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히어로님의 대화: 네 독서의 일차목적은 유희라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 맘껏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에 관심 있으시면 함께 읽어요~ https://www.gmeum.com/gather/detail/3691
신청하였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합니다:)
히어로님의 대화: (1)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비밀리에 존엄사를 택하고 실천에 옮겼다면 버젓이 유서를 집에 두고 나오는 행동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집에 없으면 가족이 찾을 테고, 유서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그것을 읽고 경찰을 부르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좀 더 치밀하지 못했던 건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혹시 가족이 자신을 멈춰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건 아닐까요? 유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테면 우편으로 원하는 날짜에 배달되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홀로 공항에 가서 비행기까지 탑승한 걸 보면 여권 같은 문제도 처리할 수 있고, 금전적인 문제도 처리할 수 있는 분 같은데 종이 유서를 집에 놓아 두었다는 건 아무래도 자기를 멈춰달라는 신호로 저는 읽게 되네요. 그래서 저는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죽일 권리가 있듯이, 보란듯이 두고 간 유서를 보고 경찰에 신고할 권리도 가족에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홀로 비행기 타고 스위스까지 갈 수 있는 정도라면 폐섬유증이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높은 고도 비행기 안은 산소 농도가 떨어져서 저산소증에 빠져 위험할 수 있거든요. 만약 심각한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데도 항공사 관련 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행기를 혼자 타고 스위스를 향하는 건 비행기 안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죽음도, 가족이 원하는 아버지도, 둘 다 얻지 못한 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죠. (2)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앞 상황과의 차이는 나이와 질환 종류인 것 같은데요.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장맥주님도 60대 아버지를 80대 아버지로 변경하셨던 이유가 나이를 고려하신 처사겠죠.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었으니까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와 얼마 살지 않은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죠.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의 결정과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이십 대의 결정은 누구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진 않을 거예요. 이건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영역인 것 같고요. 또한 일부러 80대 아버지는 몸이 아프게, 20대 딸은 마음이 아프게 가정하셨는데, 이건 객관과 주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신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이란 게 사실 정확한 선이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우울증의 원인이 취업 실패라면 가족이 도와줘야 할 문제는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아가 취업의 유무와 상관없이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지, 성급하고 극단적인 죽음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게 아닐 테니까요 (어쩌면 이 존중은 방임과 무관심으로 읽힐 수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맨 정신이라고 하는 건 술 취한 사람이 정신이 멀쩡하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여요. 신뢰도가 떨어지죠. (3) 저는 두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공통된 요소는 당사자가 내린 결정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그 결정이 정말 확고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는 가정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이건 누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20대 딸은 살아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즉흥적으로 내린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죠). 죽음은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그 무엇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타자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도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타자의 죽음은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모순이라고 봐요. 자해하는 사람이 폭력을 휘둘러 타자를 다치게 한 사람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논리라고 보고요. 조력자살에 대한 책과 드라마가 제법 많이 나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낭만화시킨 면이 은근히 많다고 봐요.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죽음이라는 말 자체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요. 타자의 경우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도 나의 경우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가 되면 또 다른 판단을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 같아요. 어디에나 적용되는 답은 존재하지 않겠죠. 그러나 이런 질문과 답을 서로 나누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히어로 작가님 너무 반갑습니다 작가님 글 읽을때마다 참 좋아요.