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P.158,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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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닐 레비]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에게 행동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행동의 정당성 및 결과 또는 다른 선택지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신념이 형성되는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과 다른 것'을 믿기를 온전히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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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왜 그 일이 방금 일어났을까?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전에 일어난 일은 왜 일어났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끊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어느 시점에서 세계(또는 전두피질이나 뉴런이나 세로토닌 분자 등등)의 상태 같은 '그 이전 것'이 허공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이 모든 생물학적 전구체를 고려하더라도 어떤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갑자기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약간의 교묘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를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계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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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PFC가 집행기능과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뇌의 발달이 유전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여러가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뇌의 기능은 호르몬 및 여러 신경전달물질등의 생물학적 토대의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다. - 4장까지 읽은 내용인데 그래도, 뭔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할 때 PFC를 쓰는 것이지 (활성화됨) 내가 PFC의 지배를 받는다? 라고 받아들이기 싫은데요. 새 선생님은 복내측 PFC의 코딩에 의한 것이라고 하시지만요.
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할 때" 쓰는 것도 어려워요. 일상을 살면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누군가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여기는 건요. 범죄자 처벌 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를 들면 '우리 아부지가 술에 빠져 평생 온 가족에게 해를 끼쳤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야. 하지만 그건 아빠가 정말로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그에겐 '자유의지'가 없으니까)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어. 고로 난 아빠를 원망하지 않아' 이런 식의 사고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흠, 알콜중독은 병이니까 맥락이 좀 다르려나요?) 책을 읽을 때나 멀리서 볼 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요... (<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를 보면서 도선생이 알콜릭의 심리와 행태를 묘사한 탁월한 솜씨에 감탄했고(도선생 본인도 도박중독이라 잘 아신 건지 ㅎㅎ) 그 캐릭터에 연민도 느꼈지만('그래, 이넘도 불쌍한 인간이야'), 그리고 소냐의 "악한 계모"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내가 진짜 그집 딸이었다면, 또는 현실 속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요.)
제 경우엔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감정이 드는 때는 드문 것 같아요.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겠죠. 제가 비교적 무난한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결정론적 사고로 보자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는 것도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드는 어떤 감정들을 옳다 그르다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인과관계에 따라 감정도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통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너지나 시간 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 운명을 다 바꿀 수는 없고 우리가 선택한 특정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 나온 비유를 사용하자면, 코끼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기수는 가끔씩 관여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결국에 가게 되는 목적지에 기수의 영향력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항상 긴장 상태에서 통제를 할 수는 없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질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성격이나 감정 패턴도 천천히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향팔
향팔님의 문장 수집: "왜 그 일이 방금 일어났을까?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전에 일어난 일은 왜 일어났을까? 무한히 반복되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끊이지 않는 흐름 속에서 터무니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 이유인즉 어느 시점에서 세계(또는 전두피질이나 뉴런이나 세로토닌 분자 등등)의 상태 같은 '그 이전 것'이 허공에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이 모든 생물학적 전구체를 고려하더라도 어떤 행동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갑자기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약간의 교묘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를 회피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계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는 없다."
“ 1장에서 언급했듯이, 저명한 양립주의 철학자 앨프리드 마일은 자유의지에 대한 이러한 요구가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약간의 애매한 의미론이 끼어든다. 레비가 "구성적" 운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일에게는 "원격적” 운, 즉 시간적으로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예컨대 결정을 내리기 백만 년 전'이나 '결정을 내리기 1분 전') 자유의지와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 운이다. 이는 원격성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혀 관련성이 없거나, 또는 원격적인 생물학적·환경적 운의 결과가 유심론자인 '당신'이 영향을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되거나, 또는 데닛이 말한 것처럼 원격적 불운이 장기적인 행운과 균형을 이루므로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일부 양립주의 이론가들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역사는 무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구성적' 운에 대한 레비의 표현은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역사는 관련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빌리면 "역사의 문제는 운의 문제다". 뉴런의 행동이 이전의 모든 통제 불가능한 요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만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터무니없이 높은 잣대이거나 허황된 주장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이 유일한 요구 사항일 수 있는 건, 이전의 모든 것이 '통제 불가능한 운의 다양한 특징'을 지닌 채 당신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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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연해님 직장 동료분의 간식 이야기를 읽고 책을 읽다가 3장 각주에서 ‘아크라시아’ 개념을 보고 ‘아!? 이게 바로 연해님이 말씀하신 그건가?’ 싶었답니다.
