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구밤이엄마 @르구인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해서 예전에 봤던 책의 한 대목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
D-29

향팔

향팔
“ 오늘날 노동자의 사이보그화 경향은 더 내밀해지고 더 거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노동자가 기계장치를 신체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신체에 부착해서 관절처럼 사용합니다(생체칩이나 로봇수트 등).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자신이 거대한 기계장치의 관절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마르크스는 노동자가 기계체계의 '의식적 관절'이 되어간다고 했습니다). 더는 노동자와 노동수단을 나누는 게 의미 없어 보일 정도죠.
물론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와 노동수단의 결합 방식을 정하는 것은 자본가입니다. 그리고 자본가의 관심은 이윤 창출이죠. 그는 노동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만 사이보그 노동자의 변용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사이보그화의 방향을 일정하게 통제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도 대개는 사이보그 노동자의 변용 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의 능력과 노동생산성은 긴밀히 맞물려 있으니까요.
문제는 사이보그 노동자의 신체, 즉 '인간-기계'의 재귀적 회로가 인간의식에 의해 완전히 통제될 수 없다는 겁니다. […] 신체가 의식에 붙들려 있는 만큼이나 의식 또한 신체에 붙들려 있으니까요. 재귀적 회로를 통해 신체에서 나타난 이질적 움직임들이 얼마든지 새로운 의식을 낳을 수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사건, 다시 말해 반란이 의식 너머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점에서 사이보그 노동자는 인간 소외의 극대화된 형태입니다. 전통적 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수단과의 결합이 외면적입니다. 신체가 연장되는 형태죠. 그래서 노동자가 신체와 정신의 유기체적 통일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명령을 따를 때조차 신체와 정신의 인간적 경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보그 노동자의 신체는 정의상 이질적 신체들의 결합물입니다. 내 몸은 내 몸만이 아니고 내 정신은 내 정신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외된 인간, 이 에일리언이 인간적 귀환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인간으로부터의 떠남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실을 해소할 방법을, 상실한 '그것'을 되찾는 데서 찾지 않고 '그것'이 있다는 신화를 거부하는 데서 찾는 거죠. 인간으로 돌아가는 꿈이 아니라 인간이 아니기를 꿈꾼다면, 다시 말해 꿈의 인간적 성격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 적극적 이방인 되기, 적극적 에일리언 되기에 나선다면 말입니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기계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기계와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가 그 질문을 던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혹시 압니까. 자본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곳에 자본의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감추어져 있을지. ”
『생명을 짜 넣는 노동』 부록노트 III - 사이보그 노동자의 에일리언 되기, 고병권 지음

생명을 짜 넣는 노동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공부하는 프로젝트 <북클럽『자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이번 책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 제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의 일부(제5~7장)를 꼼꼼히 분석한다. 흥미롭게도 고병권은 이 책을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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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요건 위 책의 미주에 나와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저자 캐서린 헤일스는 기술사와 문화사를 넘나들며 세 가지 주제, 즉 정보는 어떻게 신체를 잃었는가, 사이보그가 어떻게 문화적, 기술적으로 구성되었는가, 사이버네틱스 담론에서 자유주의적 휴머니즘 주체는 어떻게 해체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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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구인
미미가 미미1이 되는 설정, 장면들과 올려주신 글들이 많이 겹쳐 보입니다!
저는 전부터 이 설정이 좀 애매하고 복잡해서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어려웠거든요.
소외된 인간(에일리언)이 '인간적 귀환'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더 멀어짐으로써 소외를 극복하게 된다면(어떻게 될까)...이라는 고병권씨의 설명을 보니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왜 인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소외 극복의 길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 글에서 "신체가 의식에 붙들려 있는 만큼 의식도 신체에 붙들려 있다"고 했는데요.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몸이 먼저 변해야 의식이 변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일까요? 그렇다면 미미가 미미1이 된 것도, 미미가 먼저 그렇게 되기로 결심한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변형되고 나서 그 결과로 의식이 따라간 거라고 봐야 할까요?
자본이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를 기계와 결합시키지만, 그 노동자-기계에 저항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마지막 단락에 있는데요. 『웨이스트 타이드』에서 '쓰레기 인간'이 몰려오는 장면도 그렇고, 그 자본의 유토피아가 만든 '자본의 끔찍한 디스토피아'라는 말을 보니 차페크의 『R.U.R.』이 바로 떠오르네요. '로봇'들이 인간들을 향해 떼지어 몰려오죠. 로봇들의 봉기가 결국 인간에게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읽히는 것처럼, '쓰레기 인간'들의 반격 비슷한 걸로 봐야 할까요?

