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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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목격했다. 아버지는 막 임기가 시작된 로터리 클럽 지역 회장 업무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그 일에 전적으로 몰두한 아버지는 이메일 서명을 '아트마람 가완디, M.D.'에서 '아트마람 가완디, D.G.'로 바꾸기까지 했다.(M.D.는 Medical Doctor의 약자, D.G.는 지역 회장이라는 뜻을 지닌 District Governaor의 약자다.) 아버지는 평생 지켜 왔지만 이제는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는 정체성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어 둔 삶의 한계선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다.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간다는 건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제어할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p.320~321,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ㅋㅋㅋㅋㅋ 명성은 1990년대부터 들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볼 마음은 들지 않는 영화들이네요. 무려 4편까지 나온 시리즈인데 한국에는 1편부터 순서대로 <토마토 공격대>, <토마토 특공대>, <토마토 대소동>, <토마토 대소동 2>라는 이름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
이런 영화는 토마토 가문에서 명예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완전히 마비된 상태, 전적으로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와 삶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기를 원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2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그러나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나 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27,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그녀의 상담은 내가 환자들과 여태껏 해 온 상담, 그러나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게 된 상담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이 의사는 정보를 제공하고 아버지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빨간 약을 원하십니까, 파란 약을 원하십니까? 하지만 각 선택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32,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HL7707님의 대화: 저도 올해로 암환자를 진료한 경력만 해도 15년, 내과의사로 일한 것은 22년차이지만, 여전히 암이 진행하여 임종이 머지 않았음을 고지하는 것은 매 환자마다 다르고 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특히 항상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cjlove52 님이 수집해주신 이 문장이 저도 기억에 남았고, 오늘 낮 외래 시간에 이 표현을 써보았습니다. 최근까지 했던 항암에 반응이 없고 암이 더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이었고 다른 약을 바꿔서 할 지 그냥 그만 항암을 관둬도 그게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는 몸 상태의 환자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써볼 수 있는 약(일반적으로 항암제는 제일 먼저 쓰는 약이 제일 좋은 약이고 후순위로 갈수록 치료 반응율이 높지 않고, 사실 거의 이 정도 우선순위의 약을 쓸만큼 환자분들이 견디기도, 생존하기도 쉽지 않은데) 한 가지가 더 남아는 있는 상태여서 쓸려면 쓸 수는 있지만 사실상 약효과가 유의미하게 있으리라 보기는 통계적으로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아마 책 어딘가, 그리고 여기서 문장수집을 누군가 해주신 것 중에 의사의 40%가 효과가 없으리라 여겨지는 처방을 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아마 이게 효과가 없는 줄 알면서 일부러 빌런처럼 약을 줬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오늘 제 환자 사례 같은 경우에 해당할 겁니다. 아마도. 어차피 유감입니다, 이런 말은 외교나 정치인들이나 하는 말이지 실제 구어에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이런식으로 말해보았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두분(환자와 배우자 보호자)께서는 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으세요? 예를 들어 어떻게든 치료를 지속한다 할 수도 있고,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사실 더 효과가 없고 이제 아까 설명드린 새 약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면 차라리 이제 그만 항암하고 좀 편하게 쉬는 것도 한 방법일 수도 있구요." 아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 약이 있는데 안할 수가 있나요. 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겁니다. 항암치료 계속 해야죠. 이 답변이 꼭 틀렸다고는 절대 할 수 없지요. 개인적인 판단은 할 수야 있지만, 환자/가족 입장에서 어떤 의견이나 입장이 맞다 틀렸다는 식으로 논하는 것은 성립되기 어려운 논의입니다. 어느 누가, 별것 아니라는 듯 다 내려놓고 이제 편하게 숨쉬다 갈래요,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 책과 현실은 또 다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냥 설명을 죽 제시하고 다음에 보자고 말하는 대신 뭘 원하고 제일 중요하게 여기느냐는 (개방형의) 질문을 하는 바람에 면담과 설명이 35분을 넘어가고, 그분은 결국 끝까지 결사항전 태세로 항암제를 다시 받아갔습니다. 덕분에 2시 5분에 예약된 바로 그 다음 환자는 2시 45분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고 부산에서 올라온 그는 기차 시간을 놓쳐서 취소했다며 밖에 애먼 간호사에게 컴플레인을 하고 뒤이어 진료지연이 50분 가까이 되면서 저도 식은땀 흘려가며 조바심 내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분명한건 정답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마치 부질없는 항암치료는 멋지게 관두고 짧은 여생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러 어디론가 떠나든지 아니면 집에서 안락하게 지내야 맞는 것 같지만, 현실의 환자들이 원하는건 또 많이 다릅니다.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한참 잘못 생각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구요. 