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W.G. 제발트의 유작이자 에세이집인 『캄포 산토』를 함께 읽어갈 모임지기입니다.
제발트의 글을 읽는 것은 마치 켜켜이 쌓인 오래된 도시의 역사적 지층을 천천히 걸으며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현재의 풍경 속에 숨겨진 잊힌 과거와 상실의 흔적들을 특유의 우수 어린 시선으로 기어코 찾아내어 우리 앞에 펼쳐놓습니다.
코르시카섬의 공동묘지(캄포 산토)에서 출발해 죽음과 기억,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어지는 이 책은 빠르게 읽어내기보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소설과 에세이,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허무는 제발트의 독특한 산문 스타일을 깊이 음미하고 싶으신 분
과거의 흔적이 남겨진 장소나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
천천히 읽고, 문장 사이에 머무르며 떠오르는 단상들을 다정하게 나누고 싶으신 분
혼자서라면 길을 잃기 쉬운 제발트의 길고 매혹적인 문장들의 숲을, 29일 동안 서로의 나침반이 되어 함께 걸어보았으면 합니다. 책의 어느 페이지, 어떤 문장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셨는지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기억의 지층을 걷는 시간, W.G. 제발트의 『캄포 산토』 함께 읽기
D-29
오벽모임지기의 말
오벽
“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해명되지 않는 임의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움직이며, 측정할 수도 없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느껴지지도 않는 한줄기 바람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에 의해, 누군가의 눈에서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인파를 뚫고 전해지는 시선에 의해 결정적인 순간 방향이 바뀌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조차 우리는 실제로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찌하여 이런저런 세계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진리에는 과거에 대한 아무리 정확한 지식도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주장보다 더 가까이 가닿지 못한다 ”
『캄포 산토』 p.20-21,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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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오벽님의 문장 수집: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해명되지 않는 임의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움직이며, 측정할 수도 없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느껴지지도 않는 한줄기 바람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에 의해, 누군가의 눈에서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인파를 뚫고 전해지는 시선에 의해 결정적인 순간 방향이 바뀌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조차 우리는 실제로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찌하여 이런저런 세계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진리에는 과거에 대한 아무리 정확한 지식도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주장보다 더 가까이 가닿지 못한다"
역사의 객관적 사실 과 인과관계는 인식하기 불가능한 것이며 그 방향은 우연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라, 작가는 그 진실성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대부분 허구와 팩트가 혼합되어 있고, 사실성에 독해의 초점을 맞추다보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오벽
오벽님의 대화: 역사의 객관적 사실과 인과관계는 인식하기 불가능한 것이며 그 방향은 우연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라, 작가는 그 진실성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대부분 허구와 팩트가 혼합되어 있고, 사실성에 독해의 초점을 맞추다보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박물관에 꼴라주 처럼 나열된 유물들을 산책하던 그는, 그 장면을 우리에게 길게 묘사합니다. 때론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그 대면의 당황한 감정을 쓰기도 하고 갑자기 예전의 일화를 도입하기도 하면서 글의 종반부를 향해 달려갑니다. 황망하게 정리되는 듯한 그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당혹함과 공허함, 정돈할 수 없는 이명을 길게 남깁니다
오벽
“ 여담이지만 코르시카 보케라트리치 문화에서 나타난, 완전한 정신적 붕괴와 극단적인 자기통제의 지배를 동시에 받는 심리 상태는 이백 년 전 매일 저녁 부르주아 계급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엄격히 훈련받아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켰던 몽유병자의 심리상태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
『캄포 산토』 P.34, 캄포 산토,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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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기억과 보관과 유지는 주거지의 밀도가 낮은 시대에만, 즉 우리가 만들어낸 물건들이 많지 않은 데 반해 공간만은 넉넉했을 시대에만 삶의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캄포 산토』 P.42, 캄포 산토,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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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 그러면 우리는 기억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느 현재를 살아가면서, 또 아무것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면서, 종국에는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또는 가끔식이라도 되돌아오고 싶은 마음조차 품지 못한 채 삶 자체를 놓아버리게 되리라. ”
『캄포 산토』 P.42, 캄포 산토,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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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작가는 휴가라도 온 양인지, 풍경을 감상하며 자유로운 산책을 거닐 던 중 코르시카 산중의 작은 교 회 묘지 (캄포 산토)를 마주합니다. 갑자기 글은 분위기를 바꿔, 역사적, 사회학적 분석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작가 특유의 사색적이면서 회유하는 듯한 환상적 경험 묘사들이 끼어들고, 아련히 바스라지는 듯, 작은 한숨과 같은 문장으로 같이 끝을 맺습니다.
