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글. 링크도 넣으려고 했는데 방금 읽은 글을 못 찾겠어요.
새 선생이 자유의지론자들에게 보이는 반감과 통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봤습니다.
-------------
한국 사회가 그토록 ‘모범 사례’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한 사례 하나만 찾아내면, 나머지 사람들의 고통과 실패를 전부 핑계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ADHD를 의지로 극복했다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나면 다른 환자들은 나약한 사람이 되고, 비만을 식단과 운동만으로 해결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비만인들은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 사례는 희망을 주기 위한 사례라기보다, 타인을 때리기 위한 몽둥이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중략)
모범 사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의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희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범 사례는 참고 자료이지 판결문이 아니며,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해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
성숙한 사회라면 성공 사례를 보며 “왜 이 사람은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어떤 조건과 자원, 지원과 치료가 성공에 기여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반대로 미성숙한 사회는 “저 사람도 했는데 너는 왜 못 했는가”라고 묻는다. 전자는 조건을 보지만, 후자는 사람을 심판한다.
.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도 아니고 핑계를 허용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현실대로 보는 최소한의 지성이며, 과학과 정책이 출발해야 할 기본 전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엄격한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회다. 모범 사례 하나를 들고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짓밟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잔인함을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사회일 뿐이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D-29

오도니안
이 글에 달린 댓글 2개 보기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페북글. 링크도 넣으려고 했는데 방금 읽은 글을 못 찾겠어요.
새 선생이 자유의지론자들에게 보이는 반감과 통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봤습니다.
-------------
한국 사회가 그토록 ‘모범 사례’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한 사례 하나만 찾아내면, 나머지 사람들의 고통과 실패를 전부 핑계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ADHD를 의지로 극복했다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나면 다른 환자들은 나약한 사람이 되고, 비만을 식단과 운동만으로 해결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비만인들은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 사례는 희망을 주기 위한 사례라기보다, 타인을 때리기 위한 몽둥이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중략)
모범 사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의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희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범 사례는 참고 자료이지 판결문이 아니며,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해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
성숙한 사회라면 성공 사례를 보며 “왜 이 사람은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어떤 조건과 자원, 지원과 치료가 성공에 기여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반대로 미성숙한 사회는 “저 사람도 했는데 너는 왜 못 했는가”라고 묻는다. 전자는 조건을 보지만, 후자는 사람을 심판한다.
.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도 아니고 핑계를 허용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현실대로 보는 최소한의 지성이며, 과학과 정책이 출발해야 할 기본 전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엄격한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회다. 모범 사례 하나를 들고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짓밟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잔인함을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사회일 뿐이다.
새 선생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번달 독서가 지난달의 <쇳돌> 독서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아요.
“모범 사례는 참고 자료이지 판결문이 아니며,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 이 대목을 읽으니 <송곳>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https://www.gmeum.com/meet/3622?talkId=279628

향팔
오도니안님의 대화: 우와~! 7장 재밌어요. 개미, 벌, 점균류 이야기들~!
오 ㅎㅎ 기대됩니다.

오도니안
향팔님의 대화: 새 선생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번달 독서가 지난달의 <쇳돌> 독서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아요.
“모범 사례는 참고 자료이지 판결문이 아니며,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 이 대목을 읽으니 <송곳>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https://www.gmeum.com/meet/3622?talkId=279628
지난 모임 때도 참여했으면 좋았겠어요 ㅜㅜ

