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거북별85님의 대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거스터스 워터스가 좋았다. 정말, 정말, 정말로 좋다. 그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들먹이며 끝나는 방식이 좋다. 그의 목소리가 좋다. 그가 존재론적 고뇌 속의 프리드로우를 했다는 게 좋았다 🦋 “이미 내 이야기는 했잖아. 난 암 진단을 받았고…….” “아니, 네 암 이야기 말고. ‘네’ 이야기. 관심사, 취미, 열정, 기묘한 집착, 기타 등등.” 🦋 “기분은 좀 나아졌어?” “아니.” 아이작이 가슴을 들먹이며 웅얼거렸다. “그게 고통의 특징이지.” 어거스터스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힐끗 돌아보았다. “고통이란 느껴야만 하는 거거든.” 🦋 전 말이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수류탄 같은 거라고요, 엄마. 전 수류탄이고 언젠가 터져 버릴 테니까 사상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고요, 아시겠어요?” - 🦋너 굉장히 뜨겁다.” 나는 여전히 그의 다리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네가 신체 일부가 절단된 사람에 대한 페티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여전히 나에게 키스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웃었다. 🦋 “난 어거스터스 워터스 페티시가 있을 뿐이야 이건 불공평해. 정말이지 빌어먹게 불공평하다고.” 내가 말했다. “세상은 소원을 들어 주는 공장이 아니야.” 🦋 “일 분 일 초가 지날 때마다 난 ‘굴욕’이라는 단어의 진가를 점점 더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난 내가 싫어, 난 내가 싫어, 이게 싫어, 이게 싫어, 내가 혐오스러워, 이게 싫어, 이게 싫어, 이게 싫어, 빌어먹을. 그냥 죽게 해 줘.” 이런 분야의 협약에 따르면 어거스터스 워터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머감각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잠시라도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고, 세상이 그의 유쾌한 영혼을 더 이상 잡아두지 못하는 순간까지 그 기상이 불굴의 독수리처럼 높게 솟아올라야만 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치는 불쌍한 소년. 비명을 지르고, 울고, 그의 목숨을 부지해 주지만 제대로 살 수 있게 해 주지는 않는 감염된 G-튜브로 인해 아픈 소년. 🦋 심지어 암도 사실 나쁜 놈은 아니야. 암은 그저 살고 싶어 하는 거라고.” 🦋 그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이었다. 내가 어거스터스 워터스의 죽음에 대해서 정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어거스터스 워터스라니. 🦋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함께 보낸 추억의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추억하는 기쁨을 빼앗겨 버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 함께 추억을 되살릴 사람이 없으니까. 함께 추억할 사람을 잃는 건 마치 추억 그 자체를 잃는 것 같았다. 우리가 했던 일들이 몇 시간 전에 떠올렸을 때보다 덜 중요하고 비현실적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 거스의 집에는 그와 저 둘 다 굉장히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던 훌륭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고통이 없이 어찌 기쁨을 알 수 있으리오.’는 말이죠.” 나는 거스의 부모님이 팔짱을 끼고 서로를 안은 채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멍청이 같은 경구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어쨌든 장례식이라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 🦋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나도 좋아, 어거스터스. 나도 좋아. :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방이 어제까지 였네요😭😭왠지 완독 후에 올리겠다는 고집때문에 감상 후기를 올리는 것을 놓쳐 죄송하지만 이렇게라도 올립니다😅😅 다음에는 일찍 읽고 올리겠습니다 @김새섬님이 여러번에 걸쳐 좋은 작품이라고 언급해주셔서 꼭 읽어야지 다짐했는데 전 초중반 부분까지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러다 후반 쯤 마지막을 앞둔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의 장면에서 푹 빠져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존엄을 지키고 싶지만 굴욕에 매번 좌절하는 거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는 거의 모두가 겪을 일이라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두 아이가 설레며 찾아갔던 유명작가 피터 반 호테의 모습은 참 한심스럽고 짜증이 났는데요 그 아이들의 다시없는 시간에 찾아나서기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실망스러운 과정 또한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는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작품의 매력을 김새섬님께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수북강녕 책방에서 안톤체홉에 관해 극단의 연출가님과 배우님께 체홉의 단편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작품을 너무 사랑하는 분들께 들으니 혼자 읽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작품의 매력들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빨리 새섬님의 회복을 기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전 참여했는데 @장맥주 님께서 새섬님의 회복 소식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재활 잘하시고 돌아오시길 가랍니다❤️