제가 이런 저런 쪽으로 유도해도 주관이 확고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체중이 20 kg 씩 빠지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내 피곤해서 누워지내는 상태에도 꿋꿋하게 항암치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라도 정말 임종직전 상태가 된다면 자의든 타의든 포기할 수 밖에 없지만, 아직 일상생활이 그나마 유지되는 때에 크게 도움이 안될 것 같은 확률이 높은 치료를 관두고 집에서 편히 지내시라는 권고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분도 강릉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거든요. 지금까지도 비급여 고가 항암치료를 해오시던 상황이었고. 어쩌면 너무 임종에 임박하기까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학적 충동을 자제하려는 인식확산이 의료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국민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cjlove52 님 말씀처럼 @HL7707 님께서 단지 하나의 병 케이스로만 보지 않으시고, 환자의 여생과 삶에 대해 고려해주신 그 귀한 진료 상담시간에 저 또한 울컥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고, 과거의 보호자/미래의 환자/보호자로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수년 전 직계가족도 면회 불가였던 코로나19 시기에 비암성 말기 중증질환자의 상주보호자였던 저는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문구를 실제로 들었었습니다. 산소포화도가 위험 수치여서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해도 인공호흡기로 연명할 뿐이라는 의견을 말씀하신 3차병원 임상조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문구였습니다. 한편, 회진을 늘 함께 오셨던 또 다른 주치의 선생님은 "중환자실은 결코 환자가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고 집중치료를 받아서 일반병실로 살아 돌아오는 그런 곳이라고, 현재 어머님은 산소포화도가 위험수치이기는 하지만, 집중치료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집중치료를 받아 회복하시면 질병치료 가능한 확률이 높으니 이대로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문구에 저는 순간 매우 당혹스럽고 머리속이 새하애졌지만, 두 분 선생님에게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류를 작성해놓지는 않으셨지만, 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제 엄마가 선생님 본인의 가족이라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 시점 이후 모든 치료를 중단하실 건가요?" 그 당시 두 분 모두 꽤 오랜 시간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상담을 해 주셨고, 그 상담시간 자체만으로도 불안 공포 중압감에 휩싸여버린 보호자에게는 정말이지 천군만마 큰 위안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죽음 공부를 해 오면서 저희 엄마는 말기·임종기 구분이 모호한 중증질환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류에 의한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기 진단이 내려진 환자에 국한된다는 것 때문에, 두 분 선생님의 견해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여년전 처음 접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2차 완독을 앞둔 이 시점에 와서야, 그래도 3차병원 입원기간까지는 상주보호자와 라포를 형성한 의료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회복과 후퇴를 반복하며 매우 느린 하향선을 그리며 사그라든 비암성 말기 중증질환자였던 저희 어머니에게 정성스런 돌봄(Care)을, 그 당시/현행 의료법상으로는 받을 수 없었던 완화의료 돌봄(Care)을 여러 다양한 대안들로나마 제공해주셨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히 요청드리는 듯 하여 매우 송구하지만, @HL7707 님께서 앞으로 단 1퍼센트라도 이상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닿으신다면 그 귀했던 진료 상담시간을 재차 삼차 N차 해 주시는 것 또한 대국민 캠페인 못지 않은 선한 영향력이 널리널리 퍼져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P.S. @HL7707 님의 팩트 체크와 진심어린 조언들 늘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HL7707님의 대화: 저도 올해로 암환자를 진료한 경력만 해도 15년, 내과의사로 일한 것은 22년차이지만, 여전히 암이 진행하여 임종이 머지 않았음을 고지하는 것은 매 환자마다 다르고 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는 특히 항상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cjlove52 님이 수집해주신 이 문장이 저도 기억에 남았고, 오늘 낮 외래 시간에 이 표현을 써보았습니다. 최근까지 했던 항암에 반응이 없고 암이 더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이었고 다른 약을 바꿔서 할 지 그냥 그만 항암을 관둬도 그게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는 몸 상태의 환자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써볼 수 있는 약(일반적으로 항암제는 제일 먼저 쓰는 약이 제일 좋은 약이고 후순위로 갈수록 치료 반응율이 높지 않고, 사실 거의 이 정도 우선순위의 약을 쓸만큼 환자분들이 견디기도, 생존하기도 쉽지 않은데) 한 가지가 더 남아는 있는 상태여서 쓸려면 쓸 수는 있지만 사실상 약효과가 유의미하게 있으리라 보기는 통계적으로 어려운 경우였습니다. 아마 책 어딘가, 그리고 여기서 문장수집을 누군가 해주신 것 중에 의사의 40%가 효과가 없으리라 여겨지는 처방을 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아마 이게 효과가 없는 줄 알면서 일부러 빌런처럼 약을 줬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오늘 제 환자 사례 같은 경우에 해당할 겁니다. 아마도. 어차피 유감입니다, 이런 말은 외교나 정치인들이나 하는 말이지 실제 구어에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이런식으로 말해보았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두분(환자와 배우자 보호자)께서는 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으세요? 예를 들어 어떻게든 치료를 지속한다 할 수도 있고,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사실 더 효과가 없고 이제 아까 설명드린 새 약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면 차라리 이제 그만 항암하고 좀 편하게 쉬는 것도 한 방법일 수도 있구요." 아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 약이 있는데 안할 수가 있나요. 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겁니다. 