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님의 문장 수집: "자유의지 회의론자(어떤 유형이든)와 자유의지 신봉자는 윤리적 행동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결과로서,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도덕적 정체성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자신을 가장 잘 정의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직하고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쩐지 위로가 되는 두 문장이었습니다.
장맥주
333쪽,
[길이가 60센티미 터가 넘는 거대한 갯민숭달팽이인 캘리포니아 군소]
사실 저도 @연해 님만큼이나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친구들이 싫은데요, 거기에 더해 끈적하고 미끈덩한 녀석들도 싫어합니다.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음... 아주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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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 DNA의 약 5%만이 유전자를 구성한다. 그러면 나머지 95%는?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온/오프 스위치 뭉치다. 이 스위치는 다양한 환경적 영향이 고유한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여러 유형의 스위치가 하나의 유전자를 조절할 수도 있고 동일한 유형의 스위치가 여러 유전자를 조절할 수도 있다. 즉 대부분의 DNA는 유전자 자체보다는 유전자 조절에 전념한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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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오도니안님의 문장 수집: "DNA의 약 5%만이 유전자를 구성한다. 그러면 나머지 95%는?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온/오프 스위치 뭉치다. 이 스위치는 다양한 환경적 영향이 고유한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여러 유형의 스위치가 하나의 유전자를 조절할 수도 있고 동일한 유형의 스위치가 여러 유전자를 조절할 수도 있다. 즉 대부분의 DNA는 유전자 자체보다는 유전자 조절에 전념한다."
진도 따라잡아야 하는데 3장이 좀 치루하네요. 각주를 왜 건너뛰려고 하시는지도 알겠어요. 이만큼 정보가 있는데 다 얘기하려면 힘드니까 항목만 언급할께 이런 식. 새박사님도 3장 쓸 때는 좀 지루하셨는지 좀 서둘러 넘어가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래도 이런 대목은 신선. 아마 <행동>에도 나왔겠죠?
유전자의 대부분이 온오프스위치로 이루어져 있다니 그만큼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오도니안
장맥주님의 대화: 333쪽,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갯민숭달팽이인 캘리포니아 군소]
사실 저도 @연해 님만큼이나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친구들이 싫은데요, 거기에 더해 끈적하고 미끈덩한 녀석들도 싫어합니다.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음... 아주 싫네요.
골뱅이는 맛있는데.. 60cm는 좀 부담되네요.
오도니안
자스민케이크님의 대화: 와 원문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해됐어요.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합니다. 챗gpt가 참 용해요. 어제도 잠자리에 누워서 몇 마디 나누었는데 친구 느낌.
오도니안
페이스북에서 맘에 안 드는 글 붙여놓고 평가해달라면 시원스럽게 별점 테러를 해주는데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좋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복사해 댓글에 넣고 싶은데 좀 지나치기도 하고 씁쓸한 모습인 것 같아서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YG
YG님의 대화: 오늘 7월 13일 월요일과 내일 14일 화요일은 4장 '강인한 의지력: 그릿의 신화'를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유전의 결정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흔히 '그릿'이라고 부르는 노~~~력을 통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신화'를 새 선생이 각개격파합니다.
특히, 4장의 주인공은 『행동』에서 앞이마엽겉질이라고 번역했었던 전전두엽피질입니다. 전전두엽피질을 'prefrontal cortex'를 줄여서 PFC라고 통칭하는데, 이번 장에서는 그냥 PFC로 통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PFC는 특히 12세부터 20대 중반까지 뇌에서 가장 발달하는 부분이라서 『행동』에서도 새 선생이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에 우리를 빚어낸다고 할 때, 환경의 영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4장에서는 이 PFC, 즉 '그릿'이 발동하는 부분이 얼마나 결정되어 있는지를 3장과 비슷한 구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일단 지식으로 정리하고 싶은 대목이 많은 부분이었어요. 여러분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사실, 4장은 많이 배운 장이기도 하지만, 새(폴스키) 선생이 그다지 페어하지 않다는 증거로도 보이는데요. 예를 들어,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뇌과학계 구루의 주장은 그저 한두 문장으로 ‘웃기다’ 이렇게 논평하고 넘어갈 게 아니거든요(117쪽). 저는 새 선생이 아주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분 같아요. :)
철학 개념 가운데 ‘지향성’이 있습니다. 원래는 (새 선생이 질색할) 주체 철학의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의식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about) 의식’이라는 명제가 지향성의 핵심입니다. 주체(인간)와 객체(세계/물질)를 가르는 결정적 경계선이 바로 지향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새 선생이 라면 “개코 같은 소리”라고 할 법한 이야기죠.