^^제가 1번 아버지의 의중을 놓쳤을 수 있겠네요 전 글을 읽을 때 가끔은 매직아이 보듯 흐린 눈으로 슬렁슬렁 넘길때가 있는데 깐깐하게 살피고 분석하신 작가님 글을 읽으며 저도 작가님처럼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을 이렇게 읽어봐야 하는데 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전 오늘부터 읽고 있어요 서문 읽고 있는데 죽음이란 무엇인가 보다는 편하게 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 새섬님 치료 잘 받으시고 팟캐스트에서 곧 씩씩한 목소리 듣기를 기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물론 앨리스 홉슨 할머니처럼 은퇴자촌 같은 곳으로 이주해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계속 자신이 살던 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자율성을 갖고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되었고 실현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는 크게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인류 역사상 나이 드는 일이 이보다 더 나은 시대는 없었다. 세대 간 힘의 균형이 재편되긴 했지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노인들은 자신이 누렸던 통제력과 지위를 일부 나눠 주었지만 완전히 잃은 게 아니었다. 현대화가 강등시킨 것은 노인들의 지위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였다. 현대화는 사람들에게─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더 많은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삶의 방식을 제공했다. 거기에는 다른 세대에게 덜 묶여 살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노인들에 대한 존중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존중으로 대체된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은 굉장한 축복이다. 사람들은 전에 없이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더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변화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길게 뻗은 내리막길을 걸으며 사는 것을 뭔가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 시기에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많은 경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그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새로 받아들여야 할 정상적인 상태이자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고 여기기보다 일종의 나약함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아흔일곱 먹은 노인이 마라톤을 완주한 일화 등을 들먹이며 그게 엄청난 생물학적 행운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다가 우리의 몸이 그런 환상에 부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떻게든 무언가 변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의학계 종사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료진은 내리막길에 들어선 환자에게 뭔가 고쳐 줄 수 있는 개별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의학의 발전은 두 가지 혁명을 가져왔다. 하나는 우리 삶의 궤적을 생물학적으로 변화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궤적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문화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7월 모임은 며칠 있다가 들어왔는데, 새섬님과 장맥주님의 근황이 많이 있어서 좋네요. 빨리 나으셔서 팟캐스트에서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HL7707님의 대화: 궁금한 것 하나 여쭤봅니다. 약간 사소한 것. 이 책과 직접적인 연관은 아니지만요. 그믐 새내기 회원으로서 여기저기 매력적인 독서모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에 동참하고 맥락을 알려면 정해진 기간에 책을 읽어야겠지요. 이를테면 제가 장강명작가님 좋아해서 @장맥주 회원님 구독했더니 금새 여기 저기 독서모임에 참가하는 상황에 제게도 알림이 오네요. 근데 이게 한편 신기합니다. 저는 책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있지만, 두 가지 이상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은 제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예를 들어 마치 이 영화보다가 중간에 자르고 저 영화보다가, 자르고 다시 이 영화로.. 장맥주님은 전업 문단차력사이시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은데 그래도 그믐이 장맥주/새섬님의 주도로만 꾸려지기 보다는 다른 독서광들이 엄청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는 분위기인게 참 좋은데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찌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이것도 취향 차이, 케바케일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의견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읽을 책이 점점 쌓여가서 빨리 다 보고 싶은 마음에 병렬독서 하고 싶은데 마음처럼은 아직 안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다 놓은 책 다 읽기만 해도 십년은 지날 것 같은데.. 그럼에도 요샌 괜찮은 책 안괜찮은 책 가리지 않고 너무 일찍 절판되는 것 때문에 괜찮으면 사다 두는 편이다보니, 점점 쌓여가네요. 와중에 "병렬독서"라는 고풍스러운 용어 하나 배워갑니다 ㅎ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 상태, 복용 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거북별85님의 대화: 그믐을 즐기는 법!!