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니안님의 대화: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합니다. 챗gpt가 참 용해요. 어제도 잠자리에 누워서 몇 마디 나누었는데 친구 느낌.
처음에 반말해서 좀 당황스럽더군요. 아니 언제 알았다고 반말이야 하는데 그도 익숙해지면 정말 친구 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영화 <허>의 남주가 이해가 가더라고요. ㅋ
향팔
YG님의 대화: 사실, 4장은 많이 배운 장이기도 하지만, 새(폴스키) 선생이 그다지 페어하지 않다는 증거로도 보이는데요. 예를 들어,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뇌과학계 구루의 주장은 그저 한두 문장으로 ‘웃기다’ 이렇게 논평하고 넘어갈 게 아니거든요(117쪽). 저는 새 선생이 아주 낡은 패러다임에 갇힌 분 같아요. :)
철학 개념 가운데 ‘지향성’이 있습니다. 원래는 (새 선생이 질색할) 주체 철학의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의식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about) 의식’이라는 명제가 지향성의 핵심입니다. 주체(인간)와 객체(세계/물질)를 가르는 결정적 경계선이 바로 지향성이라는 개념입니다. 새 선생이라면 “개코 같은 소리”라고 할 법한 이야기죠.
*
그런데 이 ‘지향성’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장맥주 작가님과 그믐 여러분이 함께 읽었던 브루노 라투르 같은 철학자, 또 최근에 현대 사상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대 물질주의 철학자가 이 ‘지향성’을 전혀 다른 의미로도 재해석해서 사용하고 있거든요. 철학자마다 핀트가 조금씩 다릅니다만, 제가 이해하는 공통점은 이렇습니다.
알다시피 이들은 인간과 비인간(기술, 물질, 생물, 인프라 등)을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일원론적 인류학’을 지향합니다. 여기서 지향성은 고립된 인간 주체가 행동 전 미리 품고 있는 ‘선험적 의도(자유 의지?)’가 아닙니다. 지향성은 같은 네트워크(망)에서 상호 작용하는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서 형성되는 특정한 효과인 것이죠.
가장 고전적인 예로 설명해 보자면, 총의 존재입니다. 총이 없을 때의 인간과 총이 있을 때의 인간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낳죠. 라투르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총과 인간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총-인간’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등장하게 되고, 그때 나타나는 이 연합의 효과야말로 지향성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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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읽고서, 새 선생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지향성의 새로운 해석이 새 선생이 짜놓은 결정론의 프레임 자체를 흔들 수 있고, 자유 의지의 틈새를 다른 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선생의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이디어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새 선생의 논리 구조에서 인간(혹은 인간의 뇌)은 일종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유전자, 호르몬, 태아기 환경, 문화적 배경 같은 입력값이 주어지면 뇌라는 복잡한 회로를 거쳐 행동이라는 출력값이 고스란히 도출되는 통로라는 것이죠. 이런 구조 속에서 자유 의지가 들어갈 틈새는 정말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라투르 같은 철학자의 시각에서 인간은 결과물이 아니라 매개자에 가깝습니다.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이 현재의 구체적인 물질적 네트워크(도구, 기술, 제도, 텍스트 등)와 상호 작용하면서 결합하는 순간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됩니다.
이 뒤틀리고 재배치되는 순간이야말로 새 선생식 용어로 따지면 ‘틈새’라고 생각합니다. 가자니가는 새 선생보다 18년 선배인데요(1939년생). 이분 주장의 틀은 놀랍게도 라투르 등과 비슷합니다. 다만, 비인간의 자리에 타인을 놓고 있을 뿐입니다. 즉, 한 주체(인간)가 과거의 원인(유전자, 환경)에 얽매여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다만, 현재 그가 무슨 행동을 할 때는 항상 그 시점의 타인, 공동체 그리고 그것이 무형화된 결과인 제도 등과 상호 작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호 작용의 순간에 그 주체를 결정했던 과거 원인의 효과는 뒤틀리고 재배치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순수한 의지력(4장의 ‘그릿’)만으로는 술을 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알코올 중독자는 과거의 원인 탓이니 그를 비난하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다만,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자신을 접속시킴으로써 알코올 중독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과정의 성패에 따라 다른 미래가 펼쳐지죠.
