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님의 대화: 후반부로 갈수록 새박사님이 분노(?)가 느껴집니다... 근데 저는 10.5장부터 속도가 좀 붙는 것 같아요!
10.5장까지 아직 좀 남았는데 ㅠㅠ 그 전에는 속도가 더디군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ㅠ
오구오구
오도니안님의 대화: 양립론자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사회 문제에는 주로 결정론을 적용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나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함께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새폴스키 박사도 사회문제에 대한 주장을 위해 결정론을 내세우는 것이지, 의지력이나 선택이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비양립주의 입장을 채택한 후 저에대해 좀더 너그러워졌고 세상에 대해서도, 사춘기 천방지축아들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종교를 포기한 후에 자연스럽게 태생한 자유의 느낌이 더 강화되는 느낌입니다
오도니안
“ 우리의 출발점은 정신분석 자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로 진술되 는 언어 행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입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행위와 함께 사라집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아닙니다...
제 생각에 자아의 열정, 즉 '무지의 열정'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 이 순간 우리는 주체가 형성되는 곳이 대타자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생각치도 못하게 됩니다. 그에 대해 라깡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주체화하는 것, 다시 말해 주체가 구성되는 것은 다른 주체, 즉 대타자 속에서 일어난다.' ”
『자끄 라깡 핵심이론과 임상 - 나지오의 다섯 강의』 무의식의 주체 개념 Chapter, 장-다비드 나지오 지음, 라깡분석치료연구회 옮김
자끄 라깡 핵심이론과 임상 - 나지오의 다섯 강의라캉 정신분석에서 관건이 되는 무의식, 주체, 시니피앙, 향락, 타대상, 환상, 신체, 무의식의 주체 등 라캉의 난해한 개념들이 정신치료와 심리상담을 실질로 도울 수 있게 임상적 측면에서 정리한 드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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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니안
오도니안님의 문장 수집: "우리의 출발점은 정신분석 자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로 진술되는 언어 행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입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행위와 함께 사라집니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아닙니다...
제 생각에 자아의 열정, 즉 '무지의 열정'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 이 순간 우리는 주체가 형성되는 곳이 대타자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또 생각치도 못하게 됩니다. 그에 대해 라깡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주체화하는 것, 다시 말해 주체가 구성되는 것은 다른 주체, 즉 대타자 속에서 일어난다.' "
자끄 라깡에 대한 책을 같이 읽고 있는데, 대타자가 결정론적 세계이고, 주체가 자유의지의 주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읽고 있던 책들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라 재미있네요.
오도니안
오구오구님의 대화: 비양립주의 입장을 채택한 후 저에대해 좀더 너그러워졌고 세상에 대해서도, 사춘기 천방지축아들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종교를 포기한 후에 자연스럽게 태생한 자유의 느낌이 더 강화되는 느낌입니다
자유의지는 기독교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영혼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심판을 받으려면 자유의지 가 존재해야 하는데, 결정론이 맞다면 심판의 근거가 없어지는 거라서. 기독교 배경의 철학자들은 어떻게든 자유의지의 존재를 변호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오구오구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카오스의 비결정성은 자유의지가 있음을 증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음은 증명할 수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중요한 실수는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이 매우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즉 카오스성은 예측 불가능하더라도 여전히 결정론적이다.
”
『모든 것은 결정되 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88-189,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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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오도니안님의 대화: 자유의지는 기독교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영혼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심판을 받으려면 자유의지가 존재해야 하는데, 결정론이 맞다면 심판의 근거가 없어지는 거라서. 기독교 배경의 철학자들은 어떻게든 자유의지의 존재를 변호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그런거 같아요. 자유의지에 대한 인간의 집 착, 그 기원이 기독교 혹은 종교에 있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읽고 있어요.