^^ 전 병렬독서를 하는 편입니다 실은 저도 예전에는 한권씩 읽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병렬독서로 살짝 바뀌었고 그믐을 놀이터 삼으면서는 완전히 병렬독서로 바뀌었습니다 그믐에는 책을 쓰신 작가님들께서 본인의 책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눠 주시는 방들이 있는데 이럴 때 29일동안에 한권만 읽기는 무척 힘듭니다😅😅 내가 뉴진스가 좋아서 그믐에서 29일동안 뉴진스랑 놀지만 얼마 뒤 옆방에서 아이유가 새로 방을 개설했다면 욕심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믐에서 놀다보면 작가님이 아니신듯 한데 책에 대한 내공이 깊으신 회원분들도 상당히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들과도 이야기 나누다보면 이방 저방 다니게되고 자연스럽게 이책 저책 동시에 읽게 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고 이야기 나누며 놀다보면 어느새 내가 병렬독서가였나 스스로도 모르게 바뀌어 있습니다😁 전 현실생활에서는 고지식하게 하나만 파는 경향인데 책읽을 때나 그믐에서는 문어다리인 편입니다 그래도 건전한 문어다리이지요~😁 그렇게 병렬독서로 읽다보면 생각지 않게 각각의 내용들과 감상들이 씨실 날실로 엮여 생각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나만의 멋진 옷으로 탄생되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전 본인이 어떤 형태의 독서가 즐거운지를 안다면 그 방법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권만 깊이 또는 여러번 읽기가 즐겁다면 그 방법이 맞습니다 그믐에서 <모집중>카테고리나 그믐 인별보시면 새롭게 열릴 방들에서 앞으로 열릴 방들을 소개해 주세요^^ (대표님 회복중이셔서 인별 업데이트는 힘들수 있지만은요^^;;) 혼자 면벽수행하듯 하는 독서방식도 좋지만 전 여러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버무려진 독서방법이 더 재미있습니다^^
아 맞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여기서 이곳 저곳 둘러보니 한 번에 한 가지씩으로 직렬독자인 저에게는 견디기 어려울만큼 강렬한 끌림이 있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살아있는(?) 당대의 작가님들이 직접 코멘트를 준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너무 좋네요. 그들은 거의 공인이 아니던가. 이렇게 여기서 날 것 그대로의 대화와 농담을 주고받고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염려가 들 정도로. 물론 작가님이 아니셔도 내공이 높은 분들이 많아서 끌림이 지속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안그래도 읽어야 할 책, 사두고 쌓아둔 책의 높이가 높아만 가고 와이프는 좁은 집에 더 이상 책을 들이지 말라고 혼내는데, 끊임없이 이런 저런 책이 시선을 사로잡으니 힘드네요. 또 전자책은 절대 못받아들이는 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미국 사회에서 노인들이 받는 대접에 대해 불만과 걱정이 많았지만, 할아버지가 더 전통적인 노후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이 아버지와 달리 집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향수에 젖어 시타람 할아버지 같은 노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패턴은 명확하다. 사람들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버릴 기회와 자원을 손에 넣는 즉시 떠나 버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1) 와... 이 뜨겁고 성실한 답변들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 논평할 자격은 없고, 그냥 저의 답변을 올려봅니다. 저는 @joystory 님, @탱구밤이엄마 님, @Nana 님, @다솜726 님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거 같아요. 80대 아버지의 경우에는 신고하지 않고, 20대 딸의 경우에는 신고하는 걸로요. (어쩌면 @내일부터 님처럼, 죽음을 막기 위해서가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대화하기 위해 아버지의 경우도 신고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하는 걸로요.) 그런가 하면 @Lulurala 님처럼 제가 저 80대 남성의 상황이라면 가족들이 신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Lulurala 님 말씀대로 이중적이죠. 이중성과 비일관성이 겹겹이 쌓여 있네요. @마키아벨리1 님처럼 제 가족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봤는데, 다행히 그때만큼은 그나마 일관되게, 80대 노인의 결정이라면 존중하고 20대 청년의 결정이라면 무시할 거 같습니다. 20대 청년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이기도 하고 20대라는 나이 때문이기도 한데, 후자의 요소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joystory 님처럼 한참 고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탱구밤이엄마 님처럼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아마 지금 글로 쓴 것과는 다르게 행동할 거 같습니다. 결국에는 @분홍하늘 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따라 결정하게 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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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님의 대화: (1) 와... 이 뜨겁고 성실한 답변들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 논평할 자격은 없고, 그냥 저의 답변을 올려봅니다. 저는 @joystory 님, @탱구밤이엄마 님, @Nana 님, @다솜726 님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거 같아요. 80대 아버지의 경우에는 신고하지 않고, 20대 딸의 경우에는 신고하는 걸로요. (어쩌면 @내일부터 님처럼, 죽음을 막기 위해서가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대화하기 위해 아버지의 경우도 신고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하는 걸로요.) 그런가 하면 @Lulurala 님처럼 제가 저 80대 남성의 상황이라면 가족들이 신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Lulurala 님 말씀대로 이중적이죠. 이중성과 비일관성이 겹겹이 쌓여 있네요. @마키아벨리1 님처럼 제 가족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봤는데, 다행히 그때만큼은 그나마 일관되게, 80대 노인의 결정이라면 존중하고 20대 청년의 결정이라면 무시할 거 같습니다. 20대 청년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우울증이라는 병 때문이기도 하고 20대라는 나이 때문이기도 한데, 후자의 요소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joystory 님처럼 한참 고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탱구밤이엄마 님처럼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아마 지금 글로 쓴 것과는 다르게 행동할 거 같습니다. 결국에는 @분홍하늘 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따라 결정하게 될 거 같습니다.