아.. 그러게요. 새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행위가 다 이해 가능한 것이 되겠어요. “그래, 그대가 선택한 건 아닐 테지” <<< 연해님 글의 마지막 대목에서 또 @밥심 님께서 올려주신 영상 속의 새 선생님 한 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실제로 일상 생활을 할 때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서 사는지 궁금한 거죠?
3개월에 한 번 정도, 딱 2분 정도만큼은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는 것처럼 살 수 있어요.”
ㅎㅎㅎㅎㅎㅎ
“반세기 동안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도 여전히 어려워요.”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다른 차가 끼어들면 ‘죽여버리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누군가가 양말 멋지다고 하면 몇 초 동안은 스스로 평균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어어, 잠깐 멈춰 봐’ 하는 거죠.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도 자랑스러워하지 마.’
물론 정말 쉽지 않아요. 아주 많은 노력과 자기 통제가 필요하죠. 그러니 아껴뒀다가 정말 중요할 때 그 능력을 쓰세요.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을 때, 또는 스스로 뭘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할 때요. 사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때 그 어려운 일을 하세요.”
불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불교에서 '법'을 강조하잖아요. 그 법이란 것이 결정론적 인과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아라고 하는 개념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깨달음이란 그처럼 모든 것이 인연 안에 묶여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깨달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박사님 얘기처럼 계속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제 경우엔 결정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감정이 드는 때는 드문 것 같아요. 하지만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겠죠. 제가 비교적 무난한 환경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결정론적 사고로 보자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는 것도 인과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드는 어떤 감정들을 옳다 그르다 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인과관계에 따라 감정도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통제 밖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통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너지나 시간 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우리 운명을 다 바꿀 수는 없고 우리가 선택한 특정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에 나온 비유를 사용하자면, 코끼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기수는 가끔씩 관여할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결국에 가게 되는 목적지에 기수의 영향력이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항상 긴장 상태에서 통제를 할 수는 없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온전히 질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감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되는 경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성격이나 감정 패턴도 천천히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맞아요.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말씀에 동의해요. 그리고 제 감정이라는 것도 하루에도 열두번씩 바뀌더라고요. 어떨 때는 ‘그래, 아버지도 참 딱하지.’ 그러다가도 ‘아니야, 그러면 나는 더 딱하지! 나야말로 뭔 잘못이 있어?’ 그러다가 또 ‘아니 근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이게 뭐람? ㅎㅎ 대개 그쯤에서 머리속이 엉켜버리고 생각은 그만 멈춥니다.)
꼬꼬마 때 아빠가 쓴 일기를 훔쳐본 적 있는데(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의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지요!) 이런 내용이 있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나 자신도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뭐 그런 얘기였어요. 아이고, 이놈의 겹겹이 포개진 거북이들을 몽땅 없애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 ㅎㅎ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불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불교에서 '법'을 강조하잖아요. 그 법이란 것이 결정론적 인과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무아라고 하는 개념은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깨달음이란 그처럼 모든 것이 인연 안에 묶여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하지만 깨달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박사님 얘기처럼 계속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음, 그러네요. 어쩐지 요즘 불교에 호감과 관심이 생겼답니다. (불교가 요즘 유행대로 ‘힙’해 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ㅎㅎ) 근데 그러면 결정론자는 도인처럼 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치적 성향은 둘째 치고요.) 언제나 자기 수양을 하며 깨치려 노력하는….
향팔
2장은 어려웠는데 3장은 무난하게 잘 읽었습니다. <행동>을 그래도 100쪽이나마 읽어서 그런지, 아니 그것보다 @YG 님께서 아리랑도서관 강연 때 알려주신 내용들이 아직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YG
병행 독서로 이 책 꼭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새 선생 주장에는 동의가 안 되어도, 그 취지에는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책 읽으면서 벽돌 책 모임(특히 지난 달)에서 나눈 얘기를 많이 떠올렸어요.
세계에 속한다는 것 -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조은주 교수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공허한 ‘꿈 담론’을 비판하고, 입시에 가려진 청소년들의 진짜 고민과 돌봄의 부재를 공론장으로 끌어낸다. 저자는 20년간의 현장연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사회학적 기록으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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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병행 독서로 이 책 꼭 같이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새 선생 주장에는 동의가 안 되어도, 그 취지에는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 책 읽으면서 벽돌 책 모임(특히 지난 달)에서 나눈 얘기를 많이 떠올렸어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
“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
”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
“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YG
YG님의 대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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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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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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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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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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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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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이 책의 저자 조은주 선생님은 흔히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meritocracy'를 '능력정'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democracy'가 사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정'이나 '민치정'으로 번역되어야 그 의미에 부합하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의 주장입니다.
