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3.저주받은 도시 - 스트루가츠키 형제(1부)

D-29
은화님의 문장 수집: ""아니, 그 말이 아니야." 이쟈가 천천히 손을 휘저었다. "네 말처럼 다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 그들은 인류를 파악하려는 거야. 알겠어? 파악하려 한다고! 그런데 우리가 당면한 제일 큰 문제가 뭔가 하면, 역시 같아. 인류를, 우리 자신을 파악하는 것. 어쩌면 그들은 직접 우리를 파악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파악하는 걸 도울 수도 있으려나?""
"그들은 체계적으로 우리를 어떤 가혹한 세계로, 우리가 앞으로 언제나 영원히 살아야 할 세계로 밀어 넣고 있는 것만 같아. 오키나와처럼…… 어렸을 때였고 전쟁이 일어났고 우리 오키나와 학교에서는 방언으로 말하는 게 금지되었지. 오로지 표준 일본어로만 말하게 했어. 그러다 언젠가 한 소년이 방언을 쓰다 걸렸는데, 목에 '나는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걸고 있게 했어. 그래서 애는 팻말을 걸고 다녔고."
저주받은 도시 p.147,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님의 문장 수집: ""그들은 체계적으로 우리를 어떤 가혹한 세계로, 우리가 앞으로 언제나 영원히 살아야 할 세계로 밀어 넣고 있는 것만 같아. 오키나와처럼…… 어렸을 때였고 전쟁이 일어났고 우리 오키나와 학교에서는 방언으로 말하는 게 금지되었지. 오로지 표준 일본어로만 말하게 했어. 그러다 언젠가 한 소년이 방언을 쓰다 걸렸는데, 목에 '나는 제대로 말하는 법을 모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걸고 있게 했어. 그래서 애는 팻말을 걸고 다녔고.""
"난 이해할 수 없어!" 안드레이가 선언했다. "전부 곡해하는 것 같아…… 실험은 실험이라고. 물론,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우리가 이해해서는 안되잖아! 그게 기본 조건이라고! 왜 원숭이들이 왔는지, 왜 직업을 바꿔야 하는지, 그걸 우리가 이해하는 날에는…… 그 이해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할 테고 실험은 그 순수성을 잃고 망할 거야. 자명한 일이잖아!"
저주받은 도시 p.147~148,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님의 문장 수집: ""난 이해할 수 없어!" 안드레이가 선언했다. "전부 곡해하는 것 같아…… 실험은 실험이라고. 물론,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우리가 이해해서는 안되잖아! 그게 기본 조건이라고! 왜 원숭이들이 왔는지, 왜 직업을 바꿔야 하는지, 그걸 우리가 이해하는 날에는…… 그 이해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할 테고 실험은 그 순수성을 잃고 망할 거야. 자명한 일이잖아!""
"너희 중 누군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실험의 모든 과제가 가장 에너지 넘치고 가장 일을 열심히 하고 가장 단단한 사람들을 걸러 내는 일이라고 말했었지…… 입만 나불대지 않고,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져 있지 않고, 철학을 하지 않는, 믿음이 확고한…… 그런 사람들을 걸러 내는 일이라고. 나 같은 사람, 혹은 안드레이 너 같은 사람들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걸러 낸 자들은 지구로 다시 던져 버릴 거야. 이곳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면 저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저주받은 도시 p.148,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님의 문장 수집: ""너희 중 누군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실험의 모든 과제가 가장 에너지 넘치고 가장 일을 열심히 하고 가장 단단한 사람들을 걸러 내는 일이라고 말했었지…… 입만 나불대지 않고,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져 있지 않고, 철학을 하지 않는, 믿음이 확고한…… 그런 사람들을 걸러 내는 일이라고. 나 같은 사람, 혹은 안드레이 너 같은 사람들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걸러 낸 자들은 지구로 다시 던져 버릴 거야. 이곳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면 저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1부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저는 이 부분이었습니다. 성별/직업/인종/국적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인물들이 한 집에 모여 서로 먹고 떠들고 마시고 하고 있죠. 고상한 의미의 지구촌이나 인류화합보다는, 어디 가까운데서 볼 법한 왁자지껄하고 조금 지저분하며 난장판인 파티의 형태로 서로 취해서 뒤엉킨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뒷부분에서 '유라 삼촌'이 결국 인간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게 '술이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야' 같아서 정겹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이 인물들이 마냥 소시민적이고 당장 오늘내일의 잇속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음을 보여줍니다. 