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님의 대화: 사실, 여기 한때 기독교 세례를 받으셨던 여러분이 사색해 볼 만한 좋은 선배들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 에리히 프롬, 테리 이글턴 등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던 사상가들이죠.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고, 때로는 신이라는 지평이 필수불가결하다고도 주장했던 이들입니다. 저는 이들의 고민을 엿보는 게 새 선생의 결정론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알다시피,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토대와 그것이 결정한 계급 같은 '구조'가 주체의 행동을 아주 강하게 구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이 대결해야 했던 당대의 기계적 마르크스주의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일방통행식 인과관계로 규정했죠. 이들은 이런 딱딱한 '결정론'에 깊은 회의를 느꼈지만, 동시에 토대와 계급이 주체를 규정짓는 기본 전제 또한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이 구조의 거대한 속박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자율적 주체성'의 가능성을 지켜내기 위해 호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초월적 존재(신학적 지평)'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 '초월성'은 위에서 통제하는 '가부장적 신'이 아니었습니다. 구조가 인간을 한낱 기계나 부속품으로 환원하려고 할 때, 거기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의 근거로서의 초월성이었지요.
새 선생이 뇌과학이라는 생물학적 구조로 인간을 해체하려 할 때, 우리가 '그럼에도 주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선배들의 고뇌와 닿아 있습니다.
덧붙이면, 한국에서도 완고한 마르크스주의자(올드보이)들이 만년에 생물학적 결정론을 만나고서 아주 환호했던 흥미로운 지성사가 있습니다. :)

사회생물학 대논쟁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가? 동물만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행동까지 생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생물학'과 생물학을 중심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하려는 '통섭'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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