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D-29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각주를 단다고 해서 난해해보일 우려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책 전체 내용이 전문 과학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요. 이 책의 독특한 점이 일반인들이 쉽게 보기 힘든 실험실의 모습과 관련된 전문 지식(A)을 다루면서도 크게 소설이라는 형식(B)으로 감싸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차라리 A 요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책 전체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각주를 달았다면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지만 각주가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 봐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친절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과연 소수였을지..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각주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을 듯 한데요. 그래서 A에 해당하는 부분을 더 상세하게 다루면서 확장하는 내용으로 책을 구성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더 우겨볼 걸 그랬네요^^
우기는 건 저희 집 큰 애가 잘 합니다 ㅎㅎ
‘그래서 A에 해당하는 부분을 더 상세하게 다루면서 확장하는 내용으로 책을 구성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이건 지금 책 구성의 변화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책을 구성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씀드렸어요. 상동 재조합 방식과 유전자 가위 방식으로 실험을 하는 것의 차별점, 역사적인 맥락, 관련 내용들(다른 과학자들과 다른 실험들)도 궁금했어요. @히어로 님은 지금은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이용해서 실험을 하시나요?
유전자가위는 이제 에어프라이어 같은 거예요. 누구나 다 사용하는 정도로 보급화되었답니다. 특별한 기술도 아니예요. 불과 20년 채 안 된 일이죠. 밀키트 같은 형식으로 제품이 나와 있어서, 별 특별한 지식 없이도 매뉴얼 보고 따라하면 어지간해선 다 할 수 있는 기술이랍니다. 놀랍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을 바꾼 것처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삶의 모든 방면에서 변화가 워낙 컸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유전자 가위 기술로 진행하고 계시는 실험에서 변화하거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나요?
실험자 입장에서는 더 발전된 방법,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 편하게 된 셈이죠. 여기서는 그것의 철학적, 인문학적, 신학적 가치를 고려하진 않아요. 요리할 때 에어프라이어 쓰니까 훨씬 편리해졌는데? 하는 식이죠.
제 기억이 맞다면 유전자 가위는 중고등학교 때 과학 시간에도 배운 것 같은데.. 2000년 초반 실험에서도 상동 재조합 방식으로 실험했다고 하니 .. 유전자 가위 기술도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던 걸까요?
유전자 가위가 상용화된 건 아마 2013년 정도 부터일 거에요.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유전자 가위를 배우셨다면 연령대가....
지난 번 포항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1996년에 고등학생 1학년이었어요.
그렇다면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유전자가위는 유전가가위가 아니라 다른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리스트릭션엔자임 같은 것도 가위로 표현하곤 하거든요. 그런 건 모두 단백질 효소인데, 우리가 요즘 말하는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 RNA와 Cas9이라는 단백질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새로운 기술이랍니다.
