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1~12장

D-29
강력한 힘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지구인을 농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방송과, 이런 이야기가 나도는 것은 인간의 약점과 미성숙 때문이라고 잔소리하는 방송 중에 어떤 게 시청률이 더 높을까?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하고.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까? 어느 쪽이 현대인의 심금을 더 강하게 울릴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33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많은 사람이 UFO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은 애초부터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임을 나는 발견했다. 그들은 목격 증언은 신뢰할 만하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망상이나 장난은 그 정도 규모로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정부 상층부가 장기간에 걸쳐 고도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UFO 이야기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풍조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양분 삼아 만연하고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3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방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밀로 취급하는 게 합법인 정보도 있고, 군사 설비 관련 정보라면 비밀 유지가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군부, 정계, 정보 기관에는 내부 사정 때문에 비밀 유지를 중요시하는 풍조가 있다. 비밀 유지는 자신들의 무능과 그것보다 나쁜 오류에 대한 비판을 막고. 책임을 모면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의는 국가 기밀을 취급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 계급이나 기득권 집단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그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반 시민 대중과 구분된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비밀주의는 민주주의나 과학과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46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인류의 역사에는 이것과 비슷한 사례들이 많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문서가 갑자기 발견되고 발견자의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해 주는 중요한 정보가 그 문서를 통해 드러난다. 주의 깊게, 때로는 과감하게 조사하다 보면 그 문서가 가짜였음이 밝혀진다. 문서 위조자들의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4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냉전 종식 이후에 NASA는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해 줄 사명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우주에서의 인간 활동을 정당화해 줄 훌륭한 이유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만약 우호적이지 않은 외계인들이 매일매일 지구를 방문하고 있다면, 정부 예산에 목매는 NASA가 이것을 증액의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만약 외계인의 침략이 착착 진행 중이라면, 전통적으로 조종사 출신이 주도권을 가지는 공군이 유인 우주 비행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무인 부스터 로켓만 쏘아 올릴 리도 없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50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국방부는 실제든 가상이든 적이 있어야 잘 나갈 수 있는 조직이다.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는 조직이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감춘다는 것은 가능성이 극히 작은 이 야기이다. 탈냉전 시대 미국에서(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군사 분야든, 민간 분야든 우주 계획이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 곁에 이미 외계인이 와 있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부정하게 만든다. 물론 국방개혁을 수립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모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50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감정이 고조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특히 최근 유행하는 외계인 납치 관련 보고들이 일으키는 혼란과 관련해서 이것은 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을 대상으로 성적 실험을 하는 외계인이 침략하고 있다는 가설이든, 환각과 망상이 전염병처럼 유행하고 있다는 가설이든 간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이런 주장들에서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은, 두 대안 가설 모두 불쾌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52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6장 환각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어째서 UFO의 승조원들은 우리 행성의 최신 문제나 당면 위기에 대해서만 우려하는 것일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5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평범한 정상인들 가운데 10~25퍼센트가 평생 적어도 한 번은 생생한 환각을 경험한다. 아무도 없는데 어떤 목소리를 듣거나 어떤 형체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중략)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일들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개인사적인 사건이 되거나 심오한 종교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무시당해 왔지만, 환각은 성스러운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작은 쪽문일지도 모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신경학적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분자적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환각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환각은 많은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중에는 영적 깨달음의 신호로 여기는 문화도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1960년대 서구 사회에서 환각제 복용과 종교적인 체험의 결합은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런 체험은 그것을 일으킨 수단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초월적', '신비적', '신성한', '거룩한' 같은 단어들로 존경스러운 것으로 묘사되었다. 환각은 흔한 현상이다. 환각을 경험했다고 해서 미쳤다는 뜻은 아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그러니까 환각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다. 이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분명히 우리 자신의 본성에 관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각이 내적인 어떤 게 아니라 외적인 실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중 5~10퍼센트는 암시에 걸리기 매우 쉽다. 한 마디 지시에 따라 깊은 최면 상테에 빠질 수도 있다. 미국인 중 대략 10퍼센트는 한 번 이상 유령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이렇게 집마다 대응법과 육아법이 다 다른 탓에 어떤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상력을 잃지 않고 공상 세계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어떤 사람은 현실과 공상을 구분한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인이 된다. 대부분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6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일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혼자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긴 진화 역사 전체를 훑어볼 때, 아이들이 혼자 자게 된 것은 극히 최근 일이다. 아이들은 어른, 대개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안심감 속에 잠들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1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그러나 1971년 매리너 9호의 탐사를 통해 화성 운하는 착각이었음이 밝혀지고, 1976년 바이킹 1호와 2호의 탐사가 화성에서 미생물이라도 존재한다는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자, 로웰 이래 이어져 온 화성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수그러들었고, 화성인이 지구를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에 대한 보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왜? 왜 더 이상 화성인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리고 금성의 표면이 납을 녹일 정도로 뜨겁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금성인의 방문도 끊겼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대의 지식에 맞춰 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외계인 이야기들의 기원에 관해 무언가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인간이 환각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외계인이 존재하고, 우리 행성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우리를 납치해서 괴롭힌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이야기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늘날에도 외계인 관련 환각을 체험했다고 이야기할까? 왜 그 환각에는 항상 음침한 작은 생물과 비행 접시와 성적 체험이 등장하는 것일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7장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인류의 많은 문화가 신이 우리를 굽어보고 우리의 운명을 인도한다고 가르친다. 신과는 별개로 사악한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이 악을 낳는다고 여긴다. 이 두 부류의 존재는 때로는 자연적인 것으로, 때로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때로는 실재하는 것으로, 또 때로는 상상 속의 존재로 여겨졌지만,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신이나 악마가 완전히 공상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존재들을 믿으면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의 맹렬한 포화 아래에서 전통 종교들이 시들어 가는 시대인 오늘날, 옛 신들과 악령들에게 과학의 옷을 입히고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17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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