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수정처럼 약간 음울한 작가를 좋아한다. 세상을 회의하는 것이다. 작가가 매일 긍정적인 에너지나 선사하고 웃기고 다니면 그게 어디 세상의 진실을 보려는 자세인가. 인간들에게 희망이라는 고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독자가 될게요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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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만연
주먹이 법보다 먼저다.
그래 따지기 좋아하는 인간들을 혐오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보다 뭔가 여유 있어 보여 그런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데 그렇게 따질 시간이 어디 있나,
하는 것이다.
공감과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박탈감과 상실감이 드는 것이다.
자기 세계가 아닌 딴 세계에 사는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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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중국에 맞서고 자기 인기를 위해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남한을 나몰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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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영 단어를 검색할 때 발음 기호가 네이버보다 잘나오는 다음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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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감정이 이는 것도 몸이 건강할 때 가능한 것이다. 힘이 있을 때 이의 방향을 잘 조절해 남에게 해를 안 끼치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안 그러면 말년에 감옥살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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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 책에 감사의 절 세 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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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주의 작가가 있고, 어쩌나 나와 맞는 작품이 있고 제목이나 내용이 내게 필여해 읽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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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독자가 아닌, 일반인이 아닌, 작가 지망생을 겨냥해 쓴 글이다. 이걸 알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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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게 진짜 힘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진짜 장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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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격이 예민한데 그래서 글을 읽고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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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시대라 그저 겉으로라도 밝는 표정을 좋아하지 우울한 표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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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그걸 따르면 또 자기 글이 안 나온다. 그냥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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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드러나고 부딪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최대한 은은히 비치는 쪽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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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 로맨스가 읽고 싶다. 할 일에 집중하고 로맨스는 스치기만 하는 이야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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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쓰기
“자기에게 ‘진짜’ 힘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진짜’ 장수하길 빈다.
동지로서 동시대를 같이 헤쳐나가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같이’처럼 같은 단어를 한 문장에 같이 쓰지 마라,
하니까 같은 단어를 오히려 반복 쓰는 게 신선하게
보일 정도다, 이젠.
그것도 어쩌면 작가의 특성이다, AI가 흉내 못 내는.
나도 일부러는 안 피하고 그냥 쓰고 싶어서 쓰다 보면
그러는 게 더 자연스럽다, 반복 쓰는 게.
나는 ‘결국’, ‘이제’, ‘그나마’, ‘아예’, ‘아마도’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것도 피하라고 하는데 그건 습관이고
어쩌면 그 작가만의 문체(文體)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강은 아니어도 이걸 고수하고 싶다.
초고(草稿)를 마음에 들어 하는 작가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천재인가?”라고 착각할 때 떠오른 생각을 빨리
받아 적는 게 대수다.
그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에 다듬으면 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다시 떠오른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버린 생각이 지금 쓰는 글보다 전에 썼던 글에
더 잘 어울리면 잘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떠오를 때 훼방꾼을 밀어내고 마구 쓰자.
기회는 찬스(Chance)다.
이외수가 부인더러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라고 했듯이
작가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필(Feel)이 팍 올 때, 그게 끊기면 안 된다.
에너지가 끊어지고 분산되면 될 것도 안 된다.
그래 핸드폰 전원을 끄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해
골방에서 지금 잘나갈 때 써재껴야 한다.
이런 기회는 다신 안 올 수도 있다.
외부를 차단한 채 관계를 끊어야 한다.
집중력은 쓸 때 필요하지만 또 자꾸 쓰다 보면
집중력도 늘고 이때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천우신조(天佑神助)일 때-그냥 골방으로 만사 제쳐두고
피신해 도망쳐야 한다.
칸트는 아마도 산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루틴(Routine)으로 그렇게 해서 시계보다 더 정확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누구나 다르겠지만 나는 운동할 때 잘 떠오른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그런 것 같다.
이미 써놓은 글에 더 보태거나 바꾸거나 좋은
예제(例題)가 떠오를 때도 있다.
물론 컨디션이 좋아 몸이 가벼운 상태에서 운동할
때만 그렇다.
역시 몸이 되어야 정신도 되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다.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단 한 줄이라도 쓰라는 조언도
있는데, 나는 그땐 아예 안 쓴다.
자동 기계처럼 쓰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러면 AI와
뭐가 다른가.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걸 하며 컨디션을 조절해
권토중래(捲土重來), 전열(戰列)을 가다듬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으면 역시 안 된다.
자기 마음과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땐 차라리 드라마나 좋아하는 음악, 킬링타임
영화를 본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킬 때도 즐거운 경험이 중요하다.
책에 대한 흥미가 중요한 것이다.
흡입력(吸入力) 있는 글을 읽다가 그만두면
별로 읽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으로
시작하면 읽기에 발동(發動)이 걸릴 수 있다.
좋은 인상으로 헤어진 사람과는-그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다시 또 만나고 싶은 것하고 같다.
스트레스받고 자면 잠도 잘 안 올뿐더러
어쩌다 잠들어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반면, 기분 좋은 상태에서 잠들면 꿈도 즐거운 꿈을 꾸고
일어나서도 몸이 개운한 게 뭔가 기분도 좋다.