(2) 도대체 왜? 저의 생각은 ‘죽을 권리’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혹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히어로 님 말씀처럼 저도 요즘의 대중문화, 혹은 비전문가와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는 소셜미디어에서의 논의가, 아직까지는 도입되지 않은 이 가상적 권리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근간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도 나왔듯이, 개인의 독립성을 찬미하는 현대 사회의 풍조가 있는 것 같고요. 더 나아가 현대의 많은 진보 운동이 욕망을 권리로 바꾸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도 해봅니다. 저는 존엄하게 죽고 싶습니다. 존엄하게 죽고 싶어 하는 타인의 욕망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걸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침해 받을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침해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어떤 성인이 그 같은 권리를 주장할 때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그 결정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말일까? 80대 폐섬유증 환자의 선택이든, 20대 우울증 환자의 선택이든 상관없이?
장맥주님의 대화: (2) 도대체 왜? 저의 생각은 ‘죽을 권리’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혹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히어로 님 말씀처럼 저도 요즘의 대중문화, 혹은 비전문가와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는 소셜미디어에서의 논의가, 아직까지는 도입되지 않은 이 가상적 권리를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근간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도 나왔듯이, 개인의 독립성을 찬미하는 현대 사회의 풍조가 있는 것 같고요. 더 나아가 현대의 많은 진보 운동이 욕망을 권리로 바꾸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도 해봅니다. 저는 존엄하게 죽고 싶습니다. 존엄하게 죽고 싶어 하는 타인의 욕망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걸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침해 받을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침해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어떤 성인이 그 같은 권리를 주장할 때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그 결정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말일까? 80대 폐섬유증 환자의 선택이든, 20대 우울증 환자의 선택이든 상관없이?
(3)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죽을 권리’라는 용어를 쓰기 망설여지게 되더라고요. 존엄한 죽음이 결혼이나 연애처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욕망을 가지는 사안인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걸 권리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겠다 싶었습니다. ‘개인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 연애할 자유를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개인에게는 그의 존엄을 위해 연애할 권리가 있으며 사회가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이지요. 전자는 국가의 비간섭을 요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의 예외 없는 서비스 제공 보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존엄한 죽음에 있어서도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청구권을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인데, 이게 지금 섞여서 논의되는 거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조차 자기 코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강제급식을 당해야 합니다. 저는 이게 국가가 개인의 몸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거라 봅니다. 근데 ‘내 몸에 관을 넣지 말라’는 요구를 조력 자살과 한데 묶어 죽을 권리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고 돌아 8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다시 모르겠다는 결론이... ^^;;;)
거북별85님의 대화: @세실 님의 시어머니의 오랜 병간호와 최근 친정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일로 상심이 크실텐데 천천히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 뒤에 한동안 무척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픈 아빠와 병간호하는 엄마가 가장 힘드시니 제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ㅜㅜ 2)번의 딸은 혹여라도 경험부족으로 삶의 우선가치 설정에 부족함있지 않을까 싶은데 1)번 아버지는 앞에 제가 언급했지만 '잠수이별'도 아니고 가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으신거 같습니다 ㅜㅜ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친정엄마가 1주일 후 돌아가신 것이 10년 넘은 일인데 그때는 혼자 남으신 아버지때문에 마음놓고 슬퍼할 수도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지나도 슬픔은 옅어지는 것이지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작년 연말에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겪은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떠오릅니다. 미리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생각하게 되네요.