그렇군요. ^^ 뭔가 그때 배울 당시에도 완벽하지 않아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가위 들고 달리기 : 크리스퍼 혁명 RUNNING WITH SCISSORS 과학자들이 점차 뜨거워지는 우리 행성에서 재배할 수 있는 열과 가뭄에 강한 농작물, 또는 탄소를 포집해 기후 변화의 영향을 되돌릴 수 있는 유기체, 파괴적인 유전 질환에 대한 빠르고 안전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이것이 바로 크리스퍼CRISPR에 의해 유토피아적으로 변화된 미래의 상이다. 최근 나온 책들에서 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진화를 통제할 수 있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대단한 힘", "인간성을 편집할 수 있는" 멋진 전망,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술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크리스퍼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부정적으로 변화시킬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상도 존재한다. 무책임한 개인이나 정부가 크리스퍼를 이용해 사람들을 공격하는 동물이나 말 잘 듣는 초능력자 집단을 만든다는 식이다. 그런데 영화 <스타워즈>에서처럼 누군가가 유전공학을 통해 '클론 트루퍼(영화에서 클론 부대원으로 이워진 군대)'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크리스퍼를 사용하면 모기에서 옥수수, 인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기체의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크리스퍼를 유전자 공학과 연관시키지만, 사실 크리스퍼의 작동 부위는 박테리아의 자연적인 생명 현상에서 발견되었다. 박테리아는 앞에서 살펴본 파지라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는 데 이 과정을 사용한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사이의 전쟁은 아마도 10억 년 이상 지속되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새로운 공격을 할 때마다 다른 쪽은 새로운 반격을 시도한다. 그렇기에 DNA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해 작동하는 크리스퍼 시스템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렇게 특별하지 않으며 파지에 대항하는 여러 보호 체계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전공학의 도구로 재구성된 것은 최초이며, 특히 RNA를 통해 전례 없는 힘을 발휘한다. *게놈 편집 도구로 가장 먼저 사용되기 시작한 CRISPR-Cas9 시스템은 DNA를 가진 파지로부터 박테리아를 보호한다. 반면에 RNA를 절단해 RNA 파지로부터 박테리아를 보호하는, RNA에서 유도된 다른 크리스퍼 시스템도 있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289~290,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RNA의 촉매 작용(리보자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분자생물학자 토머스 체크가 쓴 RNA에 대한 러브송이다. RNA의 과학적 발견부터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mRNA 백신, 생명의 샘이라 알려진 텔로미어를 활용한 노화 연구 등 혁신적인 생명공학 기술까지 아우르며, 21세기의 생명과학이 RNA를 중심으로 어떻게 새롭게 쓰이는지 탐구한다.
크리스퍼의 DNA 절단 장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Cas9CRISPR-associated 9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분자 가위처럼 작동하는 효소로, DNA 이중나선의 두 가닥을 물리적으로 절단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위험하니 가위를 들고 함부로 뛰어다니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똑같은 위험성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제대로 제어되지 않으면 이 DNA 절단 가위는 무작위로 커다란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여기서 RNA가 등장한다. 나와 함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제니퍼 다우드나(앞선 장에서 RNA 구조의 비밀을 풀던 그 과학자)와 동료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Emmacuelle Charpentier는 2012년 맞춤형 '가이드RNA'와 Cas9효소를 겹합하면 크리스퍼의 가위가 특정 유전자 서열을 절단하도록 정확하게 지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획기적인 돌파구는 2020년 두 사람에게 노벨 화학상을 안겨주었다.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의 발견이 발표된 후 몇 달 안에 MIT의 장펑张锋,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처치George Church, 버클리에 있는 제니퍼의 연구팀은 이 RNA로 유도한 게놈 편집 방식이 살아 있는 인간 세포에서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과학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암을 유발하는 종양 유전자oncogene들, 또한 알츠하이머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서 잘못 접힌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들을 비활성화하는 데 크리스퍼를 가장 먼저 응용하기로 결정했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290~291,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그렇다면 RNA는 정확히 어떻게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가? 앞에서 몇 번이고 살펴보았듯이, RNA는 염기쌍 짝짓기의 귀재여서 그 안의 핵산들은 서로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화하며 분자적인 짝짓기를 한다. Cas9 단백질과 결합하는 RNA 분자는 이 힘을 사용해서 두 가닥의 DNA 중 하나와 염기쌍 짝짓기를 하고, 그에 따라 게놈 편집이 일어날 정확한 위치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지정한다. 이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인간 게놈 안의 특정 부위를 편집하는 방법이 값비싸고 지루하며 너무 어려워서 전 세계의 몇몇 실험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학부생들도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크리스퍼 키트를 사용해 유전자의 나쁜 돌연변이를 지우거나, 몇 주 안에 어떤 유전자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도 있다. 