stella15
오도니안님의 대화: 페북글. 링크도 넣으려고 했는데 방금 읽은 글을 못 찾겠어요.
새 선생이 자유의지론자들에게 보이는 반감과 통하는 것 같아서 발췌해 봤습니다.
-------------
한국 사회가 그토록 ‘모범 사례’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한 사례 하나만 찾아내면, 나머지 사람들의 고통과 실패를 전부 핑계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ADHD를 의지로 극복했다는 사람이 한 명 나타나면 다른 환자들은 나약한 사람이 되고, 비만을 식단과 운동만으로 해결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비만인들은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모범 사례는 희망을 주기 위한 사례라기보다, 타인을 때리기 위한 몽둥이로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중략)
모범 사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의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희망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범 사례는 참고 자료이지 판결문이 아니며,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유죄로 만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해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
성숙한 사회라면 성공 사례를 보며 “왜 이 사람은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어떤 조건과 자원, 지원과 치료가 성공에 기여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반대로 미성숙한 사회는 “저 사람도 했는데 너는 왜 못 했는가”라고 묻는다. 전자는 조건을 보지만, 후자는 사람을 심판한다.
.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도 아니고 핑계를 허용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현실대로 보는 최소한의 지성이며, 과학과 정책이 출발해야 할 기본 전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엄격한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회다. 모범 사례 하나를 들고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짓밟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잔인함을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사회일 뿐이다.
새 박사님 예리하시네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성공에 대한 다양한 열린 시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갑자기 저 초등학교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초등학교를 두 군데를 다녔는데 4학년 때 전학해 다닌 학교는 나름 다양한 상을 제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아이에게 그 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학교였죠. 성적 우등상이나 개근상만 상은 아니잖아요. 예를들면 <잘씀상>이란 게 있었는데 말 그대로 글씨를 잘 쓰고 노트 정리 잘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습니다. 그 상을 제가 받은 적이 있었죠. 정말 글씨를 잘 써서가 아니라 제가 3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손으로 글을 못 쓰고 왼손으로 썼거든요. 그러니 처음엔 얼마나 못 썼겠어요. 지금은 왼손잡이도 많고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당시는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강했거든요.
근데 담임 선생님이 글씨 잘 쓴다고 칭찬하시면서 상줘야 한다고 하셨고 기어이 상을 주셨죠. 근데 학교는 꼬졌어요.
먼저 다니던 학교는 시설이 엄청 좋았죠. 소문에 의하면 대통령의 자제가 다녔던 학교라고 엄청 돈을 댔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립이면 모를까 공립이 그렇게 시설 좋을 수가 없거든요. 그에 따라 당시 그 학교 다녔던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죠. 근데 제가 그 학교를 나올무렵 학교에서 상 주는 것을 폐지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인가를 생각하연 역시 학교는 비록 후져도 학생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학교가 더 좋은 학교 같습니다. 뭐 먼저 학교도 상은 폐지해도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학교라면 그도 나쁜 학교라고 할 순 없겠죠. 그렇다고요.

향팔
stella15님의 대화: 새 박사님 예리하시네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성공에 대한 다양한 열린 시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갑자기 저 초등학교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초등학교를 두 군데를 다녔는데 4학년 때 전학해 다닌 학교는 나름 다양한 상을 제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아이에게 그 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학교였죠. 성적 우등상이나 개근상만 상은 아니잖아요. 예를들면 <잘씀상>이란 게 있었는데 말 그대로 글씨를 잘 쓰고 노트 정리 잘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습니다. 그 상을 제가 받은 적이 있었죠. 정말 글씨를 잘 써서가 아니라 제가 3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손으로 글을 못 쓰고 왼손으로 썼거든요. 그러니 처음엔 얼마나 못 썼겠어요. 지금은 왼손잡이도 많고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당시는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강했거든요.
근데 담임 선생님이 글씨 잘 쓴다고 칭찬하시면서 상줘야 한다고 하셨고 기어이 상을 주셨죠. 근데 학교는 꼬졌어요.
먼저 다니던 학교는 시설이 엄청 좋았죠. 소문에 의하면 대통령의 자제가 다녔던 학교라고 엄청 돈을 댔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립이면 모를까 공립이 그렇게 시설 좋을 수가 없거든요. 그에 따라 당시 그 학교 다녔던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죠. 근데 제가 그 학교를 나올무렵 학교에서 상 주는 것을 폐지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인가를 생각하연 역시 학교는 비록 후져도 학생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학교가 더 좋은 학교 같습니다. 뭐 먼저 학교도 상은 폐지해도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는 학교라면 그도 나쁜 학교라고 할 순 없겠죠. 그렇다고요.
‘잘씀상’이라니 상 이름이 너무 예쁜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았던 왼손 글씨를 잘 써서 상을 받으시다니 대단하세요.
맞아요, 예전에는 왼손잡이 차별이 심했지요. 제 오빠가 왼손잡이였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치이다 보니 억지로 자꾸 오른손을 쓰면서 언젠가부터 양손 모두를 자유자재로 쓰게 됐거든요. 왼손으로는 양치도 잘 못하는 제가 봤을 땐 양손을 다 잘 쓰는 오빠가 초능력자 같아 보여요. (아! 이것도 혹시, 타고나길 왼손잡이로 타고난 오빠가 환경의 압박과 누적된 경험에 의해 뇌가 변화하여 양손잡이가 된, 결정론의 실제 예에 해당되는 걸까요.)

