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ain님의 대화: '자율성'과 '고통'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던 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를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저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 간 유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간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그려낸 작품들로 12월쯤 전시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연령대는 60대 전후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20대도 있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었어요.
A. 소아마비가 있어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오셨어요. 다리와 손가락 관절이 휘어서 걷는 것도 가장 불편해보이시고 몸이 가장 안 좋아 보이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가장 많이 웃으시고 인생에 대한 긍정정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셨어요.
B. 큰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면서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C. 몸도 불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워 하셨어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밤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지체장애인인 다른 분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죽지 못해 산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지체장애인 분들은 전동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복지관으로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참석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인 분들도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신체적인 증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미술 수업의 강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보고 들은 것, 수강생 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서 최대한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A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데 평소에도 고통을 달고 사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고통이 사라진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A님은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거나 아주 짧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되어 고통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A님은 이미 그런 순간을 초월하신 거 같았어요. 아픈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고 자주 행복해 보이셨어요. 이분들에게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제약,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신 것 같았어요.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매일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수강생분들이 평생 한 번도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돌파해나가는 힘이 다들 대단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니 오히려 독립적으로 삶을 일구어온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본인들의 그림 안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강사인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고 정답이 없다고 꼭 말씀드렸어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D. 올해 초 지인 분께 개인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 년 전 자궁암 이후 위암으로 전이되어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었어요. 그림을 잘 하고 싶으신 욕심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정해진 틀과 공식에 얽매여 생각하시는 면이 강했어요.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드렸지만 그런 빡빡한 스타일의 수업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정답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이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수업을 더 지속하지 못했어요. 아쉽지만 그분에게는 그림 수업이 쉼이 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화면의 공간이 ‘틀리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죠. 일상에서 내려놓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고통에는 분명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율성과 자아효능감이 침해당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긍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고요.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제어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외모와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맡은 역할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A님은 주어진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서 주제와 형태, 색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했어요. 중간에 제가 조언을 해드리기도 하고 A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D님은 주어진 화면 안에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계속 정답을 찾아서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선을 하나 그을 때도 맞는지 틀렸는지 두려워했어요. 이런 문제는 비단 D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분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죽음의 모습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도 없을 거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