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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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님의 대화: 써놓고 조금 망설이다가 올립니다. 저도 이번에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내가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도 안 돼 병원에서 퇴원을 이야기하더군요. 아내는 걷기도,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상황이었고요. 의사들이 딱히 이제는 더 해줄 게 없다고 하는데, 지난해 수술 경험이 없었다면 그 말을 ‘병원에서는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로 알아들었을 겁니다. 실제로는 ‘신경외과에서는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이더라고요. 재활의학과로 옮기면 입원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합병원 재활의학과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 입원 환자에게는 시간을 꽤 내주지만 통원 환자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재활의학과로 옮겨서 최대한 입원할 수 있는 추가 기간이 3주임을 알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지나자 아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푸념이라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아내는 점점 더 집에 가고 싶어 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그게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간절한 호소임은 저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1인실을 써도 병실 생활은 참 힘듭니다. ‘병원 와서 골병 든다’는 말이 뭔지 이제 확실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을 고집했습니다. 갑자기 벌어질지 모를 비상 상황이 너무 두려웠고 최대한 의사와 간호사 가까이에 있고 싶었습니다. 또 입원 환자와 통원 환자가 받는 재활 치료 시간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병원 생활이 아니라 수술 후유증이 우울감의 진짜 원인 아닐까, 집에 갔는데도 불만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습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혈압과 체온 체크하는 거나, 수련의가 수술 부위 소독하는 것도 왠지 꼭 필요한, 엄청나게 전문적인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해서 병원에 있자고 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아내는 몸을 가눌 힘도 없고 저는 건강한 데다 평소에도 성격이 집요하니까 사실상은 저의 뜻을 강요한 셈이었습니다(돌이켜보면 저희 결혼 생활이 내내 그랬던 거 아닌가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입원 2주가 지나자 아내가 우울감으로 못 견뎌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보드게임도 여러 종류 사고 배달음식도 자주 시켜먹었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재활 치료 포기하고 퇴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며칠 고민했습니다. ‘퇴원해도 괜찮아요’라는 의료진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들 눈에는 아내가 경증 환자로 보일 거라 여겼습니다. 잔인한 진실이지만 재활 병동의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분명 그랬고요. 재활이고 뭐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던 날에 퇴원 신청을 했고, 다음날 퇴원했어요. 집에 오자마자 밝아진 아내 표정과, 기력이나 식욕을 회복하는 정도에 깜짝 놀랐어요. 왜 퇴원을 그때까지 미루고 있었는지 제가 정말 한심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너무 미안했습니다. 하나 더 놀란 게 있습니다. 아내의 그런 변화와 무관하게, 집에 돌아오니 저도 마음이 밝아지고 기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저도 골병이 들어 있었더라고요. 병원이 뭘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병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저는 솔직히 대단하다, 선량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그야말로 갈아서 훌륭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감탄합니다. 병원이 아니라 5성 호텔에서 지내도, 집이 아닌 곳에 살면 불편하고, 거기서 나갈 수 없다고 하면, 감시 아닌 감시까지 받으면 누구나 우울감에 휩싸일 테고요. 그런가 하면 제가 결과적으로 바보 같은 짓을 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 달 전으로 돌아가도 제 선택은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퇴원한다는 게 너무 도박 같았어요. 환자는 의사에게 여러 환자 중 한 사람일 뿐인데, 가족에게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라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얼마전 어머니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는데, 병원에서는 낙상을 염려해서 요양병원에 한달 입원하는 것을 추천했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으로 가시기를 강력히 원하셔서 집으로 퇴원했습니다. 정말 염려와는 다르게 훨씬 빠르게 회복하셨어요. 여전히 기운없어 하시지만 병원에 게실 때에는 기억력이 나빠지신 것이 눈에 보였는데, 집에 오시고 나서 그런 증상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무료한 병원보다는 집의 일상에서 받는 적절한 인지적 자극과, 익숙한 환경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나저나 김새섬 대표님이 퇴원하시고 회복 중이라 하시니 소식에 너무 반갑습니다. 얼른 회복하셔서 오디세이 시즌2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만나고 싶습니다. 옆에서 많은 일 하시는 장맥주님도 건강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히 고민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게 되면서, 아툴 가완디 작가와, 책을 같이 읽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그믐”에 정말 감사했어요. “Being mortal”이라는 원제를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지은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올려주신 난제(?)에 대해서 저도 얕은 생각이지만 적어봅니다. (8) 인간의 품위, 참 어려운 정의지만, 저는 “인간다움”으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인간다움이라면 자율성, 타인과 자신에 대한 자비, 삶의 목적성을 가지고 주어진 생명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상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평생 자율성이라는 것을 꼭 붙잡고 산 사람이지만, 자율성이 손상될 때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진다고 과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9) 그래서 거동이 불편하고 생리작용을 타인의 도움을 받는 상태, 즉, 자율성이 극도로 제한되면 품위가 훼손될까 겁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율성은 그것으로 제한될 수 없는 훨씬 더 큰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신생아가 신체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주어진 발달적, 신체적, 환경적 조건 안에서 자율성을 지켜 나가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고통 안에서도 충분히 자율성, 연민, 목적성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인간다움을 가질 수 있기에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 현재 고통받는 지금 당장의 모습이 아닌, 그가 살아온 온 인생을 전체로 바라본다면, 외적으로는 현재 품위가 없어 보일지언정, 그의 품위는 사라질 수 없고 평가절하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가 스스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 모습을 품위없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10) 이 책에서 ‘죽는 자의 역할’ (dying role)이라는 표현이 제게 깊이 각인되었는데요, 이 죽어가는 임무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역할이 되겠지요. 