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cjlove52
“ 그녀는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체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 자판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우선 순위 중 하나였다. 스카이프와 이메일은 아버지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구나 친척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통증 없이 살 수 있기를 원했다.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요." 아버지가 말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45,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cjlove52
“ 나는 아버지가 일어서는 걸 도와 드렸다. 아버지는 내 팔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지난 반년 동안 걸어 다닌 거라고는 거실을 가로지를 때 뿐이었다. 그 이상 걷는 걸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천천히 농구 코트를 지나서 콘크리트 계단 20개를 올라가 관중석에 마련된 가족석에 앉았다. 그 광경은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말았다. 이것이야 말고 전혀 다른 방식의 케어- 그리고 전혀 다른 방식의 의학-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려운 대화가 이뤄낸 일이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49,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cjlove52
cjlove52님의 문장 수집: "나는 아버지가 일어서는 걸 도와 드렸다. 아버지는 내 팔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지난 반년 동안 걸어 다닌 거라고는 거실을 가로지를 때 뿐이었다. 그 이상 걷는 걸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천천히 농구 코트를 지나서 콘크리트 계단 20개를 올라가 관중석에 마련된 가족석에 앉았다. 그 광경은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말았다. 이것이야 말고 전혀 다른 방식의 케어- 그리고 전혀 다른 방식의 의학-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려운 대화가 이뤄낸 일이었다."
저자도 아버지와 함께 농구코트를 지나 계단 20개를 올라 가족석에 앉았을 때 감동받고 압도되었지만,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삼키시지 않았 을까요? 저도 같이 눈물을 훔쳤네요~~
저도 치료과정에서 면역력이 약해져 집과 병원만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치료과정이 끝나고 회복되어
처음 회중이 많은 예배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순간,, 울컥했거든요 ㅜㅜ(개인적인 신앙이야기를 꺼내 죄송해요;;)
장맥주
ifrain님의 대화: 저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 간 유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간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그려낸 작품들로 12월쯤 전시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연령대는 60대 전후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20대도 있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었어요.
A. 소아마비가 있어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오셨어요. 다리와 손가락 관절이 휘어서 걷는 것도 가장 불편해보이시고 몸이 가장 안 좋아 보이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가장 많이 웃으시고 인생에 대한 긍정정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셨어요.
B. 큰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면서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C. 몸도 불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워 하셨어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밤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지체장애인인 다른 분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죽지 못해 산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지체장애인 분들은 전동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복지관으로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참석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인 분들도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신체적인 증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미술 수업의 강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보고 들은 것, 수강생 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서 최대한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A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데 평소에도 고통을 달고 사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고통이 사라진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A님은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거나 아주 짧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되어 고통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A님은 이미 그런 순간을 초월하신 거 같았어요. 아픈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고 자주 행복해 보이셨어요. 이분들에게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제약,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신 것 같았어요.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매일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수강생분들이 평생 한 번도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돌파해나가는 힘이 다들 대단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니 오히려 독립적으로 삶을 일구어온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본인들의 그림 안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강사인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고 정답이 없다고 꼭 말씀드렸어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D. 올해 초 지인 분께 개인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 년 전 자궁암 이후 위암으로 전이되어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었어요. 그림을 잘 하고 싶으신 욕심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정해진 틀과 공식에 얽매여 생각하시는 면이 강했어요.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드렸지만 그런 빡빡한 스타일의 수업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정답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이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수업을 더 지속하지 못했어요. 아쉽지만 그분에게는 그림 수업이 쉼이 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화면의 공간이 ‘틀리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죠. 일상에서 내려놓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고통에는 분명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율성과 자아효능감이 침해당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긍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고요.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제어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외모와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맡은 역할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A님은 주어진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서 주제와 형태, 색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했어요. 중간에 제가 조언을 해드리기도 하고 A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D님은 주어진 화면 안에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계속 정답을 찾아서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선을 하나 그을 때도 맞는지 틀렸는지 두려워했어요. 이런 문제는 비단 D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분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죽음의 모습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도 없을 거고요.
