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디세이 2026] 7. 어떻게 죽을 것인가

D-29
ifrain님의 문장 수집: " 루 할아버지의 동반자가 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한 직원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포옹을 해 줬다. 할아버지는 셰리에게 이 인간적인 접촉이 얼마나 좋은지 털어놨다. 그와 포옹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여전히 찾아오는 친구 데이브와 함께 커피숍에서 크리비지 게임을 한다. 할아버지는 다른 층 그린 하우스에 사는 한 사람에게도 크리비지 게임을 가르쳐 줬다. 뇌졸증으로 마비가 된 사람이었는데, 가끔 할아버지 집에서 둘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 그럴 때면 직원 하나가 그의 카드를 들어 주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루 할아버지가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상대의 카드를 훔쳐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카드놀이를 하지 않는 날 오후에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개 베이징과 함께 셸리가 들른다. 하지만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도 행복해한다. 그런 날 할아버지는 아침식사를 한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 하기"때문이다."
@그믐달빛 저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도 좋고 우르르 쾅쾅 번개 치면서 쏟아지는 비도 좋아합니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이 대목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노화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잖아요. 죽음 앞에서 삶이 달리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루 할아버지가 티비를 보는 관점이 궁금했어요. 루 할아버지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확인하는 행위로 인해 스스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소중함이 더 극대화되었을 것 같아요. 어지러운 바깥세상과 달리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누구나 그렇듯이 한겨울에 눈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데요. 특히 따뜻한 집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서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창밖으로 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상황 때문에 좋아합니다. 물론 바깥에 나가 눈을 맞으며 감상할 수도 있겠지만.. 바깥 공기와 대조되는 고요하고 따뜻한 집안에 머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심리가 있어요. 세차게 비가 내릴 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일 때의 느낌도 비슷한 것 같고요. 루 할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죽음으로 보았을까요.
HL7707님의 대화: @챠우챠우 님이 설명해주신 것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소변줄은 방광에 "이미 걸러져 단지 모아져 있을 뿐인" 소변을 요도를 통해 배뇨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이와 달리 팔 다리에 체액 과다로 붓기가 있거나 복수 등이 있는 경우는 그 과도한 체액이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변줄을 통해 배뇨할 소변 자체가 거의 없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조금 더 극단적으로, 또 일부 대표적 사례로 국한하여 설명드리자면, 소변이 생산은 되지만 단지 배뇨 과정이 문제인 경우는(예를 들어, 너무 심한 빈뇨로 고생하거나, 요도가 막히거나, 전립선 비대 등으로 잘 못보거나 등) 소변 줄을 통해 배뇨를 시켜주면 문제해결이 될 수 있지만, 소변 자체가 생겨나지 못하고 전신부종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신기능이 매우 저하된 상태로 볼 수 있고 이 경우 소변 자체가 생산이 안되기 때문에 방광 자체는 비어있는 셈이므로, 소변 줄을 삽입하여 방광 내로 관을 집어넣는다 한들 나올 소변은 없는 상황이 됩니다. 말씀하신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불필요한 영양수액제를 줄이고 잘 배출이 안되는 만큼 애초에 들어가는 수액량을 줄이고, 이뇨제 정도 써볼 수는 있었겠지만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이런 저런 시도가 잘 듣지 않고 그대로 나빠질 가능성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심적으로 가족분들이 뭔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나, 그냥 보고만 있어도 되나 하는 답답함이 크셨겠지만 의료진 시각에서는 사실상 뭘 개입할 중재방법이 별로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돼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는 굳이 뭔가를 더 해서 긁어부스럼 만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급진 의료서비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두분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고인께서는 평소 말하기를 즐기셨고 늘 의사표시가 분명하셨는데 마지막에는 목소리가 안 나와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항상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기만 하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눈 감고 누워만 계시니 혹시 지금 고통스러운데 말씀을 못하시는 건 아닐까, 호스피스여서 너무 방치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입소 동의는 하셨지만 몇주전까지만 해도 회복과 삶에 대한 의지를 강렬히 내비치신 분이셨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의식이 있으실 때 직접 말씀하셔서 이뇨제도 써보고 짧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본 것 같네요. 지난 일년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던 회한과 죄책감이 두분의 자세한 설명과 팩트체크로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낍니다. 바쁘신 와중에 큰 위안을 선물해주신 @챠우챠우@HL7707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ifrain님의 대화: 아.. 저는 처음에 떡볶이나 순대를 담은 검은 봉지인가 했는데.. 뭔가 튀어나와 있고.. 액체가 떨어지는 걸 보고.. 안에 들어 있는 물체가 털과 액체를 포함한 것.. 동물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털 같은 것이라면 고양이인가.. 그렇다면 저 남자의 태연스럽지만 약간 지쳐보이는 얼굴과 별개로 외람되지만 동물의 사체인가.. 라는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게딱지 가시라기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길지 않나요.. ㅎ