정말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부하던 가난하던, 길던 짧던, 어떤 삶을 살았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죽는 임무는 ‘인간은,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모든 삶은 완벽하지 않다. 왕 같은 대우를 받던 사람도 결국 고통받으며 결국 사라진다. 그러니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잘 살아내라’는 교훈을 모든 인간이 반복적으로 다음 후세들에게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잠자듯이 작고하는 평안한 죽음으로 또는 고통 속에서 잘 견딘 투사로, 또는 외로울 수도 있는 모습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이든 전수된다면 죽는 임무를 잘 완수한 것으로 믿으려 합니다. 저도 늘 후회하고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는 결심을 반복하는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살아도 마지막에 또 남는 회한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이 누구나 가지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성이 생각합니다. 친한 친구 혹은 타인이 생의 막바지에서 후회와 용서를 구하면 제 스스로 그들에게 용서와 위로와 연민을 보여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줄 생각입니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살고, 그래도 후회가 남는다면 스스로에게 자기자비를 베풀겠습니다.
ifrain님의 대화: '자율성'과 '고통'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던 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를 다시 열어보았습니다.
이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고통'이라는 부분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정말 겁이 나기도 한 부분이지만, 신체적 고통은 진통제들로 상당히 조절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인간의 존엄의 근간이 된다는 '자율성'이 내 의지 다르게 제한받을 때 내가 느끼는 정신적 고통, 수치감, 죄책감을 어떻게 잘 견딜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었어요. 그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이라는 것을 수용해 나가자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나 목적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히어로님의 대화: (8) 존엄은 저에게도 멀게만 느껴지는 개념이에요. 인간이란 존재자가 다른 생명체와 다르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인간 역시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체와 똑같지 않나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뭐 개는 개처럼 죽어도 된단 말이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존엄이나 품위나 저는 ‘인간다움’으로 이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인간답게 죽는다는 건 뭘까요? 솔직히 저는 죽음 앞에서 인간다움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여전히 막연하답니다. 오히려 인간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 정도로 해석해야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다른 동물들은 아무렇게나 죽어도 되고, 인간은 우아하게 죽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싶진 않거든요. 덧붙여 인간의 존엄, 품위, 인간다움은 살아 있을 때, 살아서 활동하고 자기 자신과 타자와 세상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태에서 발현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자들은 동일하지 않을까 해요. 존엄사 같은 말이 나온 배경은 아마도 스스로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하자는 인식에서 나온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존엄은 자유를 뜻하는 것일 테고,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본능을 초월하여 뭔가를 바라고 꿈꾸고 애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는 거겠죠.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가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도 언제나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고, 존엄하게 보이는 죽음이란 것도 죽어가는 사람의 관점인지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혹은 그 둘을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관점에서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기 때문에 그 자유의 실체에 얼마나 신뢰를 할 수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너무 미화시킨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고요. 정리하자면 인간의 품위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생생할 때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 같다는 점,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결코 그 품위를 대변하지 못할 거라는 점, 죽음 앞에서는 모든 생명체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9) 인간의 품위가 혼자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겠죠. 오히려 정직하게 도움 받아야 할 때 도움 받는 게 품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고통을 혼자 짊어지는 것도 결코 품위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고통을 견뎌내면서 또 함께 나누는 모습이 오히려 품위 있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품위라는 게 인간만이 가진 강함, 혹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자신만이 가진 어떤 장점 혹은 강점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예요. 약해지면 약해졌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하는 게 오히려 품위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이 심할 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안 아픈 척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픔을 표현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공유하는 게 품위 있는 모습 같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품위라는 건 어쩌면 어떤 선을 넘지 않는 도움 요청과 그 도움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행동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10) 저도 그 회한의 시간이 가장 큰 우려입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어차피 죽는 거 죽음을 너무 크게 보지도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자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런 혼자만의 고독한 회한의 오랜 기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류 같아요. 이런 말을 하니 갑자기 좀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제가 침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옆에서 있어줄까요? 단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인이라 신앙이 있어서 죽음과 내세에 대한 불안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역시 인간인지라 사랑하는 사람이 끝까지 옆에 있어주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닌 함께. 이것만이 그 회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저도 품위를 인간다움으로 정의했는데, 먼저 쓰여진 글을 읽지도 않고 제 글을 올렸습니다. ㅜㅜ. 말씀하신 것에 정말 정말 공감합니다.