내가 일하는 실험실에서는 크리스퍼가 너무 자주 언급된 나머지 마치 '구글로 검색하다'를 '구글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종의 동사가 되었다. 일단 어떤 유전자를 '크리스퍼해서' 무언가 수정하면, 그것이 우리의 페트리 디쉬에서 자라는 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관찰할 수 있다. 크리스퍼를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은 비단 우리 연구실만이 아니다. 이 기술을 더욱 급진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7,000여 곳의 연구실들이 이미 크리스퍼를 사용했고, 그중 일부는 인상적인 새로운 발견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혁신적 발견들이 다가오고 있다. 연구자들은 세포뿐만 아니라 초파리나 쥐 같은 살아 있는 동물들에게 유전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크리스퍼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지나치게 들떠 무언가 과장하는 것을 혐오하지만, 생명과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는 이 기술이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과 비슷하다고 묘사한다. 보통은 '크리스퍼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291~292,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공공의 가치 만약 여러분에게 모든 걸 할 수 있는 강력한 유전자 가위가 있다면 어째서 돌연변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을 체세포에만 한정지어야 하는지, 즉 배아 세포에는 왜 이 요법을 적용할 수 없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유전 질환을 더 효율적으로 치료하려면 태어나기 전 배아 상태에서 오류를 교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허젠쿠이贺建奎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중국 심천에 자리한 남방과기대학교 교수인 그는 2018년에 HIV 감염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하고자 HIV가 인간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크리스퍼를 사용해 두 쌍을 이 자매의 배아를 유전적으로 편집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과학계에서 내쳐졌다. 그는 일하던 대학교에서 해고된 것은 물론이고 '불법적인 의료 행위'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대중의 항의에 반항적인 태도를 고수해왔지만, 2023년 영국 신문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너무 빨리 움직였을 뿐'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젠쿠이의 행동은 크리스퍼를 비롯한 유전자 편집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경계를 두어야 한다는 과학계의 합의에 대한 위반이었다. 물론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면 재평가할 수 있고, 또 반드시 재평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곤란하다'는 식의 규정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 편집은 체세포에만 국한되어야 하고, 배아나 정자, 난자가 되는 생식세포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기준이다. 체세포의 유전자 변화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없는 반면, 생식 세포의 유전자 변화는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표적을 벗어나 잘못된 곳에서 유전자 편집이 일어났다 해도 그 영향은 치료받은 환자 본인에게만 국한되어야 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313~314,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과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두 번째 경계는 '향상'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을 활용해 자녀를 더 키 크고, 힘세고, 더 빠르고 높이 뛰며, 아름다운 외모를 갖게 만들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크리스퍼는 우생학을 실현하는 위험한 도구가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용도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크리스퍼라는 자원을 배분하는 첫 번째 우선순위가 심각한 질병의 치료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아직 이 범주에서도 안전성과 효능에 대해 답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게다가 우리가 생식 세포를 편집하거나 타고난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크리스퍼를 활용하지 않기도 동의하고 안전 문제에 대해 정책적 합의에 이른다 해도, 어떤 사람은 자연이 우리를 다루는 솜씨를 마음대로 바꿀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크리스퍼 치료제가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최신 트렌드라는 사실이다. 2023년 1월 기준 미국에 사용 승인을 받은 유전자 치료제는 5종으로, 어느 것도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 치료제들의 목표는 모두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완하기 위해 기능적인 유전자 사본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체 유전자가 인간 게놈의 어디에 삽입될지 조절할 수는 없다. 예컨대 혈우병 B는 혈액 내 응고 단백질이 부족해 발생하는 희귀한 출혈성 질환으로, 바이러스를 사용해서 응고 인자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건강한 사본을 체내에 도입하는 방식이 임상시험에 효능을 보였다. 