*
그런데 이 ‘지향성’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장맥주 작가님과 그믐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브루노 라투르 같은 철학자, 또 최근에 현대 사상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대 물질주의 철학자가 이 ‘지향성’을 전혀 다른 의미로도 재해석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철학자마다 핀트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이해하는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알다시피 이들은 인간과 비인간(기술, 물질, 생물, 인프라 등)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일원론적 인류학’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지향성은 고립된 인간 주체가 행동 전 미리 품고 있는 ‘선험적 의도(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지향성은 같은 네트워크(망)에서 상호 작용하는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특정한 효과인 것이죠.
가장 고전적인 예로 설명해 보자면, 총의 존재입니다. 총이 없을 때의 인간과 총이 있을 때의 인간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낳죠. 라투르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총과 인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총-인간’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때 나타나는 이 연합의 효과야말로 지향성이라는 것입니다.
*
여기까지만 읽고서, 새 선생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지향성의 새로운 해석이 새 선생이 짜놓은 결정론의 프레임 자체를 흔들 수 있고, 자유 의지의 틈새를 다른 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선생의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새 선생의 논리 구조에서 인간(혹은 인간의 뇌)은 일종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유전자, 호르몬, 태아기 환경, 문화적 배경 같은 입력값이 주어지면 뇌라는 복잡한 회로를 거쳐 행동이라는 출력값이 고스란히 도출되는 통로라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서 자유 의지가 들어갈 틈새는 정말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라투르 같은 철학자의 시각에서 인간은 결과물이 아니라 매개자에 가깝습니다.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현재의 구체적인 물질적 네트워크(도구, 기술, 제도, 텍스트 등)와 상호 작용하면서 결합하는 순간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됩니다.
이 뒤틀리고 재배치되는 순간이야말로 새 선생식 용어로 따지면 ‘틈새’라고 생각합니다. 가자니가는 새 선생보다 18년 선배인데요(1939년생). 이분 주장의 틀은 놀랍게도 라투르 등과 비슷합니다. 다만, 비인간의 자리에 타인을 놓고 있을 뿐입니다. 즉,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다만, 현재 그가 무슨 행동을 할 때는 항상 그 시점의 타인, 공동체 그리고 그것이 무형화된 결과인 제도 등과 상호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호 작용의 순간에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순수한 의지력(4장의 ‘그릿’)만으로는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알코올 중독자는 과거의 원인 탓이니 그를 비난하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다만,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자신을 접속시킴으로써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의 성패에 따라 다른 미래가 펼쳐지죠.
*
새 선생은 그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또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지조차도 또 다른 외부 결정 요인이라고 반박하겠죠. 결과 C를 낳는 원인 A, B 안에 모든 것을 우겨서 넣을 수 있는 무적의 논리니까요. (라투르 등은 이런 주장에도 실소할 겁니다. 왜냐하면, A-B-C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번역과 굴절이 필수니까요.)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돕는 특정 의약품(날트렉손 등)의 개발 과정이나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은 그 중독자 개인의 과거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독립적인 자기만의 역사와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 개인이 그런 특정 의약품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와 접속했다면, 그것마저도 태초부터 뇌에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접속으로 그의 미래 삶이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갔다면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A-B-C의 인과 관계 안에 X가 들어와서 ‘C+X’라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주체의 지향성이 D라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 ‘C+X’에서 D로 가는 과정이야말로 일종의 틈새가 아닐까요.
