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님의 대화: 모임지기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으니, 책 밖에 있는 이야기로 질문을 만들어봤어요.
올해 2월, 한 60대 남성이 스위스로 조력 자살을 받으러 가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유서를 쓰고 나왔는데 그걸 본 가족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세우고 기내로 들어와 남성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남성을 설득해서 가족에게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성은 경찰에게 “내게 죽을 권리가 있지 않나”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폐섬유증을 앓고 있었는데, 생존률이 매우 낮고 집중 치료를 받아도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가 되는 병이라고 하네요. 병이 악화되면 가만히 있어도 산소가 부족해서 극심하게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제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1) 이런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80대 아버지가 폐섬유증에 걸렸는데 유서를 쓰고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비행기를 세울 수 있고, 경찰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2)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볼게요. 여러분의 20대 딸이 거듭된 취업 실패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 딸이 유서를 쓰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딸은 유서에 ‘나는 맨 정신이며, 성인이고, 죽을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딸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3) 위의 두 상황에서 여러분의 선택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두 상황에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르다면 왜 다릅니까?
1> 오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고 기사를 다시 읽어보니, 스위스 조력사망을 하러 가려면 여러가지 절차가 필요했을텐데, 그 절차를 혼자 다 마치고 가시는 길이라면 신고보다는 빨리 따라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알아봤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보통은 고통스럽게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떠나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평온하게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서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아무런 의논도 없이 저렇게 가시는 것이면 잘 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뭔가 나에게 관심을 달라고 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아버지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아버지라면, 아마 신고하지 않을 것 같네요. 확고한 결심에, 고통스러운 날이 기다리고 있으면 자녀들을 위해 버티시라고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2> 신고하겠습니다. 이것도 제 딸이라면 신고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이라서요.
그런데, 언젠가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는 - 벨기에에서는 정신적 고통에 의한 조력사망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미성년자도 부모동의가 있으면 가능하고요. - 자살사고와 시도가 빈번했던 미성년자 자녀의 조력사망을 계속 반대했던 부모가 결국은 세상을 떠난 자녀를 보내면서, 차라리 동의했으면 마지막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게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은 결과론적인 생각이겠지만 말이죠.
우울증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역시 상황에 따라 다르겠다고 밖에 할 수 없겠지요..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오래 간다고 이야기 하면서, 몸의 고통은 불가능하지만 마음의 고통은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마음은 신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벨기에의 너무나 넓은 범의의 조력사망 합법화와 작년에 기사화된 [생각을 위한 생각] 을 쓰신 대니얼 카너만의 스위스 조력사망을 생각하면 안락사,조력사망, 존엄사, 선택사…..여러가지로 고려하고 논의되어야 할 지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