인도자들의 [실험]의 의도와 목적을 추측하며 토론하는 장면이 그렇죠. 이쟈, 겐시, 안드레이, 프리츠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와 배경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현실을 분석합니다. 마치 어릴 적에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면 식후 다들 둘러앉아 좀 진지하게 미래나 정치 얘기를 하던 옛날 풍경이 떠올라요. 이들의 가정과 이론이 전부 맞을 수도 있지만 또 전부 빗나가고 틀릴 수도 있겠죠. 다 큰 어르신들이 모여서 국제/국내 정세를 얘기하더라도 현실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죠. 어린아이 수준의 놀이나, 어른의 진지한 토론이나 '더 높은 단계'에서 바라봤을 때는 모두 무의미한 시도이고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은화님의 대화: 1부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저는 이 부분이었습니다. 성별/직업/인종/국적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인물들이 한 집에 모여 서로 먹고 떠들고 마시고 하고 있죠. 고상한 의미의 지구촌이나 인류화합보다는, 어디 가까운데서 볼 법한 왁자지껄하고 조금 지저분하며 난장판인 파티의 형태로 서로 취해서 뒤엉킨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뒷부분에서 '유라 삼촌'이 결국 인간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게 '술이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야' 같아서 정겹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이 인물들이 마냥 소시민적이고 당장 오늘내일의 잇속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음을 보여줍니다. 인도자들의 [실험]의 의도와 목적을 추측하며 토론하는 장면이 그렇죠. 이쟈, 겐시, 안드레이, 프리츠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와 배경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현실을 분석합니다. 마치 어릴 적에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면 식후 다들 둘러앉아 좀 진지하게 미래나 정치 얘기를 하던 옛날 풍경이 떠올라요. 이들의 가정과 이론이 전부 맞을 수도 있지만 또 전부 빗나가고 틀릴 수도 있겠죠. 다 큰 어르신들이 모여서 국제/국내 정세를 얘기하더라도 현실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죠. 어린아이 수준의 놀이나, 어른의 진지한 토론이나 '더 높은 단계'에서 바라봤을 때는 모두 무의미한 시도이고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가 그러네……" 유라 삼촌이 음울하게 말했다. "보라고. 유럽도, 우리 러시아도, 황인종이 사는 곳도, 어디든 다 똑같네. 권력은 공정하지 않고. 아니, 형제들, 난 거기서 아무것도 잃은 게 없네. 난 이곳이 더 좋아……"
저주받은 도시 p.162,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님의 대화: 얼마 전 서국도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책 중 하나가 있었는데요. 글항아리에서 나온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입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한나 아렌트의 책과 대조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죠.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 본인이 남긴 다양한 글과 녹음 테잎 등을 분석하여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조사했습니다.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조직과 권위와 익명성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탔던 인물이 아니라 타고난 체계적 살인자였다고 주장하는데요. 아렌트의 연구와 '악의 평범성'만으로는 악惡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파리대왕>을 읽었던지라 악은 내면에 타고나는 것인가 vs 환경이 조장하는 것인가로 생각이 많았는데 아렌트의 이론을 반박하는 내용이라고 하니 더 궁금하네요.
오, 이 책은 작년에 강유원 선생님도 책읽기 팟캐스트에서 (3회에 걸쳐) 다뤄주신 적이 있어요. 저도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당장 엄두가 안 나서리 ㅎㅎ 요거 듣는 걸로 때웠답니다.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 | 📖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2) https://www.podbean.com/ei/pb-busuh-1925d81 파리대왕은 지난번 이웃 벽돌 책 방에서 얘기가 나와서 부쩍 땡기는 책인데, 은화님께서도 읽으셨군요. 영화도 있고 그래픽노블도 나왔더라고요. 에고 읽을 책이 왜케 많은지~ (언제나 마음만 굴뚝!)