저도 아직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잔잔한 여운에 머물러 있는데 후기 보니 반갑습니다:) 아픔으로 인해 10대 청소년들이 주고 받는 비관적이지만 '이게 현실인데 어쩌겠어' 하는 듯한 시니컬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주고 받을 수 있는 따뜻한 대사들에 웃고 눈물 흘리고 했습니다ㅜㅜ 저도 원서로 읽어보려구요. 각자의 상실 속에 이들이 주고 받는 말들이 가슴 아프지만 좋습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1)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비밀리에 존엄사를 택하고 실천에 옮겼다면 버젓이 유서를 집에 두고 나오는 행동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집에 없으면 가족이 찾을 테고, 유서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그것을 읽고 경찰을 부르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좀 더 치밀하지 못했던 건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혹시 가족이 자신을 멈춰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건 아닐까요? 유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테면 우편으로 원하는 날짜에 배달되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홀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까지 탑승한 걸 보면 여권 같은 문제도 처리할 수 있고, 금전적인 문제도 처리할 수 있는 분 같은데 종이 유서를 집에 놓아 두었다는 건 아무래도 자기를 멈춰달라는 신호로 저는 읽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죽일 권리가 있듯이, 보란듯이 두고 간 유서를 보고 경찰에 신고할 권리도 가족에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홀로 비행기 타고 스위스까지 갈 수 있는 정도라면 폐섬유증이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높은 고도 비행기 안은 산소 농도가 떨어져서 저산소증에 빠져 위험할 수 있거든요. 만약 심각한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데도 항공사 관련 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행기를 혼자 타고 스위스를 향하는 건 비행기 안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죽음도, 가족이 원하는 아버지도, 둘 다 얻지 못한 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죠. (2)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앞 상황과의 차이는 나이와 질환 종류인 것 같은데요.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장맥주님도 60대 아버지를 80대 아버지로 변경하셨던 이유가 나이를 고려하신 처사겠죠.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었으니까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와 얼마 살지 않은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죠.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의 결정과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이십 대의 결정은 누구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진 않을 거예요. 이건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영역인 것 같고요. 또한 일부러 80대 아버지는 몸이 아프게, 20대 딸은 마음이 아프게 가정하셨는데, 이건 객관과 주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신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이란 게 사실 정확한 선이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우울증의 원인이 취업 실패라면 가족이 도와줘야 할 문제는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아가 취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지, 성급하고 극단적인 죽음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아닐 테니까요 (어쩌면 이 존중은 방임과 무관심으로 읽힐 수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맨 정신이라고 하는 건 술 취한 사람이 정신이 멀쩡하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여요. 신뢰도가 떨어지죠. (3) 저는 두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공통된 요소는 당사자가 내린 결정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그 결정이 정말 확고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가정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이건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20대 딸은 살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즉흥적으로 내린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죽음은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타자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타자의 죽음은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모순이라고 봐요. 자해하는 사람이 폭력을 휘둘러 타자를 다치게 한 사람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논리라고 보고요. 조력자살에 대한 책과 드라마가 제법 많이 나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낭만화시킨 면이 은근히 많다고 봐요.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죽음이라는 말 자체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타자의 경우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도 나의 경우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가 되면 또 다른 판단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어디에나 적용되는 답은 존재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런 질문과 답을 서로 나누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장맥주님의 대화: 작가님, 정말 영광입니다. 그리고 작가님과 말씀 나누게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기쁩니다. (이 방에서 제 밑천이 드러날 거 같아서 약간 떨리기도 하고요. 브라더스 카라마조프 공연장에서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 어버버했습니다. ㅎㅎㅎㅎ) 옆에서 아내도 좋아하네요! ^^
밑천이라뇨. 제가 뭐라고요. 제가 작가님 앞에서 더 그렇죠. 그리고 그날 저는 작가님이 어버버하신 줄도 몰랐을 정도로 더 어버버했답니다^^ 이게 저의 현주소예요 ㅋㅋ 아무튼 새섬님 재수술이 성공적이고 재활도 잘 받고 계신다니 기쁩니다.
