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6.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D-29
꽃의요정님의 대화: 그믐의 제발트 '기억의 유령' 모임에 읽다가 이 책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 있어 가져와 봤습니다. "제발트에게 우연이란 없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그 우연은 단지 우리가 우연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 헤아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할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스피노자. 저는 천상 결정론자 적성인가 봐요.
노자도 일종의 결정론이 아닐까 합니다. 도라고 하는 개념. 인위는 자유의지? 하지만 노자가 유위를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도를 따르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 힘이 덜 들고 원활해진다는 건데, 태극권이 상대를 때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적은 힘으로 효율적으로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의 발휘를 위한 결정론 활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자유의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줄이는 것은 중독 퇴치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피험자를 마약중독자로 만든 다음 그들이 프랜시스 크릭을 읽었을 때 마약 끊기를 더 힘들어하는지 실험해본 연구자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중독을 '자유의지의 상실을 수반하는 상태'로 인식한다. 더욱이 많은 중독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중독자들은 중독에 대해 결정론적 관점을 취함으로써 스스로 핑계를 대는 파괴적 귀인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미묘한 문제다. 중독을 '생물학적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과 '밀조 위스키에 전 나약한 영혼'으로 간주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전자는 광대하고 인간적인 사고의 진전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가 중독을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없는 생물학적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과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있는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임상의들은 후자가 중독 치료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중독을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변화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셈이라는 가정이 전제된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13장에서 다룰 예정이니 기다리기 바란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1장 자유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무신론자를 고려하기 전에,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신은 보편적이지도 않고 고대와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의 흥미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도덕적 신"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문화적 발명품이다. 인류 역사의 99%를 지배해온 수렵채집인의 생활 방식은 도덕적 신을 발명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신은 때때로 최고 수준의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서로에게 친절한가에는 관심이 없다. 협력과 친사회성의 진화에 관한 모든 것은 친숙함과 호혜적 가능성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투명한 관계에 의해 촉진된다. 이것이 바로 소규모 수렵채집 집단에서 도덕적 제약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며, '엿듣는 신'은 개입할 필요가 없다. 도덕적인 신을 믿는 종교는 인간이 더 큰 공동체에서 살면서 등장했다. 마을, 도시, 초기 국가로 이행해 처음으로 낯선 사람과의 빈번하고 일시적인 익명의 만남이 인류의 사회성에 포함되었다. 이로 인해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눈, 즉 세계 종교를 지배하는 도덕적 신을 발명할 필요성이 생겼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1장 자유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한 연구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은 단순히 교회를 지나가기만 해도 무신론자, 소수민족, LGBTQ에 대해 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연구에서, 기독교인 피험자에게 기독교 버전의 황금률을 들려주었더니 동성애 혐오가 줄어들지 않았지만, 불교 버전의 황금률을 들려주었더니 동성애 혐오가 증가했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325,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연구 결과는? 자유의지 회의론자(어떤 유형이든)와 자유의지 신봉자는 윤리적 행동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결과로서,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도덕적 정체성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자신을 가장 잘 정의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직하고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사람들이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낙관론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의 특권이나 역경이 전두피질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그 이유다"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유의지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것이 바로 그 이유다"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의 거울이다. 이 둘의 유사점은 궁극적으로 차이점보다 더 크며,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은 도덕적 품위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관심 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1장 자유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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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님의 문장 수집: "연구 결과는? 자유의지 회의론자(어떤 유형이든)와 자유의지 신봉자는 윤리적 행동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결과로서,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도덕적 정체성이라는 기준에 입각하여 자신을 가장 잘 정의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직하고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사람들이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낙관론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의 특권이나 역경이 전두피질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그 이유다"라는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유의지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것이 바로 그 이유다"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의 거울이다. 이 둘의 유사점은 궁극적으로 차이점보다 더 크며,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은 도덕적 품위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관심 없음"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이다."
문장수집으로 올리려고 들어왔는데 바로 앞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정말 경계해야 할 부류는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도덕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따위엔 관심 없어하며 방관하는 사람들!!!! 11장에서 종교에 대한 부분이 나와서 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종교를 잃은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었다~~~.. 라고 마무리하고 싶네요.