오도니안
YG님의 대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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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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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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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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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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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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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학교나 학생들의 현실을 많이 접해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많네요.
새 박사님도 언급하셨지만 뇌과학 책에서는 사춘기 시절에 어떤 경험들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크게 다른 구성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잡다한 시냅스들 간의 연결이 상당 부분 가지치기 되고 핵심적인 뉴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시기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춘기의 중심이 되는 몇 년이 향후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결정짓는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미래를 위해 희생이 당연한 시기로 여깁니다. 학교에서 접하는 현실들이 청년들이 갖는 기본적인 세계상이 되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굳어져 가는 결정론적 체제 안에서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인 것 같기도 해요.
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음, 그러네요. 어쩐지 요즘 불교에 호감과 관심이 생겼답니다. (불교가 요즘 유행대로 ‘힙’해 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ㅎㅎ) 근데 그러면 결정론자는 도인처럼 사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치적 성향은 둘째 치고요.) 언제나 자기 수양을 하며 깨치려 노력하는….
전념해서 수양하시는 스님들은 다르겠지만.
결정론적 관점을 갖게 되면 자꾸 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경험을 해도 그런 쪽으로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을텐데,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저한테는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학교나 학생들의 현실을 많이 접해 본 건 아니지만 공감가는 대목들이 많네요.
새 박사님도 언급하셨지만 뇌과학 책에서는 사춘기 시절에 어떤 경험들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크게 다른 구성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존의 잡다한 시냅스들 간의 연결이 상당 부분 가지치기 되고 핵심적인 뉴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시기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춘기의 중심이 되는 몇 년이 향후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결정짓는다는 것에만 주목하고 미래를 위해 희생이 당연한 시기로 여깁니다. 학교에서 접하는 현실들이 청년들이 갖는 기본적인 세계상이 되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굳어져 가는 결정론적 체제 안에서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인 것 같기도 해요.
요즘 10대, 20대가 극우화되고 있다며 비난하는 얘기가 많고 지난번 배재고 사건도 그렇다 하는데, 저는 이게 결국 기성세대가 만든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그 ‘586’들은 이게 다 리박스쿨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와 제도 아래서 아이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요즘 10대, 20대가 극우화되고 있다며 비난하는 얘기가 많고 지난번 배재고 사건도 그렇다 하는데, 저는 이게 결국 기성세대가 만든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그 ‘586’들은 이게 다 리박스쿨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와 제도 아래서 아이들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기도 하고요.
교육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건 자유의지적인 관점(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이고, 구조적 원인을 찾는 것이 결정론적 관점이지 않을까 합니다. 전 결정론 예찬론자인 모양입니다.^^ 근데 결정론의 문제는 구조적 원인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TT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전념해서 수양하시는 스님들은 다르겠지만.
결정론적 관점을 갖게 되면 자꾸 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경험을 해도 그런 쪽으로 해석을 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을텐데,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저한테는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습니다.
아, ‘구태여 노력한다기보다는 그런 관점이 잘 맞아서 몸에 배는 것 같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저는 그동안 ‘세상은 결정론적이지. 그치만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지 않겠어? 당연히!’ 라고 대강 생각해왔는데요.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새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이 방에 계신 분들의 글을 읽을수록 ‘아 그런 생각은 모순일 수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말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점점 들고 있습니다 ㅎㅎ
꽃의요정
“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이 공격성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환경에 따라 길거리에서 싸움을 벌이거나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체스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또는 위험 감수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면, 환경에 따라 상점을 털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다. 또는 중독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면, 환경에 따라 클럽에서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시는 브라만이 되거나 헤로인 구입할 돈을 필사적으로 훔치는 도둑이 될 수 있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96p,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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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장맥주님의 대화: 333쪽,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갯민숭달팽이인 캘리포니아 군소]
사실 저도 @연해 님만큼이나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친구들이 싫은데요, 거기에 더해 끈적하고 미끈덩한 녀석들도 싫어합니다. 길이가 60센티미터가 넘는... 음... 아주 싫네요.
으아아 저도요. 비 오고 난 다음 날 길가에 기어다니는 작은 생명체에도 화들짝 놀라곤 하는데, 60센티미터가 넘는다니...(군소 검색했다가 또 놀람)
뜬금없지만 (추억의) 먹바퀴가 떠오릅니다. 작가님:)
그때 강력한 살충제를 선물 로 드리고 싶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던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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