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팔님의 문장 수집: "그리고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훨씬 더 소란스러워진다. 화해하자는 신호만 있으면 금방 사이가 좋아진다니까. 그러는 주제에 다음에 다시 만날 때면 또 똑같은 문제로 다툰다. 몇 번이고 듣고 있는 동안에 나조차도 이야기의 줄거리를 알아 버렸을 정도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반평생'이라고 말하는 자기의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역사여, 역사는 우리들에게 거대한 장난을 쳤다."
어떤 아저씨는 시를 낭독하는 것처럼 말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이제 막 감옥에서 나왔다고 한다. 린뱌오에게 반대했기 때문에 무기 징역형을 받았었다나.
나는 안다. 이것이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점점 나도 조금씩 지식인을 닮아 간다. 하지만 지금의 어른들보다는 분명 영리해질 거야. 나는 어떤 정치 투쟁에도 결코 참가하지 않을 거야. 무당파(無黨派) 인사가 될 거야."
린뱌오에 대해서 재민이에게 물어봤습니다.
>>> 린뱌오(임표, 林彪)는 중국 현대사, 특히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한때는 마오쩌둥의 가장 신임받는 공식 후계자였으나, 이후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도망치다 비행기 추락사로 생을 마감한 극적인 역사 속 인물입니다.
그의 인생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전설적인 군사 천재 (국공내전의 영웅)
린뱌오는 군사적 재능이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장제스의 국민당과 싸운 국공내전 시기, 중국 동북 지역(만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한국전쟁(6·25 전쟁)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파병된 중국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도 처음에 거론되었을 만큼(본인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고사) 군부 내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2. 마오쩌둥의 오른팔과 '어록'의 탄생
1960년대 들어 린뱌오는 국방부장(국방장관) 자리에 오르며 마오쩌둥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 작업을 주도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빨간색 표지의 《마오쩌둥 어록(모택동 어록)》을 군대 내에서 처음 엮어 배포하고, 군인들에게 마오쩌둥 사상을 철저히 주입한 인물이 바로 린뱌오입니다.
이 공로로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고, 1969년에는 중국공산당 당헌에 공식적으로 "마오쩌둥의 후계자"라고 이름이 명시되는 전무후무한 권력을 누리게 됩니다.
3. 미스터리한 추락사와 비참한 최후 (9·13 사건)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서자마자 마오쩌둥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가주석 자리를 신설하는 문제 등을 두고 마오쩌둥이 자신을 경계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린뱌오 세력(특히 그의 아들 린리궈)이 마오쩌둥을 암살하려는 쿠데타 계획('571 공정')을 세웠다는 혐의를 받게 됩니다.
계획이 발각되자 1971년 9월 13일 새벽, 린뱌오는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몽골 상공을 날아가던 중 비행기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하면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를 중국 현대사에서는 '9·13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 역사적 평가
그의 죽음 이후 중국 정부는 그를 '반혁명 집단의 괴수'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오 주석의 가장 친밀한 전우"라고 칭송받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배신자"가 된 이 사건은, 당시 중국 인민들에게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마오쩌둥 체제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안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 린뱌오와 4인방의 복잡한 관계
처음에는 동지 (1966~1969):
문화대혁명 초기에는 마오쩌둥을 우상화하고 기존 온건파 정치인(류샤오치, 덩샤오핑 등)을 몰아내기 위해 린뱌오(군부)와 4인방(문화계)이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나중에는 라이벌 (1969~1971):
기존 정적들이 모두 제거되자, 이제는 "마오쩌둥 다음인 2인자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두 세력이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린뱌오가 공식 후계자가 되자, 4인방(특히 마오의 아내 장칭)은 위기감을 느끼고 린뱌오를 견제했습니다. 마오쩌둥 역시 군권을 쥔 린뱌오의 힘이 너무 커지자 4인방의 손을 들어주며 린뱌오를 압박했습니다.
• 두 세력의 최후
린뱌오: 앞서 말씀드린 대로 1971년 견제를 견디지 못하고 비행기로 탈출하다가 추락사하며 먼저 파멸했습니다.
4인방: 린뱌오가 사라진 후 문화대혁명 말기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자마자 back을 잃고 한 달도 안 되어 군부와 온건파 세력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공개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이후 무기징역 감형) 등을 받으며 완전히 몰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