법과 제도라는 관점에서도 결정론은 너무나 혁명적인거 같아요. 그래도 저 개인에게는 결정론에 좀더 의미를 두고 싶어요 ㅎ
오구오구
“ 우리는 어떤 과제를 수행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 때 마치 우리 자신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느낀다. 즉 모든 뉴런과는 별개로 내면에 '나'가 존재하며,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그 속에 거한다고 느낀다. 우리의 직관이 이렇게 외치는 것은 '그런 행동을 초래한 생물학적 역사의 잠재적 힘'을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우리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직관을 극복하는 것은 엄청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91,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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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 지금까지 살펴본 아이디어의 변형은 ‘현재에 대한 자유의지는 없더라도 미래에 어떤 사람 이 될지에 대한 자유의지는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피터 체는 이를 2차 자유의지라고 부르며, 뇌가 어떻게 “미래의 자기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선택지를 개발하고 창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뇌는 단순한 뇌가 아니다. 일례로 호랑이는 이런 종류의 자유의지(예:채식주의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를 가질 수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반면 인간은 자신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선택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데닛의 회고적 관점과 결합하면,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볼 때, 누구나 과거에 자유롭게 선택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유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16p,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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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과학의 발견 과정이 오늘밤 자정에 멈추지 않는 한, 우리가 주체의식으로 채우려고 하는 무지의 공백은 계 속 줄어들 것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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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aida님의 문장 수집: "과학의 발견 과정이 오늘밤 자정에 멈추지 않는 한, 우리가 주체의식으로 채우려고 하는 무지의 공백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의지가 없다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stella15
오도니안님의 대화: 자유의지는 기독교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영혼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심판을 받으려면 자유의지가 존재해야 하는데, 결정론이 맞다면 심판의 근거가 없어지는 거라서. 기독교 배경의 철학자들은 어떻게든 자유의지의 존재를 변호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오구오구 맞긴합니다. 자유의지. 천국과 지옥의 개념 보단 처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면 제일 먼저 갖는 의구심이 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하나님이 만드셨냐는 거죠. 그렇게도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면 아예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만드셔서 결국 따먹게 만들고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선악과 좀 따 먹었다고 그걸 죄라고 하고 그에 대한 벌로 고통하며 살게 만들고 하나님이라는 분 너무 편협하신 아니냐는 질문부터 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자유의지는 무슨 개뿔?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또 반대로 그것 때문에 신앙이 더 깊어지는 사람도 있죠. 기독교인이 새 박사님의 책을 본다면 거부감을 갖거나 냉소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두 진영에 대해서 서로 열린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자유의지도 강조하지만 구속이나 운명 같은 반대되는 개념도 수용하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저 역시 새 박사님의 이론에 거부감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읽지 않은 건 꼭 그를 거부감 때문이기 보단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거고, 책값도 만만찮아 애저녁에 포기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올리신 문장과 견해들을 간간히 보면서 새 박사님이 아주 근거없는 말씀을 한 건 아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다. 혹시 나중에라도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이 책 추천합니다. 저자인 C.S 루이스는 원래 비신자였다가 신자가 되었고 기독교 변증가가된 사람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리미티드 에디션)꾸준히 사랑받는 기독교 고전 《순전한 기독교》가 연말을 맞아 새로운 표지로 찾아왔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가 무신론자와 평신도를 위해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바”를 명쾌하게 담아 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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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
stella15님의 대화: @오구오구 맞긴합니다. 자유의지. 천국과 지옥의 개념 보단 처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면 제일 먼저 갖는 의구심이 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하나님이 만드셨냐는 거죠. 그렇게도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면 아예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만드셔서 결국 따먹게 만들고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선악과 좀 따 먹었다고 그걸 죄라고 하고 그에 대한 벌로 고통하며 살게 만들고 하나님이라는 분 너무 편협하신 아니냐는 질문부터 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자유의지는 무슨 개뿔?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또 반대로 그것 때문에 신앙이 더 깊어지는 사람도 있죠. 기독교인이 새 박사님의 책을 본다면 거부감을 갖거나 냉소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두 진영에 대해서 서로 열린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자유의지도 강조하지만 구속이나 운명 같은 반대되는 개념도 수용하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저 역시 새 박사님의 이론에 거부감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읽지 않은 건 꼭 그를 거부감 때문이기 보단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거고, 책값도 만만찮아 애저녁에 포기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올리신 문장과 견해들을 간간히 보면서 새 박사님이 아주 근거없는 말씀을 한 건 아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다. 혹시 나중에라도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이 책 추천합니다. 저자인 C.S 루이스는 원래 비신자였다가 신자가 되었고 기독교 변증가가된 사람입니다.
