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

D-29
저돟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좋았어요. 슬픔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는 걸, 그렇게나 슬픔이 만연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밀리 디킨슨 관련한 그림책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의 삼촌 에밀리'열린어린이 그림책' 시리즈, 제23권 『나의 삼촌 에밀리』. 미국 태생의 위대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조카 길버트가 나눈 교감을 운율감 있게 담아낸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뿐 아니라, 친밀한 가족의 모습을 세밀하고 선명한 펜화 기법의 그림으로 담아내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이 그림책은 마치 시처럼 읽히는 대담한 문체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 <말하라, 모든 진실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대학생때 동아리에서 체험처럼 유언장 쓰고 자신의 장례식을 돌아가면서 하고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이 언제 닥쳐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라서 유언에 관하여 요즘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저는 남편과 이미 유언장을 어느 정도 작성하고 친정엄마를 증인으로 삼았는데..(물론 앞으로도 바뀔지 모르지만) 대학생 때 이런 동아리 활동도 있었군요..
저는 1차 주어진 범위내의 작품들을 랜덤으로 읽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로이즈 빅토린 아케르만의 비명과 바로뒤의 샬럿 브론테의 '에밀리 제인 브론테의 죽음에 부쳐'에 꽂혔습니다. 전자에게서는 시니컬함이 후자에게서는 다정한 슬픔이 느껴져서 묘한 대비로 다가오네요. 샬럿 브론테의 시는 연두빛 언덕을 배경으로 해서 필사하고 싶어집니다.
빛나는 가위를 손에 쥐고 마름질하는 밤, 추위에 열 손가락 뻣뻣이 굳어드네. 해마다 남의 혼례복만 지어주면서 올해도 나는 홀로 잠자리에 드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허난설헌, 가난한 처녀의 노래, 39쪽
>사랑하는 딸에게,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듯, <사랑하는 딸에게, 만약 내게 딸이 있다면> 현명한 이와 어리석은 이로 북적이고, 찬찮히 생각해 보면, 눈물보다는 쓴웃음이 더 어울리는 곳이란다. 지나친 의심은 가슴에 앙금을 쌓고, 지나친 믿음은 뒤늦은 후회를 부르지. 모든 장미에 가시가 있다고도, 모든 남자의 가슴에 덕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렴.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57페이지. 안나 마리아 렝그렌
저는 대충 한국인 평균 기대 수명의 절반 이상을 살았는데요, 세상은 정말로 눈물보다는 쓴웃음이 더 어울리는 곳이라는 표현이 딱 인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목이 메이고 코끝이 찡한 경험은 종종 합니다. 그러나 제 사적인 경험에 있어선, 언제부턴가 눈물이 말라버렸어요. 무가치와 무의미에 허덕이는 전형적인 현대인으로서, 대체로 쓴웃음 가득한 시간들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안나 마리아 렝그렌의 시는 @모임 여러분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시는 독자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듯합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제 조카(男, 자칭 독서광)는 세상을 보는 렝그렌의 시선이 좀 편협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편협? 제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세상은 그래도 희망이 더 어울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 마음 영원히 변치 말라고 했지만, 쓴웃음(!)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우주먼지밍님이 사적 경험에 있어서 "무가치와 무의미에 허덕이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라고 하셨는데 깊이 공감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중 누구도 저 말을 쉽게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기분 마사지'에 사활을 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 마사지'는 얼마 전에 종영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나오는 "인생은 기분 마사지야"라는 대사에서 가져왔습니다.) P.S.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존 윌리엄스의 <카바티나>가 잘 어울리는 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_8d0DJpbBI
사랑해 보지 못한 이들이나 소설 속 이야기로 만족하라고 하세요. 아무도 읽지 못하게 은밀히 밀봉한 서판에 내 진심을 적어 보내는 건 내 방식이 아닙니다. 나는 이 일탈이 즐거워요. 수군대는 사람들을 피해 가면을 쓰는 건 딱 질색입니다.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술피키아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부분, p.19
이 시를 읽을 때는 화자가 굉장히 진취적인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사랑에 저런 확신을 가져볼 수 있는 성향이 ...