@챠우챠우 @ifrain 오... 노... 차라리 토마토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ㅠ.ㅠ 두 분 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챠우챠우님의 대화: <어떻게 보낼 것인가> 라는 책은 없지만, 가장 비슷한 내용을 다룬 소설이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중년 여성, 뇌졸중 아버지를 간병하는 20대 청년의 이야기인데 답답하고 힘든 이야기 이지만 서로 아픔을 나누면 그래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이 조금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읽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문미순 작가님이 오랫동안 뇌졸중인 남편을 간병한 경험을 녹여서 쓰신 책이라고 합니다.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분으로부터 추천을 받다 보니 이제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교보문고 sam에 있어서 막 내려받았습니다. 사실 간병 이야기라고 해서 일부러 피했는데... (벌써 리커버 판이 나왔군요. 판매도 잘 되었나 봅니다. ^^)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제 답변을 제출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아마 앞으로도 제 생각이 많이 바뀔 거 같습니다. 출제자로서 쑥스러운 말이지만, 앞으로도 고민할 가치가 있는 질문들 같습니다. 품위 있게 살고 싶고, 회한과 함께 살아야 해서요. (8) 질문에도 넌지시 깔려 있는 생각이지만, 저는 인간성에는 품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제 인간성이든, 남의 인간성이든 간에요. @다솜726 님처럼 저한테도 (9)번 질문이 (8)번 대답을 이끌어주네요. 사람인 이상 고통과 두려움, 혹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거기에 압도되지 않았음을 보여줄 때, 자기 자신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더 커다란 존재임을 보여줄 때 @joystory 님이 말씀하신 ‘아우라’가 나오는 것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분홍하늘 님이 적어주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는 마음가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더라도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보다 더 큰 존재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장안나 님의 아버님도 그런 분 아니었을까요.
장맥주님의 대화: 제 답변을 제출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아마 앞으로도 제 생각이 많이 바뀔 거 같습니다. 출제자로서 쑥스러운 말이지만, 앞으로도 고민할 가치가 있는 질문들 같습니다. 품위 있게 살고 싶고, 회한과 함께 살아야 해서요. (8) 질문에도 넌지시 깔려 있는 생각이지만, 저는 인간성에는 품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제 인간성이든, 남의 인간성이든 간에요. @다솜726 님처럼 저한테도 (9)번 질문이 (8)번 대답을 이끌어주네요. 사람인 이상 고통과 두려움, 혹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거기에 압도되지 않았음을 보여줄 때, 자기 자신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더 커다란 존재임을 보여줄 때 @joystory 님이 말씀하신 ‘아우라’가 나오는 것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분홍하늘 님이 적어주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는 마음가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더라도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보다 더 큰 존재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장안나 님의 아버님도 그런 분 아니었을까요.
(9) 이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통증을 참기 어려운 병도 있고, 생리현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은 참 초라해집니다. 밖에서 급똥 마려운데 화장실이 안 보이면 하늘이 노래지잖아요. 여러 가지 의료 시술 중에는 의사들 스스로 ‘고문 같다’고 표현하는 것도 있더라고요. 지금 읽고 있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도 그런 표현이 몇 번 나왔네요. 저는 고문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도 고문 받는 사람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 님 말씀대로 약해면 약해졌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때 제가 인정하는 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키아벨리1 님도 적어주셨지만, 그때 주위에 누가 있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존심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겠지요. 존엄과 품위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ifrain 님 말슴에도 느끼는 바 큽니다. 그리고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도 염치와 예의를 적절히 표현하면서 품위를 유지한다는 @챠우챠우 님 말씀이 상당히 위로가 되네요. @리수스 님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인데, 마지막 순간이 볼품없더라도 저의 인생 전반이 기품 있었다고 스스로 승인하게 되면 그 마지막 순간도 다소 참을 만해질 것 같습니다.
장맥주님의 대화: (9) 이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통증을 참기 어려운 병도 있고, 생리현상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람은 참 초라해집니다. 밖에서 급똥 마려운데 화장실이 안 보이면 하늘이 노래지잖아요. 여러 가지 의료 시술 중에는 의사들 스스로 ‘고문 같다’고 표현하는 것도 있더라고요. 지금 읽고 있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도 그런 표현이 몇 번 나왔네요. 저는 고문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도 고문 받는 사람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 님 말씀대로 약해면 약해졌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때 제가 인정하는 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키아벨리1 님도 적어주셨지만, 그때 주위에 누가 있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존심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겠지요. 존엄과 품위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ifrain 님 말슴에도 느끼는 바 큽니다. 그리고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도 염치와 예의를 적절히 표현하면서 품위를 유지한다는 @챠우챠우 님 말씀이 상당히 위로가 되네요. @리수스 님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인데, 마지막 순간이 볼품없더라도 저의 인생 전반이 기품 있었다고 스스로 승인하게 되면 그 마지막 순간도 다소 참을 만해질 것 같습니다.
