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D-29
다들 오늘까지 학부시절에 대해 나누는데 인상 깊었거나 추억 돋거나 하는 장면 없었나요? 이 책 읽으신 많은 분들이 앞부분에서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이 돋는다고 하셨는데 여러분도 그러셨는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인의 학부시절 소환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1부 학부 시절을 읽으면서 저 개인의 1996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6년은 제가 포항제철고등학교에 입학했던 해이거든요. 99학번으로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했던 저는 1996년에 고등학생 1학년이었어요. 고향이 경북이라 경북 과학고등학교(포항 소재)에 시험을 쳤는데 낙방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가게 된 곳이 포항제철고등학교였는데 1학기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때만 해도 기숙사가 없어서 외지에서 온 학생들은 주변 아파트 단지의 가정집에 방 한 칸 하숙하는 형태로 들어갔어요. 포항에서의 생활을 버티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포항제철고등학교와 포항공대가 위치한 마을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인상이었어요. 개미 한 마리도 다니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정돈된 곳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학교와 깔끔한 마을의 외관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했어요. 당시 묵었던 집 아주머니께서 효자시장에도 한 번 데리고 갔는데 큰 감흥이 없었어요. 당시 정확하게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포항공대의 ‘통나무집’에 대해 들었어요. 그 숨 막히는 동네에서 숨 쉴 구멍이 될 만한 오아시스 같은 곳 일거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마도 포항공대생들만 이용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17살이었던 저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었죠. 그때 통나무집에 한 번 가봤더라면 내가 포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름 때문인지 ‘통나무집’이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을까.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런 것들이 괜히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이름만 들었을 때는 숲 속에나 있을 것만 같은 곳이죠.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에서도 계속 통나무집이 등장하고 있는데 팍팍한 공대생과 대학원생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춘기와 청춘은 누구에게나 지독하게 아픈 시기일 테지만 돌이켜보면 저도 지독한 사춘기를 앓았던 것 같아요. 1학기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저에게 친구들이 반에서 송별식처럼 보내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을 잘 챙기지 못했다고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갔다면서 저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셨고요.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 두 명 중 한 명은 아빠가 목사였고, 또 다른 한 아이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 교회에 다녔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안 다니고 있었고요. 세월이 흘러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회에서 7~8년 간 어린이부 교사로 봉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림마루를 맡았는데 함께 봉사한 친구의 고향이 포항이었어요. 몇 년 간 함께 봉사했는데 당시 포항에 지진이 나고 집안도 돌보아야 해서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서둘러 내려갔어요. 포항이라는 장소에 잠시 머물렀던 저에게는 포항이 그리 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을 읽으며 이해와 화해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1996년인데도 포항에 대한 기억이 저와 많이 다르시군요. 저는 책에 썼듯이 너무 시골스러운 환경 가운데 한 세기를 앞서가는 듯한 포항공대가 있어서 부조화를 느끼긴 했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이 책으로 인해 말씀하신대로 포항과의 화해가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가져본 가장 큰 실패감으로부터 복구되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게 만만치 않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고향에서 같이 포항제철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친구는 외동딸이었는데 엄마가 매주 다녀가시면서 살뜰히 보살폈어요. 저희 친정어머니는 일요일도 없이 365일 일하시는 분이었고요. 외지에 떨어진 고등학생의 생활이라고 해봐야 세들어 사는 아파트의 작은 방과 학교를 오가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왕경태와 지욱이가 그 바닷가에서는 잠시나마 숨쉴 수 있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학부시절 보다 뒤에 조금 더 진지한 대학원 시절 이야기가 더 정이 가네요. 이제 저도 여기서 학번을 밝힐 때가 되었는지.. 97년도에 처음 대학교에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모든 아이들이 노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공부하는 것을 조금 비하하는 인식을 가진 것 같아서 적응을 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학에 오면 모든 학생들이 학문에 열정을 불태울 줄 알았는데 ㅎ 너무 순진했던건지. 그렇다고 제가 학부 성적이 탑티어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냥 잘 놀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가 인기도 많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대학교 분위기에 조금 아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저처럼 책 좋아하고 집 도서관 집 도서관 왔다갔다 하고 여자친구 없는 사람을 요새 말로 nerd로 보는 시각이 그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공부 열심히 하면서 진지해지고, 다들 좋은 친구로 동고동락해서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수 역시 여자 친구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방돌이이자 해결사로서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조사했던 부분은 그가 여자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였다. 