장맥주님의 대화: (3)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죽을 권리’라는 용어를 쓰기 망설여지게 되더라고요. 존엄한 죽음이 결혼이나 연애처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욕망을 가지는 사안인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걸 권리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겠다 싶었습니다. ‘개인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 연애할 자유를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개인에게는 그의 존엄을 위해 연애할 권리가 있으며 사회가 그걸 인정해야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이지요. 전자는 국가의 비간섭을 요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의 예외 없는 서비스 제공 보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존엄한 죽음에 있어서도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청구권을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인데, 이게 지금 섞여서 논의되는 거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조차 자기 코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강제급식을 당해야 합니다. 저는 이게 국가가 개인의 몸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거라 봅니다. 근데 ‘내 몸에 관을 넣지 말라’는 요구를 조력 자살과 한데 묶어 죽을 권리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고 돌아 80대 아버지와 20대 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다시 모르겠다는 결론이... ^^;;;)
일단 역시 장맥주님 너무 조리있게 말씀 아니 글 잘 쓰시고 제가 감히 다 소화하고 이어서 의견개진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한 가지 다음 표현 이거는 사실이 아닐걸요. 지금 한국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조차 자기 코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강제급식을 당해야 합니다 연명의료법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 하더라도 산소 물 영양분 공급은 지속돼야 한다는 문구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아마 호스피스 담당의사나 완화의료전문가라면 대개 콧줄 싫어할겁니다. 영양분은 콧줄 끼지않고 정맥주사로도 공급은 되고 무엇보다도 너무 힘들거든요. 호스피스완화의료 그리고 연명의료 유보의 핵심가치는 환자가 고통받는걸 줄여주자는거라서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원칙위배나 파격도 얼마든지 성립이 됩니다. 필요하면 삽입할수도 있겠지만 다 떠나서 우선 콧줄을 환자가 빼달라는데 안됩니다 하셔야 합니다 하는 경우는 아마 호스피스기관에서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그렇게까진 안할거라서요. 마찬가지로 이 책도 나온지 아마 한 10여년 되는거 같아요. 여기서 비판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요새는 그지경까지는 아닌 점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개선할 부분도 산너머 산이지만. 여튼 콧줄 부분은 안심하세요! 이 부분 영양분 공급으로 못박은 문구 법개정도 추진 중입니다.
HL7707님의 대화: 일단 역시 장맥주님 너무 조리있게 말씀 아니 글 잘 쓰시고 제가 감히 다 소화하고 이어서 의견개진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한 가지 다음 표현 이거는 사실이 아닐걸요. 지금 한국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조차 자기 코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강제급식을 당해야 합니다 연명의료법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 하더라도 산소 물 영양분 공급은 지속돼야 한다는 문구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아마 호스피스 담당의사나 완화의료전문가라면 대개 콧줄 싫어할겁니다. 영양분은 콧줄 끼지않고 정맥주사로도 공급은 되고 무엇보다도 너무 힘들거든요. 호스피스완화의료 그리고 연명의료 유보의 핵심가치는 환자가 고통받는걸 줄여주자는거라서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원칙위배나 파격도 얼마든지 성립이 됩니다. 필요하면 삽입할수도 있겠지만 다 떠나서 우선 콧줄을 환자가 빼달라는데 안됩니다 하셔야 합니다 하는 경우는 아마 호스피스기관에서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그렇게까진 안할거라서요. 마찬가지로 이 책도 나온지 아마 한 10여년 되는거 같아요. 여기서 비판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요새는 그지경까지는 아닌 점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개선할 부분도 산너머 산이지만. 여튼 콧줄 부분은 안심하세요! 이 부분 영양분 공급으로 못박은 문구 법개정도 추진 중입니다.