항암치료 계속 해야죠. 이 답변이 꼭 틀렸다고는 절대 할 수 없지요. 개인적인 판단은 할 수야 있지만, 환자/가족 입장에서 어떤 의견이나 입장이 맞다 틀렸다는 식으로 논하는 것은 성립되기 어려운 논의입니다. 어느 누가, 별것 아니라는 듯 다 내려놓고 이제 편하게 숨쉬다 갈래요,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다만 한편으로 책과 현실은 또 다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냥 설명을 죽 제시하고 다음에 보자고 말하는 대신 뭘 원하고 제일 중요하게 여기느냐는 (개방형의) 질문을 하는 바람에 면담과 설명이 35분을 넘어가고, 그분은 결국 끝까지 결사항전 태세로 항암제를 다시 받아갔습니다. 덕분에 2시 5분에 예약된 바로 그 다음 환자는 2시 45분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고 부산에서 올라온 그는 기차 시간을 놓쳐서 취소했다며 밖에 애먼 간호사에게 컴플레인을 하고 뒤이어 진료지연이 50분 가까이 되면서 저도 식은땀 흘려가며 조바심 내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분명한건 정답은 없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마치 부질없는 항암치료는 멋지게 관두고 짧은 여생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러 어디론가 떠나든지 아니면 집에서 안락하게 지내야 맞는 것 같지만, 현실의 환자들이 원하는건 또 많이 다릅니다.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한참 잘못 생각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구요. 제가 이런 저런 쪽으로 유도해도 주관이 확고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체중이 20 kg 씩 빠지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내 피곤해서 누워지내는 상태에도 꿋꿋하게 항암치료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라도 정말 임종직전 상태가 된다면 자의든 타의든 포기할 수 밖에 없지만, 아직 일상생활이 그나마 유지되는 때에 크게 도움이 안될 것 같은 확률이 높은 치료를 관두고 집에서 편히 지내시라는 권고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분도 강릉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거든요. 지금까지도 비급여 고가 항암치료를 해오시던 상황이었고. 어쩌면 너무 임종에 임박하기까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학적 충동을 자제하려는 인식확산이 의료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국민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러저러한 상황에 정답은 없지만, 임종기 의료에 대해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국민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HL7707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지난 주 @꽃의요정 님도 언급해주신 <생로병사의 비밀 1000회 특집 1부>에 소개되었던 내용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죽음 인식 개선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health/pc/board.html?bbs_loc=T2002-0429-04-185153,read,,342,1499346&smenu=9725de 죽음 인식 개선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은 죽음 임종 사별 인식 개선 주간으로, 2009년부터 매년 5월 일주일간 영국 전역에서는 데스카페를 비롯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행사가 수백개가 열리는 등 지역 사회와 의료계가 함께 만드는 전국적인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노퍽 호스피스 자비로운 공동체 개발팀장The Norfolk Hospice Compassionate Communities) 한국에서는 가정의 달인 5월에 각종 가족행사로 심신이 지쳐만 가고, 정작 가족 간의 중요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연례행사로는 "죽음이야기주간" 정도가 검색되는데, 국내에도 이미 저희가 모르는 죽음 인식 관련 캠페인이 있을까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22205 (죽음이야기주간)
그믐30님의 대화: 이러저러한 상황에 정답은 없지만, 임종기 의료에 대해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국민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HL7707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지난 주 @꽃의요정 님도 언급해주신 <생로병사의 비밀 1000회 특집 1부>에 소개되었던 내용 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죽음 인식 개선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health/pc/board.html?bbs_loc=T2002-0429-04-185153,read,,342,1499346&smenu=9725de 죽음 인식 개선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은 죽음 임종 사별 인식 개선 주간으로, 2009년부터 매년 5월 일주일간 영국 전역에서는 데스카페를 비롯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행사가 수백개가 열리는 등 지역 사회와 의료계가 함께 만드는 전국적인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노퍽 호스피스 자비로운 공동체 개발팀장The Norfolk Hospice Compassionate Communities) 한국에서는 가정의 달인 5월에 각종 가족행사로 심신이 지쳐만 가고, 정작 가족 간의 중요한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연례행사로는 "죽음이야기주간" 정도가 검색되는데, 국내에도 이미 저희가 모르는 죽음 인식 관련 캠페인이 있을까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22205 (죽음이야기주간)
호스피스의 개념이 영국에서 처음 제대로 태동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그만큼 의료가 발전된 국가이기도 하고 선진국인만큼 먹고사는 문제를 지나 삶의 질과 더 나은 죽음 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꽃의요정님의 대화: 그 20여분이 20년 같은 느낌이었을 거라 생각돼요. 제가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연명치료도 안 하겠다고 하셨던 거였고, 20분 전에 말씀하셨다고 해도 편히 가시는 길을 더 괴롭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황망한 건 가족이었을텐데, 의료진이 화를 내는 게 더 이상하네요. 그 분들도 답답해서 그러셨을 것 같지만요. 장안나 님이 그 일로 너무 자책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몇년이 지나서 아버지 제삿날 가족들에게 그때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의사의 반응이 잘못된걸는 걸 깨달았었죠. 고맙습니다