자연의 한계에 도달한 지금,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원한 것은 평화로움이이었다. And what he wanted for the final lines of his story, now that nature was pressing its limit, was peacefulness.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아버지는 우리를 그곳에 데려감으로써 자신이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의 일부분이고, 우리도 그렇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게 무언지 들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그리고 그 분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그럴 기회가 있었기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이 평화를 찾았다는 걸 알릴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도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In bringing us there, my father had helped us see that he was a part of story going back thousands of years - and so were we. we were lucky to get to hear him tell us his wishes and say his good-byes. In having a chance to do so, he let us know he was at peace. That let us be at peace, too.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아버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 건 오히려 마음의 문제였다. 정신적인 혼돈, 끝내지 못한 일들과 어머니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까에 대한 우려 같은 것들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깨어 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 평화를 느꼈다. 자연의 한계에 도달한 지금,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원한 것은 평화로움이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두 번째 독서, 완독했습니다. 다시 읽어도 참 울림이 있네요. 역시 좋은 책입니다.
cjlove52님의 대화: 그림마다 이야기가 있고, 의미가 있어 그림을 계속 보게 되네요^^ 학생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아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참 따뜻하시고 좋네요^^ 수업시간이 평화로우면서도 즐거운 수업이었을 것 같아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화는 재료를 다루는게 까다로운데 그런 점을 뛰어넘을 정도였어요. 복지관에서도 기본적인 도움이 있었지만 수강생분들이 그림에 대해 가지는 열의에서 삶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어요.
장맥주님의 대화: 한 편의 에세이 같네요. 이런 글을 토마토 농담 사이에서 불쑥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저는 어떤 유형일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일까? 내 정신은 단단할까? 별로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을 때 제가 두려워하던 것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합니다.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있고, 패배하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기 때문에 다시 겪는 것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는 않게 된 대상도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저절로 용기가 생겨서 좋네요. 그림 수업은 글쓰기 수업과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는 거 같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에는 저는 기본적인 틀은 강조하는 편이거든요. 독자가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라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 이상의 교훈적인 틀을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깨도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틀을 깨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한 편의 에세이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예전의 나보다 고통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예전의 나보다 정신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어디까지나 ‘조금 더’이면 좋겠어요.
jojo님의 대화: ifrain 님 글을 읽고 있으면 저도 그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요. 귀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드로잉북과 연필, 지우개, 칼 만 있으면 시작하실 수 있어요. 공감하시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분홍하늘님의 대화: 맞아요. 이 정보의 바다에서 선택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들지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실패도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그래야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기니까요. 저의 경우에는 어줍잖은 완벽주의가 강박으로 남아 결국 많은 것들을 그냥 시도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만들었더라구요. 물론 생사가 달린 선택은 정말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학생분들의 작품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안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그려보고 싶어지네요.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고, 우리 자신을 자극하는 거?” 다이애나는 이번에도 자기답게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이애나는 다들 그냥 진실로 받아들일는 답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답을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고자 했다. 답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끝까지 답이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시도했다는 사실, 인간다우면서 동시에 엄격했다는 사실이었다.
