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1~12장

D-29
합리주의의 파도가 몇 차례 일렁였고, 페르시아,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다양한 세계관들이 밀려왔다 물러갔으며, 사회,정치,사상 측면에서 혁명적인 격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령의 존재에 대한 믿음, 악령의 특성에 대한 교리, 그리고 악령의 이름까지도 혜시오도스 시대로부터 십자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만약 당신이 마법을 쓴다고 고발당한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마녀라는 것이다. 피의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다. 고발이 정당하다는 것은 피의자를 고문해 보면 반드시 증명된다. 고발자와 직접 대면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 고발이 의심스러운 동기, 말하자면, 질투나 복수심, 또는 피의자의 재산을 몰수해 자기 배를 채우고자 하는 이단 심문관의 탐욕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는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유죄를 선고받은 마녀의 나머지 재산은 모조리 교회와 국가가 나누어 가졌다. 이런 식의 대량 절도와 살인 행위가 법적, 도덕적으로 인정되고 제도화되면서 이 제도를 담당한 거대한 관료 기구가 형성되었고, 표적도 가난한 쪼그랑할멈에서 유복한 중류 계급의 남녀로 바뀌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고문을 받아 마녀라고 자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모든 일이 단지 망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무엇이든 쉽게 믿는 경신의 시대에는 망상이 극에 달한 증언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마녀 수만 명이 공공 광장에 모여 사바트를 가졌다거나, 1만 2000명의 마녀들이 뉴편들랜드 섬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말이 진지한 재판에서 정식 증언으로 채택되고는 했다. 성서에서 마술을 부리는 여자나 무당, 즉 "짐승과 교접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출애굽기. 22장 18절)라는 문구를 가져와 수많은 여자를 불태워 죽였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영국에서는 '검침자(pricker)'라고 불린 마녀 사냥꾼들이 고용되었고, 그들은 소녀와 과부를 처형장으로 넘기고 후한 보상금을 받았다. 그들의 고발에는 신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악마의 표식을 찾았다. 흉터나 모반이나 반점 같은 것인데, 핀으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피가 나지 않으면 악마의 표식으로 판정했다. 간단한 손재주로 핀이 마녀의 살에 깊이 박힌 것처럼 보이게 눈속임하는 일이 흔했다. 분명한 표식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표식"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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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재판에는 아주 관능적인 측면과 여성 혐오의 요소들도 섞여 있었다. 당시가 성적으로 억압적인 남성 중심 사회인데다가, 심문관이 명목상 평생 독신이어야만 하는 성직자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89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물론 마녀만 고문과 화형을 당하지는 않았다. 이단이라는 훨씬 더 심각한 죄악이 있었고, 가톨릭교도든 신교도든 모두 이단을 무자비하게 처벌했다. 16세기에 신학자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1494-1536년)은 무모하게도 신약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려고 했다. 사람들이, 한 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사람만 읽을 수 있는 난해한 라틴어가 아니라 자신들이 일상에서 쓰는 언어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민중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종교관을 형성할 수가 있다. 그리고 중개인을 배제하고 자신과 신을 직접 연결하는 통로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업 비밀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신이 번역한 성서를 출판하려고 한 틴들은 박해를 받고 유럽 전체를 떠돌았다. 결국 그는 체포되었고 교수형에 처해진 다음 덤으로 화형까지 당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1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여기서 우리는 지식을 얻은 자는 고문과 죽음을 통해 처벌받아아 한다는 당대의 절대적 확신을 읽을 수 있다. 이런 풍조 속에서 마녀로 고발당한 사람은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1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악마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지한 신앙의 중심부에 똬리 틀고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이 이야기 어디에도 우주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서 살고 벽을 통과하고 텔레파시로 대화하고 인류에게 번식 실험을 실행하는 성에 집착하는 비인간 존재들의 이야기에는 외계인 납치 이야기의 중심 요소 대부분이 갖추어져 있다. 이 기묘한 신념 체계는 서구 세계 전체에서(우리 시대에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마저도 이것을 믿었다.) 신봉되었고, 사람들의 개인적 체험은 여기에 살을 붙였고, 교회와 국가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교육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3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고전 고대 후기에 경신과 회의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흔들리고 번해 갔는지 기술한 바 있다. 그중 유명한 문장을 몇 개 인용해 보자. (중략) "미신적인 관행은 대중의 기호에 아주 잘 맞아서, 그들을 억지로 각성시킨다면 그들은 유해한 환상의 상실을 유감스리위할 징도이다. 신기하고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사랑, 미래의 사건에 대한 호기심, 그들의 희망과 공포를 가시적인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 확장하러는 강한 경향은 다신교의 확립을 도운 주요 요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게 다른 무엇보다 필요할 때가 있다. 만약 어떤 신화 체계가 몰락한다면, 대개의 경우 또 다른 미신 형태가 등장해 그 자리를 잇는 법이다." 대중을 이렇게까지 깔보는 모습에서 기번의 사회적 속물 근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악령은 상류 계급 역시 괴롭혔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6~197ㅇ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기번이 그의 시대를 특징짓는다고 말한 회의주의가 우리 시대에 쇠퇴했다고 평가한다면, 그리고 그가 고전 고대 후기에 만연했다고 말한 경신의 경향이 조금이라도 우리 시대까지 남아 있다면, 악령과 비슷한 어떤 것이 현대 대중 문화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당연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9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나는 1960년대 초반 UFO 이야기가 주로 종교적인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논한 바 있다. 과학 때문에 옛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기가 어려워진 시대인 오늘날, 신이라는 가설에 대해서도 다양한 대안이 제기되고 있다. 고대의 신과 악령이 과학적인 전문 용어로 무장하고 천국에서 내려와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들의 강대한 권능을 겉보기에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예언적인 환상을 안겨 주며, 희망 찬 미래 전망으로 우리를 애타게 하는, 우주 시대의 신비 종교가 막 태어나려고 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0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민속학자 토머스 에디 불러드(Thomas Eddic Bullard, 1949년~)는 1989년에 다 음과 같이 썼다. "외계인에 의한 납치 보고는 고래로부터 존재했던 초자연적 존재와의 조우라는 전통을 외계인에게 과거 신적인 존재가 하던 배역을 부여함으로써 다시 쓰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과학은 우리의 신앙에서 유령과 마녀를 쫓아냈지만 곧바로 그 빈자리를 똑같은 기능을 하는 외계인으로 채웠을 뿐이다. 새로운 것은 외계, 즉 지구 밖 세계라는 껍데기뿐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0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외계인 납치 이야기는 전혀 세계적이지 않고 오히려 실망스럽게도 지역적이다. 대다수는 북아메리카에서 나온다. 미국 문화를 거의 넘어서지 못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0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미국에서 보고된 전형적인 현대풍 외계 생명체는 몸집이 작고, 머리와 눈이 불균형하개 크고, 이목구비가 발달하지 않고, 눈썹이나 생식기는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미끄러운 회색 피부를 갖고 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대략 임신 12주의 테아나 기아 상태의 어린이와 기분 나쁠 정도로 닮았다. 태아나 영양실조 아동에 집착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일까? 게다가 그렇게 생긴 존재들에게 공격을 받고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많은 것일까? 이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문제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06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UFO 신봉자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것은 진실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공통점이야말로 그들의 외계인 이야기가 인류가 공유하는 문화와 생물학 지식의 산물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0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8장 내가 본 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믿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상상과 기억간의 경계선은 매우 흐릿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1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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