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윌슨은 한 동료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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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story님의 문장 수집: "윌슨은 한 동료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본성을 꿰뚫은 문장 같아서 뇌리에 박힙니다. '나'는 자율성을 원하고, '나'인 주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 정작 그러다보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마음에 아픔을 주는 상황이 되는 거네요. 한국에 이런 상황을 그나마 좀 더 괜찮게 할 수 있는 제도, 서비스가 도입되고 보편화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관련해서 잘 몰라서 혹시 이미 도입되고 있거나 개선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려요.
그녀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셸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방식은 생각하기 힘든 듯했다. 아버지에게는 누군가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안전하지 않았다. 자기가 정말로 아버지를 거기 내버려 뒀어야 한다는 말인가? 바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그래서 노인들을 그냥 안전하게만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카슨을 비롯해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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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의지로 보스턴의 한 요양원에 입주한 여든아홉 살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보통 자녀들이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본인이 자처한 사례였다. 할머니는 울혈심부전과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최근 여러 번 넘어진 후 플로리다 주 델레이 비치에 있는 콘도미니엄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넘어졌어요. 그래서 딸한테 ‘이제 혼자 집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지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121쪽,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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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love52님의 대화: 요양원의 합리적인 운영과 돌봄 시스템에는 그 사람의 자유까지 돌볼 수는 없는 것인지.. 절망스럽고 무자비한 시스템들~~ 저자의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돌보았던 시대로 돌아가기에는 가족들의 현실 생활은 분주하고 과부하되어 있어 기대하기 어렵고요.. 저는 좀 더 인간적인 요양원 생활을 위해 경제 활동을 최대한 놓으면 안 될 것 같고, 국가는 퇴직 정년은 필수적으로 늘려주시길요~~!!
이번에 “어떻게 죽을것인가”를 통해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국의 노인 돌봄 시스템을 알게 되었는데요, 한국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는데 어떻게 알아봐야할지 모르겠네요. 6년전에 요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시할머님이 떠오르는데,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삶의 마지막 장소입니다. ㅠㅠ
joystory님의 문장 수집: "그래서 노인들을 그냥 안전하게만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카슨을 비롯해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말 그렇네요. 안전에만 초점을 맞추면 기계처럼 효율성에만 시스템이 맞춰지기 쉬운데,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면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겠네요. 그에 수반되는 고민과 애씀, 수고로움도 함께요.
SooHey님의 문장 수집: "나는 자기 의지로 보스턴의 한 요양원에 입주한 여든아홉 살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보통 자녀들이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본인이 자처한 사례였다. 할머니는 울혈심부전과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최근 여러 번 넘어진 후 플로리다 주 델레이 비치에 있는 콘도미니엄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넘어졌어요. 그래서 딸한테 ‘이제 혼자 집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지요.”"
(4) 남편은 저보다 나이가 꽤 많고 제 아이는 아시다시피 발달장애가 있어 제가 그들을 보살피면 보살폈지 보살핌을 받을 입장은 결코 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들을 최대한 잘 보살피고 가급적 스스로 신변처리를 할 수 있을 때 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그래서 영양제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ㅎ). 그래도 언젠가는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올 텐데, 그렇게 되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겠지만 해리 트루먼 할아버지처럼 살다 죽고 싶네요. 외할머니와 시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셔서 그 분위기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임종 전에는 간절히 집에 가고 싶어하셨어요. 저는 그게 어떤 느낌일지 알 것 같았습니다. ㅠㅠ 물론 신체적 고통 앞에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유지될 지 모르겠습니다. ㅠㅠㅠㅠ (5) 정신이 온전하다는 전제 하에, 수집한 문장의 내용처럼 낙상이 반복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 동네에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때때로 깁스를 하고 계시거나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합니다. 어쩌다 그러셨는지 여쭤보면 백이면 백 넘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넘어짐이 반복되면 결국 오래지 않아 요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요.. 제가 살고 있는 집 바로 뒷집도 그렇게 홀로 사시던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시고 난 후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요양원에서는 재활 보조에 그닥 신경을 안 써줘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계속 누워만 지내시다가 몸이 쇠약해져서 돌아가시더라고요.. 못 걷게 되면 거의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ㅠㅠ
이카루스11님의 대화: 1.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죽음 이전 3일까지 제 발로 스스로 걷기입니다. 제 마지막 3일 동안 제 주변을 정리하고, 제 삶의 흔적을 정돈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확률은 극히 낫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은 근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하이킹과 걷기를 통해 골격근량 수치와 체지방 수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뇌의 손실은 운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발생한다면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의 길을 많이 참조하고자 합니다. 2. 제 발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카루스11 님과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4) 내 몸을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최대한 지금보다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젊었을 때도 다이어트라는 걸 크게 시도해본 적도 성공한 적도 없어요. 지금은 오히려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무조건 굶어서 몸무게를 줄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근육량은 키우고 불필요한 지방을 빼야겠어요. 예전에는 걷기만 했는데 요즘은 달리기를 조금씩 하고 있어요.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홀로 설 수 없게 되면 요양원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곡기를 끊는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5) 혼자 설 수 없다는 것. 말 그대로 내 힘으로 일어서서 걷는 게 너무 힘들어지거나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말합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지면 타인의 도움 없이 살기는 힘들죠.