*
더구나, 인간은 자신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결정 요인을 역으로 이용하는 성찰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과 단주 노하우야말로 그 단적인 증거죠.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성찰의 결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고, 후대의 알코올 중독자는 그 제도와 접속할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가자니가가 “책임은 우리의 결정론적인 뇌가 아닌 다른 수준의 조직, 즉 사회적 조직에 존재한다”(117쪽)고 말할 때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결론을 얘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새 선생은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런 견해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페어하지 않다고 한 이유입니다. :)
뇌로부터의 자유 - 무엇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조종하는가?무엇이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조종하는가? 세계적인 뇌신경학자이자 사상가로까지 불리는 마이클 가자니가가 최신 뇌과학부터 심리학, 인류학, 물리학, 윤리학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뇌 결정론의 허상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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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챗지피티 얘기하다 보니 장맥주님이 책 에서 쓰신 내비게이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따를 자유의지는 있지만 그 자유의지의 의미가 줄어드는 상황.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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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YG님의 대화: 사실, 4장은 많이 배운 장이기도 하지만, 새(폴스키) 선생이 그다지 페어하지 않다는 증거로도 보이는데요. 예를 들어,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뇌과학계 구루의 주장은 그저 한두 문장으로 ‘웃기다’ 이렇게 논평하고 넘어갈 게 아니거든요(117쪽). 저는 새 선생이 아주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분 같아요. :)
철학 개념 가운데 ‘지향성’이 있습니다. 원래는 (새 선생이 질색할) 주체 철학의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의식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about) 의식’이라는 명제가 지향성의 핵심입니다. 주체(인간)와 객체(세계/물질)를 가르는 결정적 경계선이 바로 지향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새 선생이라면 “개코 같은 소리”라고 할 법한 이야기죠.
*
그런데 이 ‘지향성’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장맥주 작가님과 그믐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브루노 라투르 같은 철학자, 또 최근에 현대 사상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대 물질주의 철학자가 이 ‘지향성’을 전혀 다른 의미로도 재해석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철학자마다 핀트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이해하는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알다시피 이들은 인간과 비인간(기술, 물질, 생물, 인프라 등)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일원론적 인류학’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지향성은 고립된 인간 주체가 행동 전 미리 품고 있는 ‘선험적 의도(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지향성은 같은 네트워크(망)에서 상호 작용하는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특정한 효과인 것이죠.
가장 고전적인 예로 설명해 보자면, 총의 존재입니다. 총이 없을 때의 인간과 총이 있을 때의 인간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낳죠. 라투르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총과 인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총-인간’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때 나타나는 이 연합의 효과야말로 지향성이라는 것입니다.
*
여기까지만 읽고서, 새 선생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지향성의 새로운 해석이 새 선생이 짜놓은 결정론의 프레임 자체를 흔들 수 있고, 자유 의지의 틈새를 다른 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선생의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새 선생의 논리 구조에서 인간(혹은 인간의 뇌)은 일종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유전자, 호르몬, 태아기 환경, 문화적 배경 같은 입력값이 주어지면 뇌라는 복잡한 회로를 거쳐 행동이라는 출력값이 고스란히 도출되는 통로라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서 자유 의지가 들어갈 틈새는 정말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라투르 같은 철학자의 시각에서 인간은 결과물이 아니라 매개자에 가깝습니다.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현재의 구체적인 물질적 네트워크(도구, 기술, 제도, 텍스트 등)와 상호 작용하면서 결합하는 순간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됩니다.
이 뒤틀리고 재배치되는 순간이야말로 새 선생식 용어로 따지면 ‘틈새’라고 생각합니다. 가자니가는 새 선생보다 18년 선배인데요(1939년생). 이분 주장의 틀은 놀랍게도 라투르 등과 비슷합니다. 다만, 비인간의 자리에 타인을 놓고 있을 뿐입니다. 즉,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다만, 현재 그가 무슨 행동을 할 때는 항상 그 시점의 타인, 공동체 그리고 그것이 무형화된 결과인 제도 등과 상호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호 작용의 순간에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순수한 의지력(4장의 ‘그릿’)만으로는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알코올 중독자는 과거의 원인 탓이니 그를 비난하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다만,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자신을 접속시킴으로써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의 성패에 따라 다른 미래가 펼쳐지죠.
