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수 역시 여자 친구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방돌이이자 해결사로서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조사했던 부분은 그가 여자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였다. 여기서 나의 문제 해결 방법을 잠깐 소개해야 할 듯하다. 나에게는 감정에 치우친 녀석들의 주관적인 해석 따위 자료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물적 증거가 있어야 했다. 편지라든지, 해석을 제외한 액면 그대로의 사건이라든지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해석이 가미된 자료는 모두 거부했다. 그런데 민수가 받은 편지는 안타깝게도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미적지근한 뉘앙스의 한 장짜리 연분홍 파스텔 톤의 편지지였는데, 손 글씨도 아니고 차갑게 프린트된 글씨가 반 장 정도만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였는데, 민수는 며칠 동안 그 편지를 붙들고 백만 분의 일이라도 좋으니 다른 해석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애절했다. 측은한 마음이 든 나는 친구가 불쌍해서 아무 말 없이 음악으로 내 답을 대신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던 데이비드 포스터의 곡, <And when she danced>였다. 민수는 엉엉 울었다. ”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 실험실에서 자라난 청춘들의 이야기』 김영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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