한 편의 에세이 같네요. 이런 글을 토마토 농담 사이에서 불쑥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저는 어떤 유형일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일까? 내 정신은 단단할까? 별로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을 때 제가 두려워하던 것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합니다.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있고, 패배하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기 때문에 다시 겪는 것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 대상도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저절로 용기가 생겨서 좋네요.
그림 수업은 글쓰기 수업과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는 거 같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에는 저는 기본적인 틀은 강조하는 편이거든요. 독자가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라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 이상의 교훈적인 틀을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깨도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틀을 깨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jojo
ifrain님의 대화: 저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 간 유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간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그려낸 작품들로 12월쯤 전시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연령대는 60대 전후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20대도 있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었어요.
A. 소아마비가 있어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오셨어요. 다리와 손가락 관절이 휘어서 걷는 것도 가장 불편해보이시고 몸이 가장 안 좋아 보이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가장 많이 웃으시고 인생에 대한 긍정정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셨어요.
B. 큰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면서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C. 몸도 불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워 하셨어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밤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지체장애인인 다른 분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죽지 못해 산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지체장애인 분들은 전동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복지관으로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참석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인 분들도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신체적인 증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미술 수업의 강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보고 들은 것, 수강생 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서 최대한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A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데 평소에도 고통을 달고 사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고통이 사라진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A님은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거나 아주 짧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되어 고통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A님은 이미 그런 순간을 초월하신 거 같았어요. 아픈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고 자주 행복해 보이셨어요. 이분들에게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제약,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신 것 같았어요.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매일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수강생분들이 평생 한 번도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돌파해나가는 힘이 다들 대단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니 오히려 독립적으로 삶을 일구어온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본인들의 그림 안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강사인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고 정답이 없다고 꼭 말씀드렸어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D. 올해 초 지인 분께 개인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 년 전 자궁암 이후 위암으로 전이되어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었어요. 그림을 잘 하고 싶으신 욕심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정해진 틀과 공식에 얽매여 생각하시는 면이 강했어요.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드렸지만 그런 빡빡한 스타일의 수업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정답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이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수업을 더 지속하지 못했어요. 아쉽지만 그분에게는 그림 수업이 쉼이 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화면의 공간이 ‘틀리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죠. 일상에서 내려놓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고통에는 분명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율성과 자아효능감이 침해당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긍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고요.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제어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외모와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맡은 역할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A님은 주어진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서 주제와 형태, 색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했어요. 중간에 제가 조언을 해드리기도 하고 A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D님은 주어진 화면 안에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계속 정답을 찾아서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선을 하나 그을 때도 맞는지 틀렸는지 두려워했어요. 이런 문제는 비단 D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분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죽음의 모습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도 없을 거고요.