ifrain님의 대화: '자율성'과 '고통'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던 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를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저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 간 유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간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그려낸 작품들로 12월쯤 전시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연령대는 60대 전후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20대도 있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었어요. A. 소아마비가 있어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오셨어요. 다리와 손가락 관절이 휘어서 걷는 것도 가장 불편해보이시고 몸이 가장 안 좋아 보이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가장 많이 웃으시고 인생에 대한 긍정정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셨어요. B. 큰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면서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C. 몸도 불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워 하셨어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밤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지체장애인인 다른 분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죽지 못해 산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지체장애인 분들은 전동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복지관으로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참석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인 분들도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신체적인 증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미술 수업의 강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보고 들은 것, 수강생 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서 최대한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A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데 평소에도 고통을 달고 사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고통이 사라진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A님은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거나 아주 짧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되어 고통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A님은 이미 그런 순간을 초월하신 거 같았어요. 아픈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고 자주 행복해 보이셨어요. 이분들에게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제약,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신 것 같았어요.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매일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수강생분들이 평생 한 번도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돌파해나가는 힘이 다들 대단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니 오히려 독립적으로 삶을 일구어온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본인들의 그림 안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강사인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고 정답이 없다고 꼭 말씀드렸어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D. 올해 초 지인 분께 개인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 년 전 자궁암 이후 위암으로 전이되어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었어요. 그림을 잘 하고 싶으신 욕심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정해진 틀과 공식에 얽매여 생각하시는 면이 강했어요.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드렸지만 그런 빡빡한 스타일의 수업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정답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이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수업을 더 지속하지 못했어요. 아쉽지만 그분에게는 그림 수업이 쉼이 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화면의 공간이 ‘틀리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죠. 일상에서 내려놓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고통에는 분명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율성과 자아효능감이 침해당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긍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고요.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제어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외모와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맡은 역할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A님은 주어진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서 주제와 형태, 색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했어요. 중간에 제가 조언을 해드리기도 하고 A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D님은 주어진 화면 안에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계속 정답을 찾아서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선을 하나 그을 때도 맞는지 틀렸는지 두려워했어요. 이런 문제는 비단 D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분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죽음의 모습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도 없을 거고요.