헛... 감사합니다. ^^;;; 근데 콧줄 관련해서는 최근 기사들도 이렇게 설명하는데... 실제 현장은 좀 다른 걸까요? 올해 5월 한겨레 기사 <말기 환자의 제거 안 되는 ‘콧줄’, 연명의료 제도 모순 드러내다> https://www.hani.co.kr/arti/hanihealth/medical/1260946.html 올해 3월 동아일보 기사 <“거부도 못해” 요양병원 ‘콧줄 환자’ 8만명>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60303/133450105/2
의견 또 추가합니다. ^^;;; 생각이 막... 휙휙... 바뀌고 떠오르고 그렇네요. (4) 죽을 권리를 개념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어떤 성인이 죽을 권리를 주장할 때 그 사람이 그런 권리를 행사할 적절한 상황에 있는지를 타인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되겠지요. @borumis 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정신과 의사라도 판단하기 어려울 거 같고요. 이 개념을 현실로 옮기려면 어떤 위원회와 기준을 만들게 되겠고 실제로도 스위스나 벨기에의 조력자살 관련 기관에 그런 위원회와 기준이 있을 걸로 예상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위원회와 기준들이 좋은 삶, 좋은 죽음이라는 개념에 의도치 않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드네요. 각자가 내면에서 고민해야 할 사항들을 그 기준이 대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HL7707님의 대화: 일단 역시 장맥주님 너무 조리있게 말씀 아니 글 잘 쓰시고 제가 감히 다 소화하고 이어서 의견개진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한 가지 다음 표현 이거는 사실이 아닐걸요. 지금 한국에서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한 환자조차 자기 코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강제급식을 당해야 합니다 연명의료법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 혹은 유보 하더라도 산소 물 영양분 공급은 지속돼야 한다는 문구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아마 호스피스 담당의사나 완화의료전문가라면 대개 콧줄 싫어할겁니다. 영양분은 콧줄 끼지않고 정맥주사로도 공급은 되고 무엇보다도 너무 힘들거든요. 호스피스완화의료 그리고 연명의료 유보의 핵심가치는 환자가 고통받는걸 줄여주자는거라서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원칙위배나 파격도 얼마든지 성립이 됩니다. 필요하면 삽입할수도 있겠지만 다 떠나서 우선 콧줄을 환자가 빼달라는데 안됩니다 하셔야 합니다 하는 경우는 아마 호스피스기관에서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러니 다행입니다. 그렇게까진 안할거라서요. 마찬가지로 이 책도 나온지 아마 한 10여년 되는거 같아요. 여기서 비판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요새는 그지경까지는 아닌 점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개선할 부분도 산너머 산이지만. 여튼 콧줄 부분은 안심하세요! 이 부분 영양분 공급으로 못박은 문구 법개정도 추진 중입니다.