히어로님의 대화: (1)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비밀리에 존엄사를 택하고 실천에 옮겼다면 버젓이 유서를 집에 두고 나오는 행동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집에 없으면 가족이 찾을 테고, 유서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그것을 읽고 경찰을 부르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좀 더 치밀하지 못했던 건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혹시 가족이 자신을 멈춰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건 아닐까요? 유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테면 우편으로 원하는 날짜에 배달되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홀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까지 탑승한 걸 보면 여권 같은 문제도 처리할 수 있고, 금전적인 문제도 처리할 수 있는 분 같은데 종이 유서를 집에 놓아 두었다는 건 아무래도 자기를 멈춰달라는 신호로 저는 읽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죽일 권리가 있듯이, 보란듯이 두고 간 유서를 보고 경찰에 신고할 권리도 가족에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홀로 비행기 타고 스위스까지 갈 수 있는 정도라면 폐섬유증이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높은 고도 비행기 안은 산소 농도가 떨어져서 저산소증에 빠져 위험할 수 있거든요. 만약 심각한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데도 항공사 관련 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행기를 혼자 타고 스위스를 향하는 건 비행기 안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죽음도, 가족이 원하는 아버지도, 둘 다 얻지 못한 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죠. (2)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앞 상황과의 차이는 나이와 질환 종류인 것 같은데요.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장맥주님도 60대 아버지를 80대 아버지로 변경하셨던 이유가 나이를 고려하신 처사겠죠.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었으니까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와 얼마 살지 않은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죠.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의 결정과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이십 대의 결정은 누구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진 않을 거예요. 이건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영역인 것 같고요. 또한 일부러 80대 아버지는 몸이 아프게, 20대 딸은 마음이 아프게 가정하셨는데, 이건 객관과 주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신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이란 게 사실 정확한 선이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우울증의 원인이 취업 실패라면 가족이 도와줘야 할 문제는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아가 취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지, 성급하고 극단적인 죽음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아닐 테니까요 (어쩌면 이 존중은 방임과 무관심으로 읽힐 수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맨 정신이라고 하는 건 술 취한 사람이 정신이 멀쩡하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여요. 신뢰도가 떨어지죠. (3) 저는 두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공통된 요소는 당사자가 내린 결정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그 결정이 정말 확고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가정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이건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20대 딸은 살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즉흥적으로 내린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죽음은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타자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타자의 죽음은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모순이라고 봐요. 자해하는 사람이 폭력을 휘둘러 타자를 다치게 한 사람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논리라고 보고요. 조력자살에 대한 책과 드라마가 제법 많이 나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낭만화시킨 면이 은근히 많다고 봐요.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죽음이라는 말 자체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타자의 경우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도 나의 경우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가 되면 또 다른 판단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어디에나 적용되는 답은 존재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런 질문과 답을 서로 나누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히어로 동의합니다. 저의 생각과 제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한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1번 상황에서 주어진 조건을 보고 그 사례 안에서 판단하셨지만, 예를 들어 조력사가 국내 합법이 되어 현실적으로 장거리 비행을 안해도 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실제로 상당히 고통받는 말기 호흡부전이 맞고, 남긴 유서 역시 자기를 잡아주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이 일견 섞여든게 아닌, 정말 진심이라면, 그리고 그런 의사를 유서 하나가 아니라 충분한 기간 동안(자식이 인정하든 안하든 간에) 반복적으로 의사를 밝혀왔던 상태라면, 그때엔 인정해주어야 할까요. 조력자살이 조건부로 가능하다는 의견일지,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은 안된다는 입장일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조영주님의 대화: 3장 마지막 보면서 탄식했습니다. ㅠㅠ 스포라서 말 못함...