새폴스키 박사님에 따르면 @장맥주 님이 토마토를 거부하시는 것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었던 생물학적, 환경적 역사의 결과이군요.
ifrain님의 대화: 간단한 레시피 한 줄인데.. 판타지 영화가 떠오르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그 판타지 영화가 호러가 많인 섞인 장르로 저한테는 다가옵니다. ^^
장안나님의 대화: 어제 1장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생각이 났습니다. 응급실에 들어가셨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미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죽음을 목격해 본적이 없는 서른 남짓의 저는 연명치료가 어떤 범위까지 해당되는지 몰랐습니다.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 침상에 며칠 때 계시던 아버지를 출근전에 뵈러 갔는데 주무시고 계시지만 뭔가 주무시는 것과는 다른 막연한 느낌에 20여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겨우 의료진을 불렀는데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냐며, 이게 어딜 봐서 자는 거냐고 화면을 보면 모르냐고 소리를 지르는데 너무 당황했고, 의료기기 화면이야 드라마에서만 봤고 그게 한줄이거나 심하게 요동치거나 해야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지 어떤게 이상한지 어찌 알겠습니까. 결국 아버지는 몇 시간 뒤에 돌아가셨고, 나는 왜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연명치료 중단은 승압제 사용을 비롯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거라고 해서 망연자실 했고, 결국 그날 새벽 나에게 소리치던 그 의료진의 말대로 내가 빨리 의사를 부르지 않아 돌아가신 것만 같은 죄책감을 수년동안 안고 지내야만 했었습니다. 저는 아직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너무 갑작스러웠고, 거기다가 제가 알아채지 못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책을 읽다보니 어쩌면 그 응급실의 의사도 -아마도 인턴을 거라고 그때도 생각을 했는데 - 죽음에 대해서는 저와 비슷한 처지였나 봅니다.
저도 경험 없는 젊은 의사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던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아마 그 의사 분도 그 뒤로 많이 후회하셨을 거 같습니다. 제가 지금 김현아 박사님의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읽고 있는데, 이 책 앞부분에 자신이 젊었던 시절 환자나 보호자를 대하는 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요즘은 의대에 그런 커리큘럼이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죽음을 목격하는 일이 젊은 의사들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된다고요. 사망 원인을 의사들끼리 분석하는 사망집담회가 인신공격의 장이 되고, 거기서 “네가 살인자야” 하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아연실색해졌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어떤 분들은 @장안나 님 아버님이 흔히 이야기하는 ‘주무시듯 떠나셨다’는 표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례라고 여기실지도 모릅니다. 저는 나이가 50살이 다 되어 처음 보호자 자격으로 응급실에 가봤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고, 다시 가도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 제가 의료 전문가는 아니지만 만 명을 붙잡고 물어도 @장안나 님이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떠날 때에는 바로 그렇게, 병원에서 시간 오래 보내지 않고, 고통스러운 표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해봅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이니 흘려 들어주세요.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8,9) 존엄, 품위는 정의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도 많이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생리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더라도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존엄, 품위는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0) 나 혼자 죽지 않고 결국 다른 사람들도 세상을 떠나서 조금 먼저 가거나 나중에 가는 차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 피곤해서 잠들기 전 처럼 아주 피곤해서 곧 아주 긴 잠을 잘 것이라도 생각하겠지만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그 판타지 영화가 호러가 많인 섞인 장르로 저한테는 다가옵니다. ^^
그러실 수 있죠. ^^
ifrain님의 대화: 저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2년 간 유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간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그려낸 작품들로 12월쯤 전시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지체장애인,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한 수업이었어요. 연령대는 60대 전후가 가장 많았지만 간혹 20대도 있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어려서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신 분도 있었어요. A. 소아마비가 있어서 평생 고통 속에 살아오셨어요. 다리와 손가락 관절이 휘어서 걷는 것도 가장 불편해보이시고 몸이 가장 안 좋아 보이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가장 많이 웃으시고 인생에 대한 긍정정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셨어요. B. 큰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되면서 가족 관계도 깨어지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는 것 같습니다. C. 몸도 불편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잠을 못자서 너무 괴로워 하셨어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인 것 같았습니다. 밤에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지체장애인인 다른 분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죽지 못해 산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지체장애인 분들은 전동차를 타고 수업을 들으러 복지관으로 오십니다. 