은화님의 대화: 1부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저는 이 부분이었습니다. 성별/직업/인종/국적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인물들이 한 집에 모여 서로 먹고 떠들고 마시고 하고 있죠. 고상한 의미의 지구촌이나 인류화합보다는, 어디 가까운데서 볼 법한 왁자지껄하고 조금 지저분하며 난장판인 파티의 형태로 서로 취해서 뒤엉킨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뒷부분에서 '유라 삼촌'이 결국 인간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게 '술이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야' 같아서 정겹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이 인물들이 마냥 소시민적이고 당장 오늘내일의 잇속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음을 보여줍니다. 인도자들의 [실험]의 의도와 목적을 추측하며 토론하는 장면이 그렇죠. 이쟈, 겐시, 안드레이, 프리츠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와 배경 그리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현실을 분석합니다. 마치 어릴 적에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면 식후 다들 둘러앉아 좀 진지하게 미래나 정치 얘기를 하던 옛날 풍경이 떠올라요. 이들의 가정과 이론이 전부 맞을 수도 있지만 또 전부 빗나가고 틀릴 수도 있겠죠. 다 큰 어르신들이 모여서 국제/국내 정세를 얘기하더라도 현실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죠. 어린아이 수준의 놀이나, 어른의 진지한 토론이나 '더 높은 단계'에서 바라봤을 때는 모두 무의미한 시도이고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루 할아버지의 동반자가 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한 직원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포옹을 해 줬다. 할아버지는 셰리에게 이 인간적인 접촉이 얼마나 좋은지 털어놨다. 그와 포옹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여전히 찾아오는 친구 데이브와 함께 커피숍에서 크리비지 게임을 한다. 할아버지는 다른 층 그린 하우스에 사는 한 사람에게도 크리비지 게임을 가르쳐 줬다. 뇌졸증으로 마비가 된 사람이었는데, 가끔 할아버지 집에서 둘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 그럴 때면 직원 하나가 그의 카드를 들어 주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루 할아버지가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상대의 카드를 훔쳐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카드놀이를 하지 않는 날 오후에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개 베이징과 함께 셸리가 들른다. 하지만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도 행복해한다. 그런 날 할아버지는 아침식사를 한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 하기"때문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p.22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ifrain님의 문장 수집: " 루 할아버지의 동반자가 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한 직원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따뜻하게 포옹을 해 줬다. 할아버지는 셰리에게 이 인간적인 접촉이 얼마나 좋은지 털어놨다. 그와 포옹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럴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여전히 찾아오는 친구 데이브와 함께 커피숍에서 크리비지 게임을 한다. 할아버지는 다른 층 그린 하우스에 사는 한 사람에게도 크리비지 게임을 가르쳐 줬다. 뇌졸증으로 마비가 된 사람이었는데, 가끔 할아버지 집에서 둘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 그럴 때면 직원 하나가 그의 카드를 들어 주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루 할아버지가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상대의 카드를 훔쳐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카드놀이를 하지 않는 날 오후에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개 베이징과 함께 셸리가 들른다. 하지만 그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도 행복해한다. 그런 날 할아버지는 아침식사를 한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 하기"때문이다. "
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나오는 루 할아버지 관련 내용 부분입니다.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이 책에는 노화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요. 죽음 앞에서 삶이 달리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루 할아버지가 티비를 보는 관점이 어떨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왕: "인도자들이 오래전에 자기 의도에 엉켰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이제는 스스로도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고 했어. 도널드는 이렇게 말했어. 완전한 실패라고. 지금은 그저 관성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저주받은 도시 149p,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이쟈: 그들이 실험이니 뭐니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하든 말든, 형제들, 솔직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네." "그런데 나는 이곳에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이 자유를 건드리지 않는 한은 나 역시 아무도 건드리지 많을 걸세. 그런데 농부들의 생활환경을 바꾸려는 자가 생기면,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약속할 수 있네. 우리는 너희 도시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다 무너뜨릴 거라고. 우리는 너희에게, 이런 제기랄, 원숭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우리는 너희가, 이런 제기랄, 우리한테 목줄을 채우게 두지 않을 거라고....! 그래. 바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네. 형제들."