stella15
향팔님의 대화: ‘잘씀상’ 이라니 상 이름이 너무 예쁜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익숙하지 않았던 왼손 글씨를 잘 써서 상을 받으시다니 대단하세요.
맞아요, 예전에는 왼손잡이 차별이 심했지요. 제 오빠가 왼손잡이였는데 하도 여기저기서 치이다 보니 억지로 자꾸 오른손을 쓰면서 언젠가부터 양손 모두를 자유자재로 쓰게 됐거든요. 왼손으로는 양치도 잘 못하는 제가 봤을 땐 양손을 다 잘 쓰는 오빠가 초능력자 같아 보여요. (아! 이것도 혹시, 타고나길 왼손잡이로 타고난 오빠가 환경의 압박과 누적된 경험에 의해 뇌가 변화하여 양손잡이가 된, 결정론의 실제 예에 해당되는 걸까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그때 담임 선생님과 학우들을 잘 만났던 거 같아요. 선생님이 저를 칭찬하니까 반아이들도 글 잘 쓴다고 엄청 띄워주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고. 진짜 능력자처럼 봐주더라고요.
저는 선천적인 왼손잡이도는 아닌 거 같아요. 사물을 알아 볼 때쯤 사람들이 왼손을 쓰길래 따라서 썼을 뿐인데 그게 왼손잡이라네요. 보는 방향이 맞는 거 잖아요. ㅋㅋ 그래서 한참 왼쪽 오른쪽 구분을 못했죠. 부모님이 그거 바로잡아 주시려고 잔소리 하고.ㅠ 근데 전 정말 왼손잡이가 될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왼손잡이 보단 양손잡이가 더 유리하지 않나요?^^

오도니안
stella15님의 대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그때 담임 선생님과 학우들을 잘 만났던 거 같아요. 선생님이 저를 칭찬하니까 반아이들도 글 잘 쓴다고 엄청 띄워주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고. 진짜 능력자처럼 봐주더라고요.
저는 선천적인 왼손잡이도는 아닌 거 같아요. 사물을 알아 볼 때쯤 사람들이 왼손을 쓰길래 따라서 썼을 뿐인데 그게 왼손잡이라네요. 보는 방향이 맞는 거 잖아요. ㅋㅋ 그래서 한참 왼쪽 오른쪽 구분을 못했죠. 부모님이 그거 바로잡아 주시려고 잔소리 하고.ㅠ 근데 전 정말 왼손잡이가 될 운명이었던 거 같아요! 왼손잡이 보단 양손잡이가 더 유리하지 않나요?^^
저도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글씨 잘 썼다고 노트를 앞에 걸어주신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악필. 손글씨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에요.

