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아버지는 남아 있는 능력으로 가능한 한 최선의 삶을 영위하는 것과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남은 삶의 질을 희생하는 것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34,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borumis님의 대화: (6) 전 지금도 워낙 딸아이가 '엄마 이번에 총회/학부모모임 가면 제 친구들 엄마 아는체라도 좀 하세요~친해지면 더 좋구요~'라고 말할 정도로 극 내향인이고..;; 어렸을 적부터 책, 음악, 그림만 있으면 혼자놀기가 제일 편한데요.. (반면 딸도 남편도 사교적 외교관/연예인 타입;;) 70세 이후에 더 사교적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아요;;; 근데 이상한게 남편도 딸도 그렇고 제 몇 안 되는 친구들도 그렇고 저와 정반대로 모든 사람들에 관심이 넘쳐나는 극 외향인이 많아요;; 그들을 통해 좀 귀찮은 일에도 많이 엮이게 되지만 덕분에 그들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저처럼 사교성 없는 사람을 왜 그런 극적으로 사교성 많은 사람들이 자꾸 챙기는지 잘 이해를 못하지만 아마도 그들의 에너지 덕분에 네트워크가 어느정도 유지되는 것 같은데요.. 만약 그들이 제게서 멀어진다면 저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도 같지만.. 굳이 사교적인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만나는 것도 괜찮을까요? 실은 저는 어렸을적부터 NGO 등에 재능기부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불어와 한글을 할 줄 알아서 한국에서 프랑스 스위스 등으로 입양되었지만 다시 한국에 친부모를 찾아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환영을 받지 못하고 부모가 피해서 좀더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다시 소통하고픈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이라든지 한국에서는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봉사 및 한글 강의와 다른 지원활동을 했고 학교 점심시간을 활용해 근접한 재활학교에서 소아마비 환아들을 위한 식사 및 놀이 도우미 봉사 등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해왔는데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NGO활동이었어요. 근데 어릴적에도 좀 몸이 안 좋아서 부모님이 제 대학진학도 반대했지만.. 나중에 실제 질환을 발견하고 온도 습도 기압의 문제 등 다양한 극한의 환경이나 스트레스 많은 것을 피하라는 조언과 육아 및 직장 생활로 그것과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싶어서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뇌출혈로 말을 잘 못하게 된 할아버지가 또 담배 피는 걸 발견하고 '할아버지 이러다 또 혈관 터져요!!'하고 한참 잔소리했는데 그러고나서 며칠 후에 제 혈관이 터지고 남편이 그 후 봉사활동은 그만두라고 하게 된 게 참 웃프더라구요..;; 그래도 제가 70대 쯤 되면 이제 아이들도 제 곁을 떠나고 저도 일을 그만두고 좀 여유가 생기면 아주 극지대로 가진 않아도 주변에 제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떤 형태로든 돕고 싶어요. 제가 그래도 예전부터 통번역이나 아이들 가르치고 놀아주는 일을 많이 해서 요리나 집안일은 잘 못해도 안그래도 터무니 없이 오르는 육아비용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봐주거나.. 사교육 받을 형편이 안되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독서토론 등을 하거나.. 지금부터 여러가지 생각하고 알아보고 있긴 해요.. 예전에 제가 영어를 가르치고 디지몬 놀이와 베개싸움도 자주 하고 놀던 유치원 아이가 'B, do you believe in Jesus?(예수님을 믿나요?)'(아이가 종교적인 외국인학교에 다녀서 성경구절 외우는 숙제도 도와줬습니다;;)하고 대뜸 제게 물었는데... 차마 거짓말을 못해서 'Jesus was a wonderful person but I'm afraid I don't(예수님은 훌륭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미안하지만 믿지 않아)'라고 대답했더니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Oh, no! That can't be! You've gotta believe in Jesus! You do! Because I believe in Jesus, so I'll go to heaven, but if you don't believe in Jesus and you don't get to go to heaven, I'll be so sad cuz I want to be with you in heaven!! (안돼요! 그럼 안돼요! 예수님 믿어야해요! 정말로요! 난 예수님 믿어서 천국 갈건데 선생님이 예수님 안 믿고 천국에 못가면 난 너무 슬플 거에요! 왜냐하면 전 천국에서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거든요!) 이라고 말하는데 너무 사랑스럽고 미안해서 정말 그때 진심으로 신을 믿고 싶었고 그저 말없이 그 아이를 꼬옥 껴안아주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컸는지도 모르지만.. (아마 이제 제 아들보다 더 큰 어른이 되었겠죠) 저는 그런 도움을 주고 스쳐지나가는 관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다가가고 도움을 주는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삶을 살고 싶은 게 질문 (7)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네요..