(10) 나이 들수록 회한이 줄어든다는 @거북별85 님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뭔가를 해보지 않았다’는 회한을 갖는 분도 많다는데, 저는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는 회한이 있고, 그건 이미 해버린 일이니 나이가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거 같네요. 이 또한 자의식이 커서 그런 건 아닐까, @jojo 님 말씀대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생각하며 삭혀보겠습니다. 덧붙여 두 가지 생각을 더 해봅니다. 하나는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몰입거리는 많이 찾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지그소 퍼즐을 했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좀 놀랐습니다. 동영상 시청보다 더 오래 집중할 수 있었고, 동영상 시청만큼 뒷맛이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좀 복잡합니다. 어떤 회한은 잊지 않고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좋은 삶에는 정직함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리라 봅니다. 자신이 한 일을 객관적으로 보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좋은 삶이겠지요. 그때 발생하는 회한은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믐30 님, 저도 <걱정말아요 그대> 노래 좋아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지요? 이 두 가지 생각이 별로 조화되지 않는데, 아직까지는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
분홍하늘님의 대화: 아 두분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고인께서는 평소 말하기를 즐기셨고 늘 의사표시가 분명하셨는데 마지막에는 목소리가 안 나와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항상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기만 하면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눈 감고 누워만 계시니 혹시 지금 고통스러운데 말씀을 못하시는 건 아닐까, 호스피스여서 너무 방치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입소 동의는 하셨지만 몇주전까지만 해도 회복과 삶에 대한 의지를 강렬히 내비치신 분이셨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의식이 있으실 때 직접 말씀하셔서 이뇨제도 써보고 짧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본 것 같네요. 지난 일년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던 회한과 죄책감이 두분의 자세한 설명과 팩트체크로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낍니다. 바쁘신 와중에 큰 위안을 선물해주신 @챠우챠우 님 @HL7707 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챠우챠우 님과 @HL7707 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ifrain님의 대화: 첫번째 사진 : A님의 작품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 그리기 였어요. 이 카우보이 모자를 무더운 여름에도 꼭 쓰고 다니시는데 직접 그리고 오려서 만든 동물들로 모자를 장식하셨습니다. 독수리가 보이네요. 그림의 연출로 독수리가 입에 열매를 물고 있는 것으로 그렸어요. 풀밭 위에 떨어진 열매와 연결되어 보입니다. 작품 과정 중의 사진이에요. 두번째 사진 : C님 작품의 부분 컷이에요. 그림 실력이 상당하세요. 처음 유화를 그리셨다는 사실. 주로 본인이 가고 싶은 ..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풍경을 그리셨어요. 세번째 사진 : 또 다른 분이십니다. 사과를 좋아하셔서 사과를 그리신다고 했어요.
외 세번째 그림은 세잔의 사과보다 더 멋져요. 아 정말 멋지네요
jojo님의 대화: ifrain 님 글을 읽고 있으면 저도 그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요. 귀한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요
ifrain님의 대화: @장맥주 색 조화를 위해서 와사비라던가 상추라던가 필요한 거 아닐까요? 아니면 드레스 코드를 녹색으로 한다던가..
하이네켄으로 준비할까요...? 캔이 녹색인데... ^^
거북별85님의 대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우리는 인간의 평균수명을 늘어나는 것을 대단한 성과로 여기며 현대의료의 발전에 환호한다 나 또한 그랬다 죽음을 점점 뒤로 늦출수록 필연적 죽음에 맞서는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의사이고 의사였던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오늘날 현대 의학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평균수명 연장의 성과에 너무 기대어 평가 중심의 의료행위는 아닌지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과 삶의 가치를 의료행위란 명목하에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의 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인물들의 죽음을 앞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우리에게 죽음 앞에 진정 중요한 것은 생명연장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 계속 질문을 던진다. 필연적 죽음이지만 풀기 싫은 숙제를 미루듯이 모른 척하고 살았는데 김새섬 대표님 덕분에 계속 풀기 싫은 숙제를 대면하고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 앞에서는 대단해 보이는 돈과 명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보다 덜 중요해지고 Well dying은 결국 Good life로 귀결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죽음을 추상적 설명이 아닌 구체적 실례와 따뜻한 시선과 회한들로 설명하고 있어 친숙하게 그러면서도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게 한다 글도 전개도 친숙하면서도 재미있어 지난주에 완독하고 느긋하게 있다보니 어느새 이방이 닫히기 3일 전이다😅😅 이 방의 많은 이들이 아툴 가완디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감명깊게 읽었을거 같다 올해 초 부터 김새섬대표님과 @장맥주 님께서 적극 추천하던 책인데 명저임에 이견이 없어 무척 좋았다^^
명저임에 이견이 없으시다니, 뿌듯합니다! ^^ 정성스러운 감상문 감사해요. 아내에게도 전할게요. 그믐에서도, 팟캐스트에서도 @거북별85 님의 댓글 읽으며 저희 두 사람 다 기운을 냅니다.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오구오구님의 대화: 저도요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 는 78세에 그림을 시작해서 미국 국민들이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죠. 전세계적으로도 너무 유명하고요. 그녀의 그림을 보면 원근법이 틀린 부분이 있지만 그런 점이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장맥주님의 대화: 하이네켄으로 준비할까요...? 캔이 녹색인데... ^^
저는 1년에 한 번 맥주를 마실까 말까 한데.. ^^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참석해야 겠네요.