*
새 선생은 그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또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지조차도 또 다른 외부 결정 요인이라고 반박하겠죠. 결과 C를 낳는 원인 A, B 안에 모든 것을 우겨서 넣을 수 있는 무적의 논리니까요. (라투르 등은 이런 주장에도 실소할 겁니다. 왜냐하면, A-B-C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번역과 굴절이 필수니까요.)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돕는 특정 의약품(날트렉손 등)의 개발 과정이나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은 그 중독자 개인의 과거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독립적인 자기만의 역사와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 개인이 그런 특정 의약품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와 접속했다면, 그것마저도 태초부터 뇌에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접속으로 그의 미래 삶이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갔다면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A-B-C의 인과 관계 안에 X가 들어와서 ‘C+X’라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주체의 지향성이 D라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 ‘C+X’에서 D로 가는 과정이야말로 일종의 틈새가 아닐까요.
*
더구나, 인간은 자신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결정 요인을 역으로 이용하는 성찰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과 단주 노하우야말로 그 단적인 증거죠.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성찰의 결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고, 후대의 알코올 중독자는 그 제도와 접속할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가자니가가 “책임은 우리의 결정론적인 뇌가 아닌 다른 수준의 조직, 즉 사회적 조직에 존재한다”(117쪽)고 말할 때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결론을 얘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새 선생은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런 견해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페어하지 않다고 한 이유입니다. :)
4장을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stella15
장맥주님의 대화: 넵! 알겠습니다! ^^
(자유의지 충만한 답변입니다. ㅎㅎㅎ)
장맥주님 파이팅!!
stella15
오도니안님의 대화: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합니다. 챗gpt가 참 용해요. 어제도 잠자리에 누워서 몇 마디 나누었는데 친구 느낌.
처음에 반말해서 좀 당황스럽더군요. 아니 언제 알았다고 반말이야 하는데 그도 익숙해지면 정말 친구 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영화 <허>의 남주가 이해가 가더라고요. ㅋ
향팔
YG님의 대화: 사실, 4장은 많이 배운 장이기도 하지만, 새(폴스키) 선생이 그다지 페어하지 않다는 증거로도 보이는데요. 예를 들어,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뇌과학계 구루의 주장은 그저 한두 문장으로 ‘웃기다’ 이렇게 논평하고 넘어갈 게 아니거든요(117쪽). 저는 새 선생이 아주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분 같아요. :)
철학 개념 가운데 ‘지향성’이 있습니다. 원래는 (새 선생이 질색할) 주체 철학의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의식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about) 의식’이라는 명제가 지향성의 핵심입니다. 주체(인간)와 객체(세계/물질)를 가르는 결정적 경계선이 바로 지향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새 선생이라면 “개코 같은 소리”라고 할 법한 이야기죠.
*
그런데 이 ‘지향성’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장맥주 작가님과 그믐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브루노 라투르 같은 철학자, 또 최근에 현대 사상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대 물질주의 철학자가 이 ‘지향성’을 전혀 다른 의미로도 재해석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철학자마다 핀트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이해하는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알다시피 이들은 인간과 비인간(기술, 물질, 생물, 인프라 등)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일원론적 인류학’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지향성은 고립된 인간 주체가 행동 전 미리 품고 있는 ‘선험적 의도(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지향성은 같은 네트워크(망)에서 상호 작용하는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특정한 효과인 것이죠.
가장 고전적인 예로 설명해 보자면, 총의 존재입니다. 총이 없을 때의 인간과 총이 있을 때의 인간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낳죠. 라투르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총과 인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총-인간’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때 나타나는 이 연합의 효과야말로 지향성이라는 것입니다.