4장까지 읽었습니다. 7월 마감해야 할 단편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 슬프다 ㅠㅠ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상황 (나이와 죽을 려는 이유 등)에 관계 없이 제 가족이면 무조건 신고합니다. 순전히 제가 가족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1의 경우 신고하지 않고, 2의 경우는 신고합니다. 나이가 많고 회복될 가능성 없이 고통만 있는 병이라면 돌아가시는 것이 자신이나 다른 분들에게도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고,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어떤 판단을 했건 그 판단이 올바른 판단이 아니거나, 아직 겪지 못한 미래에서 보면 취업 실패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닐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두 경우에 판단이 다른 이유는 나이와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저는 두 경우 다 신고하겠습니다. 가족이 극심한 고통에 있는데 도울 수 없는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엄청난 고통임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두 경우에서 모두 언급된,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있다‘ 는 말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극한 고통속에 있는 사람이 과연 ‘맨정신‘ 인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맨정신의 성인‘이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는 모두 ’죽을 권리’가 있는지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역치는 모두 주관적인 것인데 그런 논리라면 남들이 보기에 사소해도 본인에게 크게 느껴지는 고통이라면 본인은 죽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과연 인간에게, 본인의 목숨을 본인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저는 이런 생각이 인간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80대의 아버지와 20대의 자녀에게 다른 논리를 적용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편지를 남기는 마음 한 구석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요. 가족으로서 제가 편하고자하는 이기적인 마음인지 모르지만, 저는 신고해서 두 경우 다 아버지와 딸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육체적인 고통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본인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가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불치병인 시어머니 병간호를 오래 했고, 최근에 병환으로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정말 고통스럽지만 죽음도 결국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위의 경우처럼 본인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면, 저에게 그것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엄청 고민하다가 적어봅니다. (1) 신고하지 않겠습니다. 이 상황 속의 아버지가 이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족들도 그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80대라는 나이도 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2)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20대 우울증, 고통의 나날에서 아직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맑은 날을 경험케 해주고 싶은 마음에 못 보내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딸의 입장보다는 제가 겪을 고통의 무게를 피하기 위한 발악이겠다 싶기도 하네요. (3) '선택이 다른 이유, 왜일까'를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져봐도 명확히 답은 안 나옵니다. 죽음을 선택하려는 나이,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의 성격(자녀가 소유가 되는 것 등), 육체적 질병인지 정신적 질병인지가 선택에 영향을 준 것 같네요. 상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 기저를 보면 결국 자신을 위한 것들이 많기에 위 질문에 답하면서도 결국 그 존재가 나와 어떤 관계였는가도 생각하게 되고, 더 젊은 나이일수록, 그리고 제가 의학적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정신적 질병이라고 하면 조금 더 붙잡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이 오후에 훅 들어오니 고민하다가 시간이 훅 가네요^^;;ㅎㅎ
HL7707님의 대화: @히어로 동의합니다. 저의 생각과 제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한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1번 상황에서 주어진 조건을 보고 그 사례 안에서 판단하셨지만, 예를 들어 조력사가 국내 합법이 되어 현실적으로 장거리 비행을 안해도 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실제로 상당히 고통받는 말기 호흡부전이 맞고, 남긴 유서 역시 자기를 잡아주기를 바라는 양가감정이 일견 섞여든게 아닌, 정말 진심이라면, 그리고 그런 의사를 유서 하나가 아니라 충분한 기간 동안(자식이 인정하든 안하든 간에) 반복적으로 의사를 밝혀왔던 상태라면, 그때엔 인정해주어야 할까요. 조력자살이 조건부로 가능하다는 의견일지,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은 안된다는 입장일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조건부 가능에 한 표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그 조건들을 설정하는 게 관건이겠네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치료 거부는 합법이고, 점점 더 조력사에 대해서도 개방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가 문제겠지만요.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남은 삶의 질을 생각했을 때, (1)과 (2)의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1)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고통을 현실적으로 경감해 드릴 방법이 없다면, 그 고통을 계속 견디시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 경찰에 신고합니다. 우울증은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호전될 가능성이 있고, 인생의 목적이나 이유가 ‘취업’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맥주 작가님은 (1)과 (2) 모두 가족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질문하셨는데, 저는 (1)은 폐섬유증을 앓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2)는 딸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장까지 읽었는데,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암과 책의 오딧세이』를 통해 『그믐』을 알게 되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새섬 작가님께서 무리하지 않으시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회복해 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장맥주 작가님 응원합니다!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7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모임 시작 전에 읽기 시작해야지 했는데, 결국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네요. 1) 저는 80대의 아버지라도 우선 신고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아버지의 그 선택에 대해 한 번은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아버지 뜻이 확고하다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대화 끝에 그래도 가시겠다면 제가 동행해드려야죠. 혼자 가시게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이 외롭지 않았으면 해요. 2) 딸이라면 바로 신고할 것 같아요. 우울증은 사람의 판단을 많이 뒤흔들지요. 지금은 절망뿐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그 가능성이 있다면 부모로서 어떻게든 붙잡을 것 같아요. 3) 두 경우 저의 선택은 같습니다. 신고를 할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와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의 진심을 알기 위해, 딸은 아직 생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에 그 아이가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절박한 마음으로 지키고 싶어서 신고할 것 같아요.