이걸 다른 데 적용해 보자면,
별로 안 좋아하는 공부와 좋아하는 소설을 같이 읽는 것이다.
공부가 안된다 싶을 때, 그 소설을 읽으면 뭔가
전이(轉移)가 발생해 숙제인 공부를 해도 잘될 때가 많다.
이건 일반적인 얘기인데,
거의 70% 이상은 그걸 타고나서
하는 직업이 작가(Author)인 것 같다.
쓰다 보니 그런 기질이 생긴 것보다 그런 기질로 태어나
쓰게 된 것이다.
뭔가에 늘 예민하고 민감하게 작용하면 그걸 대개는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주로 표현하는 기질들이다.
불현듯 쓰고 싶어 책 한 권 내고 그만두는 것 말고 계속
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달리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긴 대로 사는 게 그나마 좋다고 보는 편인데,
그래야 자길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實現)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을 따라 해서는 따라가지 못하고 만족도 못해 자기가
결국 향하는 곳으로 가야 뭐가 되든 된다고 본다.
바로 그 움직임을 자기 글에 고스란히 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 글이 되고 만다.
일반인이 하는 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그걸 다 따르면 또 자기 글이 안 나온다.
그냥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제일이라고 본다.
그렇게 써 놓고 보면 자기 글의 양태(樣態)가 보인다.
펼쳐놓고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아, 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고 그걸
끝까지 파려고 하는구나.” 하는 게.
이렇게 쓰는 것도 복이다.
어떤 조건을 내걸고 거기에 맞게 쓰면 자기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즐겁지 않다.
자기 글을, 남이 조종(操縱)하는 것 같다.
군부(軍部) 시절 영화가 가위질당한 것하고 비슷하다.
그냥 편하게 아무 기대나 조건 없이 자기 글을 쓰는 건
어쩌면 행운이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내거는 조건에 맞는 글
같은 건 승강장 안전문에 새겨진 시(詩) 같은 것들이다.
거기엔 선정적(煽情的)이거나 너무 자극적인 글은 없다.
“애들 눈도 있는데 뭐 저런 걸 붙여놨냐?”라고
민원이 들어온다.
그러니 그저 자연을 노래한 무난한 글들뿐이다.
어린이, 할머니, 외국인, 보통 서민, 연인들, 통근자, 취객 등
너무 불특정 대수가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데 맞추다 보면 당연히 자기 글은 안 나온다.
이상하게 난 주류(主流)를 따르는 것에 삑사리를 내고
싶은 괴팍한 면이 없는 게 아닌데,
‘옛날 그른 거 하나 없어.’라는 속담을
따르는 걸 보면 그렇다.
솔직히 흔히 쓰이는 속담은 지금까지 인간이 걸어오면서
인간 사이에서 이는 것을, 집단 지성의 발현으로
단 한 문장으로 농축해 놓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고 본다.
예외는 있겠지만, 거의 70% 이상은 그게 맞다고 본다.
고개가 안 끄덕여지면 생명을 잃고 진작 사라졌을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런 말이 왜 인구에 회자(膾炙)되겠나.
인용에서, 뭔가 철학자들이 무슨 말인지도 독자는 물론
그걸 가져온 작가도 잘 알고 가져온 것인지 의심되는,
-문장 자체도 비문인지 아닌지고 구분도 쉽지 않은-그런
난해한 문구를 가져와 자기 글을 떠받치면
뭔가 자기 글까지 도매금으로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지만 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 고상한 표현과 비슷하지만 친근하고 쉬운 속담을
주류에 반해 인용하고 싶다.
내 글은 그걸 고수하려고 노력, 아니 그러고 싶다.
내가 아는 것을, 가능하면 쉽게 쓰고 싶을 뿐이다.
내 글 쓰기
① 같은 단어 반복 쓰는 걸 너무 의식하면 오히려 글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
② 초고가 맘에 안 든다고 버리면 그 생각도 사라질 수 있다.
③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써라.
④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 자신만의 루틴을 개발하라.
⑤ 안 써질 땐 억지로 쓰지 말고 다른 걸 하며 심신을 이완한 채 다음을 도모하라.
⑥ 읽기도 내 글 쓰기에 기초가 되는 법, 무아지경(無我之境)에서 읽기를 멈추면 그 부분을, 읽기 싫은 상태에서 읽더라도 독서에 다시 발동이 걸릴 수 있다.
⑦ 쓰기도 타고난 게 좌우된 것일 수 있으니, 그걸 현실에서 잘 가꾸어라.
⑧ 유명하거나 어떤 조건 같은 제약 없이 쓰는 건 내 글쓰기에서 큰 행운일 수 있다. 진짜배기라면 이걸 그 무엇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⑨ 나는 내 글을 고상하게 꾸미는 것보단 더 잘,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게 더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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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중엔 군살이 없는 사람이 많다. 비만이 적고 몸이 호리호리한 사람이 많다. 아마도 고기를 안 먹고 낫토를 좋아해 그 런 것 같다. 건강엔 좋아 장수 국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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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면 한국에 대해 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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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것보다 그늘 지고 음울한 분위기의 여자가 더 있어 보이고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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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로망이 초원 위의 정원이 있는 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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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건 없고 관광지라 관광버스가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이 대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