통번역 일을 많이 하셨다니 반갑네요. 하루라도 안쓰면 쇠퇴하는 언어의 습성이 숨막히게 느껴져서 포기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결국 돌아돌아 오게 되는 것은 언어가 가진 매력도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시는 것이 노후에도 borumis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선택 가능성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는 대부분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 자동 모드를 켜고 그 뒤에 숨어 버리는 것이다. 자동 모드는 이렇게 설정되어 있다. ‘뭔가를 하라.’ ‘뭔가를 고쳐라.’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리수스 @ifrain 이 책 전체에서 한 문장만 꼽으라면 그 문장을 꼽으려고요. 슬프고 두렵고 강렬한 문장이네요.
우리가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든 대충대충 겨우겨우 살아가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거잖아요? 감옥 수감 기간이 달라지겠지만요..
ifrain님의 대화: 우리가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든 대충대충 겨우겨우 살아가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는 거잖아요? 감옥 수감 기간이 달라지겠지만요..
사고사... 라는 길이 있기는 합니다만... ㅠ.ㅠ (좀 순화해서 '격렬한 죽음' 정도로 표현할까요.)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열띤 참여, 그리고 김새섬 대표와 저에 대한 응원 말씀 모두 감사합니다. 모임지기의 세 번째 질문 올립니다.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서 올리는 질문입니다. (6) 70세 이후 사교 생활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4장의 루 할아버지 사례를 읽으며 ‘사람은 사교적인 동물이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할 일도 있어야지요. 루 할아버지에게는 크리비지 게임이 있었습니다. 딸 셸리가 말벗 역할을 할 젊은이를 고용하기까지 했지요. 여러분은 70세 이후 사교 생활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70세 이후에 새로 사람을 사귈 방안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현재 참여하는 모임 중 70세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네트워크가 있나요? 혹시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괜찮거나, 온라인으로만 만나도 괜찮으신가요? (7) 70세 이후 어떤 일에 관심을 두며 살아가실 예정입니까? 4장에서 노인들이 관심사를 좁히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화로 인해 육체와 정신이 쇠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이 막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의외로 노인들의 정서적 만족감은 그렇게 훼손되지 않는다고는 합니다만, ‘삶의 관심사와 범위를 좁히는 것은 자아 실현이라고 하는 인간 성취감의 최대 원천과 상충하는 일’이긴 합니다. 여러분은 70세 이후 어떤 일에 관심을 두고 성취감을 얻으려 하십니까?