ifrain 님 글을 읽고 있으면 저도 그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요. 귀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맥주
“ 화학 치료제를 몸에 가득 부어 넣고, 부작용으로 생기는 구토증과 고통스러운 두드러기, 피로감에 찌들어서 몇 시간씩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패턴으로 남은 인생을 계획하고 싶지 않았다. 주얼 할머니는 아내, 엄마, 이웃, 친구 노릇을 다시 한 번 하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 아버지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잘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나는 새라 모노폴리의 암 주치의였던 마르쿠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는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우리도 10~20년을 생 각하고 있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게 단지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려우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데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우리는 기억하는 자아─이 경우에는 예측하는 자아─에 귀 기울여야 할까? 그렇다면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최악의 경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아니면 경험하는 자아에 귀 기울여야 할까? 이 경우 집으로 가기보다 수술을 받는다면, 다가올 시간 동안 평균적으로 고통을 덜 느끼게 될 것이고, 심지어 얼마 동안만이라도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우리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경험하는 자아─순간에 몰입하는 자아─와 달리 기억하는 자아는 기쁨의 정점이나 비참함의 심연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인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마지막 순간을 진정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물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용기란 이 두 가지 현실을 모두 인식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에게는 행동할 여지가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그럼에도 나는 의료 행위의 지평을 넓혀서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걸 돕는 일에까지 손을 뻗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렵다. 그 힘을 남용하게 될까 봐 염려되는 것이 아니다. 안락사에 의존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장맥주
“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수십 년 전 이 시스템이 정착된 후 별다른 저항 없이 사용 빈도가 상당히 크게 증가해 왔다. 그러나 2012년 현재 네덜란드인 사망자 35명 중 1명이 안락사를 선택한다는 사실이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실패의 척도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리수스
장맥주님의 대화: 써놓고 조금 망설이다가 올립니다. 저도 이번에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내가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도 안 돼 병원에서 퇴원을 이야기하더군요. 아내는 걷기도,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고요. 의사들이 딱히 이제는 더 해줄 게 없다고 하는데, 지난해 수술 경험이 없었다면 그 말을 ‘병원에서는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로 알아들었을 겁니다. 실제로는 ‘신경외과에서는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이더라고요.
재활의학과로 옮기면 입원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합병원 재활의학과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 입원 환자에게는 시간을 꽤 내주지만 통원 환자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재활의학과로 옮겨서 최대한 입원할 수 있는 추가 기간이 3주임을 알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지나자 아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푸념이라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아내는 점점 더 집에 가고 싶어 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그게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간절한 호소임은 저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1인실을 써도 병실 생활은 참 힘듭니다. ‘병원 와서 골병 든다’는 말이 뭔지 이제 확실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을 고집했습니다. 갑자기 벌어질지 모를 비상 상황이 너무 두려웠고 최대한 의사와 간호사 가까이에 있고 싶었습니다. 또 입원 환자와 통원 환자가 받는 재활 치료 시간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병원 생활이 아니라 수술 후유증이 우울감의 진짜 원인 아닐까, 집에 갔는데도 불만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혈압과 체온 체크하는 거나, 수련의가 수술 부위 소독하는 것도 왠지 꼭 필요한, 엄청나게 전문적인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해서 병원에 있자고 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아내는 몸을 가눌 힘도 없고 저는 건강한 데다 평소에도 성격이 집요하니까 사실상은 저의 뜻을 강요한 셈이었습니다(돌이켜보면 저희 결혼 생활이 내내 그랬던 거 아닌가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입원 2주가 지나자 아내가 우울감으로 못 견뎌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보드게임도 여러 종류 사고 배달음식도 자주 시켜먹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재활 치료 포기하고 퇴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 고민했습니다. ‘퇴원해도 괜찮아요’라는 의료진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들 눈에는 아내가 경증 환자로 보일 거라 여겼습니다. 잔인한 진실이지만 재활 병동의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분명 그랬고요.
재활이고 뭐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날에 퇴원 신청을 했고, 다음날 퇴원했어요. 집에 오자마자 밝아진 아내 표정과, 기력이나 식욕을 회복하는 정도에 깜짝 놀랐어요. 왜 퇴원을 그때까지 미루고 있었는지 제가 정말 한심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너무 미안했습니다. 하나 더 놀란 게 있습니다. 아내의 그런 변화와 무관하게, 집에 돌아오니 저도 마음이 밝아지고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저도 골병이 들어 있었더라고요.
병원이 뭘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저는 솔직히 대단하다,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그야말로 갈아서 훌륭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감탄합니다. 병원이 아니라 5성 호텔에서 지내도, 집이 아닌 곳에 살면 불편하고, 거기서 나갈 수 없다고 하면, 감시 아닌 감시까지 받으면 누구나 우울감에 휩싸일 테고요.
