 지냈던 한유가 세웠다고 한 다. 한유는 부처의 손가락 뼈를 궁궐에 설치하려는 헌종의 계획에 반대했고 그 결과 차오저우해 현감으로 좌천되었다. 한유는 실리콘섬에 방문한 이후 정자를 짓도록 지시했다. 물론 당시에는 실리콘섬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정자 밖 비석에는 한유가 직접 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조수를 관찰하는 자는 천하를 알 것이며, 인덕을 지닌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 훗날 그 비석 은 열대성 폭풍으로 인해 바다에 떨어졌다. 혹자는 이 비문이 한유가 당 헌종에게 불만을 드러낸 글이라 고 해석했지만, 그것은 역사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한 결과다. 사실 그 비문은 실리콘섬 현지의 오래된 풍습인 '조점'을 겨냥한 글이었다. 조점은 시간의 안개 속에 그 근원을 잃어버린 오래된 점술이다. 실리콘섬의 선조들이 오랫동안 어업 생활을 하면서 축적한 지혜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점술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조점 역시 조수간만을 통해 씻겨지고 남은 해변 부유물의 위치, 상태, 흔적을 통해 길흉을 예측하고 미래의 징조로 삼았다. 다만 다른 점술은 주로 나뭇가지, 거북이 등딱지, 동물의 뼈, 모래 무지, 동전, 대나무 막대기 등 생명이 없는 불제를 사용했으나 조점은 살아 있는 생물을 사용했다. 실리콘섬의 선조들은 생명이 바다에 빠져 빈사 상태에 이르 면 영적 세계와 연결되어 대단히 예민해진 감각으로 미래의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매들은 이를 더욱 정확한 예지를 끌어내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157-158,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이렇게 고사가 들어가니 읽는 재미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유가 누구인가 찾아보니, 대단한 문장가였네요. 중국 문학 전통에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영문학에서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위키 마지막 부분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요. 보르헤스가 카프카에 대한 에세이에서 한유를 언급했다고 합니다. 카프카의 선구자 중 한사람이라면서 유사한 점이 있다고 했답니다.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네요. https://en.wikipedia.org/wiki/Han_Yu 한유는 당나라 문장가, 유학자, 시인, 관료였고, 유학자이다보니 당시 궁정에서 일던 미신적인 불교 행위(부처님 손가락을 가져오겠다는 등) 비판적이었다고 합니다. 도교도 중국 문화에 해롭다고 여겨 비판했다고 하네요.
실리콘섬의 주변에 형성된 독특한 석호 지형은 조점을 위한 완벽한 장소였다. 실리콘섬의 선조들은 산호초 끝에 서서 산 제물을 바다에 던져 넣은 후, 관조 해변에서 그 익사한 제물이 해변으로 떠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예전에는 해변을 인위적으로 12등분하여 복문을 새긴 화강암 석판을 세우고 조점을 치는 데 이용했으나, 문화대혁명 동안 전부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한 제물은…” 카이종은 목이 메어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갓 태어난 송아지, 양, 아니면 개였지.” 노인이 대답했다. "대부분은 그랬어.” … 당나라 헌종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목종은 즉위 초기에 한유를 수도로 불러들여 국자좨주에 앉혔고 다시 병부시랑, 이부시랑으로 승진시켰다. 이 정자와 비석은 자신에게 길한 점괘를 내 려 준 신에게 감사하기 위한 한유의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인덕을 지닌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구절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카이종은 그 대학자가 희생 제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차오저우의 강에서 악어를 몰아내버린 전설 속 영웅 한유를 동물 보호주의자로 볼 수가 없었다." "가끔은" 노인의 눈이 불안정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제물로 쓰기도 했어.”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p.158-160,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사람을 제물로 쓰기도 했어." ... 불길한 사건을 예고하는 말이 여기에 있었네요.