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픽션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를 포착하고, 맞물린 세계의 틈을 상상하는 이음스코프 시리즈. 그 첫 번째 책으로 로봇에 의해 인간이 멸종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카렐 차페크의 1920년 희곡 작품 <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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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1) "왜 인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소외 극복의 길일까"
"상실을 해소할 방법을, 상실한 '그것'을 되찾는 데서 찾지 않고 '그것'이 있다는 신화를 거부하는 데서 찾는 거죠."
고병권 선생님의 글을 다시 보면서 아,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는 거였구나, 싶어서 재미있었어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인간적'인 것의 기준조차 이미 누군가(자본?)가 정해놓은 틀일 수도 있다, 소외를 극복하려면 인간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보다, 발상을 아예 뒤엎어서 (자본이 자신의 목적-이윤 창출/노동생산성 극대화-을 위해 추동한) 인간+기계의 결합을 (노동자가) 끝까지 밀어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왜 우리는 꼭 '인간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만 생각할까? 애초에 그 인간다움의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일까? 이런 식으로 꼬꼬무 상상이 이어지네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수반되는 기계와 인프라와 시스템을 노동자가 그대로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하죠. 그것과 유사하게, 자본이 준 무기인 "소외된 인간, 에일리언"을 통해 거꾸로 자본의 유토피아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
예전에 고병권 선생님의 글을 읽었을 때는 이 대목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웨이스트 타이드>를 읽으며 또 이곳에서 @르구인 님과 여러 분들께서 나눠주신 생각을 읽으니 이 글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와닿습니다.
2) "신체가 의식에 붙들려 있는 만큼이나 의식 또한 신체에 붙들려 있다."
"몸이 먼저 변해야 의식이 변할 수 있다." 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뭐랄까 유물론적 결합일까요 ㅎㅎ 이렇게 보면 신체는 즉 '노동자-기계'는 그걸 만든 자본의 의도대로 완전히 통제될 수 없고 ('노동자-기계'의 새로운 신체는 새로운 의식을 낳을 테니까요), 그러면 자본의 의식에 통제되지 않는 '노동자-기계'의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어? 하는 말처럼 들렸답니다. 단 이건 '인간 일반에게 저항하는 로봇 일반' 같은 개념과는 쪼끔 다른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페크의 작품도 읽어보고 싶네요.

탱구밤이엄마
늘 느끼는데 향팔님은 책 인용 능력(?)이 정말 최고십니다..!! 어찌 이렇게 다 기억하고 척척 가져오시는지 >_<
책 읽고 나서 늘 금방 증발해 버리는 저로선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ㅎㅎ

향팔
에고, 아닙니다요. ‘엥 어디서 이런 비슷한 얘길 읽었능데?’ 하면서 집에 있는 책을 뒤지다가 얻어걸린 거랍니다. 그 대목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워요. 그래서 저는 어떤 책을 재독 해도 지루하지 않답니다. 왜냐면 늘 처음 보는 것 같거든요(한번 읽었던 소설도 결말이 기억 안남). 하하하!

꽃의요정
여기 부러워만 하는 사람 한 명 더 있답니다. 그믐에는 다른 초능력을 가지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보통 인간인지라 관찰하면서 감탄만 하고 있습니다.

르구인
맞습니다! 공감 200%입니다!
늘 놀라는데, 쑥쓰러워서 감탄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네요. ^^;
@탱구밤이엄마 님 덕분에, 저도 부러움에 한 표 보탭니다~ ㅎㅎ

꽃의요정
르구인님은 '분석초능력자'이시잖아요~~^^

향팔
공감 20000%입니다!

탱구밤이엄마
“ 천카이종은 마침내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행에 민감한 선진국의 신세대에게 의체는 더 이상 장애인의 보조기구나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는 신체 부품이나 장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의 희로애락을, 우리의 계급, 사회관계, 기억을 저장했다.
당신의 의체는 바로 당신이다. ”
『웨이스트 타이드 Waste Tide』 천추판 지음, 이기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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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구밤이엄마
과연 그럴까요? 교체해 버리고 이전의 기억을 덮어씌운다 해서 이전의 '의체'와 새 '의체'가 과연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체'가 진짜 '신체'를 대체할 수 있을지.

탱구밤이엄마
미미와 자꾸 겹쳐지는 신비로운 서양 여자의 얼굴의 정체가 대체 누구(무엇)일까요? 궁금..이미 힌트가 나왔는데 제가 놓친건지..

밥심
참고 읽으시다보면 388쪽에서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
이 분이시죠.


모시 모시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꽃의요정
진짜예요?! 헉 제 얼굴인 줄~ ㅎㅎㅎ 악! 때리지 마세요!
근데 정말 전형적인 미인형이시네요.

탱구밤이엄마
닉네님이 꽃의요정인 이유가 있었군요? :)

꽃의요정
에그머니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르구인
아~~ 헤디 라마!!
영화도 있습니다, 「밤쉘」 (실은 아직 못 본.)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8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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