borumis님의 대화: 그쵸.. 돈이 많아도 실버타운 등도 입주 가능 요건들이 있대서..호스피스는 수요에 비해 제한된 공급 문제로 어느 정도 운과 타이밍이 작용할 것 같아 능력 밖이긴 하네요.. 저는 일단 장기기증은 아직 성한 건 될 수 있는 한 다 떼어가게 하긴 했어요.. 치매가 오래 되었고 누우신 어르신들을 보면 실제 거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시지만 치매의 일부 측면인지 동행된 우울증이신지 전혀 먹거나 일어날 기운이 없으신 분들도 봤는데요.. 단지 물리적 생활적 거동 능력 뿐 아니라 이런 정신적 건강도 참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정말 공감합니다. 타 병원들도 그렇지만 호스피스는 아무리 대기를 걸어놓고 해도 마침 자리가 있는지도 중요하더라고요. 벌써 장기기증 서약을 하셨다니 대단하세요. 제가 놓친 정신적 건강을 언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나이가 들기 전에도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이다.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은 네 손 안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해낼 일이 없다." 젊은이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뒤로 미룬다. 이를테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술과 자원을 얻는 데 몇 년이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155,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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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726님의 대화: (4) 어렸을때부터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사람보다 크게 안고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대책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디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짜증 내지 않고 매번 대답해주고, 키 큰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려 걷게 도와줄 수 있는건 로봇만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돈을 열심히 벌어야 겠군요. 로봇 장만하려면 ㅎㅎ 요양원에는 정말 들어가고싶지 않습니다. (5)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의 기준은 문자 그대로 혼자서 서고 걷는게 불가능하다는 거 아닐까요? 이런 일이 생겼을때 (4)에서 말한 로봇이 상용화 되었기를… 이건 대책이 아니라 망상인가요? ㅠㅠ
저도 빨리 그런 로봇이 개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사 로봇도요...ㅡㅡㅋ
다솜726님의 대화: (4) 어렸을때부터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사람보다 크게 안고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구체적인 대책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디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에게 짜증 내지 않고 매번 대답해주고, 키 큰 나를 번쩍 번쩍 들어올려 걷게 도와줄 수 있는건 로봇만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돈을 열심히 벌어야 겠군요. 로봇 장만하려면 ㅎㅎ 요양원에는 정말 들어가고싶지 않습니다. (5)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의 기준은 문자 그대로 혼자서 서고 걷는게 불가능하다는 거 아닐까요? 이런 일이 생겼을때 (4)에서 말한 로봇이 상용화 되었기를… 이건 대책이 아니라 망상인가요? ㅠㅠ
로봇의 상용화!! 생각지 못했던 답입니다 생각해보면 거동이 불편할 때 죽음을 빨리 당기고 싶은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는 절망감 때문인데요 물론 견딜수 없이 아프기도 하겠지만은요~~ 로봇이 상용화되어서 주변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은 요즘 챗GPT를 보며 감탄하는 중이거든요 불과 1~3년 전만 해도 이정도의 수행능력과 파급력을 지닌 AI가 대중화될거라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어쩌면 로봇의 상용화도 빨리 오지 않을까요??