*
새 선생은 그 ‘술이 없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 또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지조차도 또 다른 외부 결정 요인이라고 반박하겠죠. 결과 C를 낳는 원인 A, B 안에 모든 것을 우겨서 넣을 수 있는 무적의 논리니까요. (라투르 등은 이런 주장에도 실소할 겁니다. 왜냐하면, A-B-C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번역과 굴절이 필수니까요.)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돕는 특정 의약품(날트렉손 등)의 개발 과정이나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은 그 중독자 개인의 과거 원인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독립적인 자기만의 역사와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한 개인이 그런 특정 의약품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와 접속했다면, 그것마저도 태초부터 뇌에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접속으로 그의 미래 삶이 완전히 다른 경로로 갔다면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A-B-C의 인과 관계 안에 X가 들어와서 ‘C+X’라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주체의 지향성이 D라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 ‘C+X’에서 D로 가는 과정이야말로 일종의 틈새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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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간은 자신이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결정 요인을 역으로 이용하는 성찰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커뮤니티의 행동 강령과 단주 노하우야말로 그 단적인 증거죠.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성찰의 결과로 그런 제도가 만들어졌고, 후대의 알코올 중독자는 그 제도와 접속할 가능성이 커지니까요.
가자니가가 “책임은 우리의 결정론적인 뇌가 아닌 다른 수준의 조직, 즉 사회적 조직에 존재한다”(117쪽)고 말할 때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결론을 얘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새 선생은 ‘자유 의지는 없다’라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런 견해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페어하지 않다고 한 이유입니다. :)
올려주신 글을 보니 얼른 4장을 읽어보고 싶네요.
알콜 중독자는 본인이 중독이라는 사실 인정을 잘 못(안?) 하더라고요. 고생 끝에 결국은 인정을 하고 AA 모임에 10년 이상 출석해서 단주에 성공했는데도, 어느날 사소한 계기로 한순간에 재발을 자초(?)하고요. 재발 후에는 AA에 가는 것도 거부했지요. 전문 클리닉 입원 상담을 받는 중에 선생님께서 “이건 ‘병’이니까 가족분들은 환자 본인에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책망하지 마세요.” 말씀하시는데 속으로 ‘선생님도 한번 같이 살아 보세요. 그런 말이 나오나…’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 걸 아니까 말은 못 했지만요)
이것이 과연 본인의 치료 의지가 작동하는 병인가, 정말 나을 수는 있는 병인가, 오랜 단주 후 재발을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젠 돌이킬 수 없고 그나마 있던 치료 의지도, 판단력도 완전히 없어져버리는 것인가. 벼라별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Nana
borumis님의 대화: 잘 하진 않고 고등학교 때 만화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당시 스위스에선 한국 만화책을 구하기 힘들지만 일어 원서는 좀 구할 수 있어서 일어를 독학해서 배웠어요;;덕후력이 절 공부시키게 만든;;
역시 일어도 잘 하시는군요! 역시 능력자세요.
borumis
Nana님의 대화: 역시 일어도 잘 하시는군요! 역시 능력자세요.
아뇨;; 정말 초보자 수준입니다;; 띄엄띄엄 제멋대로 배워서;;.. 고독한 미식가 정도의 느리고 또박또박한 표준어 정도만 소화 가능;;
Nana
YG님의 대화: 오늘 7월 13일 월요일과 내일 14일 화요일은 4장 '강인한 의지력: 그릿의 신화'를 읽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유전의 결정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흔히 '그릿'이라고 부르는 노~~~력을 통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신화'를 새 선생이 각개격파합니다.
특히, 4장의 주인공은 『행동』에서 앞이마엽겉질이라고 번역했었던 전전두엽피질입니다. 전전두엽피질을 'prefrontal cortex'를 줄여서 PFC라고 통칭하는데, 이번 장에서는 그냥 PFC로 통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PFC는 특히 12세부터 20대 중반까지 뇌에서 가장 발달하는 부분이라서 『행동』에서도 새 선생이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 작용에 우리를 빚어낸다고 할 때, 환경의 영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4장에서는 이 PFC, 즉 '그릿'이 발동하는 부분이 얼마나 결정되어 있는지를 3장과 비슷한 구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일단 지식으로 정리하고 싶은 대목이 많은 부분이었어요. 여러분도 꼼꼼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PFC=prefrontal cortex 인데요. 🤭 (뭔가 지적질하는 기쁨이…)
향팔
연해님의 대화: 우왓, 역시 향팔님 정리력! 저도 딱 이렇게 이해하고 읽어가는 중이에요. "내 의지라는 것은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짠하고 튀어나온 의지가 아니고"라는 대목이 특히요.