근데 @HL7707 님 적어주신 말씀 읽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 저는 사실... 아내와 콧줄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호스피스에 갔는데 거기서 콧줄 꽂으면 어떻게 하느냐. 둘이 합의한 건, 일단 일주일만 해보고, 일주일이 지나도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법이고 기관 방침이고 뭐고 뽑아준다는 거였습니다. 기관 퇴소를 하더라도... 이후로 병원에서 콧줄 하신 분들 유심히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HL7707님의 대화: 좋은 책을 선정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지요. 종양내과 의사이고 자문형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죽음이라는 주제는 그만큼 어려워서 나 이런거 좀 안다, 이런 생각 해봤다, 이런 경험 한다 하는 식으로 몇자 보태는게 엄청나게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가 말기질환자나 임종에 이른 분들을 잘 케어하는 의사는 아닌 것 같고.. 호스피스는 정말 아무도 쉽게 나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고의 가치를 지닌 의학의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분야입니다. 가끔 어떤 유명한 사람의 이력을 소개한 글을 보면, 이러저러한 업적을 남기고 이러저러하게 살다가, 마지막 한줄에 구강암으로 죽었다, 무슨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간단히 한줄로 마무리되는걸 볼때마다 저는 그 한줄 위아래에 생략된 많은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사실 거기가 진짜인데, 거기가 인생의 핵심 결말일수도 있는건데. 이번달에 읽은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에도 약간 그렇게 되죠, 그냥 간단히 생략되어 다음 장에는 그가 떠난걸로 나옵니다. 사실 거기가 제일 힘든 부분일건데. 그렇다고, 삶의 마지막에 이른 사람에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의사나 가족이나 심지어 환자 본인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 같은 책 한번 읽어봐라, 연명의료계획서 왜 안쓰냐, 무의미한 연명의료 왜 한다고 고집하느냐, 이게 환자의 삶의 질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아느냐, 선진국에서는 이제 이런건 안한다, 마냥 이렇게 비난할수만도 없습니다. 그들이 처한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된거다, 이렇게 간단하고 쿨하게 말할 수도 없는거거든요. 물론 의료인으로서는 이제 가실 준비할 때가 됐다고 설득하지만.. 정말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이런 책을 접하고 또 자신과 자신 가족의 죽음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예행연습한 사람이 그나마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죽음은 누구에게나 처음이자 단 한번 겪는 일이기에 아무리 생각해보았더라도 막상 닥치면 완전히 달라서 아무 효과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이 때, 자기가 죽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보호자이고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누군가가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나는 어떠하여야 할지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상당수의 사람은 자기만 죽으면 간단히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역할까지 결국 1인 2역을 한번쯤 경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자신의 죽음은 다소 쿨하게 받아들일지라도 후자의 역할은 정말 힘들어하는게 인지상정이니까요. 아직 읽지 않은 여러 책들이 점점 쌓여가는 상태에서,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을 여유가 될지 걱정이지만 이번에 이렇게 선정하여 주신 김에 재독하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HL7707 선생님, 저는 작년 즈음에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이 쓰신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아주 감동적으로, 공부하는 기분으로 2회독 했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정말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책 덕분에 삶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죽음과 그 이후 남은 가족들의 얼굴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휴머니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신 저희 아버지 생각도 났고요. 그 때는 경황이 없어서 온 가족 모두 어떻게든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하고 막으려고만 했던 것이 후회로 남았습니다. 지난번 @장맥주 작가님께도 말씀드렸듯이, 폴 칼라니티의『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으면서는 오열을 했지요. 저도 폐암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라 감정 이 입이 많이 되어버렸어요. 특히 그의 젊음과 죽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에필로그를 읽을 때는 더 힘들었었죠. 