제 답변입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어요. 나눠서 올립니다. 저도 @히어로 님과 똑같이, 막막한 심정입니다. 솔직히 @다솜726 님과 @씩씩한 님처럼 70세 이후의 사교 생활에 대해 별 계획이 없었고, 70대의 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무도 안 만나도 괜찮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믐이 저에게도 세상과 연결해주는 소중한 고리가 되겠지만, 온라인 교제가 오프라인 만남을 대체해주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 @히어로 님이 써주신 ‘책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유만을 말하지 않고 어떤 통제도 함께 말하는 사람들, 인생 다 산 것처럼 혹은 인생무상이라고 앵무새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들, 대신 어린아이처럼 눈이 맑은 사람들, 그래서 눈이 더 깊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아서 따로 옮겨 적습니다.) @탱구밤이엄마 님과 다르게 저는 이번 두 질문이 아주 어렵게 다가오는데, 제가 중년을 황량하게 보내고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진지하게, 탱구와 밤이 같은 아이들이 곁에 없는 것도 저 중년의 황량함에 일조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역시 저의 선택이었죠. 저는 프리랜서가 된지 올해로 14년째인데, 제 일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고 생활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거의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 역시 엄청나게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거기에 더해 성취감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기까지 해서, 그런 사교 활동에 대해 비용편익분석을 늘 하고 지냈습니다. 제 성향상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분홍하늘 님처럼 자발적 아싸가 되었습니다. 저도 아내가 훌륭한 말벗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네요. 얼마 되지도 않는 ‘만나면 기분 좋지만 그 외에 딱히 이득은 없는 관계’를 내쳤고, ‘만나면 피곤하지만 언젠가 이익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 위주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황량해졌습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제 답변입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어요. 나눠서 올립니다. 저도 @히어로 님과 똑같이, 막막한 심정입니다. 솔직히 @다솜726 님과 @씩씩한 님처럼 70세 이후의 사교 생활에 대해 별 계획이 없었고, 70대의 제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아무도 안 만나도 괜찮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믐이 저에게도 세상과 연결해주는 소중한 고리가 되겠지만, 온라인 교제가 오프라인 만남을 대체해주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 @히어로 님이 써주신 ‘책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유만을 말하지 않고 어떤 통제도 함께 말하는 사람들, 인생 다 산 것처럼 혹은 인생무상이라고 앵무새처럼 말하지 않는 사람들, 대신 어린아이처럼 눈이 맑은 사람들, 그래서 눈이 더 깊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아서 따로 옮겨 적습니다.) @탱구밤이엄마 님과 다르게 저는 이번 두 질문이 아주 어렵게 다가오는데, 제가 중년을 황량하게 보내고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진지하게, 탱구와 밤이 같은 아이들이 곁에 없는 것도 저 중년의 황량함에 일조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역시 저의 선택이었죠. 저는 프리랜서가 된지 올해로 14년째인데, 제 일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을 전혀 만나지 않고 생활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거의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 역시 엄청나게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거기에 더해 성취감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기까지 해서, 그런 사교 활동에 대해 비용편익분석을 늘 하고 지냈습니다. 제 성향상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분홍하늘 님처럼 자발적 아싸가 되었습니다. 저도 아내가 훌륭한 말벗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네요. 얼마 되지도 않는 ‘만나면 기분 좋지만 그 외에 딱히 이득은 없는 관계’를 내쳤고, ‘만나면 피곤하지만 언젠가 이익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 위주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황량해졌습니다.
좀 변명을 하자면 스포츠나 유흥 활동에 젬병이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대학 동기 모임은 골프가 중심이 되었는데 저는 골프를 전혀 못 치고, 앞으로도 안 배울 거 같아요. ( @HL7707 님께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등산도 싫어합니다.) 언론계에서 만난 선후배들 중에는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한창 부장급, 국장급이다 보니 너무 바쁩니다. 일 없이 메시지로 수다를 떨 여유도 없고, 저녁 약속도 한 달 전부터 잡아야 합니다. 만나서 식사를 하다가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를 해야 하는 이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언론계 종사자들의 관심사에 제가 이제 흥미를 잘 못 느끼고, 뉴스도 거의 안 봅니다. 문학출판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저와 처지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좀체 만나기 어려웠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신인 작가들이 섞인 자리에서 중견 작가가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없거든요. 작가가 편집자를 친구라고 여기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들은 작가를 친구로 보지 못할 테니까요. 합리적이고 예의 바른 갑이 되는 게 좋겠습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좀 변명을 하자면 스포츠나 유흥 활동에 젬병이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대학 동기 모임은 골프가 중심이 되었는데 저는 골프를 전혀 못 치고, 앞으로도 안 배울 거 같아요. ( @HL7707 님께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등산도 싫어합니다.) 