YG님의 대화: 오늘 7월 23일 목요일은 11장 '자유 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를 읽습니다. 이번 장의 핵심 질문은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 비해서 더 엉망으로 살아갈까?' 이 질문에 대한 새 선생의 일차 답변입니다. 그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새 선생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종교인과 무신론자 사이의 여러 비교 연구를 들이대고 있어요. 종교인(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 무신론자(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 이런 대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 전체에서 새 선생의 논지 전개가 제일 취약한 장이 11장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종교인을 과연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신의 뜻대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래는 이미 신의 뜻(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라고 생각하는 숙명론자(새 선생이 인용하는 철학자 닐 레비 등의 표현대로라면 ‘운명론적 결정론자’) 아닌가요? 또 무신론자 가운데도 분명히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고 확신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지난 4월에 함께 읽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의 주인공 휴머니스트야말로 신의 뜻이 아니라 자기 의지(자유 의지)로 자신과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이었잖아요. 이렇게 비유의 전제가 흔들리다 보니, 저로서는 논지 전개를 위한 설득력이 아주 취약한 장으로 보였답니다. 사실,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요. 과학자 중에도 이상한 과학자 아주 많습니다. 과학자 가운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열성 지지자 가운데 정말 대책 없는 선악 이분법에 갇혀서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에 앞장서는 분들 많고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 중에서도!) 그런 과학자 가운데 특히 이상한 사람들 중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도 많고, 그렇다고 무신론자가 덜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 여기서 다시 새 선생의 논지로 돌아가는데, 그냥 세상에는 한 30% 정도의 선한 경향의 사람과 한 30% 정도의 악한 경향의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양극단 30% 안에는 각각 종교인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고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들의 선한 의지를 북돋고 악한 의지를 자제시키는 역할이 제도이고, 그것이 바로 마지막에 새 선생이 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례가 증명하는 모습이겠죠. 11장 논지 전개는 엉망이었지만, 앞의 두 단락은 사실 전형적으로 새 선생의 논리이죠; 하지만, 저는 원래 자유 의지의 틈새가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구조주의자였으니까,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고요. :) 새 선생이 현대 철학의 구조주의자, 예를 들어 미셸 푸코 등에 호의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새 선생이야말로 그런 구조주의자 같아요. 미셸 푸코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사회·담론이라는 수면 아래의 구조(Structure)가 주체를 구성한다’며 ‘주체의 죽음’을 선언했죠. (이렇게 2025년 12월에 읽은 『미셸 푸코: 1926~1984』와 이어집니다.) 새 선생은 그 ‘구조’의 자리에 언어나 담론 대신 ‘유전자·호르몬·전전두엽·유년기 환경’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를 가져다 놓았을 뿐, 인간 주체를 해체하는 방식과 논리 구조는 구조주의와 완벽히 판박이입니다. 공부를 더 하시면 반할 텐데; 이 과학자의 인문학 폄훼도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의 한 본보기입니다. (새 선생 사모님(리사 새폴스키)이 뮤지컬 연출가이니, 또 뮤지컬 사랑은 어찌나 극진한지. :))
아마도 새박사님의 문화적 생태적 환경이 미국이라는 나라라서 주변에 종교인(자유의지론자) vs 비종교인의 분류가 더 쉬운게 아닌가 생각들기도 하구요. 기자님 말씀처럼 휴머니스트 들이야 말로 진짜 무신론자 이면서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죠. 11장 마지막 문장처럼 "관심없음"으로 방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논리적으로 빈약해도 읽기는 엄청 수월했습니다. 또 11장을 읽다보니, 친한 친구모임 (교회친구 모임, 초딩부터 지금까지)에서 한 친구에게 제가 불가지론자가 되었음을 이야기하자 엄청 불쌍하게 혹은 안타깝게 바라보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그 모임에서 나와야 할지 (카톡방 탈퇴)지금까지 엄청 고민중입니다 ㅠ 한번 방탈했었는데 회장이 다시 끌고 들어갔다는 ㅋㅋ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 사람들은 주체의식, 의미, 자기 인식이 감소하고 타인의 친절에 대해 덜 감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목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의 행동이 덜 윤리적이고 덜 이타적이며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우연히 발 견하여 도덕적 나침반이 흔들리기 전에 불태워버리기 바란다. 309 따라서 사람의 말보다 행동을 관찰하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사이의 친사회성 차이는 대부분 사라진다. 