비가 오거나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참석 못하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적 장애인인 분들도 몸이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정신적으로 힘든 것이 신체적인 증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저는 미술 수업의 강사였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보고 들은 것, 수강생 분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서 최대한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A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데 평소에도 고통을 달고 사셨어요. 그분들에게는 고통이란 일반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고통이 사라진 후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A님은 그런 순간이 거의 없었거나 아주 짧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성적인 질환에 노출되어 고통에 익숙한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A님은 이미 그런 순간을 초월하신 거 같았어요. 아픈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짓고 계셨어요. 작은 일에도 기뻐하시고 자주 행복해 보이셨어요. 이분들에게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의 삶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제약, 사회적인 편견 등과 싸우면서 평생을 살아온 과정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신 것 같았어요.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매일 반짝이는 즐거움을 찾아오신 거죠.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점은 수강생분들이 평생 한 번도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돌파해나가는 힘이 다들 대단했어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니 오히려 독립적으로 삶을 일구어온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본인들의 그림 안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강사인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고 정답이 없다고 꼭 말씀드렸어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정답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마음을 풀어내고 표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죠. D. 올해 초 지인 분께 개인적으로 그림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 년 전 자궁암 이후 위암으로 전이되어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회복 단계에 있었어요. 그림을 잘 하고 싶으신 욕심이 많으셨는데 오히려 정해진 틀과 공식에 얽매여 생각하시는 면이 강했어요.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드렸지만 그런 빡빡한 스타일의 수업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정답과 같은 사회적인 기준이나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녀분들이 있는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수업을 더 지속하지 못했어요. 아쉽지만 그분에게는 그림 수업이 쉼이 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아직 채워지지 않은 화면의 공간이 ‘틀리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죠. 일상에서 내려놓은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는 건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고통에는 분명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율성과 자아효능감이 침해당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자긍심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고요. 내가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하고 제어한다는 느낌이 사람의 품위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외모와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본인이 맡은 역할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A님은 주어진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서 주제와 형태, 색감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제어했어요. 중간에 제가 조언을 해드리기도 하고 A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시기도 했지만 제가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D님은 주어진 화면 안에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계속 정답을 찾아서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선을 하나 그을 때도 맞는지 틀렸는지 두려워했어요. 이런 문제는 비단 D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분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죽음의 모습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답도 없을 거고요.
저는 너무 많은 선택권이 현대인을 힘들게 하고 더 불행하게 하는 면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씀주신 자율성과 고통의 측면을 보고 건강한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D님과 비슷한 성향에 A님과 같은 분을 늘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는 말씀이 따뜻하게 다가오네요. 감사합니다.
분홍하늘님의 대화: 저는 너무 많은 선택권이 현대인을 힘들게 하고 더 불행하게 하는 면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씀주신 자율성과 고통의 측면을 보고 건강한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D님과 비슷한 성향에 A님과 같은 분을 늘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일상에서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림 안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거’라는 말씀이 따뜻하게 다가오네요. 감사합니다.