저는 평소에 사람을 만날 때도, 상황에 놓였을 때도, 어떤 선택을 할 때도, 인과관계를 명확히 정리하고, 일관성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렇다보니 맥락 없는 누군가의 행동과 말에 멈칫거리거나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근데 이것과는 별개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자꾸 비틀거리는 건, 위에서 장작가님이 말씀하신 "자유의지가 없다면 내 삶은 뭐가 되는 거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착각이라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라는 대목에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데 한편으로는요. 조금 뜬금없지만 이런 마음도 있어요. 제 개인적인 성향입니다만 저는 게으른 저를 견디지 못해서 늘 몰아치거나 갈아넣는 편인데요. 그래서 '해야지, 해야지'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분들을 대할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더랬죠. '그 말 할 시간에 그냥 하면 되지 않나?'
간식을 계속 입에 넣으면서 "나 살빼야 하는데, 어쩌지?"라고 말하는 동료를 마주할 때마다 거대 물음표가 뜨곤 합니다(먹지를 말든지, 살 뺀다는 말을 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만요) 네, 물론 속으로만요(쿨럭).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는 거라면, 모든 게 다 정해져있는 거라면 그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미루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고...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낙관해봅니다(이, 이게 맞나?).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할 때" 쓰는 것도 어려워요. 일상을 살면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누군가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여기는 건요. 범죄자 처벌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우리 아부지가 술에 빠져 평생 온 가족에게 해를 끼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하지만 그건 아빠가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그에겐 '자유의지'가 없으니까)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고로 난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 이런 식의 사고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흠, 알콜중독은 병이니까 맥락이 좀 다르려나요?) 책을 읽을 때나 멀리서 볼 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를 보면서 도선생이 알콜릭의 심리와 행태를 묘사한 탁월한 솜씨에 감탄했고(도선생 본인도 도박중독이라 잘 아신 건지 ㅎㅎ) 그 캐릭터에 연민도 느꼈지만('그래, 이넘도 불쌍한 인간이야'), 그리고 소냐의 "악한 계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내가 진짜 그집 딸이었다면, 또는 현실 속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요.)
꽃의요정
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균으로 수렴한다고? 웃기는 소리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91p,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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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이 모든 것은 PFC와 거기에 연결된 다른 뇌영역의 기능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P.158,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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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닐 레비]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에게 행동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행동의 정당성 및 결과 또는 다른 선택지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신념이 형성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과 다른 것'을 믿기를 온전히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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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왜 그 일이 방금 일어났을까?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전에 일어난 일은 왜 일어났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끊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어느 시점에서 세계(또는 전두피질이나 뉴런이나 세로토닌 분자 등등)의 상태 같은 '그 이전 것'이 허공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이 모든 생물학적 전구체를 고려하더라도 어떤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갑자기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약간의 교묘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를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계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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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PFC가 집행기능과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뇌의 발달이 유전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여러가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뇌의 기능은 호르몬 및 여러 신경전달물질등의 생물학적 토대의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다. - 4장까지 읽은 내용인데 그래도, 뭔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할 때 PFC를 쓰는 것이지 (활성화됨) 내가 PFC의 지배를 받는다? 라고 받아들이기 싫은데요. 새 선생님은 복내측 PFC의 코딩에 의한 것이라고 하시지만요.
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할 때" 쓰는 것도 어려워요. 일상을 살면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누군가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여기는 건요. 범죄자 처벌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우리 아부지가 술에 빠져 평생 온 가족에게 해를 끼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하지만 그건 아빠가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그에겐 '자유의지'가 없으니까)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고로 난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 이런 식의 사고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흠, 알콜중독은 병이니까 맥락이 좀 다르려나요?) 책을 읽을 때나 멀리서 볼 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를 보면서 도선생이 알콜릭의 심리와 행태를 묘사한 탁월한 솜씨에 감탄했고(도선생 본인도 도박중독이라 잘 아신 건지 ㅎㅎ) 그 캐릭터에 연민도 느꼈지만('그래, 이넘도 불쌍한 인간이야'), 그리고 소냐의 "악한 계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내가 진짜 그집 딸이었다면, 또는 현실 속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요.)