@장맥주 님, 요즘 페북을 안하셔서 이 글을 보여드릴 방법이 없어 이 방 성격과 다르지만 공유할게요. ‘재수사‘ 잘 읽었습니다. 이런 묵직한 소설 또 써주세요. 입체적인 빌드업이 돋보이는 범죄소설 장강명 저, ‘재수사’를 읽고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여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책을 두 번 이상 정독했지만, 주인공의 사상이 듬뿍 담긴 1부를 여전히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2부를 거울삼아 다시 1부로 돌아왔을 때 그나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강명의 ‘재수사’를 펼치자마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렌즈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코 예사롭지 않겠구나, 하고 예감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인자다. 스스로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보다 더 진화한 캐릭터인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은 살인을 할 만큼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찌질하고 허세 저는 캐릭터였고, 자신의 독단적이지만 이론적이고, 대단한 것 같지만 가소로운 사상 속에 갇힌 옹졸한 몽상가 축에 속했다. 그런데 ‘재수사’의 주인공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살인을 하고도 태연하게 회고록 따위를 쓰면서 살인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22년이나 지난 현재 시점까지.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소름이 돋았고 긴장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세 번째 꼭지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언급된다. 다음과 같다. “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거울상이다. 나는 내가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획 없이 살인을 저지른 뒤 라스꼴리니꼬프가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비범인이 되었다. 원치 않게, 서서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 같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고 곧바로 자신이 범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재수사’의 주인공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주인공은 라스꼴리니꼬프와는 달리 아무런 살인 계획이 없었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사상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계획 후 실행으로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여 비극에 휘말렸다면, 이 주인공은 실행을 먼저 해 버린 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비범인이 되어버린(혹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사상은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저지른 범행을 묵인하고 나름대로의 합리화된 변명이 필요했을 테니). 라스꼴리니꼬프와 이반 카라마조프를 비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반 카라마조프는 라스꼴리니꼬프보다도 못했다. 자기가 직접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때문에 무너졌다.” 그리고 한 술 더 뜨는 문장. “아마 도스토옙스키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대문호라 한들, 살인자에게도 일상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알 수 없었을 테니.” 아… 말문이 막혔다. 주인공의 거침없는 문장들은 분명히 주인공이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보다 더 지능적이며 더 계몽되었으며 더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총 백 꼭지로 이뤄진 이 소설의 홀수 꼭지는 주인공의 회고록이고, 짝수 꼭지는 주인공이 22년 전에 범했으나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결국 주인공을 22년 만에 범인으로 잡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홀수 꼭지는 비교적 짧은 대신 ‘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만큼은 아니지만 난해한 편이고, 짝수 꼭지는 소설 전반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장단의 리듬의 타며 읽어가도록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리듬을 과연 독자들이 얼마나 잘 타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갈 수 있을지 나는 솔직히 우려가 되었다. 홀수 꼭지를 읽고 다 이해하는 독자는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 엘리트 지식인층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걸 다 이해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뿐 아니라 5대 장편들도 꿰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계몽주의 등의 철학 및 사상들의 골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짝수 꼭지를 읽을 땐 장강명 특유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듬뿍 담긴 르포르타주식의 소설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손에 든 절반 이상의 독자들은 홀수 꼭지는 초반에나 읽다가 중반부터는 대충 읽거나 건너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도 도스토옙스키 관련 내용은 흥미롭게 읽고 감탄을 했지만, 철학과 사상, 특히 장강명 작가가 만들어낸 ‘사실-상상 복합체’ 개념을 풀어놓을 땐 자주 집중력을 잃어버렸고 읽었던 곳을 읽은 줄도 모르고 또 읽기도 했다. 책을 읽어 나갈 때 저자가 쓴 텍스트들이 나를 관통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은 결코 유쾌하진 않은데, 이런 경험은 이 책을 완독 하기 위한 필수 코스이지 않나 싶다. 반면 짝수 꼭지는 정말 재밌다. 중간쯤 살짝 긴장이 풀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니까 범인 색출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이 책은 페이지 터너가 되었다. 혼자 밥 먹으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길 만큼. 장르를 따지자면 범죄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이 소설은 긴장과 스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어떤 부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다. 장강명 작가의 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반전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수상하다 싶었던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나 그렇게 놀라진 않았지만 (나름 추리소설로 독서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의 절정 부분에서 용의자를 체포할 때 이야기가 끝난 줄로 알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 부분에서 오히려 그게 연막이라는 걸 알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대충 짐작하고 읽어도 정말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인 것이다. 홀수 꼭지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짝수 꼭지만으로 이 소설이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뭐 그래도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덴 큰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이 소설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소설의 절정과 결말까지 가는 빌드업이 약해진다는 것. 이 소설은 범인의 고백부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정체가 드러난다. 