*
여기까지만 읽고서, 새 선생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지향성의 새로운 해석이 새 선생이 짜놓은 결정론의 프레임 자체를 흔들 수 있고, 자유 의지의 틈새를 다른 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선생의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새 선생의 논리 구조에서 인간(혹은 인간의 뇌)은 일종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유전자, 호르몬, 태아기 환경, 문화적 배경 같은 입력값이 주어지면 뇌라는 복잡한 회로를 거쳐 행동이라는 출력값이 고스란히 도출되는 통로라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서 자유 의지가 들어갈 틈새는 정말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라투르 같은 철학자의 시각에서 인간은 결과물이 아니라 매개자에 가깝습니다.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현재의 구체적인 물질적 네트워크(도구, 기술, 제도, 텍스트 등)와 상호 작용하면서 결합하는 순간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됩니다.
이 뒤틀리고 재배치되는 순간이야말로 새 선생식 용어로 따지면 ‘틈새’라고 생각합니다. 가자니가는 새 선생보다 18년 선배인데요(1939년생). 이분 주장의 틀은 놀랍게도 라투르 등과 비슷합니다. 다만, 비인간의 자리에 타인을 놓고 있을 뿐입니다. 즉,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다만, 현재 그가 무슨 행동을 할 때는 항상 그 시점의 타인, 공동체 그리고 그것이 무형화된 결과인 제도 등과 상호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호 작용의 순간에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순수한 의지력(4장의 ‘그릿’)만으로는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알코올 중독자는 과거의 원인 탓이니 그를 비난하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다만,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자신을 접속시킴으로써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의 성패에 따라 다른 미래가 펼쳐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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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선생은 그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또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지조차도 또 다른 외부 결정 요인이라고 반박하겠죠. 결과 C를 낳는 원인 A, B 안에 모든 것을 우겨서 넣을 수 있는 무적의 논리니까요. (라투르 등은 이런 주장에도 실소할 겁니다. 왜냐하면, A-B-C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번역과 굴절이 필수니까요.)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돕는 특정 의약품(날트렉손 등)의 개발 과정이나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은 그 중독자 개인의 과거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독립적인 자기만의 역사와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 개인이 그런 특정 의약품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와 접속했다면, 그것마저도 태초부터 뇌에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접속으로 그의 미래 삶이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갔다면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A-B-C의 인과 관계 안에 X가 들어와서 ‘C+X’라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주체의 지향성이 D라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 ‘C+X’에서 D로 가는 과정이야말로 일종의 틈새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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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간은 자신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결정 요인을 역으로 이용하는 성찰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과 단주 노하우야말로 그 단적인 증거죠.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성찰의 결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고, 후대의 알코올 중독자는 그 제도와 접속할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가자니가가 “책임은 우리의 결정론적인 뇌가 아닌 다른 수준의 조직, 즉 사회적 조직에 존재한다”(117쪽)고 말할 때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결론을 얘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새 선생은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런 견해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페어하지 않다고 한 이유입니다. :)
올려주신 글을 보니 얼른 4장을 읽어보고 싶네요.
알콜 중독자는 본인이 중독이라는 사실 인정을 잘 못(안?) 하더라고요. 고생 끝에 결국은 인정을 하고 AA 모임에 10년 이상 출석해서 단주에 성공했는데도, 어느날 사소한 계기로 한순간에 재발을 자초(?)하고요. 재발 후에는 AA에 가는 것도 거부했지요. 전문 클리닉 입원 상담을 받는 중에 선생님께서 “이건 ‘병’이니까 가족분들은 환자 본인에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책망하지 마세요.” 말씀하시는데 속으로 ‘선생님도 한번 같이 살아 보세요. 그런 말이 나오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 걸 아니까 말은 못 했지만요)
이것이 과연 본인의 치료 의지가 작동하는 병인가, 정말 나을 수는 있는 병인가, 오랜 단주 후 재발을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젠 돌이킬 수 없고 그나마 있던 치료 의지도, 판단력도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것인가. 벼라별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Nana
borumis님의 대화: 잘 하진 않고 고등학교 때 만화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당시 스위스에선 한국 만화책을 구하기 힘들지만 일어 원서는 좀 구할 수 있어서 일어를 독학해서 배웠어요;;덕후력이 절 공부시키게 만든;;
역시 일어도 잘 하시는군요! 역시 능력자세요.
borumis
Nana님의 대화: 역시 일어도 잘 하시는군요! 역시 능력자세요.