제 경우엔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감정이 드는 때는 드문 것 같아요.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겠죠. 제가 비교적 무난한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결정론적 사고로 보자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는 것도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드는 어떤 감정들을 옳다 그르다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인과관계에 따라 감정도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통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너지나 시간 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 운명을 다 바꿀 수는 없고 우리가 선택한 특정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 나온 비유를 사용하자면, 코끼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기수는 가끔씩 관여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결국에 가게 되는 목적지에 기수의 영향력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항상 긴장 상태에서 통제를 할 수는 없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질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성격이나 감정 패턴도 천천히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향팔
향팔님의 문장 수집: "왜 그 일이 방금 일어났을까?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전에 일어난 일은 왜 일어났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끊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어느 시점에서 세계(또는 전두피질이나 뉴런이나 세로토닌 분자 등등)의 상태 같은 '그 이전 것'이 허공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이 모든 생물학적 전구체를 고려하더라도 어떤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갑자기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약간의 교묘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를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계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
“ 1장에서 언급했듯이, 저명한 양립주의 철학자 앨프리드 마일은 자유의지에 대한 이러한 요구가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약간의 애매한 의미론이 끼어든다. 레비가 "구성적" 운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일에게는 "원격적” 운, 즉 시간적으로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예컨대 결정을 내리기 백만 년 전'이나 '결정을 내리기 1분 전') 자유의지와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 운이다. 이는 원격성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혀 관련성이 없거나, 또는 원격적인 생물학적·환경적 운의 결과가 유심론자인 '당신'이 영향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되거나, 또는 데닛이 말한 것처럼 원격적 불운이 장기적인 행운과 균형을 이루므로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일부 양립주의 이론가들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역사는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구성적' 운에 대한 레비의 표현은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역사는 관련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빌리면 "역사의 문제는 운의 문제다". 뉴런의 행동이 이전의 모든 통제 불가능한 요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터무니없이 높은 잣대이거나 허황된 주장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이 유일한 요구 사항일 수 있는 건, 이전의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한 운의 다양한 특징'을 지닌 채 당신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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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불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불교에서 '법'을 강조하잖아요. 그 법이란 것이 결정론적 인과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아라고 하는 개념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깨달음이란 그처럼 모든 것이 인연 안에 묶여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깨달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박사님 얘기처럼 계속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제 경우엔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감정이 드는 때는 드문 것 같아요.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겠죠. 제가 비교적 무난한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결정론적 사고로 보자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는 것도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드는 어떤 감정들을 옳다 그르다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인과관계에 따라 감정도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통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너지나 시간 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 운명을 다 바꿀 수는 없고 우리가 선택한 특정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 나온 비유를 사용하자면, 코끼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기수는 가끔씩 관여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결국에 가게 되는 목적지에 기수의 영향력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항상 긴장 상태에서 통제를 할 수는 없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질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성격이나 감정 패턴도 천천히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맞아요.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말씀에 동의해요. 그리고 제 감정이라는 것도 하루에도 열두번씩 바뀌더라고요. 어떨 때는 ‘그래, 아버지도 참 딱하지.’ 그러다가도 ‘아니야, 그러면 나는 더 딱하지! 나야말로 뭔 잘못이 있어?’ 그러다가 또 ‘아니 근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이게 뭐람? ㅎㅎ 대개 그쯤에서 머리속이 엉켜버리고 생각은 그만 멈춥니다.)
꼬꼬마 때 아빠가 쓴 일기를 훔쳐본 적 있는데(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의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지요!) 이런 내용이 있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나 자신도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뭐 그런 얘기였어요. 아이고, 이놈의 겹겹이 포개진 거북이들을 몽땅 없애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 ㅎㅎ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불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불교에서 '법'을 강조하잖아요. 그 법이란 것이 결정론적 인과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아라고 하는 개념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깨달음이란 그처럼 모든 것이 인연 안에 묶여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깨달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박사님 얘기처럼 계속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음, 그러네요. 어쩐지 요즘 불교에 호감과 관심이 생겼답니다. (불교가 요즘 유행대로 ‘힙’해 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ㅎㅎ) 근데 그러면 결정론자는 도인처럼 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치적 성향은 둘째 치고요.) 언제나 자기 수양을 하며 깨치려 노력하는….
향팔
2장은 어려웠는데 3장은 무난하게 잘 읽었습니다. <행동>을 그래도 100쪽이나마 읽어서 그런지, 아니 그것보다 @YG 님께서 아리랑도서관 강연 때 알려주신 내용들이 아직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YG
병행 독서로 이 책 꼭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새 선생 주장에는 동의가 안 되어도, 그 취지에는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책 읽으면서 벽돌 책 모임(특히 지난 달)에서 나눈 얘기를 많이 떠올렸어요.
세계에 속한다는 것 -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조은주 교수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공허한 ‘꿈 담론’을 비판하고, 입시에 가려진 청소년들의 진짜 고민과 돌봄의 부재를 공론장으로 끌어낸다. 저자는 20년간의 현장연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사회학적 기록으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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