그런가 하면 제가 결과적으로 바보 같은 짓을 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 달 전으로 돌아가도 제 선택은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퇴원한다는 게 너무 도박 같았어요. 환자는 의사에게 여러 환자 중 한 사람일 뿐인데, 가족에게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라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얼마전 어머니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는데, 병원에서는 낙상을 염려해서 요양병원에 한달 입원하는 것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으로 가시기를 강력히 원하셔서 집으로 퇴원했습니다.
정말 염려와는 다르게 훨씬 빠르게 회복하셨어요. 여전히 기운없어 하시지만 병원에 게실 때에는 기억력이 나빠지신 것이 눈에 보였는데, 집에 오시고 나서 그런 증상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무료한 병원보다는 집의 일상에서 받는 적절한 인지적 자극과, 익숙한 환경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나저나 김새섬 대표님이 퇴원하시고 회복 중이라 하시니 소식에 너무 반갑습니다. 얼른 회복하셔서 오디세이 시즌2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만나고 싶습니다.
옆에서 많은 일 하시는 장맥주님도 건강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장맥주
“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문장모음 보기
리수스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 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고민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게 되면서, 아툴 가완디 작가와, 책을 같이 읽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그믐”에 정말 감사했어요. “Being mortal”이라는 원제를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지은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올려주신 난제(?)에 대해서 저도 얕은 생각이지만 적어봅니다.
(8) 인간의 품위, 참 어려운 정의지만, 저는 “인간다움”으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인간다움이라면 자율성, 타인과 자신에 대한 자비, 삶의 목적성을 가지고 주어진 생명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상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평생 자율성이라는 것을 꼭 붙잡고 산 사람이지만, 자율성이 손상될 때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고 과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9) 그래서 거동이 불편하고 생리작용을 타인의 도움을 받는 상태, 즉, 자율성이 극도로 제한되면 품위가 훼손될까 겁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율성은 그것으로 제한될 수 없는 훨씬 더 큰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신생아가 신체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주어진 발달적, 신체적, 환경적 조건 안에서 자율성을 지켜 나가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고통 안에서도 충분히 자율성, 연민, 목적성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인간다움을 가질 수 있기에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 현재 고통받는 지금 당장의 모습이 아닌, 그가 살아온 온 인생을 전체로 바라본다면, 외적으로는 현재 품위가 없어 보일지언정, 그의 품위는 사라질 수 없고 평가절하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가 스스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 모습을 품위없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10) 이 책에서 ‘죽는 자의 역할’ (dying role)이라는 표현이 제게 깊이 각인되었는데요, 이 죽어가는 임무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역할이 되겠지요. 정말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부하던 가난하던, 길던 짧던, 어떤 삶을 살았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죽는 임무는 ‘인간은,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모든 삶은 완벽하지 않다. 왕 같은 대우를 받던 사람도 결국 고통받으며 결국 사라진다. 그러니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잘 살아내라’는 교훈을 모든 인간이 반복적으로 다음 후세들에게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잠자듯이 작고하는 평안한 죽음으로 또는 고통 속에서 잘 견딘 투사로, 또는 외로울 수도 있는 모습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이든 전수된다면 죽는 임무를 잘 완수한 것으로 믿으려 합니다.
저도 늘 후회하고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는 결심을 반복하는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살아도 마지막에 또 남는 회한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이 누구나 가지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성이 생각합니다. 친한 친구 혹은 타인이 생의 막바지에서 후회와 용서를 구하면 제 스스로 그들에게 용서와 위로와 연민을 보여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줄 생각입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그래도 후회가 남는다면 스스로에게 자기자비를 베풀겠습니다.