회고록의 절반 이상은 주인공의 철학 및 사상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이뤄지지만, 중간중간 단서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을 수집하는 재미와 그것으로 주인공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인 짝수 꼭지만으로 추리 과정을 거치는 것과 범인의 독백을 도움 받아 추리 과정을 거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인 서사에서 안으로 서서히 좁혀가는 방식과 내면적인 독백에서 점점 자신의 정체를 밝혀가는 방식이 조화롭게 춤을 추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입체적인 빌드업을 경험하며 나는 쫄깃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인데, 이 소설이 중후함을 주는 요인은 짝수 꼭지가 아니라 홀수 꼭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회고록은 얼마나 주인공이 비뚤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충실히 담당하는 동시에 주인공이 그렇게 비뚤어진 이유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이 살인자가 된 것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담당한다.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장강명 작가의 숨은 메시지가 홀수 꼭지에 많이 담겨 있다는 말도 된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시스템’과 장강명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말하는, 이 시대 한국 사회가 깊이 내재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인 ‘불안’과 ‘공허’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고 공론장에 올리기 위해 전직 기자 장강명의 르포르타주식 글쓰기와 소설가 장강명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나 쓰인 열매가 바로 이 작품 ‘재수사’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홀수 꼭지에서 난해한 부분이 나와서 이해가 안 가더라도 적어도 맥락만은 파악하겠다는 마음으로 절대 건너뛰지 말고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홀수 꼭지와 짝수 꼭지의 리듬과 화음이 이 소설의 중추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고 충분히 맛보며 작품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묵직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장강명 작가가 이 정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더 써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엔 그런 작품이 필요하다. #은행나무 #김영웅의책과일상
[세트] 재수사 1~2 - 전2권
이 글에 달린 댓글 2개 보기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이전에도 너무 답변이 어려워 주저했었는데 이제 방이 열려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저도 부족한 답을 남겨봅니다. 우리 사회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글을 쓰는 예술가이신 장맥주님이 아직 모르시는 것을 어찌 저 같은 범인이 알 수 있겠나 싶은데요.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 품위가 무엇인지는 저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환자 한 분이 있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마 2017-18년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성함도 이제 기억나지 않고 얼굴과 인상만 제게 남아있는 그 분은 대장암으로 비교적 나이가 젊은 50대 후반 여성이었고 이제 곧 임종이 예상되는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이제 임종하시려고 입원하신 것이었고, 본인의 신체적 고통, 여러가지 불편감, 정신적 괴로움이 매우 심했을텐데도 의료진에게 대단히 예의가 발랐던 모습에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 말을 내뱉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냥 (자기가 이렇게 지금 몸이 힘들지만) 이제 며칠 후 아니면 몇 시간 후 돌아가실 상황이었기에 겉으로 보여지는 예의바른 모습이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가 성립되는 상황도 아니었고, 어떤 댓가를 바라는게 아닌 진짜 예의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좀처럼 짜증이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그냥 조용히 죽음에 순종하는 모습이었는데, 뭔가 어렴풋하지만 대단하시다, 이런 느낌과 함께 지금 이 질문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어떤 모종의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분의 유일한 가족으로 아들이 있었는데 키 크고 호감가는 외모도 한몫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 아드님도 얼마나 어머니에게 다정하고 의료진에게도 예의가 바르던지, 그냥 아 어떻게 교육하면 아들이 저렇게 될 수 있지 궁금하던 기억도 납니다. 그냥 그런 품위가 내재적으로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이 되고 전해진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장성한 청년 아들이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게다가 의료진에게도 깍듯한 모습. 제가 워낙 험하고 컴플레인만 하는 환자들에게 치이다보니 나한테 잘해준 사람을 좋게 보는 착시였던걸까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저는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사실 뒤를 기약하는 것도 없는데도 인간으로서 가질 예의를 정중하게 지키며 본인의 고통을 안으로 삭일 줄 알았던 그 환자가 대단히 큰 사람처럼 보였고 그게 품위의 여러가지 측면 중 최소 한 두가지 속성 쯤에는 해당하는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절박하고 자기가 곧 세상을 떠나는 상태에서도 예의를 지킬 줄 안다는 것이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당연하고 쉬운 일은 아닐 것 같거든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 위에 말씀드린 사례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 방법은 그만한 품위를 가지는 사람이 알고 있겠지요. 품위가 없는 저로서는 아직 알지 못하는데, 어떤 특정한 방법이 있다기 보다는 품위를 가진 사람이 된다면 그때에는 가능해지리라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라도 자기 자신이 나 이러저러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으니 품위가 있을것이라고 여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내가 품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품위있는 사람이 아니게 될 것만 같은 느낌.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 저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없지는 않지만 선택하지 못하거나 안한 길이 생각나더라도, 그 선택이 아닌 현재의 나에 다다르기까지 실제 제가 걸어온 여정 상에서 만나고 얻은 좋은 것들(학교, 친구, 일, 아내, 가족 등)이 있어서 회한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를 곱씹고 회한에 시달리는 것은 바꿔말하면 아직 더 나아질 길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는 징표이고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아직 내 안에 욕심이 아니 욕망이 크게 발달해있다는 것과도 통해있지 않나 싶습니다(돌직구..는 아니고 @장맥주 님이 꼭 그렇다는건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느낌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욕망이 크면 클수록 괴로움은 더 커질텐데요. 저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 자주 이런 생각 때문에 욕구를 억누르고 감추는데 익숙합니다. 가끔은 헷갈립니다. 욕구를 억누르고 그래 괜찮아 라고 하는게 정말 현명한건지 아니면 아Q의 정신승리와 뭐가 다른건지.