자유의지 신봉자와 회의론자를 연구할 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종합적으로, 실험 환경에서 '사람들이 실제 로 무엇을 하는지'를 조사한 연구들은 두 집단 간의 윤리적 행동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317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오구오구님의 대화: 아마도 새박사님의 문화적 생태적 환경이 미국이라는 나라라서 주변에 종교인(자유의지론자) vs 비종교인의 분류가 더 쉬운게 아닌가 생각들기도 하구요. 기자님 말씀처럼 휴머니스트 들이야 말로 진짜 무신론자 이면서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죠. 11장 마지막 문장처럼 "관심없음"으로 방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논리적으로 빈약해도 읽기는 엄청 수월했습니다. 또 11장을 읽다보니, 친한 친구모임 (교회친구 모임, 초딩부터 지금까지)에서 한 친구에게 제가 불가지론자가 되었음을 이야기하자 엄청 불쌍하게 혹은 안타깝게 바라보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그 모임에서 나와야 할지 (카톡방 탈퇴)지금까지 엄청 고민중입니다 ㅠ 한번 방탈했었는데 회장이 다시 끌고 들어갔다는 ㅋㅋ
교회를 탈출(?)한 이후의 인간관계가 고민이 될 수 있다는 점 공감이 되네요. 저는 교회친구 모임은 없었지만 제 원가족들과 관계가 다소 소원한 편인데요, 저 빼고는 모두가 개신교인이라는 점도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제가 웬만큼 나이를 먹은 다음부터는 예전만큼의 강요나 간섭이 사라져서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중 하나입니다. 12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입니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이 신부님인데,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만의 기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를 기준으로 결정하죠. 물론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건 아닌데 아무튼 필립 신부가 생각하고 결심하는 과정들이 인상적이었어요.
대지의 기둥 1에드거 상 수상작인 <바늘구멍>으로 유명한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이며 '1억 부 클럽' 작가인 켄 폴릿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자 최고작으로 꼽히는 소설. 전세계 1400만 부 판매에 30개 언어 번역 출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가진 이 작품은, 미국에서만 매년 10만 부가 팔리는 역사소설이다. 2010년 여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드라마로 제작하여 스타즈 채널에서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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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님의 대화: 오늘 7월 23일 목요일은 11장 '자유 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를 읽습니다. 이번 장의 핵심 질문은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 비해서 더 엉망으로 살아갈까?' 이 질문에 대한 새 선생의 일차 답변입니다. 그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새 선생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종교인과 무신론자 사이의 여러 비교 연구를 들이대고 있어요. 종교인(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 무신론자(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 이런 대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 전체에서 새 선생의 논지 전개가 제일 취약한 장이 11장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종교인을 과연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신의 뜻대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래는 이미 신의 뜻(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라고 생각하는 숙명론자(새 선생이 인용하는 철학자 닐 레비 등의 표현대로라면 ‘운명론적 결정론자’) 아닌가요? 또 무신론자 가운데도 분명히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고 확신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지난 4월에 함께 읽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의 주인공 휴머니스트야말로 신의 뜻이 아니라 자기 의지(자유 의지)로 자신과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이었잖아요. 이렇게 비유의 전제가 흔들리다 보니, 저로서는 논지 전개를 위한 설득력이 아주 취약한 장으로 보였답니다. 사실,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요. 과학자 중에도 이상한 과학자 아주 많습니다. 