리수스
ifrain님의 대화: '자율성'과 '고통'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던 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를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이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고통'이라는 부분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정말 겁이 나기도 한 부분이지만, 신체적 고통은 진통제들로 상당히 조절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인간의 존엄의 근간이 된다는 '자율성'이 내 의지 다르게 제한받을 때 내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 수치감, 죄책감을 어떻게 잘 견딜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었어요. 그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을 수용해 나가자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나 목적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리수스
히어로님의 대화: (8) 존엄은 저에게도 멀게만 느껴지는 개념이에요. 인간이란 존재자가 다른 생명체와 다르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인간 역시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체와 똑같지 않나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뭐 개는 개처럼 죽어도 된단 말이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존엄이나 품위나 저는 ‘인간다움’으로 이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인간답게 죽는다는 건 뭘까요? 솔직히 저는 죽음 앞에서 인간다움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여전히 막연하답니다. 오히려 인간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 정도로 해석해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다른 동물들은 아무렇게나 죽어도 되고, 인간은 우아하게 죽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거든요. 덧붙여 인간의 존엄, 품위, 인간다움은 살아 있을 때, 살아서 활동하고 자기 자신과 타자와 세상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태에서 발현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자들은 동일하지 않을까 해요. 존엄사 같은 말이 나온 배경은 아마도 스스로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하자는 인식에서 나온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존엄은 자유를 뜻하는 것일 테고,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본능을 초월하여 뭔가를 바라고 꿈꾸고 애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는 거겠죠.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가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도 언제나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고, 존엄하게 보이는 죽음이란 것도 죽어가는 사람의 관점인지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혹은 그 둘을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관점에서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기 때문에 그 자유의 실체에 얼마나 신뢰를 할 수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너무 미화시킨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고요. 정리하자면 인간의 품위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생생할 때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는 점,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결코 그 품위를 대변하지 못할 거라는 점,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체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9) 인간의 품위가 혼자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겠죠. 오히려 정직하게 도움 받아야 할 때 도움 받는 게 품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고통을 혼자 짊어지는 것도 결코 품위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고통을 견뎌내면서 또 함께 나누는 모습이 오히려 품위 있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품위라는 게 인간만이 가진 강함, 혹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자신만이 가진 어떤 장점 혹은 강점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예요. 약해지면 약해졌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하는 게 오히려 품위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이 심할 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안 아픈 척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픔을 표현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공유하는 게 품위 있는 모습 같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품위라는 건 어쩌면 어떤 선을 넘지 않는 도움 요청과 그 도움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행동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10) 저도 그 회한의 시간이 가장 큰 우려입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어차피 죽는 거 죽음을 너무 크게 보지도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런 혼자만의 고독한 회한의 오랜 기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같아요. 이런 말을 하니 갑자기 좀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제가 침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옆에서 있어줄까요? 단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인이라 신앙이 있어서 죽음과 내세에 대한 불안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사랑하는 사람이 끝까지 옆에 있어주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닌 함께. 이것만이 그 회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저도 품위를 인간다움으로 정의했는데, 먼저 쓰여진 글을 읽지도 않고 제 글을 올렸습니다. ㅜㅜ. 말씀하신 것에 정말 정말 공감합니다.
리수스
“ 자연의 한계에 도달한 지금,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원한 것은 평화로움이이었다.
And what he wanted for the final lines of his story, now that nature was pressing its limit, was peacefulness.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도서 증정 이벤트] 김봉중 교수 강력 추천! <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다산북스/책 증정] 인간 본성의 불편한 진실!『다정함의 배신』을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웰다잉 오디세이로 계속 이어집니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다잉 오디세이 2026] 6.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웰다잉 오디세이 2026] 5. 죽은 다음
천천히 읽어요
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안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 책 리뷰 <지금, 그리고 그때>안노란책 리뷰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 책 리뷰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 앤 드 마르켄안노란 책 리뷰 <메데이아> 에우리페데스안노란 책 리뷰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하임 마이어호프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3.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
아티초크의 멋진 책!
[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
‘인생 록 음악’ 추천!
[그믐밤] 49. 국제 암석의 날 기념, ‘인생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 면> 함께 읽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
동구권 SF 함께 읽어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