세실님의 대화: 저는 두 경우 다 신고하겠습니다. 가족이 극심한 고통에 있는데 도울 수 없는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엄청난 고통임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두 경우에서 모두 언급된,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있다‘ 는 말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극한 고통속에 있는 사람이 과연 ‘맨정신‘ 인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맨정신의 성인‘이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는 모두 ’죽을 권리’가 있는지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역치는 모두 주관적인 것인데 그런 논리라면 남들이 보기에 사소해도 본인에게 크게 느껴지는 고통이라면 본인은 죽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과연 인간에게, 본인의 목숨을 본인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는 걸까요?저는 이런 생각이 인간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80대의 아버지와 20대의 자녀에게 다른 논리를 적용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편지를 남기는 마음 한 구석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요. 가족으로서 제가 편하고자하는 이기적인 마음인지 모르지만, 저는 신고해서 두 경우 다 아버지와 딸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육체적인 고통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본인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가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불치병인 시어머니 병간호를 오래 했고, 최근에 병환으로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정말 고통스럽지만 죽음도 결국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위의 경우처럼 본인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면, 저에게 그것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남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실 님의 시어머니의 오랜 병간호와 최근 친정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일로 상심이 크실텐데 천천히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 뒤에 한동안 무척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픈 아빠와 병간호하는 엄마가 가장 힘드시니 제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ㅜㅜ 2)번의 딸은 혹여라도 경험부족으로 삶의 우선가치 설정에 부족함있지 않을까 싶은데 1)번 아버지는 앞에 제가 언급했지만 '잠수이별'도 아니고 가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으신거 같습니다 ㅜㅜ
joystory님의 대화: 저도 아직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잔잔한 여운에 머물러 있는데 후기 보니 반갑습니다:) 아픔으로 인해 10대 청소년들이 주고 받는 비관적이지만 '이게 현실인데 어쩌겠어' 하는 듯한 시니컬하지만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주고 받을 수 있는 따뜻한 대사들에 웃고 눈물 흘리고 했습니다ㅜㅜ 저도 원서로 읽어보려구요. 각자의 상실 속에 이들이 주고 받는 말들이 가슴 아프지만 좋습니다♡
와!! 감사합니다~~~그리고 @joystory 님의 원서읽기 응원합니다!!^^ 전 아직은 한글책이라도 꾸준히 읽기 습관을 들이고자 합니다~ 근래에 한소범 문학기자님의 <독자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는데 '한국문학 독자라는 특권'에서 세계 속에서 점점 위상이 높아져가는 한국문학을 한글이라는 한국 작품의 모국어로 누구보다 먼저 그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한국인이어서 가지는 특권이라는 내용이었는데 뿌듯하고 좋았습니다^^ 각자의 상실 속에서도 서로 너무 예쁜 헤이즐과 어거스트였습니다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 우리는 향수에 젖어 시타람 할아버지 같은 노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패턴은 명확하다. 사람들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버릴 기회와 자원을 손에 넣는 즉시 떠나 버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드디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7월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일정표를 올립니다만, 꼭 아래 일정대로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읽으며 각자 감상이나 의견, 질문을 올리고, 다른 분의 글에 자기 생각을 댓글로 다는 식으로 운영합니다. 저는 7월 1일, 8일, 15일, 22일에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질문을 하나씩 마련해서 올릴게요. 저도 정답을 모르는 질문이니 자유롭게 의견 나눠주세요! 7월 1일~7일: 서문, 1장 독립적인 삶, 2장 무너짐 7월 8일~14일: 3장 의존, 4장 도움 7월 15일~21일: 5장 더 나은 삶, 6장 내려놓기 7월 22일~7월 29일: 7장 어려운 대화, 8장 용기, 에필로그
생각1. 아버지와 딸 모두 경찰에 신고함 생각2. 두 사람 모두 현재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로 미래에 대해 객관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에 어려운 상태임 또한 가족과의 관계가 좋았다면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안했을 거라 생각됨 생각3. 두 사람에게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함