꽃빛은 부질없이 바래어 버렸네. 이 몸, 세상을 살아가며 긴 비 내리는 나날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오노노 코마치 「꽃빛은」 p.23
삶이여, 참 오랜 시간을 함께했구나, 화장찬 날도, 먹구름 낀 날도 모두 지나며. 정든 친구와 헤어지는 건 늘 어려운 일이지. 어쩌면 한숨 섞인 눈물이 날지도 몰라. 그러니 소리 없이 살며시 떠나가렴.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안나 레티시아 바볼드 「삶」 부분, p.53
표지가 세 가지 버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림 분위기가 독특해서 서칭을 좀 해보았습니다. 관련 정보도 함께 나누어보아요~ 덕분에 영국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서 소소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에릭 라빌리우스 Eric Ravilious (1903년 7월 22일 런던 출생, 1942년 9월 2일 아이슬란드 해역에서 사망). 영국의 수채화가, 판화가, 디자이너. 회화 외에도 책 삽화와 표지 디자인, 가구, 유리 제품, 직물, 웨지우드 도자기 공장 디자인 등 매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목판화가 중 한 명으로, 목판화 작품에서 대담한 색조 대비와 복잡한 패턴을 인상적으로 활용했습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공식 종군 화가로 활동하며 노르웨이 해역의 모습을 그린 기억에 남는 수채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 텍스트 출처: 옥스퍼드 미술 및 예술가 사전(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이 삼면화의 패널들은 이스트본의 매너 가든을 모델로 테니스 코트를 그렸고, 세 패널을 하나의 연속적인 구도로 구성하여 경기의 진행과 선수들의 동작을 통해 세 부분을 연결했다고 합니다. 라빌리우스의 '테니스'는 아름다운 꿈과 같으며, 온 세상이 하나의 긴 전원 저택 휴양지인 또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 그림입니다.
앗 안그래도 이거 개정판 이전에 그림이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이번 판도 좋지만 이 그림도 참 좋죠. 근데 전 이번 책과 저번 책만 알았는데 또 다른 버젼이 있나요?
그렇군요. 저도 여러 블로그에서 이 삼면화가 표지에 쓰였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요, 지금 보니 원본을 그대로 사용한 건 아닌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답변을 달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아무튼 이 삼면화의 그림이 모티브가 되어 표지로 쓰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관련된 정보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10년 전에 출간된 동명 시집의 세 표지는 말씀하신 라빌리우스의 그림이 사용되었고, 이미지 뱅크에서 사용권을 획득한 그림을 사용했다고 하니 참고하여 주십시오. 이번 신간의 그림에 관해서는 '옮긴이의 말'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발췌하여 보겠습니다. 표지 그림이 궁금한 @모임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그림의 원제목은 토머스 하디의 연작 소네트 「그녀가 그에게(She, to Him)」의 한 구절에서 빌려왔다. 화자는 여성이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이름이 잊힐 것을 알면서도 연인에게 말을 건넨다. “잃은 것은 나의 것이고, 탓할 것은 나의 것이 아님을 기억해요.” 상실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말을 건넨다. 인쇼는 이 구절을 그림의 원제목으로 삼았다. 인쇼의 그림속 두 여성은 황혼 무렵의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장면에서 셔틀콕은 공중 어딘가에 있고, 황혼은 이미 기울었다. 인쇼는 “서로 무관한 수많은 순간들을 한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그 한 순간에 더 보편적이고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림 속 두 여성처럼, 수많은 ‘여성 작가’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들이 있던 자리에 그들을 지탱한 언어가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 옮긴이의 말(6쪽) 부분 발췌
작품, 아름답네요! 한참 바라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내는 원래 그런 법이지." 그렇게 사내들의 시대는 이어졌다. 짓궂음과 부주의, 소란스러움은 모두 참작되고, 내팽개친 의무도, 파괴적인 난동도 너그럽게 덮어 주었다,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는 듯 순순히 내뱉는 이 한마디로ㅡ 사내는 원래 그런 법이니까! 이제 "여자는 원래 그런 법이지." 이 대비를 보라. 떠들썩한 젊음의 자리에 들어선 고요한 모성, 이제 전쟁은 없다. 돌보고 가꾸고 지혜롭게 길러내는 것이 여성의 방식. 평화롭고 결실 있는 노력 속에서, 사랑과 진실 안에서 그녀의 세계는 펼쳐진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100 p115 / 사내는 원래 그런 법이지
위의 시는 샬럿 퍼킨스 길먼의 시입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단편 소설 『노란 벽지』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서 이 시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설 이상으로, 몇 줄의 시를 통해 길먼이 비판하는 바와 투쟁의 의의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길먼의 단편 「누런 벽지」(1892)를 인상적으로 읽은 분을 그믐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임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읽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 단편은 여성문학사뿐만 아니라 공포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입니다. 산후우울증을 앓는 여성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실제로 길먼은 딸을 낳고 우울증에 걸렸고, 당시 정신의학계 최고 전문가인 실라스 위에 미첼에게 엄격한 '안정 요법(rest cure)'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개월 뒤 길먼은 이 요법을 무시하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고 「누런 벽지」가 그 결과물입니다. 길먼은 이 요법 때문에 자신이 정신적으로 무너질 뻔했다고 판단했고, 「누런 벽지」에는 그런 의학계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누런 벽지 - 샬럿 퍼킨스 길먼 단편선에디션F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길먼의 대표작 「누런 벽지」가 수록된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샬럿 퍼킨스 길먼은 지금부터 100년 전 여성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한 활동가이자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 케이트 쇼팽 등과 함께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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