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블루다우 과장은 나중에 내게 어떤 의사든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질병의 폐해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울 수 있게 하고, 세상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71,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그러던 중 낙상 정도가 아니라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할머니는 집 앞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후진시켜 도로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인도를 넘어 남의 집 앞마당에 있는 관목에 부딪혀서야 겨우 멈췄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가속 페달을 밞은 것 아닐까 추측했다.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늘 자신이 운전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사고가 할머니의 나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7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노령은 진단명이 아니다. 사망진단서에는 항상 호흡부전, 심장마비 등의 사인이 들어가게 마련이지만 사실은 한 가지 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게 아니다. 의학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여기저기 보수하고 기워 가며 유지를 하다가 신체 기능이 종합적으로 무너지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혈압을 낮추고, 골다공증을 완화하고, 이 병을 치료하고, 저 병을 주시하고, 고장 난 관절, 판막, 피스톤 등을 교체하면서 중앙 관제 센터가 서서히 쇠퇴해 가는 것을 지켜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궤적은 길고도 느린 과정이 됐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속의 마지막 예비 장치마저 모두 고장 날 때까지 어떤 의학적 도움을 받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며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 수도 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대장암, 고혈압, 무릎 관절염 등 특정 질환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과 무릎 관절염에 더해 각종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를테면 자신이 영위해 온 삶의 방식을 모두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경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라앉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적의식이었다. 실버스톤 박사는 그것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자신을 떠받쳐 줬던 목적의식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식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 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 실버스톤 박사에게 삶을 지탱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타인-가장 소중한 배우자 벨라를 포함하여-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는 것, 결국 그것이 본인의 삶을 돕고 있었네요.
독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온다는 현실 말이다...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계속 말다툼을 해요. 온갖 것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곤 하지요.” 박사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서로를 용서하는 것도 참 잘합니다.” 그는 이 책임감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아내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나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아주 기뻐요.” 그는 이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면밀한 주의를 기울인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정직해지지 못하면 아내에게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전자책의 문제인지 스타킹을 스토킹으로 바꾸는 등 오타는 있지만 한글판 번역이 맘에 드는 건 꽤 번역이 부드러워요. For many, such talk, however carefully framed, raises the specter of a society readying itself to sacrifice its sick and aged.를 '그리고 아무리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거론한다 해도 어떤 이들은 늙고 병든 구성원들을 희생시키는 고려장식 공조에의 망령을 불러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로 번역하는 등 영어에는 Goryeojang, 또는 Goryeo burial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원래 없는 외래어 단어인데 한글로 이렇게 번역하니 의미가 딱 전달이 되네요. 생각해보니 인도처럼 우리나라나 동양 문화권에 있는 '효' 문화 뒷편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려장'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매 챕터마다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들, 새들 등 챕터의 시작에 있는 그림들도, 그리고 들어갈 때 짧은 말들도 원서에는 없네요. 추천사들도 마음에 듭니다.