우리는 이반 일리치가 만났던 19세기의 원시적인 의사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었다. 아니 실은 더 나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환자에게 새로운 형태의 육체적 고문을 가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누가 더 원시적인 의사인지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일 아닌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현대화는 사람들에게─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더 많은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제공했다. 거기에는 다른 세대에게 덜 묶여 살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노인들에 대한 존중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에는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숭배가 삶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온다는 현실 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탱구밤이엄마님의 대화: 최근이라면 최근일인데, 가족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그 때 저희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하면 가족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였던 것 같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우리의 욕심을 위해 생명을 연명하지는 말자고 논의했었죠. 그 과정이 사실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래도 우리의 욕심보다 가족의 존엄이랄까.. (그 당시엔 존엄이라고 까지 거창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요) 그 부분에 중점을 두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통감합니다. 분명 당신께서 선택하셨음에도 어쨌거나 항암제의 고통과 진통제의 부작용이 겹치는 과정에서 내린 그 결정을 정말 후회하지는 않으실까? 가족에게 짐이 될까봐 선택하신 것은 아닐까? 가시기 며칠 전에 밤 중에 다른 곳에 가야겠다고 하셨던 것은 진심이셨을까 섬망이었을까 아직도 자문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임지기 @장맥주 님의 질문에 답하기는 정말 어렵네요. 고약한 질문이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고 원하는 것도 계속 변화해서 아무리 일반화하려 해도 무엇이 정말 타인을 위하는 것인지는 알기 거의 불가능해 보여서 일거에요. 그래도 선택이 강요된다면 결국 덜 후회가 남는 쪽으로 하겠지만 왠지 옳은 선택이라기보다는 남겨진 삶을 살기 위한 합리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들의 고견 잘 살펴 보겠습니다.
내일부터님의 대화: 모임 시작 전에 읽기 시작해야지 했는데, 결국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네요. 1) 저는 80대의 아버지라도 우선 신고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에요. 아버지의 그 선택에 대해 한 번은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아버지 뜻이 확고하다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대화 끝에 그래도 가시겠다면 제가 동행해드려야죠. 혼자 가시게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이 외롭지 않았으면 해요. 2) 딸이라면 바로 신고할 것 같아요. 우울증은 사람의 판단을 많이 뒤흔들지요. 지금은 절망뿐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그 가능성이 있다면 부모로서 어떻게든 붙잡을 것 같아요. 3) 두 경우 저의 선택은 같습니다. 신고를 할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와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의 진심을 알기 위해, 딸은 아직 생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에 그 아이가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절박한 마음으로 지키고 싶어서 신고할 것 같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80대 아버지의 경우는 시간을 들여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나눠보고 설득하고 아버지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받아들이고 서로 이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또 스위스까지 자식이 동행해서 아버지가 영면에 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해요. 사람 목숨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니라지만 본인의 고통이 엄청나게 크고 치료법도 없는데 자식들 위해서 버텨 달라고 하는 게 잔인한 일인 것 같거든요. 예전에 안락사는 아니고 연명 치료 거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연명 치료를 선택해도 선택하지 않아도 결국은 가족들에게 후회와 고통이 남는 것 같더라고요. 연명 치료를 선택하면 환자가 너무 괴로워해서, 선택하지 않으면 환자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한 것 아닐까, 내가 이기적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따라서 그 고통과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 관련 절차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가 중요한 듯 보였어요. 딸의 경우는 말씀대로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고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설득할 것 같아요. 단순히 우울해하는 게 아니라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거라면 치료해 보자고 할 것 같고요. 우울증 진단을 확실히 받았다하더라도 80대 아버지와는 다른 경우라고 생각해요. 회복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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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부키출판사/도서증정이벤트]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다!《프리라이팅》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웰다잉 오디세이로 계속 이어집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천천히 읽어요
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안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 책 리뷰 <지금, 그리고 그때>안노란책 리뷰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 책 리뷰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 앤 드 마르켄안노란 책 리뷰 <메데이아> 에우리페데스안노란 책 리뷰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하임 마이어호프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3.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
아티초크의 멋진 책!
[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
‘인생 록 음악’ 추천!
[그믐밤] 49. 국제 암석의 날 기념, ‘인생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
동구권 SF 함께 읽어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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