저주받은 도시 150p,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은화님의 대화: 얼마 전 서국도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책 중 하나가 있었는데요. 글항아리에서 나온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입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한나 아렌트의 책과 대조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죠.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 본인이 남긴 다양한 글과 녹음 테잎 등을 분석하여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조사했습니다.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조직과 권위와 익명성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탔던 인물이 아니라 타고난 체계적 살인자였다고 주장하는데요. 아렌트의 연구와 '악의 평범성'만으로는 악惡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파리대왕>을 읽었던지라 악은 내면에 타고나는 것인가 vs 환경이 조장하는 것인가로 생각이 많았는데 아렌트의 이론을 반박하는 내용이라고 하니 더 궁금하네요.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를 말씀하시니 이안 부루마Ian Buruma가 쓴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The Collabotators>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글항아리에서 2023년에 출간된 책이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기꾼, 협잡꾼이자 기회주의자였던 세 명의 인물 펠릭스 케르스텐, 프리드리히 바인레프, 기아시마 요시코 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이안 부루마가 보기에 이들은 생각이 없어서 권력의 톱니바퀴가 된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 명의 인물은 자신의 생존, 출세, 혹은 뒤틀린 영웅주의를 위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지어내고 타인을 속이고 자신을 속입니다. 즉, 한나 아렌트같으 사람마저 속아 넘어가게 할 만큼 회색지대에서 '평범한 척' 능동적으로 자신을 연출했다(기만)는 점을 지적하고 있죠.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에서 아이히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세상을 기만하는 부역자의 전형으로 소환하고 있죠. 부루마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살아남기 위해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고 자신과 타인을 속여 거짓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천재였던 것입니다.
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제2차 세계대전을 남다르게 관통한 세 사람의 삶을 추적하는 일종의 전기다. 세 사람은 독일어로 ‘호흐슈타플러’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사기꾼, 허풍쟁이, 협잡꾼쯤으로 번역되는 호흐슈타플러는 부역자나 저항자에 딱 들어맞지 않고 강한 도덕적 질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모순투성이 삶을 산 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통해 역사를 다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세상살이가 그러네." 유라 삼촌이 음울하게 말했다. "보라고. 유럽도. 우리 러시아도, 황인종이 사는 곳도, 어디든 다 똑같네. 권력은 공정하지 않고. 아니, 형제들. 난 거기서 아무것도 잃은 게 없네. 난 이곳이 더 좋아....."
저주받은 도시 162p,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음, 이보석 옮김
ifrain님의 대화: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를 말씀하시니 이안 부루마Ian Buruma가 쓴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The Collabotators>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글항아리에서 2023년에 출간된 책이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기꾼, 협잡꾼이자 기회주의자였던 세 명의 인물 펠릭스 케르스텐, 프리드리히 바인레프, 기아시마 요시코 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이안 부루마가 보기에 이들은 생각이 없어서 권력의 톱니바퀴가 된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세 명의 인물은 자신의 생존, 출세, 혹은 뒤틀린 영웅주의를 위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지어내고 타인을 속이고 자신을 속입니다. 즉, 한나 아렌트같으 사람마저 속아 넘어가게 할 만큼 회색지대에서 '평범한 척' 능동적으로 자신을 연출했다(기만)는 점을 지적하고 있죠. <부역자: 전쟁, 기만, 생존>에서 아이히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세상을 기만하는 부역자의 전형으로 소환하고 있죠. 부루마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살아남기 위해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고 자신과 타인을 속여 거짓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천재였던 것입니다.