주류 의사들이 노인병학에 대해 관심을 꺼 버립니다. 속된 말로 늙은이들, 그러니까 이 삐걱거리는 고물 차를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고물 차 같은 이 노인들은 귀가 잘 안 들려요. 눈도 어둡고요. 기억력이 좀 안 좋은 경우도 있지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그리고 저는 이 책이 1994년 나올 당시에는 못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서야 발견하고 있는데요.. 통계 등이야 변화가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작가의 할아버지 당시에도 인도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는데 12년 후인 지금은 어떨지.. 인도 또한 우리나라처럼 많이 변했겠죠? 최근 동향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에밀리 디킨슨 시를 엄청 좋아하는데.. 에밀리 디킨슨이 과연 말년에 그렇게 정신적으로 빛나는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듯 고립되어 일생을 부모님 집에서 보내서 행복했을까요? 제가 좋아하던 그녀의 시들도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작가는 에밀리 디킨슨과 시타람 가완디를 얘기하며 '분명 다른 점이 있겠지만 모두 노인을 돌보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혜택을 봤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다'고 했는데, 저희가 '죽은 다음'이나 '죽음을 인터뷰하다' 등 동서양에서 모두 그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주로 혜택은 아들 쪽이 보지만 그 시스템을 제공하는 주 돌봄은 딸 또는 며느리가 제공하는 점이 불편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이란 말이 껄끄럽더라구요.. '나이 반올림age heaping'이 재미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우리나라도 만 나이로 변화하면서 저는 안그래도 외국과 한국 사이를 오가며 헷갈렸던 제 나이를 다 만으로 통일한 게 좋았기도 하지만 한 살이라도 적게 먹은 것 같아서 기뻤던 게 생각나네요. ^^;; 그리고 시타람 할아버지는 꽤 유능하고 자산이 있던 분 같으셨는데.. 그리고 노후에 경제력을 유지하고 '은퇴'를 할 수 있는 앨리스 할머니가 독립과 자유를 고집했듯이 과연 이런 가족의 태도의 차이 등이 모든 경제사회적 계급 사이에서 비슷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고려장이라는 게 고려 사람들이 파렴치해서 생긴 게 아니고 그럴 만큼 절박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듯이..
뒤쪽에 나오지만 셸리 씨의 경우는 왜 요새 핵가족화 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 모시는 걸 힘들어하잖아요. 저도 지금 상황에서 할 일이 태산인데, 부모님 중 누구라도 돌보아야 할 +1의 일이 생기는 것에 대한 공포가 커서, 가족들에게 누군가 돌봐야 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당번'제라고 미리 얘기해 뒀습니다. 모두가 일하고 공부하고 바쁘니, 다같이 나눠야 한다고요. 생각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제 인생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남의 인생까지 망치고 싶어지는 나쁜 마음이 생길까 봐 두려워 미리 밑밥을 까는 것이겠죠;;;
맞습니다. 아주 잘 하셨어요. 실은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 헌신적이다 못해 벼라별 것 까지 다 해주는 어머님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그렇게까지 홀로 다 떠맡다 병난다고.. 근데 또 제 말은 씨도 안 먹혀요;; 그래서 적어도 저희 집에선 가사 등 당번제나 적어도 자기가 책임 져야하는 (자기 속옷 애벌빨래, 자기 방 정리 등)것과 잘 하는 일은 자기가 하는 (요리 바느질은 남편이, 설거지와 음쓰 빨래 등은 제가) 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이게 비단 아이들 육아나 가사가 아니라 이제 나이 들면 들 수록 부모님들을 향한 돌봄으로 돌아가겠죠..
평소에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서로 돕거나 역할을 나누면 많이 도움이 되더라구요. 아이들이 크면서 점점 도와줄 수 있는 일도 늘어나고 든든해지는 면도 있어요.
부모님들이 건강하게 잘 계신 게 감사하죠. 2년 전에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아프셨을 때 모든 일상이 마비될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런 상황을 잘 지나고 나니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걸 서로가 배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역시 관련 내용이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자동 노쇠 방지 장치를 삽입한 것도 아니다. 그저 처방약들을 더 단순하게 조절하고, 관절염을 관리하기 위해 세심히 지켜봤으며, 반드시 발톱을 손질하게끔 하고, 매끼 식사를 잘 챙기도록 했다. 또한 환자에게 고립이 의심되는 징후는 없는지 살피고,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환자의 집이 안전한지 확인하도록 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p.76~77,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발톱 손질이 이렇게 중요하다니.. 발톱 손질에 신경을 써야겠어요.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78,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라앉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적의식이었다. 실버스톤 박사는 그것이 의사로 일하는 동안 자신을 떠받쳐 줬던 목적의식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식으로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 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8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계속 말다툼을 해요. 온갖 것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곤 하지요.” 박사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서로를 용서하는 것도 참 잘합니다.” 그는 이 책임감이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폭이 좁아짐에 따라, 아내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84,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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