여기서 나의 문제 해결 방법을 잠깐 소개해야 할 듯하다. 나에게는 감정에 치우친 녀석들의 주관적인 해석 따위 자료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물적 증거가 있어야 했다. 편지라든지, 해석을 제외한 액면 그대로의 사건이라든지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해석이 가미된 자료는 모두 거부했다. 그런데 민수가 받은 편지는 안타깝게도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미적지근한 뉘앙스의 한 장짜리 연분홍 파스텔 톤의 편지지였는데, 손 글씨도 아니고 차갑게 프린트된 글씨가 반 장 정도만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였는데, 민수는 며칠 동안 그 편지를 붙들고 백만 분의 일이라도 좋으니 다른 해석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는 듯했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애절했다. 측은한 마음이 든 나는 친구가 불쌍해서 아무 말 없이 음악으로 내 답을 대신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던 데이비드 포스터의 곡, <And when she danced>였다. 민수는 엉엉 울었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 실험실에서 자라난 청춘들의 이야기 김영웅 지음
이 에피소드에서는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들었습니다ㅎㅎ
저도 오랜만에 들어봐야겠어요^^
어쩌면 이것이 19동 205호가 유명해진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오토바이 헬멧 아래로 살짝 감추어졌던, 수줍어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씩 웃던 멕시칸 치킨 아저씨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아저씨 손에 들려 있던 치킨 한 마리 반의 압도적인 아우라! 우린 분명히 후라이드 한 마리를 시켰지만, 언젠가부터 터질 듯 위로 부풀어 오른, 노란색 고무줄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그 우아한 자태의 치킨 박스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건 이런 기이한 한 마리 반의 기적은 19동 205호에서 주문할 때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번 놀라워했고 동시에 행복해했다. 어쩌면 S7 건축도, 연애 상담도 아닌, 바로 이 치킨의 기적이 친구들의 고민을 가볍게 날려 버렸는지도 모른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 실험실에서 자라난 청춘들의 이야기 김영웅 지음
치킨의 기적! "노란색 고무줄이 지탱하고 있던 우아한 자태의 치킨 박스" 이 대목 읽을 때 입맛 다셨습니다. 동시에 대학시절이 떠올라 잠시 추억 여행도 다녀왔어요.
그땐 맥시칸 치킨이 완전 대세였는데 말이죠. 치킨 시켜먹고 싶네요 ㅋㅋ
아뿔싸, 한 명을 빼먹었다. 19동 205호는 민수와 내가 쓰는 2인 1실의 기숙사 방이었지만, 그 방에는 거의 매일 밤 상주하던, 내가 사용했던 2층 침대의 1층에 터를 잡고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던, 실질적인 야식교의 교주이자 물주가 있었다. 기가 막힌 건, 그 형의 이름이 진짜 교주였다는 것이다. 한교주. 허걱. 어찌 이름을 이 따위로 지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어느 날 민수에게 험담을 했는데 민수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냐?" "왜?" "넌 영웅이잖아. 김영웅!" 젠장.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 후로 교주 형을 부를 때마다 이름은 빼고 그냥 형이라고만 불렀다. 아차, 교주 형이 형인 이유는 삼수생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관행으로 재수까지는 말을 놓고, 삼수부터는 존대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었던 것 같다. 교주 형이 동갑이었더라면, 아니 재수생이었더라도 나는 그를 "교주야~"라고 불렀을 테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 실험실에서 자라난 청춘들의 이야기 김영웅 지음
ㅋㅋㅋ 이름 에피소드에 팡 터졌어요. 1장 학부 시절에서 중간중간 곁길로 새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응답하라 시리즈 보는 것 같아서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그렇죠? 드라마 작가가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응답하라 이야기가 나와서.. <응답하라1988>에 나왔던 경양식 돈까스집 사진입니다. 2024년 사진인데요. 남편과 인천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왠지 응답하라에서 나온 것 같아서 찾아보니 역시 그렇더라고요. 이 날 대기줄이 엄청 길어서 놀랬고.. 1년 뒤 다시 들렀을 때는 조금 사람이 줄었다는 느낌이었어요. 중앙에 있는 분수대가 인상적이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옛날 스타일 그대로인 걸 볼 수 있어요.
DJ는 없지만 그때 그 시절 느낌으로 MUSIC BOX가 한쪽에 있습니다.
저도 국민학생일 때 부모님이 1년에 서너 번 돈까스집에 데려가주셨어요. 그게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은 경양식이다 일본식이다 정말 여러 버전의 돈까스들이 즐비해서 그때의 희소성이 상실되었죠. 그 시절에 먹던 돈까스에 대한 향수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으로 남을 것 같아요. 실내 인테리어가 정말 옛날 집 같네요!
잉글랜드는 동인천에 있는데요. 1981년에 문을 열었어요. 1980년대에는 ‘동인천역’ 일대가 지금의 강남이나 홍대 못지않은 번화가이자 청춘들의 중심지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잉글랜드가 당시 인천의 소문난 외식, 미팅의 명소가 되었고요.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어요. 잉글랜드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이죠. 동인천은 옛날 건물이 남아 있는 경우도 많아서 한 번씩 놀러가면 좋더라고요. 멀지 않은 곳에 차이나타운이나 박물관들이 많고요.
차이나타운 딱 한 번 가봤어요. 그 거리를 걷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어요. 아내가 임신했을 때였는데... 그때가 2008년이니, 벌써 18년 전이네요. 다시 아내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4-15년 전쯤 북경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서 돌아오고 나서는 중국이 그리울 때가 많았어요. 아이들 어려서 차이나타운에 가보았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정신이 없었어요. 비교적 최근에 다시 가니 한적하고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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