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1~12장

D-29
더 직접적으로 "네가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해 주면, 아이들은 주입된 기억을 저항 없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기억이 변형된 아이들의 진술을 비디오로 보면 전문 심리학자라고 하더라도 가짜 기억과 진짜 기억을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범하는 오류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기억에 대해 면역력을 가지고 있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아마도 우리가 실제로 기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짠 직물 위에 꿰매 놓은 일련의 기억 단편들일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과학에서 이론들은 언제나 재평가되고 새로운 사실들과 직면하게 된다. 이론과 새로운 사실이 심각하게 불일치한다면, 즉 그것이 오차범위를 넘는다면 그 이론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과 직면하는 일이 아주 드물다. 우리 기억은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대신에 기억은, 결함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그 모습 그대로 동결되거나, 인위적인 수정이 계속 가해져 하나의 작품에서 또다른 작품으로 탈바꿈해 간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6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불확실성과 공포에 시달리는 세상에서 이들은 신적인 것과의 집촉을 갈망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그러니까 권력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환시를 본 사람은 그런 환시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믿을 수 없는 목격자라는 뜻이다. 결국 권력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이 성인들과 성모가 한 말로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이런 이야기를 꾸며내고 받아들이는 동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성직자,공증인,목수,상인을 위한 일거리가 생기고, 불경기일 때에는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목격자와 목격자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올라갈 것이다. (중략) 무어인 같은 이교도에 대한 대중의 적개심을 고양시킬 수 있을 테고 교회법에 대한 대중의 순종심을 확산시키고 경건한 사람들의 신앙심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지나 성당이 새로 만들어지면 그곳을 순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정은 놀라울 정도로 강해진다. 성지의 바위 부스러기나 흙을 물과 섞어서 약으로 마시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격담 전부가 날조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났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19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발현은 대개 목격자가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 일어난다. 220p 많은 수의 아마도 모든 발현 사건이, 깨어 있을 때 꾼 것이든 자고 있을 때 꾼 것이든, 일종의 꿈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조작이나 속임수가 덧붙었으리라. 221p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이렇게 엄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거짓말했다거니 꿈꾸었다거나 잘못 보았다고 고백하라는 압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들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환시를 진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3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그런데 발현을 통해 나타난 성모의 경고는 왜 그렇게 평범했을까? 신의 어머니 정도 되는 찬란한 존재가 기껏 인구가 수천 명밖에 안되는 작은 지방에 나타나 성당을 수리하지 않으면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경고만 하고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이나 성인만이 내렸을 것 같은 후손 대대로 인간사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한 예언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사소하다면 사소한 말씀만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이나 계몽주의와 사투를 벌이고 있던 시대에 발현하신 성모는 왜 가톨릭의 권위를 높여 주지 않았을까? 교황청 쪽에 천동설은 잘못된 생각이니 받아들이지 말라고 주의 주거나, 나치 독일과 공모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발현도 없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발현한 성인 중에 마녀와 이단을 고문하고 불에 태운 관행을 비판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왜 없었을까? 성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을까? 성인들이 그런 일이 악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없었을까? 왜 성모 마리아는 언제나 불쌍한 농부에게 나타나 높은 사람에게 알리라고 명령했을까? 왜 높은 사람 앞에 나타나 직접 경고하지 않았을까? 왕이든 교황이든 그 앞에 나타나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우리는 결국 어떠 식으로든 꿈과 현실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한다.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이 꾸며낸 것이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6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사람들이 납치 이야기를 꾸며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연자'가 성적으로 모욕을 당했다는 이야기만 다루려는 시청자 참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사람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외계인 납치의 피해자임을 발견하는 것은 최소한 틀에 박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동료들과 심리 치료사들의 관심을 얻고 아마 언론의 주목까지도 모을 것이다. 발견, 홍분, 경외의 느낌을 받는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일어날 중요한 사건의 선각자나 그 사건을 일으킬 도구라고 믿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치료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치료사의 인정을 받고 싶다 하는 열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납치당했다는 것에는 어떤 심리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대조적으로 외계인 납치 사건의 경우에는 납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표하라고 권유하는 심리치료사들이 있고, UFO에게 납치되었다는 거짓 주장은 법적인 처벌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콜라 깡통에서 우연히 주사기를 발견했다는 것보다 불가사의한 목적을 가진 고차원적 존재에게 선택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줄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2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9장 치료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경우, 특히 심리 치료사나 최면술사의 도움을 받은 데다, '되살아났다는' 처음 기억이 유렁처럼 흐릿하고 꿈처럼 모호하다면 그 신빙성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4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잘못 기억하는 것이나 소급적 재가공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은 잔흑하기 이를 데 없는 학대의 기억마저도 사람들은 한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자신과 죽음의 수용소 사이에 감정적 거리를 두지 못하고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5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기억의 재생과 이후에 이루어지는 기억의 회복'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함을 알수 있다. 1.학대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2.피해자는 오랫동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6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어떤 경우든 일단 의심해 보는 것, 회의주의를 작동시켜 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문제일 수 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7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외계인에 의해 납치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조사하면 할수록 어린 시절 성적 학대에 대한 기억을 재생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해 보인다. 게다가 이런 기억 관련 이야기에는 제3의 부류가 존재한다. 악마 숭배 컬트와 관련된 억압된 '기억'이 그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238p,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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