연해
“ 이제 '상점의 분포'뿐만 아니라 상점의 유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각 쇼핑몰마다 약국 한 개, 마트 한 개, 커피숍 두 개가 있다고 가정하자. 서로 다른 유형의 상점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사탕 가게와 치과를 분리해야 하고, 안경점은 서점 옆에 있어야 하고, 죄 짓는 장소(아이스크림 가게, 술집)와 회개하는 장소(헬스장, 교회)의 비율을 적절히 맞춰야 한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p.226,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문장모음 보기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연해
“ '예측 불가능한'은 '결정되지 않은'과 동의어가 아니며, 결정론에는 환원적 결정론만 있는 게 아니다. 카오스계는 순전히 결정론적이어서, 자유의지의 존재를 주장하는 특정 관점을 차단한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p.196,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문장모음 보기

연해
YG님의 대화: 오늘 7월 16일 목요일과 내일 17일 금요일은 7장 '창발적 복잡성 입문'을 읽습니다. 7장은 분량과 난이도(라기보다는 다소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라서)에서 이 책에서 제일 고비 같아요.
처음에 카오스 이론과 함께 복잡계 과학이라는 게 있고 그건 연구 대상이나 방향이 다르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그 복잡계 과학과 그 영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발성(Emergence)을 개괄하는 장입니다.
사실, 7장도 8장의 결론을 예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니 이해되는 선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시면 충분합니다.
왜 7장이 제일 고비인지 알 것 같습니다(헥헥). 이해되는 선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도 충분하다는 말씀에 힘을 얻었어요. 장작가님이 주석을 패스(?)하며 읽겠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점점 더 공감됩니다...

연해
장맥주님의 대화: 이 사진을 보면서 제가 먹을 수 있을까 없을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직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
번데기랑 큰 차이 없는 거 같기는 한데...
다들 충식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주셨는데, 저는 귀뚜라미고 메뚜기고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화난 거 아님 주의) 알약 같은 걸로 영양분을 채우는 게 있다면 그걸 택하겠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고 예쁜 포장지에 얌전히 들어있는 귀뛰라미라니, 하... (털썩)

연해
SooHey님의 대화: 쭈루룩 연결된 글들을 고인 침을 삼키며 읽었습니다. 멍게 너무 맛있습니다. 해삼, 전복 사랑합니다(비싸긴 합니다;;). 광어회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각자 모두 사랑합니다. 번데기는 주식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번데기는 온갖 양념 넣고 탕으로 끓이면 훌륭한 메인 요리가 됩니다. 군소는 아직 못 먹어봤지만 기회가 된다면 먹어보고 싶습니다. 허나 절지동물류는 메뚜기까지 어떻게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귀뚜라미는 좀... 바선생은 오 노... 얼마 전에 온갖걸 시도해보는 고재영이라는 유튭 채널에서 한중일 괴기식을 다루었는데, 중국 곤충 전문점 편을 보면서 비위가 상하더라고요(특히 물장군 취식 장면에서;;;).
가만 살펴보면 어린 시절 입맛 형성기에 얼마나 친숙하게 접했는가가 식성과 섭식 가능 대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각자 모두 사랑한다는 말씀에 또 웃음 터졌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죠. 다만 저에게는 그들(벌레 먹기 싫어요, 힝)의 매력이 어필이 잘 안 되는 것 같지만요. 말씀하신 유튜브 영상은 검색 자체만으로도 제 잔상에 오래 남을 것 같아 굳이 시도하는 객기를 부리지는 않았습니다(이 또한 결정론인가). 어린 시절 입맛 형성기에 얼마나 친숙하게 접했는가가 식성과 섭식 가능 대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말씀도 정말 공감해요! 그래서 저는 포도를 못 먹고, 제 오빠는 두유를 못 먹는다지요.

