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1~12장

D-29
평범한 정상인들 가운데 10~25퍼센트가 평생 적어도 한 번은 생생한 환각을 경험한다. 아무도 없는데 어떤 목소리를 듣거나 어떤 형체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중략)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일들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개인사적인 사건이 되거나 심오한 종교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무시당해 왔지만, 환각은 성스러운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작은 쪽문일지도 모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신경학적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분자적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환각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환각은 많은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중에는 영적 깨달음의 신호로 여기는 문화도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 환각제 복용과 종교적인 체험의 결합은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런 체험은 그것을 일으킨 수단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초월적', '신비적', '신성한', '거룩한' 같은 단어들로 존경스러운 것으로 묘사되었다. 환각은 흔한 현상이다. 환각을 경험했다고 해서 미쳤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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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환각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다. 이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분명히 우리 자신의 본성에 관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각이 내적인 어떤 게 아니라 외적인 실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중 5~10퍼센트는 암시에 걸리기 매우 쉽다. 한 마디 지시에 따라 깊은 최면 상테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인 중 대략 10퍼센트는 한 번 이상 유령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이렇게 집마다 대응법과 육아법이 다 다른 탓에 어떤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상력을 잃지 않고 공상 세계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떤 사람은 현실과 공상을 구분한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인이 된다. 대부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혼자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긴 진화 역사 전체를 훑어볼 때, 아이들이 혼자 자게 된 것은 극히 최근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 대개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안심감 속에 잠들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1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그러나 1971년 매리너 9호의 탐사를 통해 화성 운하는 착각이었음이 밝혀지고, 1976년 바이킹 1호와 2호의 탐사가 화성에서 미생물이라도 존재한다는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자, 로웰 이래 이어져 온 화성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수그러들었고, 화성인이 지구를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에 대한 보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왜? 왜 더 이상 화성인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금성의 표면이 납을 녹일 정도로 뜨겁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금성인의 방문도 끊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대의 지식에 맞춰 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외계인 이야기들의 기원에 관해 무언가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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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환각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외계인이 존재하고, 우리 행성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우리를 납치해서 괴롭힌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이야기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늘날에도 외계인 관련 환각을 체험했다고 이야기할까? 왜 그 환각에는 항상 음침한 작은 생물과 비행 접시와 성적 체험이 등장하는 것일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7장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인류의 많은 문화가 신이 우리를 굽어보고 우리의 운명을 인도한다고 가르친다. 신과는 별개로 사악한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이 악을 낳는다고 여긴다. 이 두 부류의 존재는 때로는 자연적인 것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때로는 실재하는 것으로, 또 때로는 상상 속의 존재로 여겨졌지만,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신이나 악마가 완전히 공상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존재들을 믿으면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의 맹렬한 포화 아래에서 전통 종교들이 시들어 가는 시대인 오늘날, 옛 신들과 악령들에게 과학의 옷을 입히고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합리주의의 파도가 몇 차례 일렁였고, 페르시아,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다양한 세계관들이 밀려왔다 물러갔으며, 사회,정치,사상 측면에서 혁명적인 격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령의 존재에 대한 믿음, 악령의 특성에 대한 교리, 그리고 악령의 이름까지도 혜시오도스 시대로부터 십자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만약 당신이 마법을 쓴다고 고발당한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마녀라는 것이다. 피의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다. 고발이 정당하다는 것은 피의자를 고문해 보면 반드시 증명된다. 고발자와 직접 대면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 고발이 의심스러운 동기, 말하자면, 질투나 복수심, 또는 피의자의 재산을 몰수해 자기 배를 채우고자 하는 이단 심문관의 탐욕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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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를 선고받은 마녀의 나머지 재산은 모조리 교회와 국가가 나누어 가졌다. 이런 식의 대량 절도와 살인 행위가 법적, 도덕적으로 인정되고 제도화되면서 이 제도를 담당한 거대한 관료 기구가 형성되었고, 표적도 가난한 쪼그랑할멈에서 유복한 중류 계급의 남녀로 바뀌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고문을 받아 마녀라고 자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모든 일이 단지 망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무엇이든 쉽게 믿는 경신의 시대에는 망상이 극에 달한 증언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마녀 수만 명이 공공 광장에 모여 사바트를 가졌다거나, 1만 2000명의 마녀들이 뉴편들랜드 섬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말이 진지한 재판에서 정식 증언으로 채택되고는 했다. 성서에서 마술을 부리는 여자나 무당, 즉 "짐승과 교접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출애굽기. 22장 18절)라는 문구를 가져와 수많은 여자를 불태워 죽였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영국에서는 '검침자(pricker)'라고 불린 마녀 사냥꾼들이 고용되었고, 그들은 소녀와 과부를 처형장으로 넘기고 후한 보상금을 받았다. 그들의 고발에는 신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악마의 표식을 찾았다. 흉터나 모반이나 반점 같은 것인데, 핀으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피가 나지 않으면 악마의 표식으로 판정했다. 간단한 손재주로 핀이 마녀의 살에 깊이 박힌 것처럼 보이게 눈속임하는 일이 흔했다. 분명한 표식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표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마녀 재판에는 아주 관능적인 측면과 여성 혐오의 요소들도 섞여 있었다. 당시가 성적으로 억압적인 남성 중심 사회인데다가, 심문관이 명목상 평생 독신이어야만 하는 성직자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9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물론 마녀만 고문과 화형을 당하지는 않았다. 이단이라는 훨씬 더 심각한 죄악이 있었고, 가톨릭교도든 신교도든 모두 이단을 무자비하게 처벌했다. 16세기에 신학자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1494-1536년)은 무모하게도 신약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려고 했다. 사람들이, 한 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사람만 읽을 수 있는 난해한 라틴어가 아니라 자신들이 일상에서 쓰는 언어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민중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종교관을 형성할 수가 있다. 그리고 중개인을 배제하고 자신과 신을 직접 연결하는 통로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업 비밀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신이 번역한 성서를 출판하려고 한 틴들은 박해를 받고 유럽 전체를 떠돌았다. 결국 그는 체포되었고 교수형에 처해진 다음 덤으로 화형까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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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지식을 얻은 자는 고문과 죽음을 통해 처벌받아아 한다는 당대의 절대적 확신을 읽을 수 있다. 이런 풍조 속에서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은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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