히어로님의 대화: @장맥주 님, 요즘 페북을 안하셔서 이 글을 보여드릴 방법이 없어 이 방 성격과 다르지만 공유할게요. ‘재수사‘ 잘 읽었습니다. 이런 묵직한 소설 또 써주세요. 입체적인 빌드업이 돋보이는 범죄소설 장강명 저, ‘재수사’를 읽고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여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책을 두 번 이상 정독했지만, 주인공의 사상이 듬뿍 담긴 1부를 여전히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2부를 거울삼아 다시 1부로 돌아왔을 때 그나마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장강명의 ‘재수사’를 펼치자마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렌즈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코 예사롭지 않겠구나, 하고 예감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인자다. 스스로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보다 더 진화한 캐릭터인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은 살인을 할 만큼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찌질하고 허세 저는 캐릭터였고, 자신의 독단적이지만 이론적이고, 대단한 것 같지만 가소로운 사상 속에 갇힌 옹졸한 몽상가 축에 속했다. 그런데 ‘재수사’의 주인공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살인을 하고도 태연하게 회고록 따위를 쓰면서 살인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22년이나 지난 현재 시점까지.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소름이 돋았고 긴장이 되었다. 뿐만 아니다. 세 번째 꼭지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언급된다. 다음과 같다. “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거울상이다. 나는 내가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획 없이 살인을 저지른 뒤 라스꼴리니꼬프가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비범인이 되었다. 원치 않게, 서서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 같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고 곧바로 자신이 범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재수사’의 주인공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주인공은 라스꼴리니꼬프와는 달리 아무런 살인 계획이 없었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사상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다. 라스꼴리니꼬프가 계획 후 실행으로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여 비극에 휘말렸다면, 이 주인공은 실행을 먼저 해 버린 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비범인이 되어버린(혹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사상은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저지른 범행을 묵인하고 나름대로의 합리화된 변명이 필요했을 테니). 라스꼴리니꼬프와 이반 카라마조프를 비교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이반 카라마조프는 라스꼴리니꼬프보다도 못했다. 자기가 직접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때문에 무너졌다.” 그리고 한 술 더 뜨는 문장. “아마 도스토옙스키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서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대문호라 한들, 살인자에게도 일상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알 수 없었을 테니.” 아… 말문이 막혔다. 주인공의 거침없는 문장들은 분명히 주인공이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보다 더 지능적이며 더 계몽되었으며 더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총 백 꼭지로 이뤄진 이 소설의 홀수 꼭지는 주인공의 회고록이고, 짝수 꼭지는 주인공이 22년 전에 범했으나 미제로 남은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결국 주인공을 22년 만에 범인으로 잡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홀수 꼭지는 비교적 짧은 대신 ‘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만큼은 아니지만 난해한 편이고, 짝수 꼭지는 소설 전반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장단의 리듬의 타며 읽어가도록 설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리듬을 과연 독자들이 얼마나 잘 타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갈 수 있을지 나는 솔직히 우려가 되었다. 홀수 꼭지를 읽고 다 이해하는 독자는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 엘리트 지식인층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걸 다 이해하려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뿐 아니라 5대 장편들도 꿰고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 마르크스주의, 계몽주의 등의 철학 및 사상들의 골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짝수 꼭지를 읽을 땐 장강명 특유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듬뿍 담긴 르포르타주식의 소설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손에 든 절반 이상의 독자들은 홀수 꼭지는 초반에나 읽다가 중반부터는 대충 읽거나 건너뛰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나도 도스토옙스키 관련 내용은 흥미롭게 읽고 감탄을 했지만, 철학과 사상, 특히 장강명 작가가 만들어낸 ‘사실-상상 복합체’ 개념을 풀어놓을 땐 자주 집중력을 잃어버렸고 읽었던 곳을 읽은 줄도 모르고 또 읽기도 했다. 책을 읽어 나갈 때 저자가 쓴 텍스트들이 나를 관통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것 같은 느낌은 결코 유쾌하진 않은데, 이런 경험은 이 책을 완독 하기 위한 필수 코스이지 않나 싶다. 반면 짝수 꼭지는 정말 재밌다. 중간쯤 살짝 긴장이 풀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니까 범인 색출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이 책은 페이지 터너가 되었다. 혼자 밥 먹으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길 만큼. 장르를 따지자면 범죄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이 소설은 긴장과 스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어떤 부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다. 장강명 작가의 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반전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수상하다 싶었던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나 그렇게 놀라진 않았지만 (나름 추리소설로 독서의 세계에 입문했다는 게 도움이 되었던 걸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소설의 절정 부분에서 용의자를 체포할 때 이야기가 끝난 줄로 알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 부분에서 오히려 그게 연막이라는 걸 알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대충 짐작하고 읽어도 정말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인 것이다. 