언론계에서 만난 선후배들 중에는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한창 부장급, 국장급이다 보니 너무 바쁩니다. 일 없이 메시지로 수다를 떨 여유도 없고, 저녁 약속도 한 달 전부터 잡아야 합니다. 만나서 식사를 하다가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를 해야 하는 이들입니다. 한편으로는 언론계 종사자들의 관심사에 제가 이제 흥미를 잘 못 느끼고, 뉴스도 거의 안 봅니다. 문학출판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저와 처지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좀체 만나기 어려웠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신인 작가들이 섞인 자리에서 중견 작가가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없거든요. 작가가 편집자를 친구라고 여기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들은 작가를 친구로 보지 못할 테니까요. 합리적이고 예의 바른 갑이 되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마키아벨리1 님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애플망고 님 말씀대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적당한 거리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인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은데 제가 호감을 느끼는 타인들이 저에게 얼마나 호감을 느낄지 잘 모르겠습니다. 70대가 되면 정신의 총기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매력이 줄겠지요. 제가 그런 교제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도 자신 없습니다. 계산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부딪치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게 큰 재능인 거 같습니다. 그 재능은 어린이일 때 가장 풍성하게 지니고 있고, 나이가 들면서 착실하게 잃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연애도 20대에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적령기라는 게 있고, 그게 꼭 육신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지난 13년 간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내치며 살았는데, 이제 무작정 그러지는 않으려고요. 비용편익분석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겠지만, 편익 항목을 새로 구성하려 합니다. 아직도 제게 남아 있는 인간관계 중에서 70대가 넘어서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잘해주려고 해요. 소설가 모임인 ‘한우 작가’들, 팟캐스트 책걸상 진행자들, 대학 동기들, 몇몇 언론계 선후배 정도일 거 같습니다. 이것이 (6)번 질문에 대한 저의 대책입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저도 @마키아벨리1 님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뒤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애플망고 님 말씀대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적당한 거리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인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은데 제가 호감을 느끼는 타인들이 저에게 얼마나 호감을 느낄지 잘 모르겠습니다. 70대가 되면 정신의 총기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매력이 줄겠지요. 제가 그런 교제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도 자신 없습니다. 계산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부딪치고 교제할 수 있다는 게 큰 재능인 거 같습니다. 그 재능은 어린이일 때 가장 풍성하게 지니고 있고, 나이가 들면서 착실하게 잃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연애도 20대에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적령기라는 게 있고, 그게 꼭 육신의 문제만은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지난 13년 간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내치며 살았는데, 이제 무작정 그러지는 않으려고요. 비용편익분석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겠지만, 편익 항목을 새로 구성하려 합니다. 아직도 제게 남아 있는 인간관계 중에서 70대가 넘어서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잘해주려고 해요. 소설가 모임인 ‘한우 작가’들, 팟캐스트 책걸상 진행자들, 대학 동기들, 몇몇 언론계 선후배 정도일 거 같습니다. 이것이 (6)번 질문에 대한 저의 대책입니다.
(7)번 질문에 대해서는, 일단 육체와 정신이 허락하는 한은 소설 집필에 전념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러지 못할 때가 올 텐데, 그때는 우선 그믐 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시니어 독서 모임(맥주를 곁들인)을 열면 어떨까 상상도 해봅니다. @거북별85 님 와주실 거죠? @애플망고 님이 계신 노인정 찾아가도 되죠? 저는 그믐밤 낭독 모임이 무척 재미있는데, 그때 낭독 모임도 주최하고 싶습니다. 연출자와 배우님들이 낭독을 가르쳐주신 지난 번 그믐밤에 참석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한참 나중의 일이겠지만, 안똔체홉극장에서 연극 교실도 다녀보고 싶습니다. 70대도 받아주겠지요...? 그 외에 기타를 배우고 싶고, @ifrain 님의 글을 읽고는 일러스트 그리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배우고 싶은 게 많네요. 그리고 저도 @borumis 님처럼 재능 기부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새섬 대표의 꿈 중 하나가 이주 여성을 돕고 싶다는 거였는데, 이주 여성을 상대로 운영되는 글쓰기 교실이 있다면 그때 거기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책은 당연히 70대 이후에도 저의 주 관심사일 거고요, 그때도 문학 비문학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읽을 거 같습니다. 운동은 필수 운동만 하려고요. 귀찮... 고양이도 안 키울 거 같습니다. 개는 어쩌면 그때 가서 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탱구랑 밤이 사이즈의 중대형견을 키우지는 못할 거 같네요. 마당보다는 전망 있는 테라스가 좋은데, 참 바라는 게 많다 싶기도 하고, 돈 엄청 들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네요.