우주의 먼지로부터 - 상실을 통과하는 한 과학자의 경이로운 여정 pp.128~129, 앨런 타운센드 지음, 송예슬 옮김
우주의 먼지로부터 - 상실을 통과하는 한 과학자의 경이로운 여정10여 년 전, 앨런 타운센드 박사의 가족은 두 번의 치명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의 네 살배기 딸아이와 생물학자인 아내가 둘 다 뇌암에 걸린 것이다. 아내와 딸 모두에게 뇌종양이 생길 확률은 약 1000억분의 3. 우리 가족이 그 희박한 확률에 속한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ifrain님의 문장 수집: "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고, 우리 자신을 자극하는 거?” 다이애나는 이번에도 자기답게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이애나는 다들 그냥 진실로 받아들일는 답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답을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고자 했다. 답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끝까지 답이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시도했다는 사실, 인간다우면서 동시에 엄격했다는 사실이었다. "
아내가 자기 선택에 안심한 이유는 모든 가능성을 빠짐없이 확인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본래 과학의 한계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한번은 밤중에 아이의 종양 치료를 두고 이런저런 방법의 장단점을 비교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학이 분명한 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게 잘못이야.” 나는 우리가 내린 결정의 세세한 내용을 따져보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일기예보가 엉터리라고 다들 조롱하잖아. 사실 일기예보는 놀라울 만큼 정확해. 다만 세부 사항까지 전부 맞히지 못할 뿐이지.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계속 들려와. 그렇지만 그게 완벽하지는 않을 거야. 과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고, 우리를 스트레스 없이 영원히 살도록 해주지도 않는다고. 말이 안 되잖아.” “맞아, 그래, 당연히 그렇지.” 다이애나는 한번 더 열을 올렸다. “그래, 그런데 왜 우리가 – 둘 다 과학자면서! – 그런 덫에 빠져 있지?“ “무슨 소리야?“ “정보를 많이 얻으면 그만큼 확실한 결과를 얻는 줄 아는 사람들처럼 굴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반박하려다 생각을 고치고 입을 다물었다. 다이애나가 말을 이었다. “100년 후에는 다른 부부가 우리처럼 이러고 앉아서 아픈 아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할 거야. 그들에게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선택지가 주어지겠지. 하지만 그들의 아이 역시 아프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이해가 잘 안 돼.” “내 말은 우리도 과학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한계가 없으면 무슨 재미겠어. 물론 그 한계 때문에 자식이 위험해지면 가슴이 찢어질 거야. 그렇지만 밤낮으로 이 문제에만 집착하는 건 우리에게나 네바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아.”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나는 그때 다이애나가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을 무한히 즐기는 듯한 다이애나의 태도가 한계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최상의 형태에 이른 과학은 우리가 사회 전반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을 담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다이애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이상이란 곧 결점과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들을 줄이려 고민하고, 무언가가 완벽과 거리가 멀더라도 진정으로 경이로울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신격화하지 않고 믿을 만한 완벽한 대상이 되어주기를 요구하지도 않을 때, 과학은 비로소 과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려면 우리는 대다수 종교가 인간을 바라보듯 과학을 바라봐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엉망이지만 다행히도 나날이 나아지려 노력하며……여전히 대단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말이다.
우주의 먼지로부터 - 상실을 통과하는 한 과학자의 경이로운 여정 pp.133~135, 앨런 타운센드 지음, 송예슬 옮김
ifrain님의 문장 수집: " 아내가 자기 선택에 안심한 이유는 모든 가능성을 빠짐없이 확인해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본래 과학의 한계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한번은 밤중에 아이의 종양 치료를 두고 이런저런 방법의 장단점을 비교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학이 분명한 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게 잘못이야.” 나는 우리가 내린 결정의 세세한 내용을 따져보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일기예보가 엉터리라고 다들 조롱하잖아. 사실 일기예보는 놀라울 만큼 정확해. 다만 세부 사항까지 전부 맞히지 못할 뿐이지. 암 치료법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계속 들려와. 그렇지만 그게 완벽하지는 않을 거야. 과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고, 우리를 스트레스 없이 영원히 살도록 해주지도 않는다고. 말이 안 되잖아.” “맞아, 그래, 당연히 그렇지.” 다이애나는 한번 더 열을 올렸다. “그래, 그런데 왜 우리가 – 둘 다 과학자면서! – 그런 덫에 빠져 있지?“ “무슨 소리야?“ “정보를 많이 얻으면 그만큼 확실한 결과를 얻는 줄 아는 사람들처럼 굴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반박하려다 생각을 고치고 입을 다물었다. 다이애나가 말을 이었다. “100년 후에는 다른 부부가 우리처럼 이러고 앉아서 아픈 아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할 거야. 그들에게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선택지가 주어지겠지. 하지만 그들의 아이 역시 아프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래……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이해가 잘 안 돼.” “내 말은 우리도 과학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한계가 없으면 무슨 재미겠어. 물론 그 한계 때문에 자식이 위험해지면 가슴이 찢어질 거야. 그렇지만 밤낮으로 이 문제에만 집착하는 건 우리에게나 네바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아.”