저의 글이 @분홍하늘 님께 작은 도움이 되었을까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 앞서 @리수스 님께서 언급해주신 '자율성'과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예전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ifrain님의 대화: 저도 토마토를 그 자체로 먹으라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요리할 때 넣어 먹으면 좋더라고요. 카레라던가.. 건강에 좋다고 하니 더 챙기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맛도 있는 것 같고요. ^^
전 토마토가 주제인 토마토 스프나 토마토 마리네이드 등을 해 먹었는데 ㅋㅋ 다른 음식에 곁들이는건 아직 안 해 봤는데 용기내서 해 봐야 겠어요 ㅎㅎ
다솜726님의 대화: 이 여름에 토마토 국수는 참 별미인데 @장맥주 작가님께는 괴식처럼 보이겠군요 ㅎㅎㅎ
토마토 국수는 저도 용기를 좀 많이 내어 봐야 될 것 같아요^^; 상상이 안 되요 ㅋㅋ
그믐30님의 대화: @cjlove52 님 말씀처럼 @HL7707 님께서 단지 하나의 병 케이스로만 보지 않으시고, 환자의 여생과 삶에 대해 고려해주신 그 귀한 진료 상담시간에 저 또한 울컥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고, 과거의 보호자/미래의 환자/보호자로서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수년 전 직계가족도 면회 불가였던 코로나19 시기에 비암성 말기 중증질환자의 상주보호자였던 저는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문구를 실제로 들었었습니다. 산소포화도가 위험 수치여서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해도 인공호흡기로 연명할 뿐이라는 의견을 말씀하신 3차병원 임상조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문구였습니다. 한편, 회진을 늘 함께 오셨던 또 다른 주치의 선생님은 "중환자실은 결코 환자가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고 집중치료를 받아서 일반병실로 살아 돌아오는 그런 곳이라고, 현재 어머님은 산소포화도가 위험수치이기는 하지만, 집중치료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집중치료를 받아 회복하시면 질병치료 가능한 확률이 높으니 이대로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문구에 저는 순간 매우 당혹스럽고 머리속이 새하애졌지만, 두 분 선생님에게 질문을 드렸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류를 작성해놓지는 않으셨지만, 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제 엄마가 선생님 본인의 가족이라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 시점 이후 모든 치료를 중단하실 건가요?" 그 당시 두 분 모두 꽤 오랜 시간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상담을 해 주셨고, 그 상담시간 자체만으로도 불안 공포 중압감에 휩싸여버린 보호자에게는 정말이지 천군만마 큰 위안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죽음 공부를 해 오면서 저희 엄마는 말기·임종기 구분이 모호한 중증질환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류에 의한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기 진단이 내려진 환자에 국한된다는 것 때문에, 두 분 선생님의 견해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여년전 처음 접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2차 완독을 앞둔 이 시점에 와서야, 그래도 3차병원 입원기간까지는 상주보호자와 라포를 형성한 의료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회복과 후퇴를 반복하며 매우 느린 하향선을 그리며 사그라든 비암성 말기 중증질환자였던 저희 어머니에게 정성스런 돌봄(Care)을, 그 당시/현행 의료법상으로는 받을 수 없었던 완화의료 돌봄(Care)을 여러 다양한 대안들로나마 제공해주셨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히 요청드리는 듯 하여 매우 송구하지만, @HL7707 님께서 앞으로 단 1퍼센트라도 이상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닿으신다면 그 귀했던 진료 상담시간을 재차 삼차 N차 해 주시는 것 또한 대국민 캠페인 못지 않은 선한 영향력이 널리널리 퍼져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P.S. @HL7707 님의 팩트 체크와 진심어린 조언들 늘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그믐30 님이 어머님의 의료진과 정성스러운 상담을 하고 어머님의 상황에 대해서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진에게 "저희 어머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류를 작성해놓지는 않으셨지만, 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제 엄마가 선생님 본인의 가족이라면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 시점 이후 모든 치료를 중단하실 건가요?" 라고 솔직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용기 있게 해 보셔서 좋은 경험을 하고 도움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포용적인 수용적인 의료진도 쉽게 만날 수는 없는 일이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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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느리게 읽기 (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3부
안 노란 책을 찾아라!
안노란 책 리뷰 <지금, 그리고 그때>안노란책 리뷰 <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안노란 책 리뷰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 앤 드 마르켄안노란 책 리뷰 <메데이아> 에우리페데스안노란 책 리뷰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하임 마이어호프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3.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
아티초크의 멋진 책!
[아티초크/책증정] 세계 여성 시인선 100『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와 함께해요.[아티초크/시집증정] 감동보장!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아틸라 요제프 시집과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
‘인생 록 음악’ 추천!
[그믐밤] 49. 국제 암석의 날 기념, ‘인생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8. <행동>
동구권 SF 함께 읽어요!
[함께 읽는 SF소설] 12.신이 되기는 어렵다 - 스트루가츠키 형제[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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