약간 딴 얘기지만... <순전한 기독교>, 제가 C. S. 루이스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 책입니다. 아직 책장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
향팔
stella15님의 대화: @오구오구 맞긴합니다. 자유의지. 천국과 지옥의 개념 보단 처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면 제일 먼저 갖는 의구심이 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하나님이 만드셨냐는 거죠. 그렇게도 먹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면 아예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만드셔서 결국 따먹게 만들고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선악과 좀 따 먹었다고 그걸 죄라고 하고 그에 대한 벌로 고통하며 살게 만들고 하나님이라는 분 너무 편협하신 아니냐는 질문부터 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자유의지는 무슨 개뿔?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또 반대로 그것 때문에 신앙이 더 깊어지는 사람도 있죠. 기독교인이 새 박사님의 책을 본다면 거부감을 갖거나 냉소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두 진영에 대해서 서로 열린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자유의지도 강조하지만 구속이나 운명 같은 반대되는 개념도 수용하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저 역시 새 박사님의 이론에 거부감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읽지 않은 건 꼭 그를 거부감 때문이기 보단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거고, 책값도 만만찮아 애저녁에 포기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올리신 문장과 견해들을 간간히 보면서 새 박사님이 아주 근거없는 말씀을 한 건 아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다. 혹시 나중에라도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이 책 추천합니다. 저자인 C.S 루이스는 원래 비신자였다가 신자가 되었고 기독교 변증가가된 사람입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제가 대학 다닐 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선배 한 분이, 진작 교회를 버리고 광야(?)를 떠돌던 저에게 선물해준 책이었어요. 정말 좋은 책이니 이걸 읽고 기독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취지에서요. 그래서 그때 이 책을 읽긴 읽었었는데, 끝내 교회로 되돌아가지는 않았구만요. ^^;
향팔
연해님의 대화: 저도요. 기후위기 주제만 다루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두렵고, 인간들(?)을 더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작년에 저희 한참 냉매 이야기 할 때도 에어컨에 어찌나 치를 떨었던지요. 여담이지만 저는 이제 여름이 더운 게 아니라 늘 춥습니다(요즘은 걸칠 옷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그냥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다닌다지요). 사무실과 지하철, 버스에 들어갈 때마다 냉동실에 들어가는 기분이에요(어질어질).
저도 같은 마음으로 기대하며 펼쳐보려고요. 그럼에도 낙관! 부지런한 희망!
다음 달에도 향팔님과 함께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기쁘고요:)
오, “부지런한 희망”!! 작년 이맘때 냉매 책 읽으면서 YG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었죠? 까묵고 살았는데 연해님 덕분에 다시 마음에 새겨지네요.
YG
이 타이밍에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군요. 여러분 말씀 듣다 보니, 특히 내일부터 읽을 11장과도 연관이 있는 책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바트 어만의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입니다.
어만은 종교학자이자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성서학자인데, 애초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였다가 지금은 신앙을 버린 분이죠. C. S 루이스와 반대의 길을 걸어간 분이라고나 할까요. @장맥주 작가님은 완전 취향일 듯하고, 아직 기독교에 미련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민을 안겨 주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어만은 양립론자 같네요.)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기아, 전염병, 가뭄, 허리케인, 대학살, 전쟁 등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은 세상에 너무도 많다. 고통의 문제 때문에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하고 누군가는 신을 불신한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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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YG님의 대화: 이 타이밍에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군요. 여러분 말씀 듣다 보니, 특히 내일부터 읽을 11장과도 연관이 있는 책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바트 어만의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입니다.
어만은 종교학자이자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성서학자인데, 애초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였다가 지금은 신앙을 버린 분이죠. C. S 루이스와 반대의 길을 걸어간 분이라고나 할까요. @장맥주 작가님은 완전 취향일 듯하고, 아직 기독교에 미련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여러 가지 고민을 안겨 주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어만은 양립론자 같네요.)
바트 어만 책 가운데는 정말 주옥 같은 책이 한둘이 아닌데요.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두렵고 황홀한 역사: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입니다. 제일 유명한 책은 『성경 왜곡의 역사』이고요. 세 책 다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저자 바트 어만은 예수의 신성이 교회의 교의가 되는 데 걸린 300년의 과정을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낸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복잡한 주제를 누구나 읽기 쉽게 전달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수관에 대해 선명하고 균형 잡힌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두렵고 황홀한 역사 - 죽음의 심판,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영민한 논리와 도발적인 관점으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도 대부분이 믿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관이 성서에 기반한 개념이 아님을 논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