36계 중 제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어둠 속에서 진창을 건너다.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이 택한 길과 같다. 테라그린은 소비재 전자 폐기물에서 희토류 원소를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폐기된 칩, 배터리, 디스플레이 및 유사한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80퍼센트 이상을 추출한 후 재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미국환경보호청EPA 기준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에 환경보호 기금을 추가로 내야 했다. 게다가 이미 천정부지인 인건비에다가, 미국의 법률에 따라 노동자를 위해 고가의 보험에 가입해야 했고, 혹시 10년 후에 업무 관련 질병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기금을 적립해 둬야 했다. 한마디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232-233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약점이다. 국회의원들이 마침내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고 법안을 제출하고, 이익집단들이 마침내 다툼을 끝내고, 관련 산업 정책을 추진하는 날이면 미합중국은 아마 이미 삼류국가로 전락했거나, 혹은 중화 경제권의 종속국으로 변했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해체는 생생한 교훈이었다. 서구인들은 2022년 중국 기업이 스페인의 이비사Ibiza 해변을 인수한 후, 중국의 오성홍기가 휘날리던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테라그린은 현행법의 틀 안에서 '녹색 경제'의 가치를 내걸고 쓰레기와 오염 물질을 해외로, 광활한 개발도상국의 땅으로 이전하는 아웃소싱 전략을 발명했다. 테라그린 리사이클링은 개발도상국이 산업 단지와 생산 설비를 건설하고, 그들의 많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며 계약에 따라 생산된 값비싼 희토류를 아주 싼 가격에 우선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챙겼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233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스콧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아마다바드에서 독성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후, 그는 종종 악몽을 꾸었다. 녹색 안개 속에 퉁퉁 부은 시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그들의 눈은 수정체 변형으로 뿌옇게 변해 있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그는 입찰 과정에서 현지 제조업체의 가스 밸브를 사용했다. 그들은 더 낮은 가격과 더 높은 리베이트를 제시했다. 그 회색 눈들이 가공되지 않은 수천 개의 진주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과 의사는 그를 구하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해냈다. 이제 그는 신이 없는 또 다른 땅에 발을 내딛고 신성 모독을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234쪽,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아마다바드의 독성가스 누출 사고 대목을 읽으니 보팔에서 있었던 참사가 연상됐어요.
1984년 12월 3일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곤히 자던 사람들은 갑자기 눈과 코를 찌르는 느낌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피를 토하거나 배가 부풀어 올랐고 잠시 뒤 사지가 뒤틀린 채 픽픽 쓰러져 갔다. 안간힘을 다해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거리에 널브러진 사람과 짐승의 시신을 보고 경악했다. 그날 새벽 많은 사람들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뜨고 죽어 갔다. 이렇게 죽어 간 사람은 무려 3,500명, 이보다 더 많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떼죽음을 몰고 온 저승사자는 인도 중부 보팔 외곽에 있던 미국 화학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 농약 공장의 원료 저장 탱크에서 새어 나온 맹독성 물질인 메틸이소시안염MIC이었다. '화학 물질의 히로시마' 보팔 참사가 터진 것이다. 이 참사로 죽어 간 사람은 사고 당일 죽음을 맞이한 3,500명뿐만이 아니었다.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33,000여 명에 달한다고 보고되었고 약 50만 명이 가스에 노출됐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까지 결핵이나 실명, 피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1984년 12월 3일 | 인도 보팔 참사 발생, 김형민 지음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1년 365일의 날짜를 이정표 삼아, 우리의 마음에 '오늘'처럼 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동시대를 위로하고 인간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보여 준 이들, 관습과 편견을 뒤집은 전설 같은 일들, 언젠가 또 세상을 시끄럽게 할 사건들. 그렇게 웃고 울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선택하고… 그러다 시대를 바꾸기도 했던 365일 '오늘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사고는 저장 탱크 속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밸브가 파열되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보고서에서 운전원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밸브 파열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었고 가스 누출에 대비한 안전 관리가 소홀하였던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공장의 안전 시스템은 엉망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2년 전 내부 가스 누출 사고로 노동자가 죽었고 이에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여 회사 측에 안전한 작업을 위한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안전장치 설치는커녕 해고의 칼바람을 일으켰다.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노동자 수를 반으로 줄여 버렸다. 6개월 과정이었던 안전 교육은 달랑 15일로 줄어들었다. 소량의 가스가 상시적으로 새어 나오는 통에 경보기가 수시로 삑삑거리자 아예 무음으로 바꿔 버렸다는 말도 있다. 어차피 사건은 터진 것이고 남은 문제는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 그리고 책임자 처벌일 것이다. 그런데 수만 명이 넘게 죽고 10만 명 이상이 장애를 입었으며 20년이 지나도록 유독 물질이 넘쳐나는 지하수가 흐르는 이 끔찍한 사태에 대한 법적 판결은 사건 발발 이후 26년 만에야 내려졌다. 2010년 보팔 지방법원이 유니언 카바이드의 회장이었던 워렌 앤더슨과 인도 지사 경영진에게 과실치사를 적용하여 징역 2년을 선고한 것이다. 사건을 질질 끌기로 악명 높은 인도 법원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시간 끌기와 그보다 더 자심한 판결이었다. 피고인들은 그 처벌도 못 받겠다며 항소했고, 이에 대한 판결은 책임자들이 늙어 죽은 뒤에 날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1984년 12월 3일 | 인도 보팔 참사 발생, 김형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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