1942년 4월이 되면 모든 유대인은 유대인Jood이라고 검은색으로 쓰인 다윗의 별을 옷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다. 이를 어기면 체포와 추방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뒤의 일은 아주 쉬웠다. 너무 쉬웠던 나머지 유대인 학살의 담당 관료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네덜란드 유대인의 신속한 추방은 "보기에 즐거웠다"고 말했다는 애기가 있을 정도다.
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 pp.151~152, 이안 부루마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ifrain님의 문장 수집: "1942년 4월이 되면 모든 유대인은 유대인Jood이라고 검은색으로 쓰인 다윗의 별을 옷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다. 이를 어기면 체포와 추방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뒤의 일은 아주 쉬웠다. 너무 쉬웠던 나머지 유대인 학살의 담당 관료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네덜란드 유대인의 신속한 추방은 "보기에 즐거웠다"고 말했다는 애기가 있을 정도다. "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외곽의 반제에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쾌적한 별장에서 일어난 일은 꼼꼼한 기록으로 남아 잘 알려져 있다. 별장에는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시킬 계획과 관련한 수송 문제를 의논하고자 많은 수의 나치 관료가 모여 있었다. 이 건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SS관료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준비해왔다. 아이히만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관료적 완곡어법 대신 강한 언어를 썼다고 훗날 증언했다. 사람들이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 앞에서 브랜디 잔을 든 채 나누던 비공식 대화에서는 그랬을지 모르나, 아이히만이 공식적으로 보관했던 회의록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회의의 의장이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퓌러가 이미 승인하셨듯이 유대인을 해외로 이주시키려던 계획은 이제 한발 더 나아간 해결책의 일환으로 이들을 동쪽으로 후송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으로 가기 위한 작은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하이드리히는 일의 진행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튿날 힘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 p.233, 이안 부루마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ifrain님의 문장 수집: "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942년 1월 20일, 베를린 외곽의 반제에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쾌적한 별장에서 일어난 일은 꼼꼼한 기록으로 남아 잘 알려져 있다. 별장에는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몰살시킬 계획과 관련한 수송 문제를 의논하고자 많은 수의 나치 관료가 모여 있었다. 이 건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SS관료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준비해왔다. 아이히만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관료적 완곡어법 대신 강한 언어를 썼다고 훗날 증언했다. 사람들이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 앞에서 브랜디 잔을 든 채 나누던 비공식 대화에서는 그랬을지 모르나, 아이히만이 공식적으로 보관했던 회의록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회의의 의장이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퓌러가 이미 승인하셨듯이 유대인을 해외로 이주시키려던 계획은 이제 한발 더 나아간 해결책의 일환으로 이들을 동쪽으로 후송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으로 가기 위한 작은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하이드리히는 일의 진행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튿날 힘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에필로그 책 속 부역자들의 문제는 이들의 기만이, 때로 아마도 거짓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기만이, 결국 자기기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거짓 속에서 살다보면 흔히 그런 결과를 맞는다. 나는 책 앞부분에서 독재와 강점 세력에 저항했던 사람들 또한 이름이나 문서나 정체성을 꾸며냈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스스로를 기만하지는 않았다. 그늘 속에서 비밀스럽게 살았을지언정 진실 속에서 살았다. 반면 두려움이나 기회주의에 사로잡혀 거짓 속에 사는 사람들은 결국 거짓에 사로잡혀버린다. 기와시마 요시코와 프리드리히 바인레프와 펠릭스 케르스텐은 성장 배경이 복잡하고 다문화의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단테의 여덟 번째 지옥에 간 것이 아니다(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아홉 개의 지옥 중 여덟 번째 지옥은 사기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간다). 타인을 속였기 때문에 다른 사기꾼들과 함께 여덟 번째 지옥에 간 것도 아니다. 이들이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를 속였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인생을 허구로 만들어버리면 아무런 정체성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독재 체제에 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 중 많은 수가 여전히 그런 우울한 상태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 p.439, 이안 부루마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은화님의 대화: 얼마 전 서국도에 갔을 때 눈에 띄었던 책 중 하나가 있었는데요. 글항아리에서 나온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입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한나 아렌트의 책과 대조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죠. 저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 본인이 남긴 다양한 글과 녹음 테잎 등을 분석하여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조사했습니다.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조직과 권위와 익명성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탔던 인물이 아니라 타고난 체계적 살인자였다고 주장하는데요. 아렌트의 연구와 '악의 평범성'만으로는 악惡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최근에 <파리대왕>을 읽었던지라 악은 내면에 타고나는 것인가 vs 환경이 조장하는 것인가로 생각이 많았는데 아렌트의 이론을 반박하는 내용이라고 하니 더 궁금하네요.