연해
장맥주님의 대화: 사실 며칠만 굶어도 눈 돌아가서 거부감이고 뭐고 냠냠 잘 먹을 텐데...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장맥주...
근데 이 말씀은 은근히 또 공감되는 게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혼자 밥 먹는 걸 못 했거든요. 집에서 말고 밖에 식당 같은 데서요(지금은 어디서든 무조건 혼밥추구지만요). 그러다 알바하면서 그 습관(?)이 사라졌어요. 배고프면 혼자고 나발(?)이고 그냥 어디서든 먹는 것이었다...

소리없이
모임장님께서 글을 올려 주신 덕분에 케빈 미첼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Innate의 번역본인가 봅니다. 새폴스키와의 비교점을 좀더 뚜렷하게 볼 수 있고 매체들을 통한 간접적인 논쟁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복잡계와 창발성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것은 Free Agents인 것 같은데 종이책은 배송에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찾아 본 정보가 믿을 만하다면 Determined와 Free Agents가 같은 해,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것 같고 서로의 연구를 의식하고 쓴 책들은 아닌 것 같은데 모두 현대의 신경과학적인 사실들을 받아들이면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향팔
(198쪽) “하지만 300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고적대가 미식축구 경기장에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프타임 공연중에 50야드 라인을 지나 문워킹을 하는 거대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한다.”
녜, 확인해 봤습니다. 와우! ㅎㅎ
https://youtu.be/1hYWLZLgrR8?si=QW0f1GwWHT5E0zgm
이 글에 달린 댓글 1개 보기

stella15
향팔님의 대화: (198쪽) “하지만 300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고적대가 미식축구 경기장에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프타임 공연중에 50야드 라인을 지나 문워킹을 하는 거대한 마이클 잭슨이 등장한다.”
녜, 확인해 봤습니다. 와우! ㅎㅎ
https://youtu.be/1hYWLZLgrR8?si=QW0f1GwWHT5E0zgm
진짜 와우네요! 약간 귀엽기도하고.ㅎㅎ
마이클이 그립기도하고. ㅠ 요즘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는 마이클이라도 봐야하나 싶기도 하네요. 글치않아도 주인공이 마이클의 조카라고 들었는데 마이클 잭슨 완전 빙의라고 엄청 띄우는 것 같던데 영화 잠깐 보니까 별로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영화 '프레디'도 음악 아니었으면 주인공은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음악이 살린 영화였죠.