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나는 그때 다이애나가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을 무한히 즐기는 듯한 다이애나의 태도가 한계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최상의 형태에 이른 과학은 우리가 사회 전반에서 추구해야 할 이상을 담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다이애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이상이란 곧 결점과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들을 줄이려 고민하고, 무언가가 완벽과 거리가 멀더라도 진정으로 경이로울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신격화하지 않고 믿을 만한 완벽한 대상이 되어주기를 요구하지도 않을 때, 과학은 비로소 과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려면 우리는 대다수 종교가 인간을 바라보듯 과학을 바라봐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엉망이지만 다행히도 나날이 나아지려 노력하며……여전히 대단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말이다. "
‘내 말은 우리도 과학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한계가 없으면 무슨 재미겠어.’ ‘과학을 무한히 즐기는 듯한 다이애나의 태도가 한계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이상이란 곧 결점과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줄이려 고민하고, 무언가가 완벽과 거리가 멀더라도 진정으로 경이로울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 것이다.’ ‘즉, 기본적으로 엉망이지만 다행히도 나날이 나아지려 노력하며……여전히 대단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말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도 죽음의 상황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은 것도요.
ifrain님의 문장 수집: "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고, 우리 자신을 자극하는 거?” 다이애나는 이번에도 자기답게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이애나는 다들 그냥 진실로 받아들일는 답에 안주하지 않고 진짜 답을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고자 했다. 답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끝까지 답이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시도했다는 사실, 인간다우면서 동시에 엄격했다는 사실이었다. "
장맥주님께서 벽돌책 방에서인가(어디서인가..) 이 책 <우주의 먼지로부터>를 읽으신다고 하셔서 저도 읽고 있는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비슷한 고민들이 담겨 있어요. <우주의 먼지로부터>는 저자가 과학자입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8)9) 품위의 정의는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품위라는 단어를 들으며 저는 저의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인한 하반신마비 환자로 27년을 사시다 돌아가셨어요. 처음엔 누워서 밥도 떠먹여 드려야했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닐 수는 있었는데요, 혼자서는 앉지도 못해서 누군가 항상 도와야만 자세 변경이 가능했고, 머리도 감겨드려야 했고, 대소변도 항상 받아내야 하는 삶을 사셨지만, 저희 가족은 물론 주변에 아버지는 기억하는 어떤 사람들도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거든요. 물론 엄마의 엄청난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했겠지만, 아버지만의 어떤 고고함, 말이나 행동에서 보이는 무엇이 있었나봐요. 정리해서 답을 쓰려고 며칠을 고민했는데, 이번 아버지 제사때는 가족들과 아버지의 품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 같은지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요. 10) 저는 가끔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곧 죽게 된다면, 아니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때 내가 남기고 쉽지 않은 후회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데, 아주 젊은 시절에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딸의 죽음을 슬퍼하던 엄마가 갑자기 카드연체되었습니다, 이런 연락을 받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카드값 중도 상환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그렇지만 자주 보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을 꼭 한번씩은 만나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라도 한번씩 돌리고는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회한을 갖는다기 보다는 그걸 만들지 않으려고 미리 실행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미식가들님의 대화: 그 의료진이 이상한 것 같네요. ㅠㅠ 의료 지식이 없는 사람이 그걸 보고 어떻게 안다고...거기다 환자분께서 이미 연명치료 거부하셨는데 보호자가 화면 보고 이상하다 생각해서 의료진 불러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나요... 아마 그분이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도 당황했나 봅니다. 장안나 님 사연 듣고 나니 너무 맘이 아프네요. 전혀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분도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것이 바로 수백만 번 반복되는 현대의 비극이다. 우리가 풀 수 있는 생명의 실타래가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길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실제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혈관에 화학약품을 투여하고, 목구멍에 관을 삽입하고, 살에 수술로 꿰맨 자국을 가진 채 죽어 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더 단축시키고, 삶의 질을 악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의사들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할머니는 시간에 대한 관점이 변함에 따라 현재,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359,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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