<부역자 : 전쟁, 기만, 생존>과 연장선상에서 글항아리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향팔님의 대화: 오, 이 책은 작년에 강유원 선생님도 책읽기 팟캐스트에서 (3회에 걸쳐) 다뤄주신 적이 있어요. 저도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당장 엄두가 안 나서리 ㅎㅎ 요거 듣는 걸로 때웠답니다.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 | 📖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2) https://www.podbean.com/ei/pb-busuh-1925d81 파리대왕은 지난번 이웃 벽돌 책 방에서 얘기가 나와서 부쩍 땡기는 책인데, 은화님께서도 읽으셨군요. 영화도 있고 그래픽노블도 나왔더라고요. 에고 읽을 책이 왜케 많은지~ (언제나 마음만 굴뚝!)
모임원들하고 같이 읽을 때 민음사로 읽는 분들이 있었고, 문예출판사로 읽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후자가 훨씬 문장이 자연스럽고 의미파악이 쉬웠어요. 저도 문예출판사로 읽었는데 민음사를 택한 분들은 문장이나 단어가 너무 예스럽고 딱딱해서 읽기 힘들었다는 평이 많았어요. 나중에 읽게 되신다면 문예 쪽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ㅎㅎ
파리대왕'파리대왕'은 성서에 등장하는 말로 악마를 뜻한다. 비행기 사고로 남해의 외딴섬에 표류하게 된 몇 명의 소년들은 문명적인 규칙을 자신들에게 부과하여 공동체를 만들지만 결국 원시적인 야만상태로 퇴행해 간다.
파리대왕
ifrain님의 대화: 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나오는 루 할아버지 관련 내용 부분입니다.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이 책에는 노화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요. 죽음 앞에서 삶이 달리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루 할아버지가 티비를 보는 관점이 어떨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동향을 확인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루 할아버지가 안드레이와 동료들의 파티와 겹쳐 보이네요.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변의 가치를 찾는 게 소중하죠.
은화님의 대화: 모임원들하고 같이 읽을 때 민음사로 읽는 분들이 있었고, 문예출판사로 읽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후자가 훨씬 문장이 자연스럽고 의미파악이 쉬웠어요. 저도 문예출판사로 읽었는데 민음사를 택한 분들은 문장이나 단어가 너무 예스럽고 딱딱해서 읽기 힘들었다는 평이 많았어요. 나중에 읽게 되신다면 문예 쪽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ㅎㅎ
오, 감사합니다. 민음사의 파리대왕은 읽기 어렵다는 얘기를 예전에도 들었는데 정말이군요! 언제 읽을 수 있을랑가 모르겠지만(힝..) 꼭 참고하겠습니다.
은화님의 대화: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동향을 확인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루 할아버지가 안드레이와 동료들의 파티와 겹쳐 보이네요.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변의 가치를 찾는 게 소중하죠.
그렇군요. 저는 한겨울에 눈 내리는 풍경을 좋아하는데 특히 따뜻한 집 안에서 밖을 감상하게 되는 그런 상황 때문에 좋아하죠. 물론 바깥에 나가서 눈을 맞으며 감상할 수도 있겠지만.. 고요하고 따뜻한 집안 상황과 대조적인 밖을 보는 건 그런 심리인 것 같습니다. 세차게 비가 내릴 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집안에 머무는 때의 느낌도 비슷한 것 같고요. 루 할아버지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세상 꼴을 봐야하는’ 건 지금의 평화와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어요.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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