와 새섬님^^ 이주여성을 도와주는 일에 비전을 갖고 계시네요~~ 종종 우리나라 오셔서 아이들까지 키우시는 이주여성맘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우리나라 말도 정말 잘 하시고 아이들 양육에, 일까지 열심히 하시는 분들 보면 저도 응원하곤 했는데~~ 사실 어려움도 많으실 것 같긴 했어요!! 가끔 고단하고 어두운 얼굴도 뵙고요. 어떻게 비전을 실현하실지 기대됩니다!! 그믐도 이렇게 멋지게 실현된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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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희망은 계획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계획은 희망밖에 없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거의 선적인 메시지처럼 느껴지기까지 않다. 더 오래 살려는 노력을 멈춰야만 더 오래 산다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borumis님의 대화: 전 텀블벅에 익숙하지 않아서 티켓이나 특이한 레어템?같은 것만 파는 줄 알았는데 옷도 파는 줄 몰랐어요. 이런 것도 sns나 그런 인터넷 정보를 잘 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인스타 기능도 잘 몰라서 남들 다 하는 인스타 라이브 쇼핑도 해본적 없어요;;; 뻔한 SPA 인터넷 쇼핑 브랜드밖에 모르는;; 역쉬 꽃의 요정님 패션 항상 멋지던데.. 개념쇼핑의 패셔니스타였어요..
아..저도 SNS 잘 못하고 잘 모릅니다. ㅎㅎ 저같은 무지랭이가 광고하면 따라 들어가서 보는 거 같아요. 라방도 존재만 알지 전혀 해 본 적도 없고요. 심지어 인스타 올리는 사진인데 왤케 구리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어요. ㅎㅎ 전 일기처럼 안 까먹으려고 올리는 거라 사진 퀄리티는 별로 신경 안 써요. 뭐든 좀 대충대충하는 성격이라... 사실 텀블벅도 할 줄 모른답니다~ 광고 따라 들어가서 한참을 헤메다가 가격표 보이면 사고요. ㅋㅋ
장맥주님의 대화: 제가 벽돌책 읽는 트레바리 모임장을 했는데 거기서도 결혼에 성공한 커플이 나왔어요. 벽돌책이 배출한 커플... ^^ 흐뭇했고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두 분은 정말 극비리에 교제하셔서 아무도 눈치를 못 챘습니다. 그런데 두 분 중 한 분은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트레바리의 제도 중 하나인 '놀러오기'로 오신 다른 모임 분이었어요. 트레바리 모임 이끄는 거 즐거웠는데, 제일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 독서 토론했던 건 기억이 안 나고 같이 번개로 영화 "매버릭" 봤던 거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봤던 게 떠오르네요. 뭐지?
그렇죠. 책모임의 꽃이 잡담과 수다이듯이!