홀수 꼭지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짝수 꼭지만으로 이 소설이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뭐 그래도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덴 큰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이 소설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소설의 절정과 결말까지 가는 빌드업이 약해진다는 것. 이 소설은 범인의 고백부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정체가 드러난다. 회고록의 절반 이상은 주인공의 철학 및 사상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이뤄지지만, 중간중간 단서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을 수집하는 재미와 그것으로 주인공의 정체를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인 짝수 꼭지만으로 추리 과정을 거치는 것과 범인의 독백을 도움 받아 추리 과정을 거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외형적인 서사에서 안으로 서서히 좁혀가는 방식과 내면적인 독백에서 점점 자신의 정체를 밝혀가는 방식이 조화롭게 춤을 추며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입체적인 빌드업을 경험하며 나는 쫄깃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인데, 이 소설이 중후함을 주는 요인은 짝수 꼭지가 아니라 홀수 꼭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회고록은 얼마나 주인공이 비뚤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충실히 담당하는 동시에 주인공이 그렇게 비뚤어진 이유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주인공이 살인자가 된 것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담당한다.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장강명 작가의 숨은 메시지가 홀수 꼭지에 많이 담겨 있다는 말도 된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말하는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시스템’과 장강명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말하는, 이 시대 한국 사회가 깊이 내재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인 ‘불안’과 ‘공허’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고 공론장에 올리기 위해 전직 기자 장강명의 르포르타주식 글쓰기와 소설가 장강명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나 쓰인 열매가 바로 이 작품 ‘재수사’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미래의 독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홀수 꼭지에서 난해한 부분이 나와서 이해가 안 가더라도 적어도 맥락만은 파악하겠다는 마음으로 절대 건너뛰지 말고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홀수 꼭지와 짝수 꼭지의 리듬과 화음이 이 소설의 중추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고 충분히 맛보며 작품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묵직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장강명 작가가 이 정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더 써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엔 그런 작품이 필요하다. #은행나무 #김영웅의책과일상
@장맥주 님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독자가 이렇게 글을 쓰면 얼마나 기쁠지, 살아갈 힘이 많이 될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여러 다른 대화에서도 말했지만) 팬심을 가진 독자로서 이렇게 작가님이 직접 소통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한 글이 있어서, 여기 옮겨보고 갑니다.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작가님의 [책, 이게 뭐라고] 22페이지: 작가는, 쓰는 인간은 독자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말하는 인간으로 대면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 여기서의 당황은 좋은 의미로의 당황으로 이해하고 인용했습니다. PS) @히어로 님, 근데 정작 써주신 글은 아직 안읽었습니다. 재수사 아직 읽기 전이라 혹시 몰라서. 상관없는걸까요?
HL7707님의 대화: 와 @장맥주 님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독자가 이렇게 글을 쓰면 얼마나 기쁠지, 살아갈 힘이 많이 될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는 (여러 다른 대화에서도 말했지만) 팬심을 가진 독자로서 이렇게 작가님이 직접 소통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한 글이 있어서, 여기 옮겨보고 갑니다.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 작가님의 [책, 이게 뭐라고] 22페이지: 작가는, 쓰는 인간은 독자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말하는 인간으로 대면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 여기서의 당황은 좋은 의미로의 당황으로 이해하고 인용했습니다. PS) @히어로 님, 근데 정작 써주신 글은 아직 안읽었습니다. 재수사 아직 읽기 전이라 혹시 몰라서. 상관없는걸까요?
네 스포하지 않았습니다^^ 제 글을 읽고 재수사 읽으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장맥주님의 대화: @모임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려주시는 다양한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모두 감사해요. 모임지기의 네 번째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 올립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직접 다루는 사안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제가 떠올린 질문들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궁금해서, 팁을 얻고 싶어 올립니다. (8) 존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아직 너무 추상적이네요. 그래서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품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품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9) 위에서 정의한 인간의 품위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생리 작용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발휘할 수 있나요? 고통 속에서도 드러낼 수 있나요? 어떻게 가능한지요? (10)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예감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상태에 대해서도 상상해 봅니다. 과거를 곱씹는 버릇이 있는 저는 그때 몇 가지 회한에 시달릴 거 같습니다. 여러분은 회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대처하는 좋은 요령이 있을까요?