과학자 가운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열성 지지자 가운데 정말 대책 없는 선악 이분법에 갇혀서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에 앞장서는 분들 많고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 중에서도!) 그런 과학자 가운데 특히 이상한 사람들 중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도 많고, 그렇다고 무신론자가 덜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 여기서 다시 새 선생의 논지로 돌아가는데, 그냥 세상에는 한 30% 정도의 선한 경향의 사람과 한 30% 정도의 악한 경향의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양극단 30% 안에는 각각 종교인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고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들의 선한 의지를 북돋고 악한 의지를 자제시키는 역할이 제도이고, 그것이 바로 마지막에 새 선생이 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례가 증명하는 모습이겠죠. 11장 논지 전개는 엉망이었지만, 앞의 두 단락은 사실 전형적으로 새 선생의 논리이죠; 하지만, 저는 원래 자유 의지의 틈새가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구조주의자였으니까,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고요. :) 새 선생이 현대 철학의 구조주의자, 예를 들어 미셸 푸코 등에 호의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새 선생이야말로 그런 구조주의자 같아요. 미셸 푸코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사회·담론이라는 수면 아래의 구조(Structure)가 주체를 구성한다’며 ‘주체의 죽음’을 선언했죠. (이렇게 2025년 12월에 읽은 『미셸 푸코: 1926~1984』와 이어집니다.) 새 선생은 그 ‘구조’의 자리에 언어나 담론 대신 ‘유전자·호르몬·전전두엽·유년기 환경’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를 가져다 놓았을 뿐, 인간 주체를 해체하는 방식과 논리 구조는 구조주의와 완벽히 판박이입니다. 공부를 더 하시면 반할 텐데; 이 과학자의 인문학 폄훼도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의 한 본보기입니다. (새 선생 사모님(리사 새폴스키)이 뮤지컬 연출가이니, 또 뮤지컬 사랑은 어찌나 극진한지. :))
@YG 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종교인이라고 선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유의지 신봉자 역시 선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자유의지가 없으면 되는 대로 살 거라는 것에 반박하기 위해서 무리한 비유를 하신 것 같네요.
YG님의 대화: @장맥주 인용하신 쪽 읽으면서 아침부터.ㅠ.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 저한테는 가슴 미어지는 책이었는데 @YG 님께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오도니안님의 대화: 저도 돈 까밀로와 뻬뽀네 팬이었어요~ 읽은지 한참 되긴 했지만 뻬뽀네와 싸우고 서로 골탕먹이다가 혼자 있게 되면 심난해지고 그럴 때 예수님이 한 마디씩 하시는 장면들을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러시아 편도 읽어봐야겠네요.
@향팔 @오도니안 읽은지 오래 돼서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편은 한 편의 장편소설 같은 구성이더라고요. 후반부에 기독교 신자라면 눈시울 붉힐 만한 묵직한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빼뽀네 읍장님이 안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도니안님의 대화: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중 하나입니다. 12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입니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이 신부님인데,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만의 기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를 기준으로 결정하죠. 물론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건 아닌데 아무튼 필립 신부가 생각하고 결심하는 과정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켄 폴릿 작가의 작품이네요. 엄청난 스토리 텔러죠. 바늘구멍도 정말 재밌게 읽었고 3부작도 너무 재밌게 읽었구요. 대지의 기둥도 재밌다고 하시니 꼭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쭉쭉 진도를 뽑아서 14장까지 다 읽었고 15장을 앞두고 있어요. 14장이 새 박사님이 가장 주장하고 싶었던 내용일 텐데, 저는 어이없게도 새 박사님이 펼치는 정책 제안을 대부분 받아들이게 되네요. 그런데 이런 정책 제안을 펼치기 위해 굳이 결정론을 들고 올 필요가 있었나 생각합니다. 14장 말미에서 새 박사님의 혼란스러운 고백도 나쁘지 않게 읽었습니다.
stella15님의 대화: 와, 기독교 문학성애자시군요. ㅋㅋ 그럼 엔도 슈사쿠의 <침묵>도 읽으셨겠네요. 전 영화로 봤는데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엔도의 책이 제법 많이 나와있더군요. 저 신부님 시리즈는 중학교 땐가 하도 선전을 많이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기긴한데 생각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멋 모르고 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날지 궁금하긴합니다.