오벽
국가가 아직 전근대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던 저의 중학교 시절,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서울에서 시골까지 고모들과 자동차를 타고 내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가족들과의 평범한 여행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친척들을 태우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휴게소도 들르고, 가끔 어색한 웃음이 함께하는 대화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차가 시골집 대문 앞에 당도하고 차문이 열리는 순간, 온화하던 고모들의 목소리가 길게 흐느끼는 곡소리로 바뀌며 차에서 뛰어내리 던 바로 그 때를 저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엉덩이를 비켜서며 함께 내린 형과 나는 벙찐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오벽
그 여정에 차를 운전하시던 아버지는 이제 작은 유골함에 담겨, 차가운 납골당 유리벽 뒤에 있습니다. 때로는 죽은 이들을 산 자들의 생활공간에서 내모는 현대 사회의 매정함이 얄밉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저는 학교 뒷산에 산책을 나갔는데, 그 산 중턱에는 죽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있었습니다. 죽은 나무들은 여전히 숲에 일원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며 조용히 조용히 자신을 분쇄해 나가는 것이 었습니다. 그게 묘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반면 왜 우리는 죽 은 이들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공간에서 쉽게 빨리 제거해 버리는지 야속했습니다. 죽은 나무들은 검었고, 그 숲은 음기가 가득했다는 기억이 불현듯 납니다.
오벽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놓아버리는 것은 해탈한 이들이 남겨진 이들에게 바라는 최상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이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며, 글을 통해 기억이 어떻게 살아있는 자들의 경험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지 탐구하고 그 경험을 온전히 향유합니다. 제발트의 글이 현대인의 마음에 왜 이렇게 오롯이 자리잡는지 저도 매번 고민하게 됩니다.
오벽
“ 모든 기호에는 전달 가능성의 저주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언어의 소리는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사건을, '외부'의 세계만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 또한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고자 한다 ”
『캄포 산토』 P.78, 생소, 통합, 위기,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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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 문학이 이러한 딜레마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사회적이고 추방된 언어에 한결같이 충실할 때만, 반란이 좌절된 불투명한 이미지들을 소통수단으로 투입하는 법을 배울 때만 가능하리라. ”
『캄포 산토』 P.79 생소, 통합, 위기,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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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제발트는 일견 소통불가능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명백히 '에세이' 라고 쓰여진 챕터의 이 글은 카스파르와 빨간 피터를 빌어 그의 산문이 사실은 내면을 표출하여 소통하고자 하는 언어적 몸부림임을 고백하는 듯 하다.
오벽
“ 이런 보복 과정은 파시스트 정권의 책임을 짊어진 한 민족에게 닥친 시련이기도 했지만 개개인의 속죄 욕망이기도 했으며, 특히 여기서는 도시의 파괴를 오래전부터 갈망해왔던 작가의 속죄 욕망이기도 하다. "공습이 있을 때마다 나는 분명한 소원을 빌었다. 아주 제대로 파괴해주세요!" ”
『캄포 산토』 P.92 역사와 자연사 사이,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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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오벽님의 문장 수집: "이런 보복 과정은 파시스트 정권의 책임을 짊어진 한 민족에게 닥친 시련이기도 했지만 개개인의 속죄 욕망이기도 했으며, 특히 여기서는 도시의 파괴를 오래전부터 갈망해왔던 작가의 속죄 욕망이기도 하다. "공습이 있을 때마다 나는 분명한 소원을 빌었다. 아주 제대로 파괴해주세요!""
이 감정은 마치 월드컵에서 우리 나라 국가 대표팀이 32강에 나가지 못하고 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을지도 (하찮은 비유지만...)
오벽
재앙 이후 독일 민족이 갖게 된 심리적 기질에 관해 상술했던, 국민 전체가 실패한 집단 애도에 대한 은유다.
『캄포 산토』 P.93 역사와 자연사 사이,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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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기억이 위험한 이유는 기억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은 망각을 통해서 만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되기 때문이다.
『캄포 산토』 P.100 역사와 자연사 사이,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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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 ... 미군 제8공격군 폭격수였던 프레더릭 L. 앤더슨은 성 마르티니 교회 탑에 침대보 여섯 벌로 만든 백기를 제때 게양하기만 했어도 도시에 가해질 공격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군사 전문가의 관점에 서 볼 때 순진하게 짝이 없는 질문에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 답해준다. ...
... 그는 자신들이 싣고 간 폭탄이 결국은 "값비싼 재화"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조국에서 그렇게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 폭탄을 생산했는데, 그걸 산이나 벌판에 던져버리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노릇이었습니다." ”
『캄포 산토』 P.111 역사와 자연사 사이,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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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 클루게가 ... 이야기하려는 욕망을 타고난 것이 분명한데도 도시의 초토화된 구역 크기만큼 기억하는 심리적 힘을 상실해버린 동시대인들의 집단적 기억을 재생하고자 노력하는 작가임을 증명한다.. ”
『캄포 산토』 p.115 역사와 자연사 사이,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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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벽
제발트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독일 민족이 연합국의 설명할 수 없이 무자비한 폭격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묻는다. 이러한 주장이 서유럽 사회에 가져온 불편함은 우리가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본 도시들에 가해진 폭격과 2번의 핵폭탄 사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기억이 가진 재생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듯 하다. 그 기록이 진실되기만 한다면 소통하고 애도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올바른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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