joystory님의 대화: 집, 요양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거동을 못하시게 되어 7년 동안 요양원에 계셨는데요, 치매증상은 없으셨으나 정신이 괜찮았기에 할머니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옥같았을지 생각하니 눈물 납니다. 시골에서 바삐 움직이는 분이셨고 아파트도 답답하다고 오래 못 견디시고 금새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가곤 하셨었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감금되어 있는 느낌이 늙었다는 죄로 느껴질만큼 고통스러움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네요ㅜㅜ
우리 주변에 아니 옛날부터 마지막 순간이 왠만한 귀향보다 힘들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자꾸 외면했던거 같습니다ㅜㅜ 저도 죽음에 관해서는 항상 남의 일인양 자꾸 피하고 싶어지는데 김새섬대표님 아니었으면 지금도 밀린 숙제 계속 뒤로 미루듯 생각도 하지 않았을거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결혼과 자녀 양육도 왠만한 고3수험시절 보다 힘들지 않았나요??? 수천년동안 이어져오던 일들이라 죽음 포함 이런 일들을 다들 그냥 다 지나가는 일이다는 식으로 그때그때 해결하는건지 새삼 신기하기도 합니다^^;;
꽃의요정님의 대화: 제가 최근 몇 년간 제일 많이 인용하는 말인 거 같아요. 노화는 대학살이다;;; 어쩔 땐 '나이 먹었으니 겸손해지려무나'란 자연의 계시인 거 같기도 합니다.
ㅎㅎ 노화는 대학살이다~~훅!! 꽂히고 공감되는 말입니다^^
joystory님의 대화: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요양병원에 계시던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집에 가고 싶다고 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의사를 존중해서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해주는 장면이 가슴 아프지만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할머니가 임종을 "집"에서 하실수 있도록 한 것 자체가 독립성, 자율성을 인정해드린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장면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실제로는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저도 집에서 가족들과 맞이하는 평화로운 죽음이라고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지난번 <죽은 다음>에서 병원 외의 죽음을 맞을경우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얻기 위해 경찰서든 다니며 차분한 장례식을 치르기 힘들어진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서이음님의 대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오는 뻔한 대사로만 여겼는데요.. 오늘 새벽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희 집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 가족이 있는데요,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새끼 하나가 며칠 전부터 비실거리더니 어제 저녁에 대문 앞에 쭈그리고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다가가면 날쌔게 도망가는데 기운이 없어 도망도 못 가는 걸 보고 집으로 데려왔어요. 면봉에 설탕물도 찍어 먹여보고 고양이 분유도 사다가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고 해봤는데, 먹지도 못하고 축 늘어진 게 얼마 안 남았다 싶었어요. 저녁 늦은 시간이고 전에도 두어 번 그런 상태의 길냥이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손도 못 쓰고 하늘나라 보낸 경험이 있어서, 당장 병원 데려가진 않고 상자에 넣어 천 덮어주고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 먹이기를 시도했어요. 밤이 늦어가고 새끼냥이는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하더라고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떡껄떡하는 모습을 쓰다듬으며 한참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같이 있던 저희 아이가 "엄마, 그냥 이렇게 두고 볼 거야?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딱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어휴, 새벽 두 시에 결국 24시 동물병원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결국은 병원에서도 사망이 임박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처치대 위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 쓰다듬으며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안내문을 주더군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고,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이 연명치료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 그저 지켜만 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생명체가 숨이 멎기까지도 오랫동안 고통 받는데, 사람이 죽을 때는 어떨까요. 사랑하는 가족이 그런 상황이라면 의료진을 붙들고 "뭐라도 좀 해주세요"라고 매달리게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존엄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죽음은 자유의지나 선택과는 별개의 또다른 영역의 문제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무릇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욕구가 있잖아요.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의 목숨에 대해서도 '생명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성을 띤 명제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 살리기 위해 당장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아닐까요.. 또 하나, 반려동물 장례식장 팸플릿을 보면서 역시 장례라는 의식은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축 늘어진 새끼냥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갈 곳이 쓰레기 봉투가 아니라 아늑하게 꾸며진 납골당이라면 내 마음이 조금 덜 미안하고 덜 괴로울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죽음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는 대사가 전과는 달리 무척 공감되고 깊이 와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과거와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그것이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그처럼 어려운 게 아닐까요...