다만 이 치료제를 개발한 CSL 베링은 1회분의 약재에 350만 달러를 책정할 예정이어서 가장 비싼 치료제로 기록을 세웠다. RNA로 유도하는 크리스퍼 요법의 효율성과 특이성이 개선되어 향후 유전자 치료제가 더 안전하고 저렴해지기를 바란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314~315,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2015년 1월 24일, 유전체 공학의 양면성을 우려하는 미국의 생물 의학자, 변호사, 윤리학자들이 캘리포니아주 나파에 모여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신중한 길에 대해 터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근시일 안에 생식 세포에 대한 유전자 편집을 강력하게 금지하기로 합의하면서도, 앞으로 이러한 접근법에 대한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지침이 마련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크리스퍼 요법의 효과와 특이성을 평가하기 위한 오픈 액세스 연구(연구 결과물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정책)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크리스퍼의 위험과 이점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는 개방형 포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많은 과학자가 동의하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크리스퍼 기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기술을 책임 있고 규제된 방식으로 사용했을 때 얻게 될 보상이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pp.315~316,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그녀가 유방과 난소를 암 예방 차원에서 미리 절제했던 비슷한 시기, 생물학계에서는 또 다른, 역사에 길이 남을 기술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바 ‘유전자 가위Genetic Scissors’라는 이름을 가진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 크리스퍼’의 개발이었다. 유전자 가위가 발견 및 응용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전자를 편집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그래서 결코 상품화 혹은 상용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의 등장은 이 모든 한계를 상당수 탁월하게 극복하였으며, 실제 임상에서도 사용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가 되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은 실험용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하게 될 때는 언제나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초 중국에서는 사람에게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여 유전자를 편집한 사례가 발생하고야 만다. 에이즈에 면역을 갖는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겠다는 야심차고 비밀스러운 시도였다. 그러나 그 무모한 시도는, 너무나 당연하게 예상되는 결과였지만 실패로 끝을 맺는다. 표적했던 유전자의 편집이 불완전하게 일어났을 뿐 아니라 표적하지 않았던 DNA를 건드리는 현상까지 초래했던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돌연변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버린 결과를 초래한 셈이었다. 설사 그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윤리적인 문제로 인하여 전 세계적인 후폭풍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맞춤형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만으로도 인간의 윤리를 넘어 종교와 신의 영역까지 문제는 확장되었을 것이다. 2020년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현재, 아직까지도 유전자 가위 방법은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만큼 기술이 완벽하게 제어되지 못한 상태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중국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은 지금보다 더욱 미비한 기술력을 가진 상태에서 추진되었던 셈이다. 이런 기술적인 제약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가능성이나 실험정신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윤리.종교를 떠나 기술적인 관점만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성급해도 너무 성급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 사건은 벌어지지 말았어야 했다. 그 실험을 책임졌던 중국 교수는 몸담고 있던 학교에서 해임되었고, 인간의 생명을 유린했다는 죄명까지 쓰면서 법정 형벌을 받게 된다.
과학자의 신앙공부 -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과 신앙 이야기 pp.158~160, 김영웅 지음, 신현욱 그림
과학자의 신앙공부 -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과 신앙 이야기저자는 인간이 탄생하는 가장 첫 단계의 세포였던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통해 ‘전능’이라는 단어가 그저 우연히 붙여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관용 어구처럼 사용해 왔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전히 유전자 편집기술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만큼 무오한 수준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 모델에서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과학자들의 긍정적인 연구 결과는 어떤 가문이나 개인의 특정적인 유전병에 대하여 외과적 수술 없는 영구 치료의 가능성을 높잉 보여주고 있다. 이 가능성은 분명 과학자나 의사뿐 아니라 이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무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만약 이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서 100퍼센트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유전병은 더 이상 불치병으로써 운명이라거나 죄라는 오명을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개인 맞춤형 치료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기술이 임상으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판정이 된다면, 아마 많고 많은 제2의 안젤리나 졸리들은 굳이 유방이나 난소를 절제하지 않고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부터 완전히 해방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자의 신앙공부 - 생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과 신앙 이야기 pp.160~161, 김영웅 지음, 신현욱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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