주어진 일정보다 이르게 완독했습니다. 필독도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 좋은 책 알려주시고 함께 읽고 나누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가 쓴 감상문입니다. 시간 나면 읽어보셔요.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 아툴 가완디 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나는 이율배반적이다. 나의 죽음과 타자의 죽음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다.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나만 이런 건지. 혹시 당신도 그렇지 않은지. 나는 이런 이중성이 나의 한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도 궁금하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모든 죽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데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뻔한 경험이 아닌, '죽었던' 경험. 이것은 인간의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말은 곧 모든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의 한 번뿐인 죽음 앞에서 서툴 수밖에. 그렇다면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무지했고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경솔하게도 죽음을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낭만화하고 있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이 책 덕분에 죽음이 조금은 더 형체를 갖추게 되었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모든 죽음은 의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부분, 즉 노화와 노쇠 과정(대부분은 고통을 동반한, 그리고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의학적 도움을 받으며)을 겪게 된 이후에 찾아온다는 진실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덟 꼭지의 소제목만 진지하게 읽어 봐도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기분과 함께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로 시작해서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으로 끝나는 책이라니. 저자는 의사다.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함께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에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현대 의학이 어떻게 그 여정에 관여하고 있는지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되짚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로 독자를 공론장으로 초대한다. 동시에, 의사이자 한 사람, 이 두 정체성이 연합해 나가는 과정을 개인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독자는 자연스레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치료, 간호, 보살핌을 받는 환자(대부분은 잠정적 환자)인 동시에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글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율배반적인 입장도 어찌 보면 이 두 정체성 사이의 괴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그 선이 조금은 흐려진 듯한 기분이다. 언제부터 죽음을 의학의 실패 내지는 결함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60세 남짓이었다. 지금은 80세를 넘겼다. 90세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늘어난 건 유년이나 청년시절이 아니라 노년이다. 게다가 노화는 예전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작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생겨난, 지극히 아이러니한 부작용이다. 덕분에 죽음은 늦춰졌지만 죽어가는 기간은 늘어났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기간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게 된 존재가 현대 의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라는 참인 명제를 마치 거짓으로 뒤집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마치 어떻게 손만 잘 쓰면 죽는 시기를 원하는 만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것처럼 현대 의학은 죽음을 실험대 위에 올렸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를 거세시켜 버렸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가족을 포함한 지인의 죽음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연장시키려고 애쓰게 되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인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거나 온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20세기말부터 시작되어, 특히 선진국에서는, 상식이 될 정도로 편만해진 기류다. 지금은 이런 기류를 비판적으로 보는 부류가 급속하게 많아졌다. 돈과 현대 의학의 결탁이 만들어낸 괴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조력사, 안락사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법제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분위기의 일환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성이 소거된 의사의 관점이 아닌 인간다움을 간직한 인간의 관점을 되살리는 시도를 통해 좋은 죽음과 그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을 좋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짚어낸다. 저자는 단순한 생명 연장이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 인간은 스스로가 혼자 설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노년의 시기에도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이 보장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의학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건강 상의 안전이 결코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충실하게 입증해 낸다. 인간은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어떤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노쇠의 시기에 도둑처럼 찾아오는 무료함과 외로움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해결책은 현대 의학이 풀 수 없는 영역임을 반박할 수 없게 밝혀낸다. 인간은 몸만 가진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함께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후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의학적인 의사 결정은 크게 실패를 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느라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허를 찌르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하기 어려운 질문에 봉착하고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쓴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책의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진정성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하는 책임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느낀 소회와 함께 앞에서 다뤘던 주제들을 몸소 체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이 책의 꽃이라고 보는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의사라는 정체성과 한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서로 연합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론과 실제의 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차가운 메스가 떠오르는 기계 같은 의술이 아닌 따뜻한 인간다움이 묻어나는, 그래서 사람 살리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의술의 중요성을 소리 없이 강하게 외치는 완벽한 마무리로 보였다. 그렇다. 저자가 쓴 대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공급자와 수혜자(잠정적 수혜자 포함) 할 것 없이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강하게 울려 퍼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한 누구나 노화와 노쇠를 겪으며 고통을 감내하며 몸과 마음이 체계적으로 하나둘씩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수십 번 읽어도 여운이 남는다.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인 그믐을 통해 (특히 교모세포종 재발로 인해 두 번째 수술을 막 마치고 회복 중인 김새섬님과 남편인 장맥주님이 이끄시는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을 통해) 알게 되고, 함께 읽게 되고, 함께 나누게 되어 더욱 기억에 남을 책이었다. 좋은 책은 나눠야 하는 법. 나는 어떻게든 이 책을 널리 알릴 생각이다. 나의 이 짧은 글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부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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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님의 대화: 그렇죠. 책모임의 꽃이 잡담과 수다이듯이!