요즘 제 상태가 안 좋아서.. 막판에 글을 써봅니다. 여러분들의 답변들도 차차 읽어가겠습니다.. (8) 올해 봄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를 보면서 저는 피나 시체 해부에 익숙해서 그것 자체는 별로 거슬리는 게 없었지만... 이상하게 살아있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놓은 상어나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예술작품같은 triptych에 하나하나 실제 나비표본을 붙여놓은 것 등.. 존엄이나 품위는 과연 살아있는 자, 아니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면서 극도로 거부감이 들어서 전 이 전시회를 보러 온 것이 가장 후회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화가 두 분과 이게 과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아니 인간으로서 괜찮은 짓인가 하면서 논쟁을 벌였는데.. 한 분은 저와 동의하고 한 분은 예술은 예술로 봐야한다 하고 동의하지 않았어요 (실은 두 분 다 불교신자들입니다;;) 저는 신앙이 없지만 해부학 실습이 끝난 후 시신 기증을 해주신 고인분들을 위한 예배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수 블랙의 '남아 있는 모든 것'인데 법의인류학자로서 범죄현장, 전쟁터, 자연재해의 현장에서 시신을 조사하고 분석해서 생전 고인의 정체성을 되찾아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이렇게 떠나간 이들, 심지어 누군지 정체성 조차 사라진 이들의 잔재들 속에서도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사람들의 노력 속에 그런 '품위'를 찾았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서 어떤 기능을 한다는 현재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과거와 생명력 등 삶의 모든 것이 그들의 품위와 존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했습니다. (9)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속으로 싸우고 있는 그 사람들의 품위를 봅니다. 예전에 인턴 때 중환자실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amputation하고 처음에는 무릎 아래, 그리고 나아가서는 더 위쪽을 절단해야했으나 갈수록 몸이 썩어가서 매일마다 가서 고름을 걷어내고 소독을 하고 붕대 등을 다시 갈면서 드레싱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분은 엄청 밝은 목소리로 항상 '안녕하세요? 냄새가 많이 나죠. 죄송해요'하고 인사하고 저도 '아니요, 이게 제 일인 걸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도 밝게 인사해주셔서 고마워요'하고 수다 떨면서 드레싱해드렸어요. 나중에는 정신도 영향이 가서 인사는 커녕 알 수 없는 소리만 내고 욕창도 늘어나고 결국에는 돌아가시긴 했는데요. 말이 줄어들고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가면서도 고름과 욕창이 늘어가면서도 계속 그분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은 제 기억에 남아있었어요. 말이 없어지고 그저 고통으로 누워서 끙끙댈 수 밖에 없던 마지막까지 싸워간 그분의 모습 속에 적어도 계속 지켜본 제 눈에는 품위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는 모든 것 - 죽음이 삶에게 남긴 이야기들2004년 인도양에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사망자 신원 확인에 도움을 주기 위해 태국으로 파견된 최초의 법의학자, 2016년 법의인류학에 공헌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한 수 블랙 교수가 들려주는 죽음과 법의학 세계의 이야기.
@히어로 님이 쓰신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독서 모임 모집 중입니다. ^^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독서모임에서 제가 슬쩍 김영웅 작가님께 제안을 드렸는데 독서모임을 열어주셨어요. 모집 성공 인원이 아직 1명 부족하네요. 건강하게 나이드는 법을 깨쳐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과학서이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가 아파요. 저기가 아파요..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뭘 먹으면 좋아요. 운동은 뭐가 좋아요. 그런 이야기들이요. https://gmeum.com/gather/detail/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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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기원 단장과 함께 스토리의 비밀, 파헤칩니다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2. 액션 + 로버트 맥키의 액션스토리 탐험단 시즌 2 : 장르의 해부학 읽기 3. 신화 4. 회고록과 성장물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 4회차[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3) 프랑켄슈타인[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2회차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 1719)[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
히어로와 함께
카라마조프의 피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연뮤번개] 3. [독서x관극x모임지기 토크] 우리 몸에 살고 있는 까라마조프를 만나다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3권의 책 종류
『육식의 종말』완독 하기! (책 증정)[김영사/책 증정] 장안의 화제! 노화과학을 다룬 <우리는 왜 죽는가>를 함께 읽어요 [인플루엔셜/책증정]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지식의 탄생> 읽고 함께 이야기해요!
청명하다, 꾸준히 읽는 중
독서기록용_웍과 칼독서기록용_필요의 탄생독서기록용_제자리에 있다는 것독서 기록용_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
삼국지를 가슴에 품다
삼국지 전권독파 -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으로[모집] 평생의 숙제 인간관계,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답을 묻다 (w. 『최소한의 삼국지』)
혼자이기에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부커상을 받았어요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서울국제작가축제X비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함께읽기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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