아뇨;; 정말 초보자 수준입니다;; 띄엄띄엄 제멋대로 배워서;;.. 고독한 미식가 정도의 느리고 또박또박한 표준어 정도만 소화 가능;;
Nana
YG님의 대화: 오늘 7월 13일 월요일과 내일 14일 화요일은 4장 '강인한 의지력: 그릿의 신화'를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유전의 결정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흔히 '그릿'이라고 부르는 노~~~력을 통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신화'를 새 선생이 각개격파합니다.
특히, 4장의 주인공은 『행동』에서 앞이마엽겉질이라고 번역했었던 전전두엽피질입니다. 전전두엽피질을 'prefrontal cortex'를 줄여서 PFC라고 통칭하는데, 이번 장에서는 그냥 PFC로 통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PFC는 특히 12세부터 20대 중반까지 뇌에서 가장 발달하는 부분이라서 『행동』에서도 새 선생이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에 우리를 빚어낸다고 할 때, 환경의 영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4장에서는 이 PFC, 즉 '그릿'이 발동하는 부분이 얼마나 결정되어 있는지를 3장과 비슷한 구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일단 지식으로 정리하고 싶은 대목이 많은 부분이었어요. 여러분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PFC=prefrontal cortex 인데요. 🤭 (뭔가 지적질하는 기쁨이…)
향팔
연해님의 대화: 우왓, 역시 향팔님 정리력! 저도 딱 이렇게 이해하고 읽어가는 중이에요. "내 의지라는 것은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짠하고 튀어나온 의지가 아니고"라는 대목이 특히요.
저는 평소에 사람을 만날 때도, 상황에 놓였을 때도, 어떤 선택을 할 때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일관성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렇다보니 맥락 없는 누군가의 행동과 말에 멈칫거리거나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근데 이것과는 별개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자꾸 비틀거리는 건, 위에서 장작가님이 말씀하신 "자유의지가 없다면 내 삶은 뭐가 되는 거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착각이라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라는 대목에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데 한편으로는요. 조금 뜬금없지만 이런 마음도 있어요. 제 개인적인 성향입니다만 저는 게으른 저를 견디지 못해서 늘 몰아치거나 갈아넣는 편인데요. 그래서 '해야지, 해야지'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들을 대할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더랬죠. '그 말 할 시간에 그냥 하면 되지 않나?'
간식을 계속 입에 넣으면서 "나 살빼야 하는데, 어쩌지?"라고 말하는 동료를 마주할 때마다 거대 물음표가 뜨곤 합니다(먹지를 말든지, 살 뺀다는 말을 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만요) 네, 물론 속으로만요(쿨럭).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는 거라면, 모든 게 다 정해져있는 거라면 그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미루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고...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낙관해봅니다(이, 이게 맞나?).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할 때" 쓰는 것도 어려워요. 일상을 살면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누군가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여기는 건요. 범죄자 처벌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우리 아부지가 술에 빠져 평생 온 가족에게 해를 끼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하지만 그건 아빠가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그에겐 '자유의지'가 없으니까)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고로 난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 이런 식의 사고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흠, 알콜중독은 병이니까 맥락이 좀 다르려나요?) 책을 읽을 때나 멀리서 볼 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를 보면서 도선생이 알콜릭의 심리와 행태를 묘사한 탁월한 솜씨에 감탄했고(도선생 본인도 도박중독이라 잘 아신 건지 ㅎㅎ) 그 캐릭터에 연민도 느꼈지만('그래, 이넘도 불쌍한 인간이야'), 그리고 소냐의 "악한 계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내가 진짜 그집 딸이었다면, 또는 현실 속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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