독서 모임의 꽃은 맥주 아니었나요...!?
장맥주님의 대화: @리수스 @ifrain 이 책 전체에서 한 문장만 꼽으라면 그 문장을 꼽으려고요. 슬프고 두렵고 강렬한 문장이네요.
@장맥주 @ifrain 좋은 문장은 원어로 다시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고 부모님을 뵈면서 저도 이 문장이 마음에 더 와 닿게 되었어요. 얼마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입원하셨었는데(다행히 휴유증 없이 퇴원하셨어요), 제가 젊어서 입원했던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나이드신 어머니를 돌보는 입장에서 경험하는 입원은 정말 다르게 느껴졌어요. 책을 읽다보니 죽기 전의 과정에서 가장 큰 주제어는 자율성과 고통의 문제로 집약되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장 중요하게 살아왔는데, 그것이 언제가는 훼손되고 제한되어질텐데,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최대한 보장 받을 수 있을 지 고민하게 됩니다. 한편,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병으로 인해 자율성이 없어지고 고통이 커지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고,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존엄사/안락사를 허락하는 것은 옳은가.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그로 인해 훼손될 수 없는 귀중한 가치 아닌가", "생명이 절대적 가치라면, 노인이든 신생아이든, 남은 생명이 길든 짧든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자본주의 문화에서, 우리는 생명의 가치도 생산보다 비용이 크면 가치가 없다는 경제학적 사고의 연장선 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 "신체적 고통의 극심함이 안락사나 존엄사의 기준이 된다면, 정신적 고통의 극심함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등등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장맥주님이 독서모임 서두에 제시하신 딜레마에 선듯 답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또 올려주시는 의견들을 보며 더 열심히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55,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히어로님의 대화: 주어진 일정보다 이르게 완독했습니다. 필독도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널리 알릴 생각입니다. 좋은 책 알려주시고 함께 읽고 나누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아래는 제가 쓴 감상문입니다. 시간 나면 읽어보셔요.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 아툴 가완디 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나는 이율배반적이다. 나의 죽음과 타자의 죽음을 대하는 입장이 다르다.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나만 이런 건지. 혹시 당신도 그렇지 않은지. 나는 이런 이중성이 나의 한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도 궁금하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모든 죽음은 단 한 번밖에 없는데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뻔한 경험이 아닌, '죽었던' 경험. 이것은 인간의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말은 곧 모든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인간은 자신의 한 번뿐인 죽음 앞에서 서툴 수밖에. 그렇다면 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무지했고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경솔하게도 죽음을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낭만화하고 있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이 책 덕분에 죽음이 조금은 더 형체를 갖추게 되었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모든 죽음은 의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부분, 즉 노화와 노쇠 과정(대부분은 고통을 동반한, 그리고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의학적 도움을 받으며)을 겪게 된 이후에 찾아온다는 진실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덟 꼭지의 소제목만 진지하게 읽어 봐도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기분과 함께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다.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로 시작해서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으로 끝나는 책이라니. 저자는 의사다.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함께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에 관련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현대 의학이 어떻게 그 여정에 관여하고 있는지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되짚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로 독자를 공론장으로 초대한다. 동시에, 의사이자 한 사람, 이 두 정체성이 연합해 나가는 과정을 개인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독자는 자연스레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치료, 간호, 보살핌을 받는 환자(대부분은 잠정적 환자)인 동시에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글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나의 이율배반적인 입장도 어찌 보면 이 두 정체성 사이의 괴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그 선이 조금은 흐려진 듯한 기분이다. 언제부터 죽음을 의학의 실패 내지는 결함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60세 남짓이었다. 지금은 80세를 넘겼다. 90세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늘어난 건 유년이나 청년시절이 아니라 노년이다. 게다가 노화는 예전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작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 생겨난, 지극히 아이러니한 부작용이다. 