stella15
오도니안님의 대화: 저도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글씨 잘 썼다고 노트를 앞에 걸어주신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악필. 손글씨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에요.
요즘엔 육필 쓸 일이 없어져서 그런가봐요. ㅎ 근데 악필의 기준이 따로있을까 싶기도해요. 저도 악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 글씨 보면 멋있다고하는 사람도 있어요. 역시 글씨는 흘림체에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오도니안님도 잘 흘려 쓰시잖아요! 하하
aida
YG님의 대화: 제가 개인 소셜 미디어에 주요 대목 발췌한 것 공유드립니다.
*
“꿈을 가지라는 주문, 스스로의 삶이 주인이 되라는 압력은 취약한 집단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현재를 미래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 있게 서사화하는 것은 개인의 자질이나 역량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자기 일대기를 설계하고 자기 생애를 서사적으로 꿈꾸라는 요청은 공허하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만족감을 가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인지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53쪽)
*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주 일부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혹은 청소년의 삶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어른들의 시각에서 계속해서 말해지고 쓰인다.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가 너무 안일하거나 진부하거나 지나치게 안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겪어내고 있는 삶은 지금의 어른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이다. 더욱이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좁은 세계에 국한된 존재는 아닌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는 입시 경쟁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다.” (57~58쪽)
“현재 한국의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학력자본 경쟁이나 입시 경쟁의 과열이 아니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입시 경쟁의 과열은 사실상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주로 국한된 문제다. 전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장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교육의 장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일루지오를 형성하게 할 것인가의 차원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중등 교육의 문제가 주로 입시 경쟁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교육 현실을 더욱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75~76쪽)
*
”결국 평등에 대한 논의는 권력과 지배의 질서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권력과 지배를 행사하는 자리는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답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지배해야 한다’라고 답함으로써, 귀족정은 사실성 민주정(민주주의)이 아닌 능력정(능력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만 것이다. (152쪽)
“특히 능력정(능력주의)에 내장된 사회 이동을 향한 독특한 믿음과 열망이야말로 이 공모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힘이다. 능력만 있으면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능력주의는 정당화되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믿는 상징폭력의 질서는 재생산된다.” (172쪽)
*
“공정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를 비판하거나 힐난하는 논의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중등 교육과 입시 제도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수록, 이렇게 설계된 제도하에서 중등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가 공정성을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성장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세대가, 자신들이 설계한 제도에서 성장한 세대를 비난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81쪽)
*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밥 먹고, 친구 만나고, 저는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수업 시간을 견뎌야 되잖아요.”
“수업 시간을 견뎌야죠.” (193쪽)
*
“인간이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근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일상적으로 배반하는 실제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가장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은 학교다.” (204쪽)
새선생님 '취지'에 동의할수 밖에 없어요. (이 책을 안 읽었을 때보다 더더 동의합니다.) 저도 제일 싫어하고 난감한 질문이 "꿈이 뭐냐"는 것이였고, 제 아들도 여전히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항상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질문을 바꾸곤 했지요.
반 정도 읽었는데 사회과학서를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진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펜데믹 시절 "학교가 아니면 아이들은 밥은 어디서 먹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아이들에게 점점 불가능해 보이는 '평범한 삶'. 그로 인해 불안하고 무기력한 아이들.
이런 대목들을 마주하니 지나온 경험(도돼체 자유학기제는 왜하지? 펜데믹 때의 그 의미없는 온라인 학습, 그리고 밥밥밥!) 겹치는 부분도 있는데다 학군지 학교의 민원만 사회문제로 부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책은 부담없는 두께인데 한 장 한 장 무게감이 크네요. (이렇게 훌륭한 책 알려주어서 감사해요.)

향팔
aida님의 대화: 새선생님 '취지'에 동의할수 밖에 없어요. (이 책을 안 읽었을 때보다 더더 동의합니다.) 저도 제일 싫어하고 난감한 질문이 "꿈이 뭐냐"는 것이였고, 제 아들도 여전히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항상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질문을 바꾸곤 했지요.
반 정도 읽었는데 사회과학서를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진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펜데믹 시절 "학교가 아니면 아이들은 밥은 어디서 먹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아이들에게 점점 불가능해 보이는 '평범한 삶'. 그로 인해 불안하고 무기력한 아이들.
이런 대목들을 마주하니 지나온 경험(도돼체 자유학기제는 왜하지? 펜데믹 때의 그 의미없는 온라인 학습, 그리고 밥밥밥!) 겹치는 부분도 있는데다 학군지 학교의 민원만 사회문제로 부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책은 부담없는 두께인데 한 장 한 장 무게감이 크네요. (이렇게 훌륭한 책 알려주어서 감사해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꿈이 뭐냐”는 질문은 저도 싫어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에 꿈이고 뭐고 그런 거 생각할 여유는 없고 일단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삶의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 건지 (여전히 아무런 꿈도 야망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돈을 벌어야 돼, 집에 보탬이 되어야 해, 나는 열심히 살아야 돼, 그렇다고 일만 하면 억울하니 놀기도 진짜 열씨미 놀아야 돼, 모든 걸 내 대에서 끝내야 되니 자식은 절대 낳지 말고…’ 이러믄서 잠시라도 몸을 가만 냅두질 못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24시간을 쪼개쓰며 살다가 결국은 너무 이른 번아웃이 와버렸지요. 지금은 완전히 반대의 인간이 되어버려서, 그냥 한량처럼 누워 쉬고만 싶습니다 ㅎㅎ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채팅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