@서이음 님의 글에 생각이 깊어지네요 작은 냥이도 하늘에서는 편안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냥이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신 것도 대단하시구요 곁에 있는 사람도 무척 괴롭거든요 ㅜㅜ 저도 장례식은 남은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존엄사를 맞이하고 싶다 죽음을 앞두고는 곡기를 끊더라도 주변분들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서이음 님 글을 읽으니 그 또한 나의 의지로 가능할 수 있을까 싶네요 문득 든 생각이 일제강점기 때 당연히 친일파나 자기 동포를 배신하는 행위를 모두가 원치 않았을테고 다짐하신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일본 순사의 잔혹한 고문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죽음을 맞이하면서 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지막에 주변을 힘들게 하지않는 인간다운 존엄을 지키는 죽음을 꿈꾸는데 일본순사처럼 잔혹한 고문과 같은 죽음의 고통을 계속 시달린다면 그 앞에서 언제까지 담담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 내 태도는 나의 의지대로 가능할까 문득 의문이 드네요~~~~^^;;
거북별85님의 대화: 로봇의 상용화!! 생각지 못했던 답입니다 생각해보면 거동이 불편할 때 죽음을 빨리 당기고 싶은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라는 절망감 때문인데요 물론 견딜수 없이 아프기도 하겠지만은요~~ 로봇이 상용화되어서 주변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은 요즘 챗GPT를 보며 감탄하는 중이거든요 불과 1~3년 전만 해도 이정도의 수행능력과 파급력을 지닌 AI가 대중화될거라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어쩌면 로봇의 상용화도 빨리 오지 않을까요??
곧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보급되기를 바랍니다
서이음님의 대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나오는 뻔한 대사로만 여겼는데요.. 오늘 새벽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희 집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 가족이 있는데요,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새끼 하나가 며칠 전부터 비실거리더니 어제 저녁에 대문 앞에 쭈그리고 있더라고요. 평소에는 다가가면 날쌔게 도망가는데 기운이 없어 도망도 못 가는 걸 보고 집으로 데려왔어요. 면봉에 설탕물도 찍어 먹여보고 고양이 분유도 사다가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고 해봤는데, 먹지도 못하고 축 늘어진 게 얼마 안 남았다 싶었어요. 저녁 늦은 시간이고 전에도 두어 번 그런 상태의 길냥이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손도 못 쓰고 하늘나라 보낸 경험이 있어서, 당장 병원 데려가진 않고 상자에 넣어 천 덮어주고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 먹이기를 시도했어요. 밤이 늦어가고 새끼냥이는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하더라고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떡껄떡하는 모습을 쓰다듬으며 한참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같이 있던 저희 아이가 "엄마, 그냥 이렇게 두고 볼 거야?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딱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어휴, 새벽 두 시에 결국 24시 동물병원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결국은 병원에서도 사망이 임박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처치대 위에서 숨이 멎을 때까지 쓰다듬으며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안내문을 주더군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고,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이 연명치료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 그저 지켜만 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생명체가 숨이 멎기까지도 오랫동안 고통 받는데, 사람이 죽을 때는 어떨까요. 사랑하는 가족이 그런 상황이라면 의료진을 붙들고 "뭐라도 좀 해주세요"라고 매달리게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존엄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죽음은 자유의지나 선택과는 별개의 또다른 영역의 문제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무릇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욕구가 있잖아요.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의 목숨에 대해서도 '생명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성을 띤 명제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 살리기 위해 당장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아닐까요.. 또 하나, 반려동물 장례식장 팸플릿을 보면서 역시 장례라는 의식은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축 늘어진 새끼냥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갈 곳이 쓰레기 봉투가 아니라 아늑하게 꾸며진 납골당이라면 내 마음이 조금 덜 미안하고 덜 괴로울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죽음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는 대사가 전과는 달리 무척 공감되고 깊이 와닿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과거와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그것이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그처럼 어려운 게 아닐까요...
저도 통감하는 내용입니다. 정말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영양제는 들어가는데 배출은 안되고 호스피스에서는 말을 해봐도 임종이 다가와서 그러는 거라 억지로 빼줄 수는 없다고 하고 정말 뭐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마음이 답답했던 기억이 나요. 새섬님께서도 오디세이에서 말씀하셨듯 장례라는 의식은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전에 미리 생각해보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구요. 저의 가족분은 A4 용지에 자세히 원하는 내용을 남기셨는데도 막상 치루는 과정에서 세세하게 결정할 것이 많아 어떤 것을 원하실까 고민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원하시던 영정 사진도 해상도가 너무 안좋아 결국 구할 수 있는 사진 중에서 급하게 정해야했구요. 임종전에 하신 말씀들이 정말 본인의 뜻일지 고통과 진통제의 환영일지 구분해야 하는 문제도 있기에, 이렇게 몸과 마음이 최악의 순간이 아닐 때 차분히 나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미식가들님의 대화: 저도 빨리 그런 로봇이 개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사 로봇도요...ㅡㅡㅋ
공장에서 쓰이던 웨어러블 로봇이 농가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오늘 아침에 접했습니다. 그 뉴스를 듣자마자 체위성 저혈압으로 자꾸 넘어지는 노약자들이 자기 힘으로 걷고,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웨어러블 로봇이 얼른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팔릴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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