덕분에 죽음은 늦춰졌지만 죽어가는 기간은 늘어났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기간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하게 된 존재가 현대 의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라는 참인 명제를 마치 거짓으로 뒤집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마치 어떻게 손만 잘 쓰면 죽는 시기를 원하는 만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것처럼 현대 의학은 죽음을 실험대 위에 올렸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를 거세시켜 버렸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가족을 포함한 지인의 죽음을 단 몇 시간만이라도 연장시키려고 애쓰게 되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인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거나 온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20세기말부터 시작되어, 특히 선진국에서는, 상식이 될 정도로 편만해진 기류다. 지금은 이런 기류를 비판적으로 보는 부류가 급속하게 많아졌다. 돈과 현대 의학의 결탁이 만들어낸 괴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조력사, 안락사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법제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분위기의 일환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간성이 소거된 의사의 관점이 아닌 인간다움을 간직한 인간의 관점을 되살리는 시도를 통해 좋은 죽음과 그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을 좋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짚어낸다. 저자는 단순한 생명 연장이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 인간은 스스로가 혼자 설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노년의 시기에도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이 보장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의학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건강 상의 안전이 결코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도 충실하게 입증해 낸다. 인간은 단지 숨을 쉬고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어떤 대의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노쇠의 시기에 도둑처럼 찾아오는 무료함과 외로움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해결책은 현대 의학이 풀 수 없는 영역임을 반박할 수 없게 밝혀낸다. 인간은 몸만 가진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함께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후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의학적인 의사 결정은 크게 실패를 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느라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허를 찌르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하기 어려운 질문에 봉착하고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쓴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책의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진정성을 반증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하는 책임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며 느낀 소회와 함께 앞에서 다뤘던 주제들을 몸소 체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이 책의 꽃이라고 보는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의사라는 정체성과 한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서로 연합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이론과 실제의 연합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차가운 메스가 떠오르는 기계 같은 의술이 아닌 따뜻한 인간다움이 묻어나는, 그래서 사람 살리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의술의 중요성을 소리 없이 강하게 외치는 완벽한 마무리로 보였다. 그렇다. 저자가 쓴 대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현대 의학의 공급자와 수혜자(잠정적 수혜자 포함) 할 것 없이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강하게 울려 퍼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한 즉사가 아닌 한 누구나 노화와 노쇠를 겪으며 고통을 감내하며 몸과 마음이 체계적으로 하나둘씩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책 뒤표지에 쓰인 문장이다. 수십 번 읽어도 여운이 남는다.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인 그믐을 통해 (특히 교모세포종 재발로 인해 두 번째 수술을 막 마치고 회복 중인 김새섬님과 남편인 장맥주님이 이끄시는 '웰다잉 오디세이 2026'을 통해) 알게 되고, 함께 읽게 되고, 함께 나누게 되어 더욱 기억에 남을 책이었다. 좋은 책은 나눠야 하는 법. 나는 어떻게든 이 책을 널리 알릴 생각이다. 나의 이 짧은 글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부키 #김영웅의책과일상
감사합니다, 작가님. 필독 도서라고 인정해주시니 기쁘고, 널리 알려주신다니 반갑습니다. 올려주신 감상문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저희 부부한테는 선물 같아요. 아내에게도 전하겠습니다. ^^ 저는 이번 독서를 일부러 천천히 하고 있는데, 다음 주쯤 가완디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 거 같습니다. 저 역시 무척 감동적인 대목이었고 단행본의 마무리로 완벽하다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 까먹었어요... ^^;;;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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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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