그래도 남겨진 가족 입장에서 함께 정리해간 시간이 있었다는 건 어찌 보면 행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은미 작가의 『아빠의 빈구두를 신었습니다』또한 여운이 많이 남았던 책입니다. 저자의 아법지는 목사이자 폐암 환자로 수십년 간 살아온 발자취를 정리하고 폐암 환자들을 위해 아름다운 마을을 조성하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제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15년을 지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죽음에 대해 잘 수용하고 삶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에게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또 저에 대해 생각하면 '웰다잉'을 하나씩 실천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장맥주 작가님, 바쁘다는 핑계 속에서 계속 미뤄두었던 웰다잉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할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헛... 감사합니다. ^^;;; 근데 콧줄 관련해서는 최근 기사들도 이렇게 설명하는데... 실제 현장은 좀 다른 걸까요? 올해 5월 한겨레 기사 <말기 환자의 제거 안 되는 ‘콧줄’, 연명의료 제도 모순 드러내다> https://www.hani.co.kr/arti/hanihealth/medical/1260946.html 올해 3월 동아일보 기사 <“거부도 못해” 요양병원 ‘콧줄 환자’ 8만명>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60303/133450105/2
현행법상 비위관삽입을 강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보다 흔히 마주치는 상황은, 곡기를 끊은 환자의 상태를, 가족 보호자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여기서 이제는 거의 클리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대사가 자주 등장 합니다 - (환자에게) 이거라도 먹어야지! 한 숟갈이라도 조금만 먹어봐! - (의사에게는) 아니 환자가 며칠 째 먹지를 못하는데 보고만 있나요? 굶겨 죽일 작정인가요) 어쩔 수 없이 각종 영양제를 주렁주렁 다는 상황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관 삽입까지 하는 경우는... 사실 장폐색으로 인해 뭘 넣어주려고 해도 안되는 상황도 많구요. 호스피스기관 의료진들은 대개 이런 경우 이렇게 설명드립니다. (말기암환자의 경우) 환자가 굶어서 돌아가시는게 아닙니다. 자연히 임종 때가 되면 원하는 음식, 식욕이 서서히 없어집니다. 먹지 못하고 먹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주입하는 것은 몸을 괴롭게 만들 뿐입니다. 제가 유난히 깨어있어서, 특별히 환자 편에서 생각해서, 훌륭한 인격자여서 이렇게 말씀드리는게 아니라 그냥 호스피스 완화의료 분야에서는 일반원칙 정도로 받아들여집니다. 물론 개별 환자의 세세한 임상상황은 다양하기에 비위관 삽입하면 그게 전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영양분 공급 운운 하느라, 의사가 강제로 관 삽입한다거나 혹은 의사도 가족도 원하지 않는데 법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아무도 원치 않는 비위관 삽입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콧줄 때문에 퇴소까지도 불사하리라 각오하셨다니 뭐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한켠 마음이 아픕니다. 호스피스기관은(입원형 가정형 자문형 모두) 환자가 원하는대로 하는 거라고 보시면 되고 , 또한 그 과정에서 오히려 환자가 혹은 보호자가 잘 모르고 해를 입을 조치를 원한다면(eg, 보호자가 비위관 삽입해서라도 영양분 넣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 이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설명하고 환자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고자 할 겁니다. 두번째 기사는 아마 호스피스전문기관이 아니라 요양병원 상황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의사들이라도 사실 말기암이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돌봄에는 익숙지 않아서 그냥 통상적인 환자한테 하던 대로(밤새 바이탈 체크 한다든지, 하루에 몇번씩 소변 얼마 봤는지 적어내라, 아침마다 피 검사하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수십년간 먹던 고지혈증 약 관절염약 고혈압약 심장약 계속 드시게 둔다든지) 하는 수도 종종 있습니다. "자문형" 호스피스는 바로 이렇게 호스피스완화의료파트가 아닌 진료과에 재원 중인 말기질환자와 그들의 주치의에게 호스피스 개념과 호스피스적 중재를 자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여러 진료과가 다 같이 존재하고, 장기입원은 다소 어려운 대학병원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고, 팟캐스트 듣다보니 호스피스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장맥주님이 입원형 가정형은 알겠는데 자문형은 뭐지 하고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던 대목이 생각나서 덧붙여 봅니다. 어휴 또 뭐 많이 아는 척 말이 길어졌네요. 이때다 하고 나타나서 엣헴 이건 그게 아니고 사실은 이런 저런거구요 하는 식으로 말 많이 하는 거 자제하려고 했는데 제 안에 또 누굴 자꾸 가르치려 드는 습성이 도졌나봅니다. 이 글만 해도 쓰다보니 허점이 보여서 수정을 몇번이나 하는 중인지. 이제 좀 조용히 책이나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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