아. 엔도 슈사쿠를 못 읽었습니다. 언젠가 읽어보려고 벼르기만 하는 작가입니다. ^^;;;
장맥주님의 대화: 아. 엔도 슈사쿠를 못 읽었습니다. 언젠가 읽어보려고 벼르기만 하는 작가입니다. ^^;;;
읽으실 때 연락 주십시오! 한 두 권은 같이 읽어드리겠습니다. ㅋㅋ
(사실 엄밀히 말해서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종교에 대한 태도와 자유의지의 유무에 대한 태도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내가 무신론을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은 ‘자유의지 개념 거부’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한 워밍업일 뿐이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 11장,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YG님의 대화: 오늘 7월 23일 목요일은 11장 '자유 의지 회의론자는 난동에 가담할까?'를 읽습니다. 이번 장의 핵심 질문은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 비해서 더 엉망으로 살아갈까?' 이 질문에 대한 새 선생의 일차 답변입니다. 그 답변을 이끌어 내고자 새 선생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종교인과 무신론자 사이의 여러 비교 연구를 들이대고 있어요. 종교인(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 무신론자(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 이런 대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 전체에서 새 선생의 논지 전개가 제일 취약한 장이 11장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종교인을 과연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히려 ‘신의 뜻대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래는 이미 신의 뜻(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라고 생각하는 숙명론자(새 선생이 인용하는 철학자 닐 레비 등의 표현대로라면 ‘운명론적 결정론자’) 아닌가요? 또 무신론자 가운데도 분명히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고 확신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지난 4월에 함께 읽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의 주인공 휴머니스트야말로 신의 뜻이 아니라 자기 의지(자유 의지)로 자신과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이었잖아요. 이렇게 비유의 전제가 흔들리다 보니, 저로서는 논지 전개를 위한 설득력이 아주 취약한 장으로 보였답니다. 사실,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요. 과학자 중에도 이상한 과학자 아주 많습니다. 과학자 가운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열성 지지자 가운데 정말 대책 없는 선악 이분법에 갇혀서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에 앞장서는 분들 많고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 중에서도!) 그런 과학자 가운데 특히 이상한 사람들 중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도 많고, 그렇다고 무신론자가 덜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 여기서 다시 새 선생의 논지로 돌아가는데, 그냥 세상에는 한 30% 정도의 선한 경향의 사람과 한 30% 정도의 악한 경향의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양극단 30% 안에는 각각 종교인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고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유 의지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들의 선한 의지를 북돋고 악한 의지를 자제시키는 역할이 제도이고, 그것이 바로 마지막에 새 선생이 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사례가 증명하는 모습이겠죠. 11장 논지 전개는 엉망이었지만, 앞의 두 단락은 사실 전형적으로 새 선생의 논리이죠; 하지만, 저는 원래 자유 의지의 틈새가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구조주의자였으니까,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고요. :) 새 선생이 현대 철학의 구조주의자, 예를 들어 미셸 푸코 등에 호의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새 선생이야말로 그런 구조주의자 같아요. 미셸 푸코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사회·담론이라는 수면 아래의 구조(Structure)가 주체를 구성한다’며 ‘주체의 죽음’을 선언했죠. (이렇게 2025년 12월에 읽은 『미셸 푸코: 1926~1984』와 이어집니다.) 새 선생은 그 ‘구조’의 자리에 언어나 담론 대신 ‘유전자·호르몬·전전두엽·유년기 환경’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를 가져다 놓았을 뿐, 인간 주체를 해체하는 방식과 논리 구조는 구조주의와 완벽히 판박이입니다. 공부를 더 하시면 반할 텐데; 이 과학자의 인문학 폄훼도 내집단 옹호, 외집단 증오의 한 본보기입니다. (새 선생 사모님(리사 새폴스키)이 뮤지컬 연출가이니, 또 뮤지컬 사랑은 어찌나 극진한지. :))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선 위에 수집한 문장에서 새 박사님이 변명(?)을 하고 있네요. 제 생각엔 자유의지와 결정론 믿음에 따른 차이에 관한 연구보다 종교에 따른 도덕성이나 다른 차이들을 다룬 연구가 더 많기 때문에 이렇게 내용을 구성한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가 자유의지론에 가깝고 무신론이 결정론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관계를 전제해서 11장 내용이 쓰여진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도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여부의 영향력을 주제로 삼으면서 종교와 무신론 이야기를 한참 하니 종교와 자유의지론 간의 상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선 좀 번잡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장의 요지는 갖고 있는 사상과 윤리성 간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연구들이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책임과 의무감이 강해지고 결정론을 믿으면 좀 느슨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예전에 11장에서 인용되는 연구 결과들을 접하면서 역시 좀 그렇군 했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 주제를 떠나서 종교와 무신론의 영향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같은 종교라도 가르침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방식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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